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오페라

유영주展 / YOOYOUNGJOO / 劉鈴珠 / mixed media   2019_1105 ▶︎ 2019_1114 / 월요일 휴관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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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 제3기 입주작가展

주최 / 홍성군 주관 /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이응노의집

관람료 / 성인 1,000원 / 청소년,군인 500원 장애인,유공자,65세 이상,5세 미만 무료

관람시간 / 09:00am~05:00pm / 입장마감_04:30pm / 월요일 휴관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관

이응노의 집 Maison d' Ungno Lee 충남 홍성군 홍북읍 이응노로 61-7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기획전시실 Tel. +82.(0)41.630.9220 leeungno.hongseong.go.kr

2019년 11월 8일 : 「홍천 오페라」작업을 중심으로 ● 이 작품에서 유영주 작가는 디렉팅(directing)이 어떻게 시각예술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개념을 우선 정리해 봐야 하는데, 하나는 "오페라"의 형식에 대한 이해이고, 두 번째 개념은 디렉팅(감독하다. 연출하다. 지시하다로 번역할 수 있음)에 대한 해석이다. 이 개념들을 통해 시각예술의 전개 방식이 타당성을 가지며, 드디어 우리는 미술의 외연을 넓혀가는 유영주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술은 작가 중심으로 해명되는 일체의 행위와 무관하다. 오히려 감상자-독자가 어떻게 동의하며 보존하는가에 따라 예술이 인정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예술 관련 모든 이론과 비평은 철저하게 이 보존의 방식에 대한 안내이자 길잡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 글 또한 「홍천 오페라」를 보존하기 위한 길라잡이 역할을 의식하고 있다. ● "오페라"(opera)는 노래를 중심으로 한 극(劇)의 형식을 갖춘다. 재미있는 것은 오페라가 '노래'와 '극'의 혼합형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노래란 일정한 음률-소리와 가락을 언어와 혼합하여 사람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드러냄'이다. 극(劇)이란 언어(대사)와 행동(몸짓과 표정)으로 이루어지는 번거로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번거로움'이라는 속성인데, 바로 복잡한 상태를 의미한다. 풀어 설명하자면,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난 복잡함이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는 내용과 혼합된 것을 우리는 가극(歌劇)이라 부르며, 오페라라고 굳이 구별한다. 유영주는 이 말뜻을 온전하게 알아차리고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직관적 세계 이해로부터 홍천마을에서 만난 주민들과 관계가 바로 복잡계(複雜界)였을 것이다. 그 만남은 가극의 형식에 이미 맞추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감독(監督)은 보살피는 일을 자처하는 자를 가리킨다. 연출(演出)은 어떤 정황을 지켜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directing은 이런 행위를 "지시함"으로 단출하게 해내는 상황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유영주는 복잡계를 드러내고 그 의미를 끌어안고자, 스스로 어떤 상황 안으로 들어가 머물고자 한다. 그래서 「홍천 오페라」의 작업이 directing이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대개 사람은 사람과 관계 맺음에서 '서로-관계'에서조차 무엇을 지시하며 그 상황에 머물고자 한다. 이 경우 다툼이 일어난다. 하지만 여럿이 같이 있는 경우, 지시(指示)는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을 분명하게 하기에 그 역할을 누군가에게 떠맡긴다. 이때, 떠맡는 자는 어떤 권위도 없이 그저 떠맡는 자이여야 한다. 예술가의 행위가 바로 이 떠맡음이다. 예술가의 떠맡음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물 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 행위가 공적 영역으로 확장될 때, 이런 떠맡음은 일정한 하나의 수준으로 탈-은폐된다. 감추어진 것을 벗겨내는 행위가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술을 두고 진리-그 자체로서 존재의 드러남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에서 드러하다. 유영주의 directing은 복잡계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져 있다.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홍천 오페라」는 주민분들이 등장인물이 되어 주었다. 그분들은 이 낯섦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유영주의 떠맡음에 따라 주어 하나의 작업 과정 안에 머물게 되었다. 이 경험을 굳이 미적경험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일상이 예술이라고 사유했던 셸링의 주장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홍천마을(이응노 마을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에서 밝게 드러났다. 굳이 공공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난해한 이론 없이도, 이 오페라 작업은 인간의 관계 맺음이 예술작품의 중요한 질료(material)임을 보여준다.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그런데 유영주는 이 공연형식의 작업을 통해 시각예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 작품을 분석하는 즐거움이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공연예술은 시간과 장소의 왜곡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이 왜곡으로부터 시간과 공간에 공연자와 관람자가 함께 매몰되는 과정에서 일체감을 느낀다. 일체감은 그래서 공연예술의 미적 요소로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시각 예술에서는 일체감이 곧 예술가의 내적 세계와 작품의 형식의 만남이라는 방식으로 차단된 채 남겨진다. 시각예술에서 감상자가 공연예술에서의 열광을 현장성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영주는 공연예술의 시공간을 이 작품-「홍천 오페라」에서 지워버렸다. 형식은 분명 공연예술로 손색이 없고, 출연자들인 주민분들의 낯섦과 어색함이 형식미를 돋보이게 하는 놀라운 반전으로 작품 안에 숨겨져 있었지만, 시각예술의 기본 요소들이 철저하게 계산되어 보이는 결과를 초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구성(composition)요소로 이 작품의 공간은 설치미술에서 다루는 연계적 정황이라는 열린 공간설정에 의존해 있다. 관람자는 유영주가 제시한 무대(?)로부터 공간이 장소성을 갖는 어떤 극적 효과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장소성이 사라지는 것은 극의 효과에서 등장인물들을 저마다의 개체로 돋보이게 만들면서 보이는 전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회화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광경은 마치 경치(scape,景致-밝게 비침에로 도달하게 함)를 펼치는 구성방식과 닮아있다.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유영주_홍천오페라_홍성 주민 8인의 노래, 이야기 퍼포먼스, 마이크 8대, 앰프, 2채널 스피커, 쇠봉, 흰생 광목 커튼, 벨로아 끈, 의자_2019

등장인물들은 제 몫을 다하는 최선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지시된 약속에 따라 자기가 선곡한 노래를 부르고, 자기가 담당한 대사(臺詞)를 충실하게 해치웠다. 이런 등장인물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여럿-관계'를 통해 하나의 극-번거로움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유영주가 지시한 것은 나누어 가지게 만든 것이다. 마치 시각예술의 모든 요소들이 최소한의 나누어 떠맡음의 방식으로 전체(작품)에 부분(요소)으로 잘 보존되어 있듯이 그런 형식주의적 전개로 통제되어 있다. 누군가는 주민들이 아마추어 공연자들이라 수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예단해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지적은 공연예술을 전제할 때 정당한 비판적 안목으로부터 가능하다. 유영주의 작업은 공연예술의 형식을 빌린 시각예술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주민들의 아마추어리즘은 이 작품에서 보다 효과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래서 유영주는 예술의 경계를 전개도처럼 펼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문학적 표현을 빌려 말할 수 있겠다. ● 유영주의 작업이 가지는 공통점은 우선 정경(正逕) 안으로 관계를 모아들이는 행위에서 파악될 수 있다. 삶은 관계로부터 사이를 벌리고 사이를 메우며 자기 자신에게 늘 우선 드러난다. 이렇게 이해된 삶은 물론 삶의 부분을 해명할 뿐이다. 유영주 작품에서 "관계-사이"에 대한 작가의 예술가적 사유가 돋보인다. 이는 바로 그녀의 예술 행위가 가지는 올곧음에 기인하는데, 사이로써 관계를 의식하고 그것을 메우려 노력하기도 하고, 때로 그저 벌어지고 있는 사이로부터 작가 자신이 긴장하고 있음을 그대로 알리는 대목에서 삶을 진정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의 태도로부터 「홍천 오페라」의 실험적 제안은 유영주 작업의 흐름에서 그 시리즈가 분명 기획되어 있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 이섭

Vol.20191105a | 유영주展 / YOOYOUNGJOO / 劉鈴珠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