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

이은정_하진 2인展   2019_1101 ▶︎ 2019_1229

이은정, 하진_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_ 각파이프, 금속링_가변설치_2019

작가와의 만남 / 2019_1108_금요일_06:00pm

봉산문화회관 기획 전시공모 선정작가展 '헬로우! 1974' ⌜유리상자 - 아트스타 2019⌟ Ver.5

관람시간 / 09:00am~10:00pm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2층 아트스페이스 Tel. +82.(0)53.661.3521 www.bongsanart.org

봉산문화회관의 기획, 「유리상자-아트스타2019」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합니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74'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하여 '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동시대 예술의 가치 있는 '스타성'을 지원하려는 의미입니다. ● 4면이 유리 벽면으로 구성되어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람방식과 도심 속에 위치해있는 장소 특성으로 잘 알려진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는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시민과 예술인의 자긍심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은정, 하진_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_ 각파이프, 금속링_가변설치_2019

2019년 유리상자 다섯 번째 전시공모 선정작, 「유리상자-아트스타 2019」Ver.5展은 회화를 전공한 이은정(1974년생)과 하진(1973년생) 두 사람의 조형 설치작업 '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입니다. 이 전시는 유한 존재로서 인간이 실체를 알기 어려운 무한 우주의 근원에 대하여 탐구하는 질문 행위의 흔적입니다. 두 작가는 자연과 우주에서 발견되는 생성과 소멸의 현상들과 근원 탐구의 기억들 그리고 인간 정신과 예지叡智적 이성 사이를 오가는 어느 지점을 막대 나선형 공명 구조라는 상징적 해석으로 시각화합니다. 또한 지금, 이곳의 설치 상태가 가능하도록 교감해온 두 미술가의 공명 행위가 관객과 만나 충만의 기억을 공감하는 상상을 시도합니다. ● 두 작가는 4면이 투명한 유리로 마감된 '유리상자' 전시 공간에 높이5400×폭5120mm의 거대한 은빛 나선螺線spiral 장치를 설계하였습니다. 이 장치는 단면이 40×40mm이고 길이가 5120mm 되는 사각막대파이프를 시작으로 아랫방향을 향하여 길이를 40mm씩 점차적으로 줄이고 축을 중심으로 각도를 40mm씩 비튼 128개의 층을 양 끝에 둥근 링으로 체결하여 구축하는 구조물입니다. 바닥에 가까운 마지막 파이프는 40×40×40mm 크기의 정방형이며, 이 부분을 받치는 중심축의 끝 부분은 점차 가늘어져서 날카롭게 바닥의 한 지점에 닿아 있습니다.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이지만 운동감 있는 나선형의 곡선과 수학적인 규칙성, 순차적으로 빛을 반사하는 펼친 면 구조와 재료의 물성 등으로 인해 조형적으로 아름답습니다. 또한 관객이 유리상자의 둘레를 걸으면서 바라보는 시선에 따른 외형과 빛의 변화로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은정, 하진_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_ 각파이프, 금속링_가변설치_2019

작가는 이 '기원-막대나선공명'에 대하여 "인간의 직관과 상상력으로 그 존재를 추정하고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측정으로 탐구해 알아낸 자연과 우주 생성의 근원에 대한 접근"이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원起源은 사물이 처음으로 생기는 근원입니다. 작가에 의하면, 자연설계를 따르는 우주 생성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용돌이 모양으로 자리 잡은 나선형 구조를 만나게 되며, 이 나선형 구조의 은하 중에서 막대나선 구조의 특이성을 주목하게 된다고 합니다. 은하계에서 관찰되는 생성과 소멸의 규칙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들에 의하면, 궤도 공명의 불안정한 중력 작용과 충돌에 의해 막대나선 구조가 형성되고, 이 막대구조 내부에서 일어나는 공명을 통하여 은하 안에서 별들이 탄생하는 에너지와 은하 중심부 거대 블랙홀의 성장 과정에 큰 영향력이 가해진다고 합니다. 두 작가는 우주와 세계에 관한 기원의 상징 혹은 시작과 끝,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고 시간상으로는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구조로서, 막대나선의 공명을 인식하고 기억하며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 같은 우주 은하계의 고고학적 관심은 궁극적으로 우주의 신비와 생명의 기원을 추적하여 동시대 인류를 비롯한 나 자신의 탄생과 죽음, 삶의 인식에 대한 성찰에 이르게 합니다. 이처럼 인식과 사고를 확장擴張해가는 작가의 미학적 설계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잇는 연속적인 미술 행위이며, 인간 삶의 굴곡과 변화에 대응하려는 우주의 중심으로서 우리 인간의 태도와 닮아있기도 합니다. ● 바닥의 한 점에서 출발하여 공간 전체의 드로잉으로 확산하는 이 조형 구조의 기본 단위는 선입니다. 두 점 사이를 잇는 선은 사각 파이프로 구체화되어 나선형을 구축하면서, 두 덩어리의 중력이 궤도 공명으로 상호작용하는 막대나선공명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공간으로의 확산은 동시에 우주 혹은 자연으로부터 개별 인간으로서 '나'라는 하나의 점으로 환원되는 상황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기원'을 증거 하는 '지금, 여기'의 '공허'와 '충만', 그 사이의 '공명'을 기억하려는 스펙트럼이고, 또 관찰과 탐구로 근원적 원리를 산출해내는 이성과 감수성, 통찰력을 호출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지향을 실천하는 수행의 신체행위에서 자기 스스로와의 만남, 동료 미술가와의 유대와 공감, 또 다른 나눔의 경험들과 함께 세상과의 '관계'를 또 다른 차원에서 가능하게 합니다. 눈앞에 펼쳐진 '기원'은 세계의 탄생과 소멸에 관한 자연설계를 참조하는 공간적 회화이며, 그 규칙의 기억을 더듬는 행위와 심리적 흔적이고, 인간 삶의 과정에 관한 정서적 균형의 제안입니다. 충만의 경험을 기억하며 현재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이번 유리상자의 정치는 근원을 질문하는 미학적 신념의 소통과 예술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 정종구

이은정, 하진_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_ 각파이프, 금속링_가변설치_2019

우리는 「기원-막대나선공명」을 통해 은하계에서 관찰되는 일시적 상호 작용의 현상에 주목한다. 수많은 항성, 밀집성, 성간 물질, 암흑 물질 등이 중력에 의해 뭉친 거대한 천체인 은하들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수많은 은하들이 중력의 작용과 충돌에 의해 병합의 과정이 완료된 후에는 막대로 진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전하는 두 천체가 작은 정수비를 만족하는 공전 주기로 인해 서로에게 주기적으로 일정하게 중력적 영향을 가해 일어나는 궤도 공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선은하가 막대를 만드는 것으로 최종 진화를 이루기 어렵다. ● 우리는 자연 속에서 인간이 발견한 규칙들과 단위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문화적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 왔다. 인간의 문화에서 개인의 일상으로, 큰 단위에서 작은 단위로 이행하며 존재하는 규칙성과 패턴에 주목하여 공동의 프로젝트로 진행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천체가 공전의 궤도에서 일직선으로 만날 때 서로를 미는 중력에 의해 공명을 만들어내고 이 작용으로 인해 나선 은하가 막대 구조로 진화하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공전의 궤도에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은 공명을 만든다. ● 봉산문화회관에 설치한 「기원-막대나선공명」은 인간의 직관과 상상력으로 그 존재를 추정하고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측정으로 알아낸 자연과 우주 생성의 근원에 대한 접근이다. 자연과 우주 생성의 신비로움 속에서 인간이 증명했던 규칙성과 패턴들을 시공간을 가로질러 다시 실험한다. 전시장의 바닥으로부터 사각의 금속 파이프를 일정한 각도로 돌려 천장까지 층층이 세워 올린다. 조형의 '단순함'은 자연과 우주의 복잡다단한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하학적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각파이프로 쌓아올린 나선의 구조는 관람객에게 가까운 하나의 점으로부터 공간으로 확장되고, 시공간을 가로질러 우주가 개인으로 수렴한다. 관객들은 기존의 유리상자가 가진 격자의 창틀 사이로 보이는 막대나선구조물을 통해 자연과 우주에서 찾을 수 있는 기하학적인 신비함을 조우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와 또다른 은하계가 속한 우주의 근원으로 다다르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 이은정_하진

이은정, 하진_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_ 각파이프, 금속링_가변설치_2019

유리상자 속 은빛 나선형 입체가 각성하는 방식 ●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은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이미 그 별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초당 30만 km라는 빛의 속도로 우주를 가로질러 우리의 시야에 도달하는 별빛은 수십만 년 전의 과거로부터 온 빛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밤하늘의 별빛은 언제 어디선가 존재했던 것들의 지나간 시간이 우리에게 가장 신비하게 현재화되는 자연현상일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별들의 반짝임과 움직임을 통해 방향을 찾고 다가올 계절의 변화를 예측했다고 한다. 이은정과 하진의 「기원-막대나선공명」은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처럼 과거가 현재-미래와 맺는 특별한 관계를 질문하는 작품이다. 그 동안 문명과 도시의 '패턴과 벽'을 사유하며 데생과 회화, 설치, 영상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해 온 두 작가가 이번엔 나선형이라는 우주와 자연의 패턴을 금속으로 조형화했다. 나선형은 요동치는 계곡물이나 은하의 소용돌이, 달팽이의 껍데기나 사람의 지문, 아니면 암모타이트나 고사리의 형태와 같이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선과 움직임이다. 생명이 수정하는 순간에도 수정체는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회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선형은 고대인들에게 시작과 재생, 희망을 뜻했고, 고대 크레타 미술부터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1889)」에서와 같이 미술사에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패턴이다. 그렇다면 이 낯익고도 낯선 형태의 조형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효과를 발휘할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먼저 작품의 공간적 맥락을 되짚어보자. ● 전시공간인 '유리상자'는 전면이 유리로 된, 바깥에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공간이다. 산업 혁명 이후 규격화된 유리와 철근 같은 새로운 건축 재료의 대량 생산과 사용은 도심 속 높이 빛나는 마천루들을 등장하게 했다. 반짝이는 유리커튼월(curtain wall)로 장식된 대도시의 유리타워는 냉철한 이성과 보편적 합리의 빛을 상징했으며, 강건한 철골 구조와 결합해 기술 진보를 통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그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리건축의 투명성은 자본주의의 욕망과 환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동시대 거대도시의 자본은 끊임없이 자연을, 또는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주거공간을 사나운 재개발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고, 윤택한 외관의 기세등등한 유리타워로 그 자리를 대체한다. 머무르지 못하게, 만족하지도, 추억하지도 못하게 해, 생의 그 구멍 난 서늘한 부분을 부지런히 소비를 통해 채우고 살아가라고 종용한다. 20세기 초의 혁명적 지식인 발터 벤야민(W. Benjamin)이 19세기 파리의 유리지붕으로 덮인 상점가였던 아케이드를 주목한 이유 역시 이 점에 있다. 당시 세계의 유행과 패션의 수도였던 파리의 아케이드는 "상품자본주의의 원조신전"이었다. 안도 밖도 아닌 이곳에선 밤낮으로 화려하게 진열된 사치품들이 거래되었고, 사람들은 매춘과 도박에 취해갔다. 그러나 외부의 날씨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 '아름다운 온실'은 날로 거세지는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침탈과 계속된 궁핍과 절망에 지친 노동자들의 현실을 은폐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나치의 위협이 드리운 20세기를 살았던 벤야민이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통해 본 것은 결국 자본주의의 물신적(fetishism), 환(등)상적(phantasmagoria) '기원'이었다. 그리고 그 곳으로부터 그는 곧이어 인류에게 도래할 세계대전의 광풍과 비극을 독해했다.

이은정, 하진_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_설치과정

이은정과 하진의 「기원-막대나선공명」은 태어남과 동시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리는 기이한 운명을 지닌 동시대 자본주의 구조 속 역설적 존재 조건에 대한 묵시적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제 서울에서도, 지방에서도, 산과 강, 들판과 바닷가 어디에서나 건물은 투명하다. 도시는 높아지고, 대형 판유리로 마감된 새로운 식당과 카페, 쇼핑몰과 헤어살롱, 성형외과와 주상복합들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무한경쟁을 통한 효율과 이윤의 극대화라는 후기자본주의의 논리는 가정과 학교, 일터와 도시 공간을 양극으로 재편성하고, 민주주의는 번번이 소멸되고 좌절된다. CCTV, 블랙박스를 통한 감시는 일상 속 편재하며, 스마트기기에 둘러싸인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데이터들을 생성하며 거대정보기업들의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상품과 정보를 소비하고 버리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이쯤 되면 21세기의 투명성이란 어떤 비밀도, 내막도 없이 획일적, 즉각적으로 자본이 내다 파는 온갖 새로운 것을 소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서로가 혹은 스스로를 감시하며-불안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숙명을, 그 뻔히 반복되는 삶의 패턴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낯설고, 은밀하고 모호한 것들, 이질적인 것들은 해체된다. ● 「기원-막대나선공명」은 이처럼 모든 것을 밖으로 드러내고, 정보로 전환하고, 소비하는 "투명사회에 반하여 불투명한 베일에 가려진 (세계의) 신비를 찾고자" 하는 두 예술가들의 미학적, 정치적 욕망의 결과물이다. 두 작가는 우주와 생명이 처음 내디딘 발걸음 모양인 나선형을 은빛 막대파이프를 조금씩 비틀어 세워 바닥부터 천장까지 용접해 올리는 방식으로 입체화함으로써, 인간의 유한한 지식과 감각으로 '알 수 없는' 우주의 신비와 생명의 기원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는 곧 동시대 구조 속 삶/죽음, 자연/인간, 정신/물질, 실재((實在)/허상, 현실/가상의 경계에 대한 사유로까지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에서 장엄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는 은하의 움직임과 속도가, 5억만년 전부터 존재해온 고사리의 곱고 연약한 새순이, 3억 년 전의 중생대를 살았던 암모나이트의 화석이 첨단 인공지능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뜨거워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환경재앙과 바다를 잠식하는 플라스틱과 비닐들, 매 순간 사라져가는 아마존의 열대 우림과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멸종 위기의 동식물 뉴스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천 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이곳에서 살아온 존재들을 훼손하고 지워가는 지금, 천년 세월을 소비해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처럼 작품은 투명한 유리공간을 그림자처럼 점유하며, 태초의 빛으로부터 현재까지, 장구한 우주와 문명의 시간 속 사라져 가는 과거의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잠시 붙잡아두고, 각성한다. 그리고 그 상태를 지속시켜 미래로까지 우리의 인식과 사고를 확장한다. 사실 이런 하찮고 평범한 대상을 통해 다른 시공간을 이어 관객을 각성시키는 미학적 실험은 이들의 지난 작업의 연장이다. 그 동안 이은정은 도심 속 오래된 건물 외벽의 틈과 상처를 얇은 제도용 투사지에 프로타주 기법으로 떠내왔고, 하진은 문명과 자연의 시간을 머금은 먼지나 모래를 모아 패턴이나 경계를 만들고 지우기를 반복해 왔다. 결국 이들의 이 고단하고도 부단한 수고는 묵묵히 버텨온 세상과 무한한 우주와 대지의 시간 속 유한한 인간이 욕망하고 만들어가는 것들의 의미와 무상함을 질문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자본과 권력의 그늘에서 억눌리고 짓밟혀 스러져간 익명의 존재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실천인 것이다.

이은정, 하진_기원-막대나선공명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_ 각파이프, 금속링_가변설치_2019

위기와 반복이 규칙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각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를 망각하기 때문이다. 벤야민에게 19세기 파리는 '집단수면'에 빠진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잠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전 지구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자본의 무한질주와 힘, 그리고 인간의 자기중심적 욕망과 편리로 조직된 동시대 풍경에서 과거의 새로움은 곧바로 망각된다. 과거를 망각하기 때문에, 과거는 언젠가 또 다시 새로운 것으로 둔갑해 등장할 것이다. 그 기나 긴 수면과 망각을 혁파할 해방의 잠재력은 잠에서 깨어나는 각성의 순간에 있다. 오늘의 "비상사태"는 예외가 아니라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감각하고, 기존의 사고와 체계에 균열을 내는 '알려지지 않은' 위험한 것들을 욕망하고 산출하는 대항적 감수성과 지식,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막 잠에서 깨어나 각성한 자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와 다가올 시간을 질문하며 노동, 수행하는 행위를 일컬어 우리는 '예술' 이라고 부른다. ● 가슴 깊이 아름다움과 신비를 추구하는 이들은 숙명적으로 과거를 멀리 본다. 과거를 멀리 본다는 것은 '기원'을 찾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무엇을 잊고 있으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확인함으로써, 도래할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바로 그 기억과 각성의 순간으로부터 우리는 일상에서 반짝이는 작은 혁명들을 만나게 된다. ■ 나일민

시민참여 워크숍 - 제목 : BIOMIMICRY: 자연에서 배운다 - 일정 : 12월 14일(토) 오후 3시 - 장소 :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 대상 : 초등학생 이상 - 참가문의 : 053) 661-3526 - 내용 :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다양한 영감을 얻는다. 자연의 효율적인 구조와 패턴을 소개하고, 이를 이용하여 창작물을 만들어 본다.

Vol.20191104e | 기원-막대나선공명 - 이은정_하진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