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상처를 찾아 To Find the Glory Scars

박지혜展 / PARKJIHYE / 朴智慧 / installation   2019_1113 ▶︎ 2019_1218 / 일,공휴일 휴관

박지혜_blind_합판, 스티로폼, 레진, 마포걸레_가변설치_2019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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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113_수요일_06:00pm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주최 /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30pm / 토요일_11:00am~05:00pm / 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421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0)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불확실함을 위한 교범: 박지혜 작가의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를 위한 노트 ●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1978년 BBC 라디오 극으로 방송되었고, 1979년에 소설이 발간되었다. 한국어 번역판은 1996, 2004년에 발간되었으며 2005년에 영화가 개봉했다)에 등장하는 도시 크기의 슈퍼컴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이 750만 년에 걸친 계산 끝에 제시하는 질문은 이렇다. 42. ● 심오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왜 42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존재한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DOS 운영체제에서 동일한 확장자를 가리키는 모든 파일을 나타내는 기호 *의 ASCII(미국정보교환표준부호) 코드가 42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저자와 제목의 글자 수를 합치면 (30+12) 42가 된다는 의견, 일본식 고로아와세(語呂合わせ, 독음이 비슷한 숫자나 문자로 의미를 바꾸는 것)으로 42를 읽으면 시니(死に, 죽음)이기에 우주의 궁극적 해답은 '죽음'이라는 의견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설의 원작자인 더글러스 애덤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덤스의 말을 빌자면, "2진수 표현, 13진법, 티베트 승려들의 신비로운 숫자들은 다 앞뒤가 맞지 않아요. 책상에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다가 42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타자기로 숫자를 입력했습니다. 그뿐이에요."

박지혜_home sweet home_OSB, 목봉, 물고기밥 타이머, LED조명, 소금_가변설치_2019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은 숫자를 사용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일종의 점술이다. 수비학적인 관점에 따르면, 숫자는 만물의 원리를 나타내며, 우주의 모든 사물은 숫자로 계량화하여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특정한 존재를 숫자로 나타낼 수도, 숫자를 특정한 존재로 치환하여 생각할 수도 있다. 예컨대, 계율상 신의 이름을 소리내 말할 수 없었던 유대교에서 신을 부르는 이름인 יהוה는 숫자 로마자 YHWH로 치환된 뒤 각 글자가 나타내는 숫자 10, 5, 6, 5를 합친 26으로 쓰였다. 말하자면 고대의 유대교 신자들에게 26은 곧 신의 이름이기도 했던 것이다. ● 언뜻 수비학은 그저 기호에 불과한 숫자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미신처럼 보인다. 결과는 눈 앞에 놓여 있지만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세상의 원리를 어떻게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한 틀에 끼워 맞춰 설명하려는 애처로운 시도인지 모른다. 하지만 21세기의 기술 가운데 가장 진보한 영역이라는 인공지능의 영역에서도 본질적으로는 수비학과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 구글 번역기의 인공 지능을 연구 중인 과학자들은 번역기의 알고리즘이 100여 개의 언어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체적인 언어를 개발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구글 번역기 서비스 안에서 작동 중이지만 기존의 인간 언어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이 '중간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사이 언어(interlingua)'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어내야만 했다.

박지혜_사랑하는 나의 친구여_스티로폼, 레진, 전선관, 빨대, 종이_가변설치_2019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확실히, 지금 세상은 불확실하다. 사실 세상은 언제고 불확실하고 불안정했지만 이른바 '거대서사'에 간편히 기댈 수 있던 (일부 사람들에게 꽤나 편했을지 모르는) 호시절은 끝났다. 그러나 불확실함을 선뜻 받아들이거나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불확실함 속에 놓인 이들은 외려 더 명확한 것을 갈구한다. 복잡한 사건이나 지식이 명확한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로 재탄생하여 유통되기도 하고 ('넓고 얕은 지식'의 유행을 보라), 단순한 믿음에 기반한 세계관이 유튜브를 위시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보 유통 플랫폼들을 활용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가짜뉴스'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박지혜_Say it_단채널 영상_00:04:15_2019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리는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2019. 11.13 ~ 12.18)에서, 박지혜 작가는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불확실함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갖가지 오브제와 액자에 든 이미지, 모니터를 통해 선보이는 영상을 제시한다. 전시라는 틀 안에서 '작업'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불확실함을 해소하기는커녕 세계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킬지 모른다.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강아지처럼 보이는 형상은 사실 마포 걸레를 겹쳐 만든 것이고, 아니 사실은 액운을 내쫓는다는 삽살개가 밀대 자루를 벗어난 걸레인 척 가만히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시장으로 바위를 옮겨온 것인가 싶을 큰 덩어리들은 사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바위 비슷해 보이는 어떤 것'이며, 스무 마리가 넘는 까마귀가 여기저기에 놓여 관람자를 맞이한다. 그런가 하면 전시장의 한 켠에는 '불타는 집'도 서 있다. 물론, 정말로 불이 붙어 연기를 내며 활활 타오르는 그런 집은 아니다.

박지혜_네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 정말로_나무패널에 아크릴, 레진_각 47×47cm_2019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전시장 안에 놓인 것들은 모두 무언가에 대한 의미부여를 참조하거나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떨어진 상태, 그러니까 애초에 그것이 지시하고자 했던 대상으로부터 적어도 두 단계쯤 떨어진 채 존재한다. 작가는 작품들이 참조한 각각의 출발점에 대해서도, 의미에 대해서도 그리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눈 밝은 관람자라면 마치 수비학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듯 전시장에 놓인 작업들에 의미를 부여해 꽤 먼 곳까지 나갈 수 있으리라는 점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힌트: 이번 전시 출품작 가운데 짐 캐리가 수비학에 사로잡힌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를 참조한 작업이 있다. 어떤 작업일까?)

박지혜_영광의 상처를 찾아展_송은 아트큐브_2019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명확한 서사도,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설명도 없는 상황에 답답해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보자. 작업의 창조주 격인 작가가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것은 과연 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이미 지난 몇 년간 작가는 반복적으로 이런 경험을 한 바 있다. 명확히 말하면 "너무 단정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조심스럽게 말하면 "우물쭈물한다고" 비난받는 상황에 놓였던 거다. 따라서 『영광의 상처를 찾아』는 단정적이지도, 우물쭈물하지도 않는다.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명확함의 호시절이 끝난 지금, 불확실함을 헤쳐나가기 위한 우리들을 위한 교범을 보여준다. 물론, 전시장에 놓인 교범들에서 무엇을 얻어갈지는 언제나처럼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 박재용

Vol.20191118d | 박지혜展 / PARKJIHYE / 朴智慧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