LIBERA ME

선종훈_하태형 2인展   2019_1102 ▶︎ 2019_1203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1102_토요일_05:00pm

후원 / (주)아트레온 주최 / 아트레온 문화예술부 기획 / 아트레온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레온 갤러리 Artreon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129 (창천동 20-25번지) 아트레온 B1,2 Tel. +82.(0)2.364.8900 www.artreon.co.kr

아름다움(美), 그 욕망의 여정 너머… ● 작가 선종훈의 작품 화두는 아름다움(美)이다. 그의 아름다움의 사유와 잠재적 생명의 영원성과의 관계를, 그의 시 「관계-이상동몽」을 통해 바라보면, 그것은 존재(存在, Etre)의 궁극을 의미한다. 생명 있는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고 같은 꿈을 꾼다. 그리고 각각의 존재는 서로 교차하며, 비워가고 스스로를 채워간다는 것이다. ● "… 나는 나이기에 너를 비우고, 너는 너이기에 나를 채운다. 나는 네가 되고파 너를 채우고, 너는 내가 되고파 나를 비운다." - 「관계-이상동몽」, 2008년 작가의 시 중에서

선종훈_완전한 펑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0.6×50cm_2019
선종훈_완전한 평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0.9×72.7cm_2016

선종훈의 작업은 신비와 연결되어 있다. 신비로운 느낌은 작품이 풍기는 멋이다. 신비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예술은 일상 속에서 그리고 저 너머의 신비를 드러낸다. 눈감은 여인의 표정은 꿈과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은 성스러운 무엇과 닿아 있다. 작가는 회화의 고전적 숙제를 다시 묻는다. 아름다움, 성스러움, 숭고함 그리고 저 너머의 세계를 찾는다. ● 인물에 비친 빛은 신비감을 더한다. 꿈 꾸는 것 같다. 몽롱하다. 작가가 설정한 빛은 가슴으로부터 나온다. 빛은 인간 각자의 가슴에서 비쳐 나와 그 존재의 신비를 스스로 드러낸다. 그 빛은 꿈 속의 풍경을 비춘 듯하다. 작가는 인물의 가슴 앞 쪽에서 비춘 인공조명의 변화를 포착한 사진을 제작과정에 활용하고 있지만, 결국, 작품 속에서 인공의 빛과 인물모델이라는 구체적 대상이 사라진다.

선종훈_당신의 사랑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9×78cm_2017
선종훈_완전한 펑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0.6×50cm_2019

작가는 기억으로부터 끄집어낸 빛과 등장인물을 화면에 투사한다. 밑에서 우러나오는 빛은 작품의 소재인 꽃이나 인체 속에서 품고 있고, 스스로 발현되는 숭고한 빛이다. 빛이 밑에서 위로, 가슴에서 빛이 올라온다. 존재성의 그 깊은 곳에서 비쳐 나온다. 스스로의 빛이다. 작품 속 인물은 목은 가늘고 눈과 눈썹 사이가 유난히 멀다. 허리도 가냘프다. 재현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추출한 생략과 과장 그리고 추상(abstract)의 단계를 거친다. 작품은 감상자의 마음을 움직여 소소한 이야기를 만든다. ● 작가는 아름다움을 통해 '무관심의 만족상태' 즉 '보편적인 만족'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움은 사랑에 연결되어 있다. 아름다움은 활기를 불어넣는다. 보이지 않는 빛을 통해 숭고한 상태를 이룬다. 아름다움은 목적, 수단 혹은 유용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중국계 프랑스아카데미의 회원인 프랑수와 쳉(François Cheng, 1929 - )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예술이 추구할 그 무엇'으로 설명한다.

선종훈_나의 당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9×78cm_2017

"아름다움은 필연적 만족의 대상으로서 개념 없이 인지된다." - François Cheng, Cinq méditations sur la beauté, 2006. ● 말 많은 세상에 말 없는 그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연 작가의 길은 무엇인가? 그림은 글이나 문자보다 직관적이며 직접적이다. 그림은 침묵한다. 시간을 두고 보면 그림은 말한다. 그림은 절대(絶對, Absolute)를 향한 존재 너머의 신비를 담고 있다. 작가는 묵언(默言)이 가지는 그 너머의 비밀을 감지한다 ● 작가의 회화론은 미궁(迷宮, labyrinthos)이다. 중심을 향한 끝없는 여행의 과정이다.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서 그림 너머의 무엇을 찾고 있다.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를 통합해 한 가지 주제에 도달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회화의 변증법(辨證法, dialektik)'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지금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다른 시각으로서의 이 사회 이야기를, 「균형 속 불균형(Unbalance in balance)」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은 '중심잡기'라는 주제로 「Human tower」 제목의 연작들이다. 이번 전시는 또다시 인간이 살아가야 할 이야기를 담은 '서사(narration)'로의 귀환을 알린다. ■ 김대신

하태형_Eden down-1_캔버스에 혼합재료_182×456cm_2019
하태형_Eden down-2_캔버스에 혼합재료_194×295cm_2019

머릿속이 복잡하다. 숨막힐 듯 지저분한 작업실만 들어오면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습관처럼 붓을 잡는다. 구속된 지꺼림이 자유롭다.

하태형_Eden down-3_캔버스에 혼합재료_182×228cm_2019
하태형_Eden down-4_캔버스에 혼합재료_140×194cm_2019

淨化作用 으로서의 metaphor – Eden Down ● 인류는 집단을 이루면서부터 어떤 식으로든 기록되고, 그 기록이 곧 역사가 되었다. 기록하는 자나 당시 지도자의 가치판단으로 지어낸 것을 생각 없이 절대적진실로 수용한다는 것은 수많은 오류를 포함해야 하는 위험성이 있다. 어느 집단이든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질서가 필요하고, 그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간에 권력이라는 것을 동반한다. 이 권력의 이해관계로 인해 불특정다수의 희생을 강요하기까지 한다.

하태형_Eden down-5_캔버스에 혼합재료_259×194cm_2019
하태형_Eden down-6_캔버스에 혼합재료_194×130cm_2019

표상 없이 표현이 가능할까? 표상이란 사람이나 사물, 혹은 물질 등을 특정한 형태, 혹은 본성을 가지는 어떤 것을 통해 묘사하는 것이다. 즉 가장 단순한 형태의 표상이란 사람이나 사물을 객체로 하여 그 형태나 특징을 특정 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표상의 매체는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 또는 사물을 연상시키는 유사성을 가진 모형이나 그림이 될 수도 있다. ● 색이나 향기, 생기도 없이 형상뿐인 꽃이나 영혼이 털린 채 겉옷만 남은 부유하는 인간, 진실규명을 위해 삼년이 지나서야 건져진 배 등은 자존감도 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류와 권력의 이권에 맹목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 어떤 아픔이나 상처도 나아짐을 전제로 진행되는 과정이며 순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지만 또 다른 한번 의 정화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내가 껍데기이고 꽃이며 세월호이다. ■ 하태형

Vol.20191103e | LIBERA ME-선종훈_하태형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