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빛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   2019_1106 ▶︎ 2019_1119

최은경_낯빛_캔버스에 유채_162×26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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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낯빛 ● 한낮에 거리의 일상. 저 멀리 두 손 모은 사람도 두 발 벌린 사람도 흐릿하게 흐려져 보이지 않다가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들의 생기 혹은 무력함, 어떤 힘의 자기장까지도 그냥 다 보인다. 오히려 너무나 확연하고 선명해서 너무 가깝게 본 걸까 하는 조바심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니, 주마등처럼 지나온 우리 청춘이 저 붉은 깃발의 팔랑이는 바람을 갈지자로 가로지른다. 순간 비루했던 일상은 찰나의 스침 사이에서 너머의 낯빛으로 아스라이 비닐 같은 얇은 안녕이 된다. 실낱같은 우리의 안녕. 그렇게 우리들의 안녕은 낯빛의 표면, 표면에 일렁이는 되비침으로 번져 간다.

최은경_진도의 밤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9
최은경_군산의 밤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9
최은경_불_캔버스에 유채_100×160cm_2019

두 개의 밤 ● (소)도시 외곽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검고 깊고 아득해서 공간적이고 입체적이라기보다는 그림의 프레임 위에 평면적으로 얹혀 있는 것처럼 오히려 더 평평하고, 납작하다. 또 '밤'의 사실성은 (실제적인 21세기적 우리 삶의 한 단면인 동시에) 우리 삶의 유형 속에 유형화되지 않은 특히, 꿈의 판타지,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회복에 대한 새로운 열망(욕망)의 예감, 즉 구체적 꿈꾸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룰 수 없었던 꿈이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네거티브 자각몽이다.

최은경_불 그림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9
최은경_두 개의 파라솔_캔버스에 유채_91×117cm×2_2019

불과 불 그림 ● 실제의 불과 불이라는 추상성

두 개의 파라솔 ● 망루의 파라솔과 뻥튀기 아저씨의 그늘막

최은경_서쪽의 초행길 2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9
최은경_파도_캔버스에 유채_46×38cm_2019

서쪽의 초행길_(삶의) 굳은살, 발가락 사이의 티눈(魚目) ● (소)도시 외곽의 풍경은, 대체로 우리가 통념적으로 '풍경'이라 불리는, 풍경의 카테고리 밖에 있는 비풍경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근대화 과정에 의해 생산되고 동시에 훼손된 슬럼(slum)화된 곳이다. 남루하고 비릿한 삶의 체험이 켜켜이 쌓인 지층의 단면에 박혀있는 (삶의) 굳은살, 발가락 사이의 티눈(魚目), 옹이구멍. 혹은 카프카의 『가장의 근심』에 나오는 아무리 부대껴도 마모되는 법 없이 아무데나 살면서 폐가 없이 웃는 듯한 웃음으로 우리가 없는 곳에서도 우리를 응시하는, 그래서 언제나 예기치 않게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응시, 응시의 구멍, 오드라덱. 즉,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변형된 외설스럽고 불경한, 변이(變異)적이고, 과잉된 상처이자 '돌기'로, 바로 21세기적 우리 삶의 단면이자 기형적인 우리 근대성의 증상적 지점일 것이다. ■ 최은경

Vol.20191106i |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