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展(작전: 지을작, 펼칠전)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대학원 단체展   2019_1112 ▶︎ 2019_1114

초대일시 / 2019_1112_화요일_02:00pm

참여작가 임정은_강지영_공은택_김재인_이정운 이한별_이철은_고현우_김규진 박병준_박은지_온다경_정성진 박현철_이서율_이승호_이은정

주최 /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대학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성신여자대학교 수정관 가온갤러리 SUNGSHIN WOMEN'S UNIVERSITY_GAON GALLERY 서울 성북구 보문로34다길 2(동선동 3가 249-1번지) Tel. +82.(0)2.920.7264 www.sungshin.ac.kr

예술로 새긴 17개의 의미들1. 시장지배체제 아래 시장원리, 가격원리가 두드러진 현재, 미술평론가들의 현장비평 활동은 보기 드문 것으로 변모했으며 상업주의에 물든 미술저널들은 옳지 못한 현상에 침묵하거나 동조해 왔다. 시대의 사상과 정신을 조형적 문맥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해야할 미술관은 한 나라의 총체적인 미술역량을 가늠하는 척도를 스스로 내려놓은 채 오래전 죽은 외국 귀신들에게 전시장을 속속 내줬다. ● 과거만 해도 우리 미술계는 미술의 존재이유와 존재방식에 대해 탐구하는 분위기가 강했고 작가를 비롯한 미술계 구성원들 역시 그것을 예술가가 행할 본질로 여겼다. 비평가들은 그러한 작가들의 예술성과 시대정신을 담으려는 노력에 애정을 기울였다. ●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마치 인기에 빌붙어 사는 연예인처럼 제도가 요구하는 유행 중심의 스타일 미술, 소비 지향적 미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는 시장 중심의 미술구조는 되레 미술품을 특별한 이들의 소수 점유물로 보는 그릇된 편견을 창출했고, 작가를 포함한 미술계 구성원들은 그 좌판의 성과에 연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젠 많은 작가들이 미술의 가치 대신 '상품'을 생산, 판매하는 부작용에 둔감한 채 스스로를 '작가'라 말하고 있다. ● 이처럼 모든 것이 외적 지향에 치우치다보니 미술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연구, 담론 형성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오로지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보다 진일보한 조형언어에 탐닉하는 현장, 그 가능성의 장소를 접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것이 신진작가의 작업실이든 미술대학이든 말이다.

공은택_Organism_영상설치_00:04:00_2019
박현철_adjuncts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9
이승호_휴우(休憂)series-1 Liberty_합성수지_61×46×17.5cm_2019

2. 얼마 전 강연과 크리틱에 참여한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 전공 학생 17명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전통조각의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 모습을 드러냈다. 장르의 구별이 매체의 차이를 근거로 이루어진다면, 매체를 포기한 이상 장르의 구별도 흐려지는 동시대 미술흐름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음에도 물질성과 비물질성 간 호흡은 다채로웠으며, 그만큼 실험적이면서 매체의 제한 없는 양상을 나타냈다. ● 일례로 조각, 설치 등을 통해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며 변태의 과정을 '시간의 중첩'으로 작업해온 박현철은 지난해와 달리 기계장치를 이용한 키네틱형식의 설치를 선보여 시선을 끌었다. 시각적으론 과거 가죽 작업과는 다르지만 "격렬하게 살아있던 생명체에게서 떨어져 나온 죽어있는 가죽으로 부터 작업이 시작됐다."거나 "죽어있는 가죽은 다시금 살아나기 위해 떨어져 나온 뭐든 것들을 집어 삼키며 숨 쉬고 움직이려 한다."는 작가의 발언과 "유기적 움직임"은 같은 동선에 놓였다. 아니 오히려 변화를 갈구하는 듯한 인상이 커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했다. ● 작년과 마찬가지로 2013년 이후 전통조각과 회화 중심에서 탈피해 설치, 미디어아트까지 아우르는 정성진의 작업 중, 영상 작품 「부유하는 도시」(2019)가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밝은 내일을 예상하게 하는 「재구축된 세계-기하학적 도상」(2018) 역시 주목의 대상이었다. (정성진은 달라짐에 주저하지 않으며 매체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들이 하나의 포트폴리오에 놓이지만, 이는 자신에게 맞는 조형방식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성진_역행하는 공간_3D 애니메이션_00:01:36_2019
박은지_살아가고 싶다_용접봉, 스컬피, 벤토나이트_가변설치, 33×65×42cm_2019
이서율_Moi sans moi_미디어_00:02:07_2019

작품 「Unnamed」(2018)를 통해 '비정상적 사회 매뉴얼에 대한 탐구'로 자신의 예술을 규정한바있던 강지영의 새로운 작품들은 올해 더욱 세련되어졌고 메시지 전달에서도 군더더기를 덜어냈다. 교복을 마치 벽처럼 보이게끔 칠해 평면으로 눌러 붙인 작업 「Uniform wall」(2019)이나, 2017년 선보인 「Perfect ironing」 (매일 같은 시각에 30분간 다리미질을 하는 퍼포먼스.)은 심리적 압박의 과정과 불안을 넘어 사회적 서사로 외형을 넓힐 필요가 있음에도 형식의 다양성 대입이라는 부분에서 높은 점수가 가능했다. ● 특히 공은택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공동체와 개인, 실존과 현존, 진리와 타자성에 관한 화두를 공간과 시간의 경계 및 현실과 가상의 사이를 환영적 이미지로 담아내고 있다. 미시사를 중심에 두고 있음에도 빛 자체를 하나의 독립적인 미술로 삼는 '과학적 루미니즘'과 텍스트아트의 한 결을 엿보게 한다. 물리적 공간에 걸맞은 구성, 시대성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한 메시지 전달력에 보다 주안점을 둔다면 좋은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 '틈을 가려주지 못하는 약한 표면에 대해 이야기'라는 다소 평범한 주제를 강렬한 여운으로 재구성한 이정운의 파라핀 작업은 작년의 경우 '약한 표면에 대한 이야기'를 꽤나 설득력 있게, 그러면서 단순한 어법으로 소화했다. 올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다소 소극적인 패턴을 유지했다. 지난해의 연장선에서 공간을 포괄하는 확장성을 염두에 둔다면 호소력 있는 작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은정_donotdonut_우레탄, 종이인쇄_가변설치_2019
고현우_도피_스테인리스 스틸, 참죽나무_137×30×30cm_2019
박병준_BraillBlock_오브제_가변설치_2019

● 임정은의 작품은 인형이 가진 보편적 편견과 인식성에 주목한 2018년과 달리 다소 사색적인 작업으로 변모했다. 그가 만든 박스에는 오묘하면서도 신비로운 판타지적 상상이 효과적으로 안착되었으며, 그만큼 긴 여운을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설명이 줄어든 것도 지난해와 다른 점이고, (아직은 더욱 진행되어야할 문제이지만)재료의 감옥에서 이탈하려는 흔적을 엿볼 수 있다는 점과 '제작'의 의무에서 벗어나려는 양태, 물리적인 상황을 '지각'으로 이끌어내려는 시도 등은 작년과의 구분점이다. ● 이한별의 케이블 작업은 통신케이블 설치 일을 할 때 발견한 사물의 성격과 기능, 본인의 경험을 예술과 일상의 매개이자 투영체로 삼은 작업으로, 주거의 문제라는 사회적 이슈를 조형화했다는 점에서 꽤나 현실적이다. 그는 올해도 같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공간의 활용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더욱 전달력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일상과 예술의 틈을 메우고 시대적 사안을 고찰하게 만드는 매력은 유효하다. ● 김재인의 작업은 예전 대비 성숙한 작업을 선보였다.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묵직한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자연적 재료이자 거칠고 투박하며 묵직한, 돌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물성을 비틀어 가공품의 질감이나 부드러운 느낌, 또한 가벼워 보이게 표현해 중량감 까지도 변환해 표현하고자 한다."는 발언은 한쪽으로 치우친 우리의 생각과 사고에 대한 그만의 반전을 담은 표현이자, 작품은 그 표현의 적절성을 내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김재인의 작업을 보면 구상성을 지니는 현재에서 벗어나 동일한 주제의식을 담을 수 있는 다른 방식의 조형을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 이철은의 작업은 인상, 기억, 감정을 다뤘다. 지난해만 해도 그는 전통조각의 범주에 놓이는 작업에 머물렀으며, 조각의 물성에 충실하고 노동력이 강조됐다. 당시 서문에도 적었지만 묵묵히 조각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태도는 신뢰할 만하다. 그러나 올해는 약간 변화한 작업을 출품했는데, 역시 톡톡 튀는 발상이 이채롭다.

이철은_감정의 종류_투명TR무발포레진, 자석_가변설치_2019
임정은_The Bo×-Space_MDF에 페인트, LED 조명_31×29×29cm_2019
이한별_necessary evil - neuron_광케이블. 전기장치. 조명_150×170×170cm_2019

3. 위 언급된 학생들의 작업은 대체로 2018년 작업과 다른 내용 및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맥락은 같다. 어떤 작업은 보다 세련되어졌고 또 어떤 작업은 과도기적 현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아직 완성은 아니라는 점에서 선후변별은 없다. 이어왔고 향후에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듯 그들은 모두 이어가기의 중간에 있다. 따라서 내년의 작업은 또 어떠할지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 올해 처음 접한 고현우의 작업은 포트폴리에 기술된 내용 그대로 "생각과 감정에 대한 것"을 금속조각으로 구현했다. 그는 "생각과 감정들이 쌓이고 모여서 나를 만들어 내듯이 금속의 표면을 하나하나 녹여 쌓으며 형태를 만들어 표현했다."고 했는데, 투박하면서도 거친 재료와 배경이 되는 덩어리감이 어울리는 듯 이질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다만 애써 친절한 형상은 현재로선 일종의 과정으로 읽히며, 내년엔 더욱 선명해지는 작업일 것으로 기대한다. ● 구상성에 충실한 김규진의 금속 조각은 별다른 설명이 요구되지 않을 만큼 직접적인 언어를 지닌다.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미술'을 내건 박병준의 점자블록작업은 개인사에 얽힌 발화임에도 공존공생의 사회적 범주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눈에 띄고, 사라져가고 고통 받는 동물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박은지의 작업은 "사람들에 의해 많은 생명체들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는 사라져 가는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그의 발언에서처럼 표현도 명료했다. 다소 계몽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으나, 그의 말처럼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살아가고 싶다」(2019)는 그 사실을 적절히 담아냈다. ● '무의식의 세계'를 패브릭으로 표현한 온다경의 작품은 키네틱 성향을 지니며 공간점유라는 특색이 있다. 「전성기」(2018) 대비 「기록」(2018)의 간극은 크다. 「틈」(2019), 「감정」(2019) 작품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올해 선보인 포탈을 털로 표현한 콜라주 작업은 의미 있는 완성도를 갖췄다. 우울함을 틈과 채움, 무의식으로 연계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떤 시도에 주저하지 않는 작가적 태도가 인상적이다.

강지영_Uniform Wall_디지털 프린트_600×350cm_2019
온다경_무의식 상상하기_천에 콜라주_가변설치_2019
이정운_Mismatch_시멘트, 파라핀, 할로겐전구_110×30×30cm_2019

페르소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서율의 영상 「Cercle vicieux」(2019) 연작은 제목에서처럼 악에 젖은 원형의 혹은 순환을 나타낸다. 이서율에 말에 의하면 그의 작업은 "무리에 끼어들지 못해 사회와 단절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최선의 가면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어렵게 겨우 엄선된 가면을 쓰며 겨우겨우 하루를 버티다 다시 단절되는 내 인생의 악순환(cercle vicieux)"을 담고 있다. ● 그런데 제목에서의 선입관과는 달리 다소 유쾌하게, 해학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없진 않다.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꽤나 묵직한 독일 작가 데이빗 크리펜도르프의 'Nothing Escapes My Eyes'를 연상케 함에도 진지한 내용을 살짝 가볍게 접근한 것이 색다르다. ● "현대인들의 일상 속 휴식과 그 안에서 느끼는 근심, 불안을 초식동물인 기린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옮긴 이승호의 조각은 "불안정한 삶속에서 깊은 숙면과 평안한 안식을 갈망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동적인 상황과 함께 적절히 구현했다. 「휴우(休憂)」(2019)라는 작품제목과 형상만 보더라도 무슨 얘길 하려는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초원의 기린은 연약함과 평화로움의 상징일 수 있으나 한편으론 그것이 반드시 기린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불안과 안식의 갈망을 매체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 "스트레스에 지친 삶속에 달콤함에 취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이은정의 설치작품은 팝아트적이면서도 동화적 상상력을 작업의 밑동으로 했다. 정성스럽게 박스 하나하나를 직접 접고 만들어 설치한 작품에선 메시지의 전달에 나름 공들였음을 읽게 하고, 만화적이며 동화적인 캐릭터들은 그에 걸맞게 친근함을 선사한다. 이 친숙함은 익숙한 일상 속 사물은 시각적 재미와 함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감성을 되짚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존의 예술과 자신의 예술이 어느 지점에서 다르고 변별력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유효하며, 이미지가 아닌 메시지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폭 넓은 연구도 필요해 보인다.

김재인_기록2_지티석, 철_177×63×48cm_2019
김규진_제1101호 벌룬독_철_18.5×21×7cm_2019

4. 서문을 작성하며 지난해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적시하면, 지면 사정상 더는 길게 작성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만큼 각각의 작업들은 고전적 패턴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거세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상업성에 연계된 마인드와 장식에 준하는 예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은 상기할 만하다. 이는 성신여자대학원 조소과의 교육방향과 동시대미술의 흐름이 어느 정도는 매치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 그러나 아직은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게 없지는 않다. 의도와 표상이 일치하지 않거나 서투르고, 깊은 철학과 미적 고찰에 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 함을 가리키는 작업도 있다. 기표와 기의 엇박자를 내비치기도 한다. 하나, 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은 그 엇박자를 맞춰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자각한 결과를 세상에 투영하는 일이다. 이는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이다. 따라서 각인되어야할 건 오늘의 흐름이 오랜 시간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특히 우린 어째서 예술가가 되려고 하는지, 예술은 무엇인지 되짚어야 하며 그에 맞는 학습과 견문은 잇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더불어 미술이라는 언어로 우린 무엇을 하려는지, 그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후자는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이미지는 단지 껍데기요, 취향에 봉사하는 도구이거나 사적 안위를 위한 수단 혹은 누군가의 장식이거나 품위를 만들어주는 고급 컨텐츠에 불과해질 뿐이다. ■ 홍경한

Vol.20191112e | 作展(작전: 지을작, 펼칠전)-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대학원 단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