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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122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특별시 협력 / 탈영역우정국
관람시간 / 01:00pm~08:00pm
탈영역우정국 POST TERRITORY UJEONGGUK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구 창전동 우체국) Tel. +82.(0)2.336.8553 www.ujeongguk.com www.facebook.com/ujeongguk
『얼음의 언저리를 걷는 연습』은 확신을 주지 않는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바깥으로 밀려나 인지할 수 없는 것들을 복원하며 그것과 마주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손 아래 공백을 감지하거나 까맣게 지워진 얼굴을 기억해내는 일, 얼음이 녹아 얼룩이 되었다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일, 바른 방향을 생각하는 일, 미약한 숨소리를 내거나 그 소리를 듣는 일, 혹은 소리 없는 말을 듣는 일이다. 이 모든 일들은 제목처럼 언제 녹을지 모르는 얼음 위를 걷는 듯한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불안을 견디며 걷기 위한 꾸준한 연습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무척 더웠던 날에 고양이가 죽었다. 그리고 갑작스런 결정으로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했다. 두 사건이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경기도에 살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 1호선을 탄다는 일이 무척 고역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간격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마이너스의 거리를 견디며 주변에서 중심부로, 또 중심에서 주변부를 이동하다 보면 물에서 얼음이 되었다가 도로 물이, 다시 얼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은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는데 문득 내 손이 허공을 쓰다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손바닥 아래 빈 공백이 너무도 텅 비어있었다. 손 아래 공백을 파라핀으로 캐스팅하며 「공백의 모양」을 만들 때에는, 고양이의 단단하고 작은 두개골, 유연한 척추와 꼬리, 익숙했던 온기와 촉감 같은 것들이 뜨겁고 물렁한 감각으로 잠시 소환되었지만, 금세 식고 굳어져 곧 죽음이 떠올랐다. 손안에 남은 반투명한 조각들은 작은 동물의 뼈마디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종이에 눌러 그린 아버지의 얼굴 자국은 복원력 좋은 종이 덕분에 매일 새살이 돋아나듯 차오르면서 점차 희미해졌다. 그 자국이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 5장의 까만 드로잉 『까만 얼굴』이다. 그렇게 애정을 주었으나 이제는 사라진 존재들은 내가 감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원된다.
연약하고 불확실한 것들은 임시적이나마 거대한 공동의 상상으로 재편되며 힘을 갖는다. 작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소리 작업 「한 숨과 긴 숨」는 6명의 여성들이 함께 그려낸 소리풍경으로, 확신을 주지 않는 모호한 것들, 기꺼이 포착되지 않는 것들, 체계 속에 포함될 수 없었던 소리들을 겹쳐 '거대한 것'을 지어 보기 위한 연습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언어화 되지 않은 소리를 내면서(이 소리들은 말이 아닌 호흡에 가깝다) 서로의 상상력을 쌓아 올려 손에 잡히진 않는, 그러나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근사한 일처럼 느껴졌다.
바닥에 깨진 유리를 늘어놓은 「덩어리와 얼룩과 아무것도 아닌 것」은 중앙에서부터 밀려 떨어진 것처럼 보이고, 다른 한 쪽에서 실시간 재생되는 7시간짜리 영상은 얼음이 점차 녹으며 얼룩의 상태를 지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 느려서 거의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고, 아마 그 누구도 전체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생략하지 않은 채 끈질기게 앉아 전부를 보게 될 때'를 기다리는 태도이다. 대신 선별된 100장의 포스터가 제작되었고, 이것을 한 장씩 가진 100명의 사람들은 기억 일부를 나눠가진 무의식적 공동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어두운 통로 끝에서 반짝이는 「간극의 거리」의 말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전혀 닿을 수 없도록 음소거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접근하여 자세히 볼 수도 없다. 상대방의 사정은 막연한 추측으로만 남는다. 『바르게 쓰는 연습』의 문장들은 평범한 말들이지만 반복될수록 자신의 확신을 갉아먹는 말들이다. 이 훈육의 말들을 수 차례 적어 내리는 동안 '간혹 바른쪽이 오른쪽인가, 오른쪽이 어느 쪽인가 확신이 들지 않'는 것 같이 기시감이 들었다.
연습이라고 칭한 제목처럼 이것은 불확실한 삶을 위한 연습이다. 확신에 찬 목소리를 일시에 획득하기보다는, 희미하고 투명한 목소리들을 겹치고 나열하면서 그것들이 선명해지기를 기다렸다. ■ 강지윤
Vol.20191122d | 강지윤展 / KANGJIYUN / 姜知潤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