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Cruises

나미나展 / NAMEENA / 羅美糯 / painting.video.installation   2019_1101 ▶︎ 2019_1109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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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나 홈페이지_www.nameena.net

공연일시 / 2019_1101 ▶︎ 2019_1109

낭독회 / 2019_1103_일요일_02:00pm 공연 이후에는 나미나 작가와 이소연, 권창섭 시인이 함께하는 낭독회 「바다를 들으려고 모아 온 어둠」이 진행됩니다. 파티 / 2019_1109_토요일_07:00pm 공연 이후에는 관객과 함께 하는 소소한 파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기획 / 신촌극장

관람료 / 5,000원

관람시간 / 월~목요일_04:00pm, 08:00pm / 금~일요일_02:00pm, 05:00pm, 07:00pm

신촌극장 THEATRE SINCHON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13길 17 4층 Tel. +82.010.4660.1321 facebook.com/theatresinchon

첫 번째 불편함과 상이한, 두 번째 불편함에 대하여 ● 나미나 작가는 촬영한 영상 중에서 하나의 클립을 그려 영상과 회화를 오버랩시키는 방식인 '박제된 그림으로 완성된 서정적 영상회화'(나미나 작가 포트폴리오 중에서 인용함.) 작업을 전개 중이다. 2012년 제주 강정을 시작으로 오키나와, 괌, 필리핀, 2020년 방문 예정지인 하와이까지, 침략지와 휴양지 의미 모두가 중첩된 『섬들의 연대』 전시를 목표로 한다. 미국의 일본 점령지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AMERICAN VILLAGE』(2016)에서는 서정적 영상회화의 영상 속에 회화가 편입되어 의도한 특정 시간대에 영상과 회화가 조응했다. 미국령 괌을 찾은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2018) 전시에서 「침묵의 나선-건비치」와 「침묵의 나선-돌고래를 찾아서」는 좌우 두 개의 패널로 설치되고 두 개의 영상 채널이 스크리닝 되었다. 프로젝터가 켜지면 영상은 회화 위에 투사되고 프로젝터가 꺼질 때 회화가 드러나는 구조로 회화가 스크린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또한 물질로 전시장에 드러났다.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에는 여덟 개의 회화 혹은 회화가 오버랩되는 영상이 전시되었다. 2018년 작업까지는 작가의 포트폴리오와 편집영상, 전시설치장면 영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의 작품을 접했을 때 정연해서 오는 불편함이 생겨났다. 흔들리다가 포개어지거나 수 초간의 시간차를 두고서 겹쳐지는 회화와 영상의 맞아떨어짐이 서정적 영상회화라는 작업 소개와 그 과정에는 적합하지만 작가가 이 작업들에 매진하는 주제 의식에 적확한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버렸다. 작가와 만난 자리에서 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내 언어가 거칠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거칠었기 때문에) 작가가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계절이 지나 이제 말이 아닌 글로 작가에게 생각을 건넬 기회를 얻었다. 이제부터는 2019년 신촌극장에서의 『Sun Cruises』를 접한 시점부터의 이야기다.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극장 기능을 하고 극장식 기능 연출이 가능한 신촌극장에서 하루 1-2회차 상연의 형식으로 진행된 『Sun Cruises』는 상연이 시작되기 전후에 관객이 공간에 배치된 영상 다섯 개를 둘러보고 무려 256×380㎝에 달하는 회화를 감상할 수 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었으며 가판대 형태의 좌대에는 관광지에서 흔히 보이는 기념엽서와 기념 클립, 기념 병따개의 형태로 제작된 오브제가 놓여 있었다. 상연이 시작됨을 알리는 고지와 더불어 개폐형 창문을 닫아 극장이 암전되고 회화 작품은 곧 영상 스크린으로 기능이 전이된다. 회화는, 그러나 망가진 스크린이 된다. 스크린 되기가 불가능해진다. 장지 가득 필리핀을 찾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보이는 진노랑색 오픈형 버스를 그린 회화는 기능에서 스크린이 되었음에도 33분에 달하는 영상 러닝 타임 내내 한 치도 빛의 지지체가 되지 않고 형상의 사라짐 없이 지독히 명징하게 남아 있다. 이전까지 서정적 영상회화의 방식인 영상의 한 장면을 취한 클립으로 포개어짐 없이 끝까지 회화로 산다. 작가는 '느리게 사고하고(습관적 영상 기록물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생각하는) 천천히 표현하는(한국화) 두 가지 성향'(나미나 작가 노트에서 발췌함.)을 작업에 드러낸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전작(前作)에서 사고와 표현이 회화가 영상에 투사될 때에 다소 밀리고 영상이 투사되지 않을 때 오롯해지는 길항의 힘겨루기를 벌였다면 이제 회화가 영상에 무관하게, 그리고 영상이 몇 겹에 걸쳐 레이어가 형성되는 형식과도 무관하게 회화로 남는 양상이 발생한다. 물리적 지지체로의 용도 전환조차 (의도적으로) 실패한 상황에서 회화 위로, 스크린으로 관광객의 시점 이동의 흐름과 동일할 창밖 풍경이 흘러가고 그 위로 한낮의 빛이 어른거리는 물결이 중첩된다. 사실 위와 아래는 큰 의미 없다. 총 영상 상연 시간 내내 몰입이란 없다. 여기서 형식과 내용의 구분은 사실 무의미하지만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몰입은 철저히 방해받는다. 그 색을 형용하기도 어려운 트로피칼 칵테일과 이내 뚝뚝 떨어져 내릴 낙조가 전하는 이국 정서, 폐허의 애잔한 정조에 미처 젖어보기도 힘들게 전투에 쓰이고 남겨진 포(砲), 피부에 적당한 온도로 감길 야외 수영장 등이 앞과 뒤, 위와 아래로 어른거리며 사정없이 이어진다. 때에 따라서는 7-8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의 레이어가 몰아친다. 관광지에 대한 향수와 결전지이자 제국의 잔재는 한쪽으로 수렴됨 없이 파편으로 편집되어 흩어진다. ● 영상에는 나미나 작가와의 협업에서 이소연 시인이 써내려간 텍스트가 내레이션과 자막으로 제시된다. 분명 기능은 작품 안으로 들어온 텍스트이나 시어(詩語)에 가까웠다. 이건 시였다. ● 나는 여섯 살에/철조망에 걸려 찢어진 뺨을 가졌다/철을 왜 바다 가까이 두었을까/…/꿰매지 못한 뺨/철을 바다 가까이 두는 게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나미나, 「Sun Cruises」, Single Channel Video Projection on Korean Painting, Mixed Media, Variable Installation, 256x380cm, Dimension Variable, 33min. 30sec., 2019 영상 스크립트 중에서 발췌함.) ● 찢어진 뺨, 꿰매지 못한 뺨의 빗금지고 피비린내 스민 텍스트의 공감각은 구체적 신체에서부터 상징적 연상으로까지 전이를 일으킨다. 이 상징은 역사적으로는 명징하나 삶에서 부조리했고 지금까지 부조리한 섬(들)에서의 도륙에 가 닿는다. 때론 "과거는 끝났다 미래 밖에 없다"는 선언적 목소리가 개입하고 다른 화자의 간접화법으로 "살아 있으라, 그러면 너희는 영웅이 될 것이다!"라는 읊조림이 등장하는데 시어는 곤궁과 도리 없음으로 기울기도 하고 해결 불가능한 역설을 일컫는 아포리아(aporia)가 가득차고 넘쳐 미래에서 온 과거의 노파처럼 묵시록(apocalypsis)을 이룬다. ● 어떤 바다는 흔들어 깨워도 눈을 뜨지 못하지/…/그러나 백사장엔 옛날을 팔아서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망자들은 더 이상 망가질 게 없어서 천국에 산다(나미나, 「Sun Cruises」 영상 스크립트 중에서 발췌함.) ● 필리핀 그곳의 현재에 나 혹은 작가 (혹은 작가가 요청한 목소리), 과거의 그들, 과거를 침범한 그들, 이 모두를 때로는 부분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한 뭉텅이로 편집한 영상과 영상에 뒤지지 않고 존재를 발휘하는 회화, 그리고 영매의 목소리로서의 내레이션과 텍스트로 인하여 극장에는 또 다른 시제의 섭입(攝入)이 이루어진다. 겹쳐지고 포개어지는 오버랩의 양상이 『Sun Cruises』에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듦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이제, 새 불편함이 생겼다. 다만 이제는 정연하지 않아서 적확해진 불편함에 반가워진다.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나미나 작가의 『Sun Cruises』의 기저로 제주, 오키나와, 필리핀, 하와이로의 지정학적 쟁점과 역사를 부러 소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곳이 제주 강정이든, 오키나와든, 하와이든 그 장소성에 대한 서술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 『섬들의 연대』가 당도할 예술적 군도의 배치와 하나의 섬을 거쳐 궤적을 그릴 때마다의 변이가 기대될 뿐이다. 따라서 작가가 작업의 의도로 이미 밝히고 있는 바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동어반복 할 이유가 없다. 사회학적 의미부여와 작품이 생산되고 배치되고 보고 읽히는 바는 순순히 오버랩 되지 않는다. 한편 나미나 작가에게 다큐멘터리 작가 성향의 채록자의 임무를 부여할 생각도 없다. 작가의 시대정신이 작품으로 발현된다는 주체적 예술가 상에 작가를 대입할 의향도 없다. 현장성과 고발성의 농도가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가름할 계제가 아니라고 본다. 작가의 작품 활동을 활동가로서의 임무로 치환할 생각도 없으며 활동의 심리적 기저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겠다. 더불어 영상이나 회화 장면의 외재적 표피에 대해 그 내용을 언어로 번역하는 절차도 불필요해 보인다. 그 언어는 영상만큼이나, 영상에 삽입된 텍스트만큼이나 분절되어 쓰여질 테니 해석을 원하는 이에게는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효용이 없는 일에 불과하다. ● 『Sun Cruises』는 고전적인 분석에 기대어 본다면 극장식 기능 연출에서 조장된 브레히트의 몰입을 방해하는 소격 효과에 대입 해 볼 만하다. 실제로 33분의 「Sun Cruises」가 종료되면 극장에 조명이 켜지며 노래방 화면을 연상시키는 관광지 풍경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릴 법한 음악이 동반되는 「완벽한 세상」 영상이 영상회화의 상연 과정에서 이미 불가능했던 몰입을 마무리의 과정에서 한 번 더 완전히 좌절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소격 효과가 시간예술, 특히 극에서의 감정이입과 감정동화에 반하여 무대와 관객을 격리시키고 몰입을 방해시키는 개념이라면 『Sun Cruises』가 극의 양태를 따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긍정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 극장 기능을 하고 극장식 기능 연출이 가능한 신촌극장에서의 수고로움―회화를 스크린 기능을 위해 틀을 짜서 세우고, 계단식 관객 좌석을 만들고, 상연을 알리는 시그널을 차용하는 등―은 철저히 극의 양태와 절차에 근접함으로 인해서 자율적인 전시 관람보다 관람의 효율성과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는 발휘했으나 이는 일차적 효과에 그친다. 내게는 공연, 연극, 음악과 같은 시간 예술임이 분명한 예술 형식과 『Sun Cruises』가 취하는 극의 차용은 다르게 읽힌다. 미술은 공간예술이고 상술한 장르는 시간예술이라는 장르별 특이점과 배타성을 거론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 구별은 단어와 그림간의 경쟁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짚은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의 쟁점에 가깝다. ● 그로이스는 그림을 필두로 개념미술 이래 텍스트 형식의 미술이나 발화된 말을 녹음하여 설치한 미술 등을 거론하며 특정한 말하기 욕구를 암시하는 예술의 등장을 『반철학 입문』에서 다룬다. 레싱이나 그린버그가 강조한 바를 체현해 낸, 모든 표현이 제거된 미술 작품이 언어적 금욕을 추종할 때 평평해진 예술의 표면 뒤에 숨어 있는 이미지 자체의 무의식과 시학(詩學), 미디어 아래의 실천을 무화시키지 않을,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경계 넘기를 거세시키지 않는 분석이 필요하고 태도가 요구됨이 그로이스의 메시지다.(보리스 그로이스,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클레먼트 그린버그, 마셜 맥루한」, 『반철학 입문』, 서광) 『Sun Cruises』로부터 도래한 불편함은 『Sun Cruises』가 말하지 않기 때문에 동반하는 모호함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이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이기에 가능한 즉 그로이스의 표현대로라면 '말하려는 욕구의 찡그러진 얼굴'을 마주할 때 발생하는 불편함이다. 텍스트와 연동된 미술에 대한 해석을 시간이 투여되었다는 이유로 시간예술에 양도하지 않고 오히려 더 충실히 작가가 표방하는 서정적 영상회화에 견주어 독해해서 향후 과제로 남은 「섬들의 연대」를 파상형으로 펼쳐내지 않고 준비할 수 있는 여지를 내 '말하려는 욕구'를 통해 전하고 싶다.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나미나 작가는 '개인이 세상의 통념을 바꾸기는 너무나 버겁고 힘들다. 그리고 내 무의식은 인간의 유전자를 타고 흐른다…나는 죽은 적이 몇 번 있던 것 같다'(나미나, 「계란과자와 나」, 낭독회 「바다를 들으려고 모아온 어둠」 p. 12에서 발췌함.)라는 구절을 전시 중에 하는 낭독회에 수록된 에세이에 쓰고 있다. 시어에 친화력이 있어 보이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이소연 시인과의 교류를 확인하며 서정적 영상회화는 이미 시작했으나 이제 더 가열차게 내파(內波)의 힘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서정(抒情)이 유순해야할 일말의 이유도 없다. 끝끝내 불편하게 하고 불편하다는 이들의 속내를 더 불편하게 헤집고 쓰라리게 만들기를, 불편함을 발화한 가까운 이들이 서넛, 너덧 더 있기를. 상처의 종류에는 자상, 창상, 찰과상, 타박상 등이 있다고 배웠는데 말하자면 작가가 찾았고 찾아갈 그곳들처럼 경계가 너덜너덜한 형태로 크게 찢어진 상처인 열상(熱傷)에 준할 불편함을 전해 줄 작품을 다시 만나길 고대한다. ■ 김현주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나는 무관심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을 찾아다니며 공감과 혼란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듯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그중 미군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나의 미군기지에 대한 관심은 2012년 강정마을을 찾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강정의 여러 상황들을 습관적으로 영상에 담았고 그것이 내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향점을 제시했다. 2016년, '섬들의 연대'가 활동하고 있는 '섬' 오키나와에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이 동양의 군사 교통 요지가 될 만한 섬들에 행하는 제국주의적 폭력을 다룬 「AMERICAN VILLAGE」시리즈를 작업해왔다. 2018년, 괌을 다녀온 후 작업한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시리즈가 나왔다. 올해에는 필리핀을 다녀온 후 Clark, Angeles City, Pinatubo Mt.을 담은 「Angeles City」와 Subic, Olongapo, Corregidor Island, Manila Bay를 담은 「Sun Cruises」를 작업했고, 필리핀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적실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이번 두 작품에서는 이소연 시인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영상 작업을 진행했다. 장소(섬)마다 폭력이 드러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느끼는 감정과 결과는 달랐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영상회화와 설치의 세부적인 변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그 변주들을 읽어내주길 바라며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공연의 형태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했다. 관광지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이 장소는 바로 시위 현장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어떤 장소이다. ■ 나미나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나미나_Sun Cruises / 썬 크루즈_장지에 분채,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혼합매체_ 256×380cm, 가변크기, 00:33:00_2019

겹침의 세계, ● 여기 그림과 영상과 시가 있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것들 사이에 사람이 있고 유적이 된 시간이 있고 그 시간 속에 숨은 영혼을 불러보는 언어가 있다. 빛이 켜켜이 쌓여가고 이미지가 이미지를 덮치고 소리들이 첩첩으로 흘러간다. 흘러가고 쌓이는 순간순간, 내내 어긋나있던 우리는 서로 포개어진다. 그리고 다시 번진다. 이토록 아름다운 폐허에 대해, 이토록 투명한 악몽에 대해 우리는 서로 묻고 답하였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와서 서로를 만났다. 겹침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시와 그림을 가지고 만났다. 어떤 날은 내가 영상을 보면서 시를 썼고 어떤 날은 미나가 시를 읽고 말해지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 미나에게 받은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썼다. 우리의 편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 꿈을 꿨다. 미나의 그림 속이었다. 커다란 새를 타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 무거운 침묵의 세계를 날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내 꿈속의 날개가 미나의 그림 위에 겹쳐진 적 있다고 믿는다. 겨울이 없으면 봄이 없듯 음악이 없으면 악기가 없듯 잠이 없으면 꿈이 없듯 미나의 작업으로부터 나의 문장들은 태어났다. 이 겹침의 연쇄를 통해 마주한 진실들은 참혹하지만 아름다웠다. 미나는 아름다움과 참혹함이 어떤 방식으로 조우하는지를 아는 사람 같다. 세계의 진실은 각기 그때마다 다르게 존재할 것이므로 결코 간단하거나 명료하지 않다. 미나는 일치했다고 믿는 순간 어긋나고 마는 세계의 실존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놀라움을 준 아티스트이다. 그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군기지의 흔적을 찾아 떠났지만 자신이 종국에는 피상적인 눈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신중함을 좋아한다. 전염성 강한 신중함. ● 조화로운 덧댐의 순간이 오아시스처럼 드문드문 등장하는 가운데 대개의 영상은 그림을 지우고 그림은 영상을 지운다. 동시에 소리와 시가 뒤섞인다. 이는 절대로 뭉뚱그릴 수 없는 것을 쉽게 뭉뚱그리려는 세상의 일들과 닮아 있다.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이 지움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수없이 덧칠된 잔상으로 남아, 결과적으로 지울 수 없는 진실을 형상화한다. ● 무엇보다 미나는 협업이라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다른 장르 간의 겹침을 유도한다. 이러한 겹침의 겹침을 유도하는 방법론은 아주 짧은 순간의 일치를 통해 불일치를 강화하고 불일치를 통해 일치를 강화하도록 치밀하게 설계 되어있다. 미나가 읽어낸 세계의 복잡성이 이런 지속적이고 뚜렷한 방법론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이 반갑다. 미나의 이 순연한 의지로서의 높고 쓸쓸한 작업이 흔들림 없이 계속 되기를 바라며. ■ 이소연

Vol.20191110i | 나미나展 / NAMEENA / 羅美糯 / painting.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