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머치 러브 Too Much Love

이으지 보트루바展 / Jiří Votruba / painting   2019_1104 ▶︎ 2019_1206 / 주말 휴관

이으지 보트루바_투 머치 러브展_스페이스K_과천_2019

초대일시 / 2019_1104_월요일_05:30pm

주최 / 코오롱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 휴관

스페이스K_과천 SPACE K_Gwacheon 경기도 과천시 코오롱로 11 (별양동 1-23번지) 코오롱타워 1층 Tel. +82.(0)2.3677.3119 www.spacek.co.kr

우리나라에서 체코는 프라하의 봄 같은 체제 저항이나 카를교처럼 매력적인 관광지의 이미지가 강하다. 예술에 대해서라면 소설가 카프카와 쿤데라 혹은 음악가 드보르자크 정도가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만 유난히 미술 분야에서는 알려진 예술가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런 점에서 체코의 시각 예술가 이으지 보트루바(Jiří Votruba)의 이번 개인전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대개 해외 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서구나 강대국에 편중되어 있는 우리 문화적 토양을 보더라도 동구권, 그것도 근대 예술가가 아닌 현재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대 작가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해 스페이스K에서 루마니아의 신진 작가들을 소개한 『루마니안 아이즈』展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었다.

이으지 보트루바_This w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60cm×2_2019

보트루바는 1946년에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원래 건축을 전공했지만 자신의 새로운 내면을 회화에서 발견한 후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40대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미술가로 전향했는데 이때가 1989년에 하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민주공화국으로 결실을 맺은 벨벳혁명의 시기와 맞물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가 태어날 무렵 체코에 공산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십대 초반에는 스탈린주의의 폭압에 맞선 1968년 항거인 '프라하의 봄'이 있었다. 벨벳혁명이 고조된 무렵에 어린이책 국영출판사인 알바트로스(Albatros)에 몸담았던 그는 시민 포럼을 위해 포스터를 그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선생님, 더 이상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라는 슬로건 아래 어린이들이 등장한 그의 포스터는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아무도 응하지 않을지라도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논쟁하기 위해 회화 작업을 한다"고 말하는 그는 예술가를 '우리가 살아가는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어떤 전환점이나 변화의 징조 이면의 의미를 예견하고 탐색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왔다.

이으지 보트루바_Too much lov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100cm_2015
이으지 보트루바_Just no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20cm_2018

이번 개인전은 보트루바가 2000년대 중반부터 발전시켜온 그의 연작 「투 머치 러브(Too Much Love)」를 표제로 삼았다. 이 제목은 영국의 록 밴드 퀸(Queen)이 1992년에 발표한 노래 '투 머치 러브 윌 킬 유(Too Much Love Will Kill You)'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연작은 소비시대의 상업적인 제품이나 로고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상징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서방 세계의 현대 문명에 대한 동경과 특히 일본 문화 중에서 만화에 대한 편애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오늘날 현대인의 머리 속으로 끊임없이 입력되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와 광고 이미지들을 화폭에 상징적으로 그려 넣고, 도대체 그 끝은 어디인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위를 흰색 물감으로 덮어 이 이미지들을 점점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너무 좋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반어적인 어조로 질문에 답한다. 이와 유사한 기법의 「저스트 나우 페인팅(Just Now paintings)」 또한 점차 피상적으로 변해가는 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투 머치 러브」 연작과 함께 한다.

이으지 보트루바_Icon_PVC 보드에 아크릴채색_높이 150cm_2019 이으지 보트루바_Motor City Baby_PVC 보드에 아크릴채색_높이 45cm_2012 이으지 보트루바_Tezuka Osamu_PVC 보드에 아크릴채색_높이 45cm_2012

한편 인물 작품에서는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와 일본의 만화 거장 테즈카 오사무(Tezuka Osamu)같은 유명 인사나 주변의 지인을 즉흥적으로 묘사하는데, 인물의 실루엣을 오려 재단하는 컷아웃(cutouts) 수법이 특징이다. 평면적인 캔버스 작업을 입체적으로 전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법에 매료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 화가 알렉스 카츠(Alex Katz)의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작가는 체 게바라가 쿠바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역사적 인물임에도 대중 문화에서 피상적으로 소비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에 주목했다. 흔히 보는 실크 스크린으로 대량 생산된 이미지와 전혀 다르게 그의 작품 속의 체 게바라는 핑크색 호피무늬 양복을 입은 채 예의 의지 어린 모습으로 등장하여 풍자적으로 묘사된다.

이으지 보트루바_Too much lov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20cm_2018

특히 미국 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스트립 형식에서 착안한 「디스 웨이!(This way!)」 연작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용설명서를 활용하는 보트루바 특유의 재치가 돋보인다. 이 시리즈는 작가가 비행기를 탑승하며 발견한 기내 비치용 긴급상황 대처 매뉴얼에서 출발했다. 이런 매뉴얼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 승객들의 태도에 흥미를 느낀 그는 바나나를 먹는 법이나 와인 마개를 따는 법, 식료품 종이팩을 뜯는 법 등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법한 대상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작품으로 재편했다. 눈에 띌 정도로 넓은 면적을 단색으로 처리하고 실제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안내 방법을 위트 있게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동시대에 넘쳐나는 시각 정보들을 색다른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그의 시선이 절묘하게 표현된 「하트 코믹스(Heart Comics)」 연작은 어떤 과정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매뉴얼의 구성과 전개를 따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정서적 호소력을 발산한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하트가 점점 공기가 빠져 납작해지는 변화를 표현하여 언제나 한결같을 수 없는 우리의 세속적인 사랑을 은유하는가 하면, 반으로 두 동강 난 하트를 접착제로 붙이는 우스꽝스러운 과정을 시각화하여 실연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도 한다.

이으지 보트루바_Too much lov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9 이으지 보트루바_9 hear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9

이처럼 이으지 보트루바의 작품은 일견 팝아트의 형식을 취하지만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에 대한 열광과 경탄 그리고 비판과 냉소가 유쾌하게 교차한다. 체코의 굴곡진 현대사와 함께 하면서도 감각과 위트를 잃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끈기 있게 발전시켜온 그의 작품 세계에는 무엇보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작업을 특정 분류에 귀속시키기를 원치 않는 그는 회화를 통해 만끽한 완전한 자유로움을 다양한 장르로 확장시킨다. 그의 이름을 수식하는 단어가 화가이건 일러스트레이터건 그래픽 디자이너건 중요하지 않다. 일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다른 문화를 수용하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계속 확장해가고 있다. ■ 신사임

Vol.20191104h | 이으지 보트루바展 / Jiří Votruba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