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생각

김경이展 / KIMKYUNGYI / 金囧怡 / painting   2019_1102 ▶︎ 2019_1124 / 월요일 휴관

김경이_자연생각0129_천에 혼합재료_92×73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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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114_목요일_02:00pm

관람료 성인 5,000원(단체 3,000원) / 양주시민 4,000원(단체 2,000원) 청소년, 군인 2,000원(단체 1,000원) / 어린이 1,000원(단체 700원) 7세 이하, 65세 이상 무료관람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안상철미술관 AHNSANGCHUL MUSEUM 경기도 양주군 백석읍 권율로 905 Tel. +82.(0)31.874.0734 www.ahnsangchul.co.kr

색채의 심연으로 흡입하는 그림 ● 메리야스나 면천을 납작한 나무판에 평평하게 씌운 후 그 위에 아크릴, 분채 등의 물감을 이용해 마치 염색을 하듯 홍건하게 색을 채워 넣었다. 천은 일종의 용기가 되어 색을 머금고 있다. 천의 피부위로 칠해진, 적셔진 색은 여러 시간, 반복된 붓질을 통해 중층적으로 밀려들어가 있다. 그것이 자연스레 띠, 결을 만들었는데 그 흔적이 흡사 능선이나 혹은 노을과 구름의 자취와도 같은 자연현상을 연상시켜 주면서 응고되어 남았다. 의도된 선이 아니라 자연스레 만들어진 선이자 물감과 물, 천의 속성 자체가 만든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선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이미 물질로서의 천이라는 화면 자체가 그림에서 결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불가피하게 면천과 물감, 물, 시간 등이 만나서 이룬 결과물이 그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인위가 공존하고 의도된 부분과 우연이 상호 교차한다. 그러니 이 그림은 상당히 예민한 지점에서 진동한다. 효과를 보기가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김경이_자연생각0291_천에 혼합재료_85×73cm_2019
김경이_자연생각0391_천에 혼합재료_50×84cm_2019

김경이 작가가 메리야스, 면천을 지지대 삼아 그림을 그린 지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예민한 종이를 벗어나 다소 그림을 그리기에는 둔탁할 수 있는 면천을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묘사를 벗어나 물감/색의 번짐, 그 수용성의 차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모종의 분위기, 심리상태, 자연현상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차원에서의 색채감각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는 선에서 작동하는 것 같다. 작가는 우선 특정 주조 색으로 흠뻑 천을 적신다. 블루, 핑크, 그린 등의 특정 색채가 걷잡을 수 없이 천의 조직을 물들이고 그러면 여러 번 반복해서 칠하는 시간, 농도, 붓질의 방향 등에 따라 천은 여러 표정을 지으며 특정 색/물감의 상태를 풍경처럼 펼쳐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바탕/ 풍경을 배경으로 해서 작가는 그 표면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함축적인 붓질을 감각적으로 구사하면서 나무의 몸통과 줄기를 표현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기 보다는 암시하는 편이며 그렸기보다는 겨우 흔적을 남겨서 보는 이의 상상에 맡겨두는 쪽이라 다분히 사의적인 이미지에 해당한다. 이는 전통적인 동양화/문인화에서 흔히 엿볼 수 있는 방법론이고 화면 구성이다. 바탕 면의 색채와 그 위로 번진 먹선이 어우러지면서 나무와 풀, 산과 언덕을 암시하는 흔적이 드러난다. 다시 그 위로 촘촘한 붓질을 가하거나 또 다른 물감의 층을 덧씌우는 일이 반복된다. 그렇게 해서 몇 겹의 레이어가 자연스레 물결친다. 그 레이어는 여러 번 올라간 색층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오랜 시간의 누적을, 작가의 반복된 작업행위의 흔적을 그리고 자연현상의 여러 부침을 자연스레 부감시킨다. 이 모든 과정은 거의 직관적으로 이루어진다.

김경이_자연생각0891_천에 혼합재료_40×48cm_2019
김경이_자연생각0991_천에 혼합재료_45×45cm_2019
김경이_자연생각3091_천에 혼합재료_65×60cm_2019

물기 짙은 화면에는 자연의 풍경이 설핏 들어와 있다. 그러나 특정 장면을 선사하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그저 조심스레 이어진 선, 점이 나무와 풀, 작게 그려진 인물을 안겨준다. 특히나 점경으로 자리한 인물은 너무 작아서 시선에 쉽게 걸려 들지 않는다. 이는 광활한 자연과 대조되는 인간의 자리를 암시하는 편이다. 인간의 형체를 표현하기 보다는 다만 인간의 자리를 보여주는 전략이다. 동시에 그 인간들을 유심히 보면 자연의 어느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거나 자연을 관조하고 있다. 자연 안에서 위안을 받는 모습인 셈이다. 그러나 어떤 얼굴은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기도 하다. 대기오염으로 인해 손상된 자연, 공해와 황사로 인해 고통 받는 자연/ 인간의 현 상황을 고발하는 그림이자 그런 처지에서도 묵묵히 주어진 곳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인간을 위무하는 자연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 함께 하는 그림이다. 결국 작가는 은연중 오늘날 자연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권유하고 있다.

김경이_자연생각3191_천에 혼합재료_70×85.5cm_2019
김경이_자연생각3991_천에 혼합재료_77×92cm_2019
김경이_자연생각4391_천에 혼합재료_91×71.5cm_2019
김경이_자연생각4391_천에 혼합재료_91×71.5cm_2019

외형적으로는 무심하고 적조한 자연 풍경이자 동시에 물감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고 채색물감이 마치 수묵화와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순식간에 퍼져나갈 뿐이다. 물감의 물성을 희박하게 지워나가면서, 그 질료성을 덜어내면서 특정 분위기, 심리를 겨냥하면서 산포된다. 그 위로 직관적이고 찰나적인 붓질이 지나가면서 암시적인 형태를 슬쩍 만들어놓았을 뿐이다. 그것들이 나름 서사를 작동시킨다. 극도의 함축적인 그림이라 상당히 선미禪味가 가득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종이의 바탕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양화의 여백을 공유하면서도 이 그림은 흐리고 연한 색채로 가득 채워진 여백, 물감/색이 충만한 여백 같지 않은 여백을 만든다. 아스라한 색채가 노을처럼, 바다처럼, 허공처럼 막막하게 펼쳐져 있다. 그것은 지표면과 하늘의 경계를 무화시키고 가시적 세계와 불가시적 세계를 끌어안으면서 나아간다.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특정하게 지시할 수 없는 색채의 심연으로 마냥 잡아당긴다. 축축한 색의 흡입력으로 인해 화면은 보는 이를 눈 멀게 하고 먹먹하게 하면서 축복 같은 자연의 품으로 스며들게 한다. 모든 것을 받아주는 자연의 힘이 작가가 궁극적으로 그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적으로 색채와 삼투현상으로 얼룩진 그림이 빨아들이는 어떤 힘! ■ 박영택

Vol.20191110e | 김경이展 / KIMKYUNGYI / 金囧怡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