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초상

송인展 / SONGIN / 宋寅 / painting   2019_1120 ▶︎ 2019_1201

송인_가려진 사건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 아크릴채색_177.5×38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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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120_수요일_06:00pm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미술관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벽원미술관 HANBYEOKWON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삼청로 83(팔판동 35-1번지) Tel. +82.(0)2.732.3777 www.iwoljeon.org

內面의 초상 ● 송인은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우리 주변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보통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고 이를 재현하는데 몰두한다. 그렇지만 그가 그려내는 것은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상 속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오늘날 이 시대의 사람들,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고통, 공포, 불안, 갈등 등의 감정에 주목한다. 인간의 감성들 가운데에 부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는 행복한 모습, 즐거운 모습보다 오히려 이러한 감정의 어두운 부분들이 삶의 진면목을 보다 진솔히 드러내고 있다는 작가의 생각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고통, 공포, 불안, 갈등 등을 배태한 사회를 직시하려는 비판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17년 그림손 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2년 만에 갖는 개인전으로 작품 세계의 커다란 경향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커다란 화면 가득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 시킨 형식, 얼굴 부분에만 포커스를 맞춘 구도, 먹과 아크릴로 전체 화면을 칠하여 바탕을 만들고 수정테이프를 이용하여 얼굴을 세밀하게 그려낸 다음 콘테로 세부를 마무리하는 기법 등 작업 전반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재제와 기법 상에서의 변화도 눈에 띈다. ● 우선 재제에 있어서 과거에는 여성들을 주로 다루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여성의 보편적인 인권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주목했지만, 이번 전시에는 한국에서,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작가가 자신이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시팅(sitting)을 부탁하고 그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과거 전시에서 사진을 통해 외형적인 모습만을 알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어두운 면을 그렸다면, 이젠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어두운 부분을 그린 것이다. 평소 교류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 그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에 주목하면서 보다 그 본질에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전통시대 초상화에서 중요한 목표로서 지향되었던 '정신을 그려 낸다'는 이른바 '전신傳神'이 일정부분 이루어진 셈이다. ● 실제로 11세기 중국의 소식蘇軾(1037-1101)은 "그 사람의 자연스러움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여러 사람 속에서 행동을 은밀히 관찰해야하는 법이다. 요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의관을 갖추고 앉아서 한 곳만 바라보게 해놓아 그 사람이 용모를 단정히 꼿꼿이 앉아 있으니 어찌 다시 그 천연함을 볼 수 있겠는가"라고 '전신론傳神論'을 피력한 바 있다. 소식은 화가들이 잘 모르는 사람을 그리면서, 똑바로 어딘가에 앉게 한 뒤에 그 모습을 경직되게 그리는 것의 부자연스러움을 비판하면서, 평소의 모습을 토대로 그려야 그 본질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실제로 작가 송인의 이번 출품작들은 과거 여성들에 비해서 한결 자연스럽고 실질감이 넘친다. 이는 바로 작가가 평소 내외면內外面을 두루 잘 아는 지인들을 그렸기 때문이라 할 수 있으며, 바로 소식의 견해와도 통하는 부분이다.

송인_가려진 이면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_177.5×380cm_2019
송인_불안한 갈등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 아크릴채색_162.3×380cm_2019
송인_축적된 단상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 아크릴채색_162.3×380cm_2019
송인_어떤 기록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_162×130cm_2019
송인_어떤 사건에 대한 기록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_162×130cm_2018
송인_어떤 시선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_162×130cm_2018
송인_역사가 된 기록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_162×130cm_2019
송인_침묵의 기원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_162×130cm_2018
송인_관계의 시선_장지에 먹, 수정테이프, 콘테, 아크릴채색_95×162.3cm_2019

기법에 있어서는 과거의 작품들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해진 표현이 주목된다. 이제는 수정 테이프를 붓 이상으로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이지만, 사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 개인전을 치르기 위한 대작 여러 점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소용되는 수정테이프의 수는 약 800개에 달한다. 그간 작가의 노력이 어떠했는가를 반증해준다. 과거 작품들의 경우 수정테이프 특유의 각이진 흔적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화면에 다소간의 생경함을 주었던데 반해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그러한 면모를 완전히 일신했다. 가까이에서 보아도 붓으로 그린 듯 자연스러우며, 마치 붓으로 그렸을 때 나오는 비백飛白과도 유사한 효과를 주는 표현도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작가가 수정테이프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것이다. ● 그의 작업이 이처럼 회화의 재료가 아닌 일종의 지우개라고 할 수 있는 필기 보조구 수정테이프를 이용한 것이니만큼 작업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고 또 전통과는 무관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사실 그의 작업은 오랜 동아시아의 초상화 전통과 연결된다. 그가 그린 인물의 얼굴들은 수정테이프를 이용한 수많은 터치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데, 볼록하거나 오목한 부분에 따라 터치의 횟수나 방법을 달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입체감과 형상성을 살리는 것이다. 이는 사실 조선 후반기의 대표적 초상화가로서 서양화풍을 받아들여 기존 초상화의 사실성을 크게 끌어올린 이명기李命基(1756-1813이후), 채용신蔡龍臣(1850-1941)의 초상화풍과 상통하는 것이다. ● 또한 이명기, 채용신의 초상화를 보면 서양의 초상화에서처럼 좌측이나 우측에서 빛을 비추어 반대편을 어둡게 함으로써 입체감을 살리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정면에서 빛을 비추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광원光源을 측면에 두는 명암법을 어색해했던 동아시아인들이 현지의 정서에 맞춰 변형하여 받아들인 것인데, 작가 송인도 이러한 표현방식을 작품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의 작품이 단순히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닌, 든든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작가 송인은 전통에 탄탄한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기법을 통해 시대의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된 작품세계를 열어왔다. 이제 수정테이프라는 새로운 화구畵具를 붓만큼이나 능숙하게 다루게 된 만큼 앞으로 작가가 어떤 표현의 세계를 열어갈지 더욱 궁금하다. ■ 장준구

Vol.20191120a | 송인展 / SONGIN / 宋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