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온 안

윤상혁展 / YOONSANGHYUK / 尹祥赫 / photography   2019_1101 ▶︎ 2019_1114

윤상혁_Anxiety_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6×10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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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101_금요일_06:00pm

기획 / 최연하_안종현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7:00pm

스페이스 55 SPACE 55 서울 은평구 증산로19길 9-3 www.space55.co.kr

불안(온)하고...안온하여... 『불 온 안』하다 ● "우리는 문득, 어렴풋이, 영혼의 슬픔을 느낀다. 아, 내가 왜 이런 것을 기뻐하는가, 하는 생각의 형태로 말이다. 어쩌다 우리가 그런 슬픔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가 두 개의 삶을 살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어, 이건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이 아닌데, 라는 형태로." 한 사람이 침대에 누워 있다. 하얀 이불, 하얀 개, 하얀 피부가 유독 고요하다. 창밖은 환하고 텔레비전은 꺼져있다. 이 사람은 오래 전부터 이 침대 위에 누워만 있었을 것 같다. 한 나무가 하얀 눈 위에 서 있다. 각각의 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나무가 화면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다. 나무 뒤에 집주소로 추정되는 숫자가 보인다. 188과 184. 나무는 188과 184 '사이'에 서 있다. 나무는 이곳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윤상혁_Anxiety_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2
윤상혁_Anxiety_1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2
윤상혁_Metropolitan Museum of Art 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3

윤상혁은 『불 온 안』에서 도시의 사람과 식물(나무)을 보여준다. 사람은 대개 집안에 있고, 식물은 집밖에 있다. 사람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거나 우두커니 서 있다면, 식물들은 보도블럭의 틈새와 좁은 화분에서, 담벼락 사이, 바위 위, 시멘트 담장, 철망 뒤에서 자기의 자리를 겨우 확보하고 있다.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의 포즈를 살펴본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남자, 테이블 위에 왼 팔을 얹고 벽에 기대어 생각에 잠긴 여자, 부엌에서 음식 준비하기를 멈춘 채(인물 뒤로 'STOP'이라고 적힌 빨간 표지판이 보인다.)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다가 돌연 먼 데를 바라보는 등 이들은 대체로 생각에 빠져있다. 식물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삐딱하게, 질서와 정연을 벗어나, 갖가지 자태로, 조화(造花)는 '조화롭지 못하게' 뻗어있다. 윤상혁의 사진 속에서 사람은 '사람답게', 식물은 '식물답게' 있었다. 그런데 '사람다움'과 '식물다움'이란 무엇일까. 다시 윤상혁의 작업 의도를 읽어본다. 화려하고 황홀하고 매력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대도시에서 소외된 주체들의 상실감을 사진으로 표상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그래선지 『불 온 안』에 등장하는 사람이 어떤 '불안'의 연기에 몰입하고 있다면, 식물들은 각각의 자세로 보아 '불온'해 보인다. 둘의 공통점은 둘 다 불편해하면서 배경과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힘없는 이들의 도시의 삶은 쓸쓸하고 황량하고 막막하고 무기력하게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사람이건 나무건 멜랑콜리컬한 이미지로 멈춰버렸다. 식물들이 서 있는 곳은 몽타주 이미지처럼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으로, 사람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익숙해 보이는 것들을 배경으로 안에 머문 채 바깥과 대면한다. 파편과 불연속, 안과 바깥, 익숙함과 낯섦은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뉘앙스를 풍부하게 하는 단어들이고, 윤상혁의 사진 속에서 반복적으로 표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상혁의 사진 속에서, 바깥과 대면하는 사람들은 안에 홀로 머물고 있다. 침대에서, 부엌에서, 사무실에서… 그들은 바깥의 시선을 응시하며 안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시선은, 사실은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그 시선 앞에 방 안의 사람과 사물들은 정적인 구도 속에서 더욱 단순해진다. 사진 속의 인물은 작업(생각)에 몰입하고 있는데, 관객에게 보여 진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는, 즉 사진의 구조와 관객의 존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사진은 인물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기념촬영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의 촬영은 영화촬영처럼 일정 시간과 포즈를 동반한, 요컨대 일상적 행위를 구축하는 유사다큐멘터리(near-documentary) 전략을 고수한 것이다. 모델과 함께 퍼포먼스적인 수행성을 통해 불안의 초상을 완성해야했기에 윤상혁은 기록을 하되 허구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지 않도록 사진적 재구성을 시도한다. 인물의 연극적인 제스처와 실내의 풍경이 조합된 영화적 미장센(mise-en-scene)이 돋보이는 것도 시각적 내러티브를 이루기 위한 윤상혁의 전략이다. 문자 언어를 통한 내러티브에서 대사와 자막이 큰 비중을 차지하듯, 시각적 내러티브에서 장면 구성과 세부 묘사(인테리어, 조명 등), 인물의 표정과 포즈는 비선형적(nonlinear)적으로 동시에 의미를 발생시키는 주요한 장치이다. 인물들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서 관객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일관하는 것도,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식으로 해석하자면, 사진 속에 "인물은 관람자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관람자의 부재를 설정함으로써 관람자를 사로잡아, 궁극적으로는 그를 그림 앞에 서게 하고 그림에 몰입시켜 그림 속 인물과 그 자신을 동일시하는 일"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불안을 알아채고, 상처는 상처로 드러나듯, 사진 속의 인물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윤상혁_Ford Foundation 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4
윤상혁_Long Beach 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3
윤상혁_Silk Gardens & Trees West 28th St. 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_2014

이처럼 윤상혁의 'Anxiety'시리즈가 연출된 영화의 세트같이 인물이 처한 상황을 세밀히 전달한다면, 반대로 'Urban Landscape'시리즈는 연극의 단막극처럼 화면은 단절되어 있고, 정돈되지 않는 거칠고 파편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둘 다 도시의 풍경이다. 전자가 사회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동시대인들의 상황이 포착됐다면, 후자는 획일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이탈한, 기이하고 이질적인 식물들의 현실감이 포착됐다. 'Anxiety'시리즈가 연출된 진실이라면, 'Urban Landscape'시리즈는 철저한 진실의 형상인 샘이다. 불안하고 불온하게도, 아주 흔하게, 일상적으로 마주 치고 겪게 되는 현실의 단면이고 삶의 세부이다. 고립과 무관심을 자처하지만 어디서건, 어떤 식으로든 생생하게 재현되는 것들. 윤상혁이 사진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단순한 두려움과 공포의 심리상태가 아닌 일상적 경험, 상황에 의해 발생하는 불안이다. 대도시 뉴욕에 와서 경험하는 도시의 매혹적 풍경과 동시에 상실로 인한 구멍들이 그의 사진의 한축을 형성하며 주된 모티브로써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루함과 두려움, 무기력함과 공허감, 거대한 무능함과 외로움, 욕망과 환상 속에서 계속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딱히 아픈 데가 없고, 해가 떴는데도 침대에 꼭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도시. 흔들리면서 뿌리를 내리고 이주해 온 곳에서도 초록색을 발산하며 부드럽고 '안온'하게 자신의 거처를 돌보는 식물들의 도시. 불안(온)과 공존하며 무언가의 틈으로, 결핍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힘없고 기표 없는 자들의 도시.

윤상혁_불 온 안展_스페이스 55_2019
윤상혁_불 온 안展_스페이스 55_2019
윤상혁_불 온 안展_스페이스 55_2019

결국 '불안 anxiety'은 우리 시대 곳곳을 직조하는 '풍경landscape' 이었다. 윤상혁은 존재의 다양한 흔들림을 정치하게, 때로는 시적으로 섬세한 구성을 통해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마치 photo(자연)와 graphy(문화)의 불온한 만남인 '사진'처럼, 『불 온 안』은 타자들의 공동체였던 것이다. 이번 전시 『불 온 안』은 윤상혁의 'Anxiety'와 'Urban Landscape' 두 개의 시리즈를 엮은 것이다. 전시가 열리는 『space55』는 '불안'하고 '불온'하고 '안온'함을 동시에 갖춘, 기이하고 특별한 특정장소이다. 이 곳은 공간을 운영하는 안종현이 나고 자랐던 집이다. 오래되어 친숙한 집이 갤러리로 변형되면서, 전시 공간과 응접실, 커뮤니티 마당으로 몽타주한 공간이 되었다. 이 도시에서 아슬아슬하게 생태를 형성하는 작가들의 삶의 터전이 '식물적'이라면, 인간에 의해 구획되고 재편된 자본의 도시 한 구석에서 겨우 살아가는 'space55'도 식물적인 샘이다. 윤상혁의 첫 번째 개인전이 이곳에서 열리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이유인데, 작가의 작품의 주제인 '불안한 욕망의 풍경'을 아주 낯설고 익숙하게 제시할 맞춤공간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활기찬 식물적 상상력이 발휘되어 예술생태계가 부드럽게 순환될 어떤 가능성을 보게 하는 전시다. ■ 최연하

Vol.20191109c | 윤상혁展 / YOONSANGHYUK / 尹祥赫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