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얼굴 Remaining Face

최주연展 / CHOIJUYEON / 崔朱延 / installation.video   2019_1115 ▶︎ 2019_1212 / 일,공휴일 휴관

최주연_Mr. Kim_단채널 영상_2채널 오디오_00:08:18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오!재미동_(사)서울영상위원회_서울시

관람시간 / 11:00am~07:55pm / 일,공휴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 지하 199 충무로역사내 Tel. +82.(0)2.777.0421 www.ohzemidong.co.kr

최주연의 남은 얼굴 ● 최주연은 이번 전시, '남은 얼굴'에서 이른바 집단 초상으로서의 '남은 얼굴'을 선보인다. 지난 작업에서 볼 수 있었던 집단초상으로서의 드로잉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최주연은 체온이 느껴질 것 같은 표정의 하얗고 빛나는 얼굴을 애써 예비했다. 어둠을 밝히고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누군가를 기념하기 위한 제작, 설치가 아니었다. 이들은 어느 순간 사라질 것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정교하게 빚어진 두상은 왠지 연약한 모습이었다. 약간은 서글픈 표정도 보인다. 일체의 욕망과 욕심을 포기한 듯 투명한 모습이다. 한 올의 머리카락도 더하지 않았다. 모두를 거세했다. 차라리 비장함이 흐른다. ● 화장(火葬)을 기다리며 긴장한 듯 차가운 표정은 불에 타들어가면서 물렁물렁 부드럽고 따뜻한 표정으로 바뀐다. 하얀 얼굴은 웃고 있는 듯 벌겋게 달아오른다. 촛농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내 곧 무너지듯 녹아내린다. 흘러내린다. 넘쳐흐른다. 머리 속이 출렁인다. 사라지고 잊힌다는 것에 대한 슬픔인가, 환희의 감정인가. 초가 타들어가며 나는 빛, 불빛은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의지를 세상에 전하려는 뜨거운 진실에 다름 아니다. 소리 없는 그러나 귀를 간질이는 단조의 운율이 조용히 타고 흐른다. 조용한 울림이자 아우성이다. 비워져가는 저들의 머리 속을 바라보며 작가의 머리 속에는 'why, who, what, how' 등과 같은 단어들이 명멸한다. 되뇐다. ​

최주연_Mr. Kim_단채널 영상_2채널 오디오_00:08:18_2019
최주연_Mr. Kim_wax, 나무, 철판, 영상_설치, 138.8×31×31cm_2019

최주연은 가슴 속 뜨겁게 자리하고 있던 저들과 자신을 돌아본다. 눈앞에서 녹아내리며 사라지는 가면을 지켜본다. 마음 속에 죄 없음을 반복적으로 읊조린다. 응어리를 녹여낸다. 눈앞에서 사라진다. 가슴에 새긴다.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던 가식 덩어리가 해소된다. 위장된 소리와 향기, 내음의 고백이다. 대상의 얼굴 저편에 은폐되어 있던 자신의 남은 얼굴 모두를 끄집어낸다. 그러나 아직 무언가가 해소되지 않은 듯하다. 또 놓치고 있는 것일까? 페르소나. 가면. 당시의 모두의 모습. 이렇게까지 들춰내고 녹여내고 있음에도 녀석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지인들의 얼굴은 각자의 몫만큼 타다 멈춘다. 급격하게 체온이 식는다. 빠르게 표정이 굳는다. 역시 각자의 몫만큼 굳어 간다. 이전의 것과는 사뭇 다른, 차갑게 식어 있는 그저 딱딱한 고체 덩어리에 다름 아니다. 활활 타오르던 조금 전까지의 표정과는 다른 정반대의 감정과 표정으로 남는다. 바뀐다. 앙상한 잔해, 속이 텅 빈 무상함. 뜨겁게 타오르던 활활한 모습은 무상할 정도로 사라지고 없다. 다 타버린 공간은 텅 빈 공허감으로 흥건하다. '바니타스(vanitas)' 장면에 다름 아니다. 최주연은 삶과 이런저런 관계의 덧없음, 허무, 공허, 무상함, 유한함을 눈으로 지켜본다. 그러나 세상에 산재해 있는 자신의 가면 모두를 이렇게 날려 보내며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다. 여전히 자신의 무력함과 아쉬움을 돌아본다. 잊힐 사람들, 사라질 사람들, 묻혀갈 사람들에 대한 깊어지는 그리움을 확인하고 속죄의 '번제'와 '화장'을 행할 뿐이다. ​​

최주연_Ms. Choi_단채널 영상_2채널 오디오_00:08:18_2019
최주연_Ms. Choi_wax, 나무, 철판, 영상_설치, 127.7×31×31cm_2019
최주연_Mr. Park_단채널 영상_2채널 오디오_00:08:18_2019
최주연_Mr. Park_wax, 나무, 철판, 영상_설치, 149.5×32×32cm_2019

중요한 것은 가면으로 상징되는 보이는/보이지 않는 가식이다. 작가 자신은 당시나 지금이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또 할 수 없었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을 새삼 확인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두는 원죄가 없음을 상호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큰 죄의식 없이 이들을, 이들에 중첩되어 있는 페르소나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내려는, 부담을 줄이는 의식을 행하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죄인인 듯한, 내가 보낸 것 같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함에 대한 죄의식, 부채의식을 보내는 동시에 날려 보내는 서로를 위한 의식이다. 작품을 지지하며 바닥에 닿아 있는 철판까지 이른 촛농, 공중으로 떠다니던 그을음이 자리잡고 묻어난 불편한 얼굴 잔해가 눈에 밟혔다. 왁스의 연소의 정도가 지인 저마다 지닌 페르소나의 정도와 닮았음이다. ● 지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타들어가며 끝까지 태연한 척 작가를 바라보는 지인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참으로 불편한 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불과 함께 녹아내리며 양측은 갈등 해소의 국면을 맞이한다. 완전히 해소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타고 남은 각각의 두상 잔해와 뜨겁게 달아올라 용해되며, 용융된 왁스가 몸통 격인 기다란 나무 기둥을 타고 내려온, 이내 굳어버린 표정들이 해소의 정도를 미루어 짐작하게 할 뿐이다. 다만 완전 연소될 때까지 지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리를 지킨 작가의 부담이 전에 비해 덜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침착과 냉정을 유지하려했던 작가 자신도 함께 활활 타들어 갔기 때문이다. ● 이렇게 최주연이 정면으로 지인과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그것을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확인하는 의식을 행하는 것은 당시 불편했던 표정과 연출된 뭔가를 저 멀리 날려 보내려는, 잊어버리고 없애려는 시도이자 의지에 다름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내장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과 이미지를 불러내어 확인하는 것이다. 최주연의 작업이 진실과 뒤섞인 가식을 거두어 내려는, 그리고 그것들을 합리화하고 부정하기보다는 그들 모두 자신의 모습임을 인정하려는 노력 그 자체인 이유다. ​​ ■ 박천남

최주연_남은 얼굴 Remaining Face展_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_2019
최주연_남은 얼굴 Remaining Face展_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_2019

남은 얼굴 ● 마주하던 얼굴 그 너머의 무엇. // 살 오른 불꽃은 얼굴을 녹인다. 불길의 공간들은 안과 밖을 만든다. 안은 불이 되고 밖은 달라진다. // 분명하던 빛의 얼굴은 분열된다. 앞과 뒤 사이에 가득 찬 연기는 검게 머물다 떠난다. // 붉은 발광과 뜨거운 날숨 뒤로 맺힌 선명해진 낯선 눈은 유령의 것이 아니다. // 흐르는 시간만큼 녹는 얼굴 그리고 드러나는 얼굴. // 가까이 있어 만질 수 있는 것들. 만질 수 있어 보이는 것들. 보이는 것의 깊이는 보이지 않는다. 빛이 사라진 암흑의 끝에서야 숨지 않는 어두움. // 시간의 바닥에 웅크린 어둠을 틈타 희미하게 숨이 꺼진다. 사라져 보이는 보이지 않는 실체들. // 우리는 어떻게 없어지는가. ■ 최주연

Vol.20191117b | 최주연展 / CHOIJUYEON / 崔朱延 / installation.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