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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용展 / CHAZOOYONG / 車朱庸 / mixed media   2019_1121 ▶ 2019_1130 / 월요일 휴관

차주용_辛苦了#612_혼합재료_235×45×45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1019h | 차주용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자인제노 GALLERY ZEINXENO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9-4 Tel. +82.(0)2.737.5751 www.zeinxeno.com blog.naver.com/mangchiro

어느 노동자의 일기2017.12.31. 카드 돌려막기. 예전엔 뉴스에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내 얘기다. 점점 카드 돌려막기도 버겁다. 대책이 필요하다. 편의점 알바라도 나가야 할 판이다.

2018.01.23. 이제 알았다. 알바도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다. 편의점은 아저씨를 잘 뽑지 않는다. 용역사무실도 가 봤다. 당구장에도 면접을 봤다. 모두 뺀지 먹었다. 충격이다.

2018.03.28. 오라는 곳이 있다. '지옥의 알바'라는 택배 상하차. 이젠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그나마 집에서 멀지 않아 다행이다.

차주용_辛苦了#612_혼합재료_235×45×45cm_2019_부분

2018.03.29. 내가 너무 나태한 삶을 살았나? 아직 체력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부산까지 자전거도 타고 몇 번 가봤고, 제주도도 10일간 걸어보고, EBC도 다녀왔다. 상하차 1일 차! 왜 택배 상하차를 '지옥의 알바'라고 하는지 알겠다.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 아침저녁으론 꽤나 춥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일하는 동안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이 땀이 난다. 이미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비가 더 나오겠다. 아니다. 이틀만 더하면 일요일이니 그만두더라도 그때까지만 해보자.

2018.04.05. 우리 현장 반장은 성질이 더럽다. 나이 많은 60대 아저씨한테 큰소리치고 쌍욕도 한다. 이런 일을 오랜만에 하다 보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씨발, 당분간 분위기 파악이나 해야겠다.

차주용_essance#01,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30cm×2_2019

2018.05.15. 홀쭉이와 뚱뚱이. 서로 친구고 대학생이란다. 뚱뚱이가 부추겨 훌쭉이가 따라왔다. 둘 다 상하차 일은 오늘이 처음이다. 짜식들! 고생 좀 하겠구먼. 컨테이너가 싣고 온 택배상자 하차를 현장에서는 '까대기'라고 한다. 뚱뚱이가 나와 한 조였는데 하차를 하다가 말고 숨을 헐떡이며 교대해 달란다. 한 대는 다 까고 나와야 교대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먼저 하차를 하고 나온 사람이 잠깐 쉬는 시간 없이 다시 하차를 하게 되고 그러면 체력 안배가 안 돼서 오후까지 일하기 힘들다. 뚱뚱이는 숨을 헐떡이며 다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간다. 보통 일 인당 하루에 5대 정도 하차하게 된다. 사이트마다 조금씩 다를 순 있으나 우리 현장은 그렇다. 그런데 아침 첫차 하차하면서 반도 못까고 교대해 달라니... 쯧

차주용_辛苦了#2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72×61cm_2019

옆 라인의 친구 홀쭉이는 힘들어 보이지만 묵묵히 자기 몫을 하고 있다. 내 차례가 되어 하차를 하고 나왔다. 물 한모금을 들이키고 둘러보니 뚱뚱이가 안 보인다. 친구 홀쭉이에게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같이 있던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말도 없이 집에 가더란다. 종종 일이 힘들어 중간에 가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같이 온 친구에게조차 말도 없이 도망을 가다니... 쉬는 시간에 같이 초코파이를 먹으며 다들 한마디씩 한다. 그런 친구 손절하라고...

차주용_지국총 지국총 어사와展_갤러리 자인제노_2019

2018.05.30.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리는 편이다. 매일 아침에 새로 지급해주는 장갑을 일을 마치면 다른 사람들은 바로 버린다. 그런데 나는 내 손때 묻은 장갑을 못 버리고 집에 가져간다. 그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쌓인다. 내 지난한 삶의 무게가 쌓인다.

2018.06.08. 일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체력적인 부침이 덜하다. 오늘은 매월 두 번째 주, 사진모임이 있는 토요일이다. 택배는 토요일에도 배송을 한다. 그래서 나도 별일 없으면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 하지만, 모임이 있는 토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일을 하고 모임을 나가면 힘들게 뻔하기 때문이다. 택배 상하차도 몇 달째 접어드니 일을 마치고 모임을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벌어야 하는 것이 나의 현재 상황이다. 모임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끝났다. 촬영 후 저녁을 먹는데 곁들인 반주에 살짝 기분이 들떴었나 보다. 누가 던진 재밌는 농담에 박장대소를 하다 그만 다리에 쥐가 났다. 방심했다가 딱딱하게 굳은 다리를 티도 못 내고 혼자 어루만진다. 웃프다.

차주용_지국총 지국총 어사와展_갤러리 자인제노_2019

2018.07.11. 우리 현장에는 중국인들이 몇 명 있다. 모두 불법 노동자다. 한국말도 아예 모른다. 한국말을 몰라도 몸으로 하는 일이라 크게 불편함은 없다. 여기 있는 한국 사람들 보다 훨씬 열심히 일한다. 70~80년대 우리네 아버지들이 열사의 땅 중동에서도 이렇게 열심을 다했었으리라.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하니 일과 관련된 최소한의 의사소통 외에는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이 스마트한 시대가 아닌가? 나는 통·번역 앱을 깔아서 고향이 어디냐? 가족은 몇 명이냐? 등등 시시껄렁한 질문을 던져본다. 중국에 두고 온 부인과 젖먹이 딸 사진을 보여준다. 짠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야 언어를 넘어서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2018.07.18. 중국인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진 하차,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진 짐 싣기를 한다. 독하게 일한다. 그래도 여기 중국 사람들은 순박하다. 항상 웃는다. 말이 잘 안 통하면 적의가 없다는 뜻으로 늘 웃는 게 대인관계에 무난하다.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쳤다. 그중 좀 친해진 여XX이라는 친구가-불법노동자라 실명을 밝히지 않겠다- 웃으면서 "辛苦了!" 라고 한다. 신... 뭐라고? 무슨 말인지 몰라 파파고 앱을 들이밀었다. 발음은 '신쿨라' 뜻은 '수고하셨습니다'란다. 땀에 쩔은 장갑을 벗으며 나도 '신쿨라'했다.

차주용_辛苦了 series #1~5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가변설치_2019

2018.08.02. 연일 폭염으로 사망자가 나오고 있단다. 어제 서울 기온이 39도였다. 까대기를 하는 컨테이너 속의 온도는 50도가 훌쩍 넘는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난다. 보통 하차작업을 하기 위해 컨테이너에 한 번 들어가면 40~50분 정도 속에서 머문다. 내가 상자를 나르는지 상자가 나를 나르는지 모르는 소위 '몰아 일치'의 경지를 경험한다. 하차를 마치고 컨테이너 밖으로 나오면 순간 시원함을 느낀다. 아! 39도라는 것이 이렇게 시원한 것이었나?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도 모르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낮잠을 청한다. 내일 또 나가야 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가볍지 않다.

2018.10.29. 또 사람이 죽었다. 같은 계열사의 다른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올해만 벌써 3명째다. 후진하던 컨테이너가 뒤에서 일하던 사람을 못 보고 치었다. 그 앞엔 컨베이어 벨트 밑 청소를 하던 노동자가 감전사하는 일이 있었고 그 앞엔 마른 체격의 40대가 컨테이너 안에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모습이 CCTV에 담겨 전파를 타고 뉴스에 나온다. 현장 분위기는 도긴개긴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뉴스를 보며 먹던 저녁밥이 소화가 안 된다. 모두 좋은데, 가셨길...

차주용_essance#03,04_종이에 아크릴채색_35×35cm×2_2019

2018.12.14. 회사로부터 반장제의가 들어왔다. 조금 당황스럽다. 난 그냥 알바하러 온 건데 관리자 역할을 제의하다니. 점잖게 거절했다. 회사 직원이 되면 매일 출근해야 하는데 겨울철에는 본업으로 하는 일이 많이 없어 매일 나오고는 있지만 매일 매일 출근하기는 힘들다고 얘기했다. 무엇보다 오래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반장제의 했던 차장이 빙긋 웃는다. 회사는 반장 자리가 박봉에 힘만 들어 오래 못 버틴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요놈들아 나도 알고 있다!

2019.01.27. 해를 넘기면서 이제 이 일도 1년이 다 돼간다. 통장에 현금 흐름도 조금씩 좋아지고 무엇보다 겨울철 규칙적인 생활로 정신이 맑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기능이 있으면 역기능이 있는 법. 안면홍조와 더불어 언젠가부터 어깨와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은 조금 결리고 쑤시는 수준인데 이 일을 계속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차주용_지국총 지국총 어사와展_갤러리 자인제노_2019

2019.06.02. 어깨가 아파서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겠다. 병원에서는 쉬거나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한다. 하지만, 쉴 상황이 안되고 다른 일을 찾기도 만만치가 않다. 10월부터 쿠팡 물류센터가 고양시에 생긴다는 기사가 있다. 거기는 좀 편하려나?

2019.07.20. 올해 여름은 작년만큼은 덥지 않다. 다행인가? 하지만 어깨 통증이 날로 더 심해진다. 회사에는 7월까지만 하고 당분간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어깨와 팔꿈치가 아파, 팔을 드는 건 고사하고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현장 노동자들이 이렇게 망가져 나가나 보다.

차주용_지국총 지국총 어사와展_갤러리 자인제노_2019

2019.09.27. 9월 2인전을 마치고 쿠팡에 처음으로 일하러 와봤다. 앞에 일하던 택배 상하차가 우리나라 80년대 현장 상황 같다면 쿠팡 현장은 2000년 초반 같은 느낌이다.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상하차 현장은 매일 고성과 쌍욕이 오가는 곳이었다면 여기는 옆 사람과 조근 조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다. 당연히 현장 분위기도 훨씬 부드럽다. 이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이 된다.

2019.10.01. 다시 정든(?) 상하자 현장에 왔다. 늘 그렇듯 절반 이상의 노동자는 바뀌어 있었고 그래도 현장은 돌아간다. 여기저기 고성을 지르며... 학창 시절 읽었던 배 상환 선생의 시집 '오늘도 학교는 안녕하다'처럼 오늘도 현장은 안녕하다. '辛苦了' ■ 차주용

Vol.20191121i | 차주용展 / CHAZOOYONG / 車朱庸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