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Korean Video Art from 1970s to 1990s: Time Image Apparatus展   2019_1128 ▶︎ 2020_0531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구림_박현기_곽덕준_육근병_이원곤_김영진 함양아_김수자_문경원_전준호 등 60여 명

관람료 / 2,000원 만24세 이하 또는 만65세 이상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토요일,문화가 있는 날(마지막주 수요일)_10:00am~09:00pm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막계동 산58-4번지) 3, 4, 5, 6전시실 Tel. +82.(0)2.2188.6000 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를 2019년 11월 28일부터 2020년 5월 3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전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 30여 년을 조망하는 기획전이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전시는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비디오 아트에서 시작하여 1980~1990년대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 그리고 영상 이미지와 서사에 주목한 1990년대 후반 싱글채널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세대별 특성과 변화를 조명한다.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한국 비디오 아트 30년의 맥락을 재구성하고 한국 비디오 아트의 독자성을 탐색한다. ● 비디오 아트는 실험과 새로움, 대안의 의미를 가지며 1970년대에 한국미술계에 등장하였다. 이후 비디오 아트는 당대 현대미술의 지형 변화 뿐 아니라 TV, VCR, 비디오 카메라, 컴퓨터 등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모해 왔다. 이번 전시는 미술 내·외부의 환경 및 매체의 변화 속에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 전시는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미술''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비디오 조각/비디오 키네틱''신체/퍼포먼스/비디오''사회, 서사, 비디오''대중 소비문화와 비디오 아트''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 등 7개 주제로 구성된다. 기술과 영상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변모, 진화했던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시대'와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을 씨줄 날줄 삼아 다각도로 해석한다. ● 첫 번째로'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미술'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1970년대 한국 비디오 아트의 태동기를 살펴본다. 국내에서 비디오 아트는 김구림, 박현기, 김영진, 이강소 등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는 퍼포먼스,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특히 박현기는 돌과 (모니터 속) 돌을 쌓은 '비디오 돌탑'시리즈로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하며 한국 비디오 아트를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는 모니터를 활용한 박현기의 초기작 「무제」(1979)를 비롯해, 실험미술의 선구자 김구림의 「걸레」(1974/2001)와 초기 필름 작품 「1/24초의 의미」(1969), 그리고 곽덕준, 김순기 등의 초기 비디오 작품들을 선보인다. ● 두 번째 '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에서는 기술과 뉴미디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탈 평면, 탈 장르, 탈 모더니즘이 한국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였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중반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경향을 살펴본다. 이 시기에는 조각이나 설치에 영상이 개입되는 '장치적' 성격의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탈 평면을 표방하며 혼합매체와 설치, 오브제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당시 소그룹 미술운동의 작품 경향과도 연계성을 가진다. 소그룹 미술운동 가운데 '타라'(1981~1990)의 육근병, '로고스와 파토스'(1986~1999)의 이원곤, 김덕년 등은 1980년대 말부터 비디오 매체를 통해 가상과 실재의 관계를 실험했다. 또한 1990년대 초에는 미술과 과학의 결합을 표방한 예술가 그룹이 결성되었고 이에 관한 다수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소통 매체로서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이번 전시를 위해 재제작된 육근병의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1988), 송주한·최은경의 「매직 비주얼 터널」(1993) 등을 만날 수 있다. ● '비디오 조각'은 영상 편집 기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이전인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또한 이 시기에는 조각의 물리적 움직임과 영상을 결합한 비디오 키네틱 조각도 등장한다. 세 번째 '비디오 조각/비디오 키네틱'에서는 영상을 독립적으로 다루거나 영상 내러티브가 강조되는 싱글채널 비디오보다는 조각 및 설치와 함께 영상의 매체적 특성을 활용한 비디오 조각/비디오 설치에 주목한다. 영상의 내용을 다층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서 조각의 '움직임'에 주목한 문주, 안수진, 김형기, 올리버 그림, 나준기 등의 비디오 조각을 비롯하여 기억, 문명에 대한 비판, 인간의 숙명 등 보다 관념적이고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었던 육태진, 김해민, 김영진, 조승호, 나경자 등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 네 번째 '신체/퍼포먼스/비디오'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 성, 정체성, 여성주의 담론의 등장과 함께 신체 미술과 퍼포먼스에 기반을 두고 전개된 비디오 퍼포먼스를 살펴본다. 오상길, 이윰, 장지희, 장지아, 구자영, 김승영 등의 신체/퍼포먼스 기반 영상 작품은 비디오 매체의 자기 반영적 특성을 이용하여 예술가의 몸을 행위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다룬다. ● 다섯 번째 '사회, 서사, 비디오'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 세계화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국내 및 국제적 쟁점과 역사적 현실을 다룬 비디오 작품을 살펴본다. 이주, 유목을 작가의 경험, 기억과 연동한 퍼포먼스 비디오를 선보인 김수자, IMF 외환위기를 다룬 이용백, 아시아를 여행하며 노란색을 착장한 사람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상의 함경아,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오경화, 육근병, 심철웅, 노재운, 서동화, 김범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 여섯 번째 '대중소비문화와 비디오 아트'에서는 1990년대 정보통신매체와 영상매체의 확산 속에서 대중문화와 기술이 결합된 작품들을 선보인다. 노래방을 제작·설치한 이불과 광고, 애니메이션, 홈쇼핑 등 소비와 문화적 쟁점을 다룬 김태은, 김지현, 이이남, 심철웅 등의 비디오 작품을 볼 수 있다. ● 일곱 번째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에서는 시간의 왜곡과 변형, 파편적이고 분절적 영상 편집, 소리와 영상의 교차충돌 등 비디오 매체가 가진 장치적 특성을 온전히 활용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을 살펴본다. 영상매체 특유의 기법에 충실하며 제작된 싱글채널 비디오는, 시선의 파편적 전개, 시간의 비연속적 흐름, 시공간의 중첩과 교차 등을 구현하는 멀티채널 비디오로 전개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김세진, 박화영, 함양아, 서현석, 박혜성, 유비호, 한계륜, 문경원, 전준호 등의 초기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을 볼 수 있다.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태동과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향후 그 독자성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한 초석"이라며, "국내 비디오 아트 담론과 비평, 창작에 유의미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일반인 전화문의: 02-2188-600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대표번호)

1.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미술 ● 한국의 비디오 아트는 1970년대 김구림, 박현기, 김영진, 이강소 등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으로, 당시 실험미술가들은 비디오의 반영성, 시간성, 비물질성과 같은 매체적 특성을 활용해 개념, 언어, 시간성, 행위, 과정 등을 탐구했다. 비디오 카메라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1970년대, 대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는 당시 예술가들이 퍼포먼스, 비디오, 필름, 설치, 프로세스 아트 등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었던 장으로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특히 1978년 제4회 『대구현대미술제』의 'VIDEO 20191123g FILM' 부문에 참가한 이강소, 김영진, 이현재, 최병소, 박현기 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물의 모습과 신체의 반복적인 행위를 영상으로 기록하며 '시간성'과 '신체'를 중심으로 비디오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1977년 이후 김덕년과 장화진 역시 '영상'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그보다 이른 시기 해외에서 활동한 곽덕준, 김순기의 영상 작업도 주목할만하다. 한편 한국에서 비디오 아트의 본격적인 전개는 박현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돌과 모니터를 중첩시키는 등, 자연물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과 실제 자연물을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실재와 환영, 실재와 재현의 문제에 주목하며 한국 비디오 아트를 이끌었다.

김구림_걸레_1974/2001_DVD(VHS Copy)_00:02:08_ 제2회 국제 임팩트 아트 비디오 아트 74' (스위스 로잔) 출품작_1974_작가 소장

김구림(1936–)은 경북 상주 출생으로, 실험미술의 선두자로서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존 가치와 관습에 대한 부정의 정신을 견지한 그는 회화와 판화, 조각, 설치미술을 비롯하여, 퍼포먼스, 대지미술, 비디오 아트에 이르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지속해왔다. 「걸레」는 1974년 10월 스위스 로잔의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서 개최된 『임팩트 아트, 비디오 아트 74』전 출품작이다. 걸레를 책상으로 닦는 행위의 과정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영상이다. 걸레질을 함에 따라 걸레는 점점 더 더러워지고 급기야 까맣게 되어 조각조각 흩어지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1970년대 초 「현상에서 흔적으로」 시리즈에서 시간 속에 변화하는 자연의 흔적을 작품으로 제시하였듯이, 예술작품의 물성 대신 개념, 시간성, 과정, 행위 등의 비물질성을 예술로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초기 비디오 작품 중 대표작이다. ● 김구림은 1969년에 「1/24초의 의미」를 16mm 필름으로 제작했다. 1초에 24컷이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1/24초의 의미'는 흑백과 컬러가 혼재되어 있고, 달리는 차 안에서 본 삼일 고가도로, 세운상가, 고층빌딩, 육교, 옥외 광고판, 방직 공장 등 당시 근대화된 서울의 모습을 빠르게 편집하여 담고 있다.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한 도시인의 권태로운 일상의 장면들(하품, 흡연 등)이 영상 중간 중간 등장한다. 속도감과 소외라는 도시화의 양가성은 매우 빠르게 혹은 느리게 전개되는 영상의 불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인 편집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싱글채널 비디오로 전환된 비디오 영상을 선보인다.

박현기_무제_돌(14개)_모니터(1대)_120×260×260cm_1979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현기(1942-2000)는 1970년대 비디오 아트를 시작한 후 1990년대 후반까지 비디오 매체를 기반으로 퍼포먼스, 설치, 오브제 등을 넘나들었던 한국의 1세대 비디오 작가이다.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45년 광복 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1961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1964년 건축학과로 전과하여 졸업했다. 작가가 생업으로 삼은 건축 인테리어 사업은 그가 비디오 아트에 몰두하게 해준 기반이 되었다. 1974년부터 『대구현대미술제』에 참가하며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등 당시에는 매우 실험적인 작업을 이어갔으며 1978년 제 4회 『대구현대미술제』에서 물에 비친 조명 기구를 촬영한 첫 비디오 작품 「무제」를 발표하였다. 1974년 대구 미국문화원 도서관에서 김영진과 함께 백남준의 「글로벌 그루브」(1973)를 본 후 비디오 영상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발견하였고, 1970년대 말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비디오 기술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였다. 1979년에는 「물기울기」, 「무제(일명 TV 돌탑)」등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가하였고, 1980년에도 역시 「무제(일명 TV 돌탑)」으로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무제」(1979)는 돌 사이에 돌의 영상을 담은 모니터를 쌓아올린 대표작이다. 실재하는 돌과 돌의 허상(영상)을 중첩시킨 이러한 형상은 이후 박현기의 비디오 돌탑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박현기는 피난길에 사람들이 돌을 주워 탑을 쌓고 거기에 소망을 비는 행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상한 바 있다. 작가에게 돌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염원과 소망을 투사할 수 있는 문화인류학적 사물이다. 작가는 실재 돌과 돌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무엇이 돌의 실재인지, 모니터 속의 돌이 허상이라면 실재의 돌은 과연 무엇인지, 실재와 가상, 실상과 허상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2. 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 장르의 혼성, 새로운 매체의 도입, 테크놀로지와 뉴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중반 한국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지형 변화 속에서 한국의 비디오 아트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비디오 아트는 영상 이미지가 강조되는 싱글채널 비디오보다는 조각과 설치에 영상이 개입된 '장치적' 성격의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탈 평면, 탈 장르를 표방한 소그룹 미술운동의 작품 경향과도 연결된다. 타라(1981~1990), 메타복스(1985~1989), 난지도(1985~1988), 로고스와 파토스(1986~1999) 등을 비롯하여 뮤지엄(1987~1988), 황금사과(1989~1990) 등이 주도한 소그룹 미술운동은 혼합 매체와 설치, 오브제, 테크놀로지를 통해 신화, 역사, 문화적 의미를 드러내며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탈 평면과 탈 모더니즘의 논리 속에서 '타라'의 육근병, '로고스 파토스'의 이원곤, 김덕년 등은 1980년대 말부터 비디오 매체를 통해 가상과 실재의 관계를 실험하였고, 김해민은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장르 혼성의 문맥에서 무용과 영상을 결합한 초기적 비디오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특히 1984년 한국에 소개된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소통 매체로서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 한편, 1990년대 초 한국 비디오 아트는 컴퓨터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등과 함께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학적 장르로 부상하였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 증가 및 과학기술진흥정책 등과 맞물려 비디오 아트는 새로운 시대의 자유로운 감수성을 표현하는 매체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비디오 아트는 테크놀로지의 문맥에서 논의되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 속에서 한층 더 담론을 확장 시켜 나갔다. 이러한 배경하에 1991년 미술과 과학의 결합을 표방한 예술가 그룹인 '아트 테크' 그룹이 결성되었고, 「미술과 테크놀로지」(1991), 「과학+예술」(1992), 「인간과 기계: 테크놀로지 아트」(1995) 등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는 다수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육근병_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_혼합매체_갤러리 도올_1988/2019_작가 소장

육근병(1957- )은 1980년대 후반 이후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비디오 작가로, 영상과 조각, 설치,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1980년대에는 탈 회화, 탈 평면, 탈 모더니즘을 내세웠던 소그룹 '타라'에 참여한 바 있으며, 1992년에는 비디오 설치 작품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 ="랑데뷰"」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카셀 도큐멘타에 참가하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비디오 설치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은 1988년 갤러리 도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봉분 형상의 비디오 설치 작품을 2019년에 재제작한 것이다. 첫 개인전 이후 이 작품은 198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1992년 카셀 도큐멘타 9에 출품되어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된다. 봉분 속 '눈' 모티브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육근병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무덤에 박힌 눈은 육신이 사라진 영적 존재,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는 영적 심성을 상징한다. 육근병의 '눈'은 세상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눈이라기보다는, 나와 타자가 서로 교감하는 상호 소통의 창구이자, 과거와 역사를 응시하는 사유의 매개이며, 또한 삶과 죽음, 동과 서, 음과 양 등 모든 이분법적인 것들을 연결하는 매개이다. 그는 모든 대립되는 것을 와해하고 연결하는 '눈',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로서의 '눈'의 의미를 비디오 영상을 통해 형상화하였다.

백남준_굿모닝 미스터 오웰_비디오_00:38:00_1984_미국 영상자료원 소장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1984년 1월 1일 전 세계에 생방송된 백남준의 텔레비전 위성 지구촌 쇼를 영상으로 편집한 작품이다. 백남준은 1984년 첫날, 위성을 이용하여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프랑스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 예술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위성 TV쇼를 기획하였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1949)에서 감시와 통제장치로서 텔레비전의 비관적 전망을 제시한 것에 반해, 매스 미디어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이다. 이 쇼를 위해 로리 앤더슨, 피터 가브리엘,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사포, 요셉 보이스, 샬롯 무어만, 앨런 긴즈버그 등 100여 명의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대중음악, 사운드 퍼포먼스, 미술, 패션쇼 등 대중문화와 아방가르드 예술이 넘나들고 텔레비전 영상이 콜라주 되는 가운데 글로벌 미디어로서의 텔레비전의 가능성을 일깨운 초국가적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이 쇼는 뉴욕, 파리, 베를린, 서울 4개 도시에서 방송되었는데, 당시 KBS에서 방송되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본 한국의 예술가들은 상호소통 매개체로서 비디오 매체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송주한/최은경_매직 비주얼 터널_디지털 영상, 거울, 라이트 박스, 팬시 라이트 등 설치_ 각 00:06:04_1993/2019_작가 소장

1990년대 초 한국 비디오 아트는 컴퓨터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홀로그램 등과 함께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새로운 예술장르로 떠올랐다. 1991년 미술과 과학의 결합을 표방한 예술가 그룹인 '아트 테크' 그룹이 결성되었는데, 송주한과 최은경 역시 이 그룹의 일원이었다. 두 작가의 공동작업 「매직 비주얼 터널」은 1993년 『엑스포 테크노아트』전에 선보인 대표적인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공간 전체를 거울로 감싸고 총 10대의 TV 모니터와 프로젝터를 공간에 투사하여 거울반사효과에 의한 가상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작가는 1990년대 한국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컴퓨터의 가상 세계, 온라인상의 가상 실재를 「매직 비주얼 터널」이라는 공감각적인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3. 비디오 조각/비디오 키네틱 ● 탈 평면, 탈 장르, 혼합매체,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 속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비디오 조각은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진다. 여러 개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오브제처럼 쌓거나 중첩시키는 비디오 조각은 영상 편집 기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이전인 1990년대 중·후반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향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비디오 조각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는데, 조각의 물리적 움직임과 영상의 무빙 이미지를 결합 한 키네틱 비디오 조각이 바로 그것이다. 비디오 조각의 움직임은 단지 테크놀로지 효과로서가 아닌 비디오의 내용을 중층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의미 있는 장치'로서 작동하였는데, 문주, 안수진, 김형기, 올리버 그림, 나준기 등의 영상 설치 작품에서 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 한편 1990년대를 지나며 한국의 비디오 조각/비디오 설치는 김영진, 육태진, 김해민, 김창겸, 조승호, 나경자 등의 작품에서처럼 새로운 감각의 테크놀로지 실험을 넘어 기억, 고고학적 탐구, 문질문명에 대한 비판, 인간의 숙명, 정신병리학적 의미 등 인간 삶의 보다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였다.

김영진_액체-투명한 상실의 그림자_고안된 영상장비, 슬라이드 프로젝터, 물방울 공급 장치, 타이머_1995 작가 소장

김영진(1961~)의 「액체-투명한 상실의 그림자」(이하 「액체」)에서 흐르는 물의 영상 이미지는 작가가 고안한 특수 프로젝터, 폐쇄회로 카메라, 물 펌프 등의 기계장치를 통과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액체」는 물이 흐르는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라는 전자신호로 기록하여 재생한 영상(映像)이라기보다는, 물의 흐름 그대로를 특수한 장치를 통해 확대하여 보여준 로우 테크놀로지 기반의 아날로그 영상(影像)이다. 여기서 물의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image)'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존성을 나타낸다. 1995년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세면대 물을 붉게 물들이는 코 점막의 출혈, 오한으로 온몸을 적셨던 차가운 습기, 이마 한편을 타고 흐르는 무거운 땀, 온몸을 감쌌던 양수, 너의 눈에 고인 눈물" 등이 그것이다. 이는 김영진의 액체를 생명의 원형질, 모태, 체액, 양수, 여성성과 관련하여 해석하는 근거가 된다. 그의 액체는 우리의 신체성과 맞닿아 있으며, 액체라는 물질성과 가변성은 비디오 영상의 기본적인 특성과도 연관된다.

문주_시간의 바다_키네틱 및 비디오 영상 설치, 10대의 모니터, 스테인리스 프레임, 무빙 시스템 10개, 동작감지센서 등_240×350×50cm_1999/2019_작가 소장

문주(1961~)는 1986년 이후 소그룹 '로고스와 파토스' 에 참여하며 입체와 공간 설치의 방식으로 탈 평면의 논리를 전개시켜 나갔으며, 1990년대 초부터는 모터와 센서 등 기계장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비디오 설치 작품을 발표하였다. 「시간의 바다」는 10대의 모니터로 구성된 작가의 대표적인 비디오 키네틱 작품이다. 10대의 모니터에는 작가가 제주도와 서해, 동해 등에서 촬영한 10개의 바다 영상이 각각 담겨있다. 모니터는 특수한 구동장치에 의해 파도치듯 움직이다가 10개의 영상이 동일한 수평선을 만드는 순간 멈춘다. 이때 10개의 바다 이미지는 거대한 하나의 바다 이미지로 동기화되면서 서로 다른 시공간이 중첩된다.

조승호_분석_4채널 비디오_00:05:00_1995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조승호(1959~)의 1990년대 대표적인 영상 설치 작품인 「분석」은 1994년에서 1995년 상반기까지 제작된 세 점의 영상 시리즈 「분석(ANALYSIS)」, 「호흡(RESPIRATION)」, 「보존(PRESERVED)」 중 하나이다. 디지털 편집을 통해 완성한 최초의 영상 작품으로, 1995년 미국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Anthology Film Archives)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 전시를 계기로 조승호는 1996년 뉴욕 링컨 센터 갤러리, 1997년 뉴욕 MoMA 전시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후 국제적인 비디오 작가로 부상한다. 조승호의 비디오 영상은 자연환경과 일상 사물을 미시적인 혹은 낯선 시각으로 들여다보면서 예기치 않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특히 사운드는 그의 영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4채널 비디오 영상 설치작품 「분석」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수직적으로 배치된 4대의 모니터로 구성된 작품은 자연의 이미지(성냥불의 불타오르는 이미지, 흐르는 물의 이미지)와 인공적인 사물의 움직임(저울 혹은 사운드 계기판의 움직임) 등이 서로 조응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4개의 영상은 빠른 속도 혹은 느린 속도로 재생되며 성냥불이 켜지는 소리에서 시작한다. 성냥불을 켜는 행위는 예기치 않은 시각적 청각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시각적 청각적 변화는 오디오 및 비디오 신호, 즉 저울 혹은 사운드 계기판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와는 구별되는 최상단에 위치한 '분석할 수 없는' 자연의 이미지들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분석된 채널들과 함께 조응하면서 사유의 공간을 제시한다. 성냥불을 켜는 하나의 "행위"가 차이와 반복을 통해 만들어내는 이미지/소리 풍경, 그리고 그것이 드러내는 "시간"의 흔적이 이 작품의 내용을 구성한다.

육태진_유령상자_모니터 2대, VCR, 고가구_65×85×56cm_1995_대전시립미술관 소장

육태진(1961-2008)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고가구 등의 오브제와 반복적인 행위를 담은 영상을 결합하여 독자적인 영역의 비디오 조각을 전개 시켜 나갔다. 오래된 가구를 소재로 한 「유령상자」는 두 개의 서랍이 모터에 의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것을 반복하는데, 서랍 속에 설치된 비디오 영상은 등을 보이며 끊임없이 계단을 오르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육태진의 1990년대 비디오 작품의 특징은 걸어가거나, 숨을 쉬거나, 자전거 페달을 밟는 등 인간의 반복적인 행위를 기계장치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드러낸다는 점이다. 작가에게 있어 기계적 움직임은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테크놀로지 효과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도 말한 '마술 같은 것, 유령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특별한 장치이다. 닫히고 열림을 반복하는 두 개의 서랍, 그리고 끊임없이 계단을 올라가는 한 남자의 모습은 시지프스와 같이 영겁의 시간 동안 어딘가를 올라야만 하는 인간,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암시한다.

4. 신체/퍼포먼스/비디오 ● 신체 담론은 성, 정체성, 여성주의 담론과 함께 1990년대 중·후반 한국미술계의 주요한 화두로 등장하였다. 이 시기 신체 미술과 퍼포먼스에 기반을 둔 비디오 퍼포먼스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거울과도 같은 비디오 매체의 자기 반영적 특성을 이용하여 예술가의 몸이 행위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비디오 영상이 대표적이다. 이때 신체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촬영하거나 느리게 편집하여 보여주는 비디오 퍼포먼스는 비디오의 시간성과 몸의 물질성을 부각시켰다. 또한 교차되고 편집된 비디오적 시간 속에서 익숙한 신체 이미지는 낯설게 변형되었고, 비디오 영상으로 재구성된 신체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의 논리성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지각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한편 절단된 신체, 고통받는 신체, 그로테스크 바디 등 이질적인 몸을 보여주는 비디오 영상은 불안정한 인간 주체를 드러내면서 신체와 인간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상길, 이윰, 김두진, 공성훈, 장지희, 장지아, 구자영, 김승영, 윤애영의 신체/퍼포먼스 기반의 비디오 영상작품을 통해 한국 비디오 퍼포먼스의 일면을 감상할 수 있다.

오상길_제 살 핥기_단채널 비디오, 무음_00:04:07_1999_작가 소장

오상길(1957~)은 1985년 그룹 '메타복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오브제와 설치 위주의 작업을 선보였고, 1993년 이후에는 비디오 영상 작업을 전개시켜 나간다. 1996-1997년 뉴욕 P.S.1 미술관의 국제 스튜디오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면서 제작한 「무제」(1997), 「침뱉기」(1997), 「맥도날드와 말보로 라이츠」(1997), 「맨하탄의 연인들」(1997) 등 초기 영상 작품들은 '비천한 신체', '그로테스크 바디' 등 90년대 후반 과격한 신체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99년에 제작한 「제 살 찢기」와 「제 살 핥기」는 작가 본인의 신체에 상처를 내거나 혹은 몸의 일부를 핥는 모습을 매우 느린 속도로 담아낸 영상작품이다. 다소 역겹고 고통스러운 행위를 매우 느리게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비디오 아트의 고유한 '시간성'을 관객이 극적으로 경험하게 만들었다. 특히 얼굴은 보이지 않고 신체의 일부만이 거대하게 투사된 절단된 신체 앞에서 관객은 당혹감을 느끼고 동시에 그 몸이 자신의 몸인 듯한 심리적 경험을 하게 된다.

김두진_잔인한 장식장_10개의 접시, 비디오 프로젝터, 가공된 장식장_1998_작가 소장

김두진(1973~)은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대중문화, 독자적인 특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하위문화에서 상투적인 이미지를 작업에 가져오고, 미술사 속 명작을 차용하는가 하면, 성(姓) 정체성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는 김두진은 기존 가치판단과 사고체계 내 고착화된 시선과 태도에 물음을 던진다. 이번 전시에는 김두진이 1998년 제작한 「잔인한 장식장」이라는 영상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잔인한 장식장」은 장식장 속에 자리해있는 여러 개의 접시 표면에 분절된 신체를 영상으로 투사한 작업이다. 작품 속에 보이는 신체들은 파편화되어 있어 사회로부터 그것이 부여받은 역할, 위계와 같은 지표를 상실하고 있다. 물리적인 '신체', 생물학적 '성' 등은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지는 조건이기에 개인의 원천적 본질로 여겨지기 쉽다.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신체를 분절하고 파편화하여 그것에 부여된 사회적 의미를 제거하고, 제한적 시선과 판단 구도에 제동을 건다. 접시 위 파편과 같이 놓인 육체를 장식장에 진열하는 이 작업은 대중 미디어에서 소비되고 수단으로 전락한 '성', '신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근본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된 온전한 신체의 개별자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한다.

이윰_노란 깃털_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_00:04:31_1998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윰(1971~)은 살아있는 조각으로서 자신의 몸을 활용하여 퍼포먼스, 설치, 사진, 영상 등 여러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작품에 따라 작가는 신화 속 인물이 되기도 하고, 영매가 되기도 하는 등 자신의 신체에 입혀진 또 다른 자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사진작가, 음악감독, CF 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광고 영상 같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전시되는 「노란 깃털」은 1998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던 이미지 시어터 공연 「바디 드로잉」을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안무가 김효진, 음악가 김동섭과 함께한 퍼포먼스, 영상, 무용, 음악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형태의 공연에서 「노란 깃털」은 무대미술이자, 영상작품으로 선보였다. 영상 속에서 작가 본인은 깃털을 들고 춤을 추고 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여성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작가의 내면 속 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당시 그는 다소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를 강하게 무장하고 지냈다고 했다.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내면의 다양한 모습들,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끄집어낸 작가는 이를 "스스로 행복하게 만드는 색"이라 한 노란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5. 사회, 서사, 비디오 ● 1990년대 우리나라는 대내외적 시대변동의 계기들로 인해 사회적으로 전환적 분위기가 고조된 시기였다. 대외적으로 베를린 장벽의 붕괴, 구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 붕괴 등에 의한 냉전 종식은 남북문제를 국가적 미결과제로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대내적으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숙, 경제 호황과 위기의 반복, 정보통신 매체의 확산 등으로 급격한 변화가 추동되었다. 그런가 하면 정보통신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정보와 자원의 전 지구적 유동, 공유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확산과 맞물리며 우리 또한 글로벌리즘의 자장 속으로 유입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세계 질서는 경제 논리를 통해 재편되고 있었다. 글로벌리즘은 다원적 관계망, 전 지구적 상호 교류를 가능케 했지만 그에 따른 또 다른 차원의 동질화라는 심각한 폐해를 남겼고, 이는 지속적으로 문제해결을 모색하게 했다. 세계성과 지역성이 강하게 교차 충돌한 우리 사회는 새로움과 변화만큼이나 자체 내 특수한 지정학적, 역사적 현실을 환기해야 했다. 당시 비디오 작가들은 장치로서의 비디오 매체가 가진 시간성,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시대의 쟁점들을 소재로 삼았다. 이주, 유목을 개인의 경험, 기억과 연동하여 작업한 퍼포먼스 비디오를 선보였던 김수자,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다룬 이용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노란색을 착장한 사람을 쫓아다니며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비디오 작업의 함경아,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 속 서사를 각기 독자적인 시선과 감각으로 풀어낸 오경화, 육근병, 심철웅, 노재운, 서동화, 김범 등의 비디오 작업을 선보인다.

오경화_하늘 땅 사람들_TV 16대, 비디오 컴퓨터 그래픽, 컬러, 사운드_00:27:04_1990_작가 소장

오경화(1960~)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활용하여 독자적인 영상작업을 전개했다. 1988년 바탕골미술관 야외 공간에서 열렸던 작가의 개인전 『비디오 통일굿』의 경우, 29대의 비디오를 쌓아 마치 서낭당과 같은 설치구조를 만들고 그 앞에서 무녀가 직접 굿을 하는 대규모 비디오 퍼포먼스였다. 통일이라는 우리의 보편 특수한 주제와 비디오 야외설치 형식의 퍼포먼스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인식하는 현실과 그 모순된 구조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후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 기록영상 작업과 텔레비전 광고,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 대중매체 속에 나오는 이미지들을 차용한 작업 등을 전개해 나갔다.

김수자_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_ 11일 간의 여정으로부터의 단채널 퍼포먼스 비디오, 무음_00:07:03_1997_작가 소장

김수자(1957~)는 다채로운 색상을 가진 크고 작은 천 보따리를 트럭에 잔뜩 싣고 이동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1990년대 이주, 유목의 쟁점을 자신의 기억과 경험과 이어 풀어낸 작가로 세계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은 작가이다. 작가는 천, 이불, 낡은 옷, 그리고 바느질 행위를 작업의 원천으로 삼아 작업 초기부터 줄곧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그 자신의 이동, 여행이라는 행위와 그에 따른 심리적 태도를 자신의 퍼포먼스, 비디오작업에 담아냈다. 이동을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살아온 작가는 인간의 조건과 본질적인 존재의 문제, 자아와 타자, 인간과 물질의 관계 등을 지속적으로 탐구했다. 이번 전시에는 「바느질하여 걷기-경주」(1994)와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1997) 2점의 퍼포먼스 비디오를 선보인다. 「바느질하여 걷기-경주」(1994)는 경주의 옥산서원에서 행했던 설치와 퍼포먼스를 담은 단채널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로, 작가의 첫 비디오 작업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한 설명에서 "바느질과 보따리, 일상적인 걷는 행위, 그리고 비디오 스크린과 카메라렌즈의 프레임을 통해 사물과 세계를 감싸서 보일 수 있는 랩핑행위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비디오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는데, 말하자면 작가의 당시 비디오 작업은 바느질과 보따리 싸기의 확장이었던 것이다.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1997)은 단채널 퍼포먼스 비디오인데, 1990년대 초 작가 작업의 근간이 되는 보따리 작업의 연장선에서 나왔고 작가 개인과 가족, 또 집단적 노마디즘과 이주의 문제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작가의 영감이 되고 있는 작업 중 하나이다. 이 작업은 그 시작에서 작가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11일 동안 작가가 태어나고 살며 떠났던 마을과 도시, 그리고 산천을 찾아 나선 과거로의 여정임과 동시에, 현존의 지표 위에서 미래를 향해가는 일종의 시공간을 드로잉하는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 혹은 일종의 순례와도 같은 바느질–드로잉–퍼포먼스(Sewing–Drawing–Performance) 작업이면서, 카메라 렌즈와 비디오 스크린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보따리 작업이다.

김범_꽃_1999_2채널 비디오, 9개 모니터, 무음, 루프_01:00:34, 01:16:42(반복재생)_매일유업 소장

김범(1963~)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를 기반으로 한국 개념미술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작가이다. 김범은 1990년대 다양한 미술실천을 통해 인식, 지시, 지각과 환영, 이미지와 언어의 문제를 풀어냈다. 사물과 이미지 사이의 상관관계, 그 이질적 접촉 등에 관심을 갖고 고착화된 시선이나 태도를 재고하게 하며, 당연시되는 일상에 관한 의문제기와 기존 인식 구도에 대한 의심을 촉구한다. 「꽃」(1999)에서 작가는 마치 만다라(Mandala)의 도상처럼 실제 시공간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하여 비물리적 시간으로의 이동을 상징하는 형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2개의 영상을 9개의 모니터에 나눠 설치했는데, 중앙에 있는 모니터는 삼각자, 각도기 등 물리적 측정기구가 만화경 속에서 회전하는 모습이다. 중앙 모니터를 감싼 8개의 모니터는 서울에서 춘전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연속적으로 촬영한 창밖 풍경이다.

6. 대중소비문화와 비디오 아트 ● 1990년대 대중문화, 소비문화는 우리 사회와의 상관관계 뿐 아니라 소위 순수문화예술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성장한 대중문화예술은 광범위한 문화산업에서 매니악한 취향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전개되었으며 순수미술과 대중예술 사이의 혼종, 협업 등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1990년대 정보통신매체의 혁신과 그 확산은 당시 대중소비문화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소비문화는 정보통신매체와 함께 "영상매체의 확산과 결합된" 문화라 할 수 있다. 다채널 시대를 연 케이블 TV는 음악, 영화, 미디어 채널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선보였다. 개인용 컴퓨터(PC)와 윈도우 운영 체제가 보편화되고 1998년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 서비스가 상용화 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영상 매체와 영상 환경은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상업광고,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상업영화 등은 당시 비디오 작가들에게 영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대중문화의 감수성은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견인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테크놀로지와 엔터테인먼트의 절묘한 조합인 노래방을 제작, 설치한 작가 이불, 광고, 애니메이션, 홈쇼핑 등을 끌어들여 제작한 김태은, 김지현, 이이남, 심철웅 등의 비디오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불_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II_스테인레스 골조 위에 폴리카보네이트 패널, 벨벳, 전자 기기_214×124×184cm_1999/2000_아라리오컬렉션

이불(1964~)은 사회적인 성역할에서부터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이상주의의 실패에 대한 인식 등 광대한 범위의 주제를 다루는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전개해왔으며, 최근의 감각을 압도적인 대규모 설치 작업을 통해 미래를 조망하는 서사와 진보의 개념이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데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Ⅱ」(1999)은 1990년대 전 세계를 강타한 노래방 시스템을 차용한 작품으로 영상, 사운드, 텍스트, 조각적 설치를 모두 포함한다. 테크놀로지와 엔터테인먼트의 환상적 조합이라 할 수 있는 노래방을 작업으로 끌고 들어온 작가는 그가 경험한 대중문화 감각을 구현해냈다. 작가의 노래방은 일인용으로 청중은 그 안에 들어가 가사를 음미하며 온전히 홀로 있는 상황에 몰두하게 되는 것으로, 공공의 공간(미술관)에서 경험하는 개인적 공간은 대중을 위한 노래를 개인의 사연과 기억으로 받아들이는 상황과 연결되어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노래방 안에서 상영되는 비디오 「아마추어들」은 따뜻한 봄, 숲에서 노는 소녀 6명의 모습을 연출하여 촬영한 것이다.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녀들의 발랄한 모습을 찍은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은 그들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불편함을 청중에게 겪게 한다. 놀이의 불길한 결말에 대한 불안함, 롤리타 콤플렉스의 개입은 카메라의 눈이 청중의 눈과 마주하는 순간 발현된다. 흥미로운 점은 카메라를 조종하는 사람 없이 크레인에 매달린 카메라를 소녀들이 흔듦으로써 화면이 구성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화면 속 소녀들의 실제 움직임을 뒤섞어 복합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7.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 ●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이르러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이 국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비디오 작업은 이전 세대의 특징이기도 한 오브제로서의 비디오 설치 또는 장치로서의 비디오 실험과는 달리, 비디오 매체가 가진 장치적 특성을 온전히 활용했다. 비선형적 내러티브, 시간의 왜곡과 변형, 파편적이고 분절적 영상 편집, 소리와 영상의 교차충돌, 이미지와 텍스트의 비논리적 결합 등 비디오 매체 고유의 어법을 구현했다. 싱글채널 비디오는 시선의 파편적 전개, 시간의 비연속적 흐름, 다층적 내러티브, 그리고 시공간의 중첩과 교차를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차원에서 멀티채널 비디오로 전개되어 나갔다.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가 수용되고 정착하는 과정을 보면, 국내·외 대학과 전문기관에서 영상, 영화, 미디어를 학문적으로 전공하고 이를 충분히 학습, 이해한 작가들이 이 시기 대거 등장하고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당시 우리 사회문화적 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우선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영상매체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서의 TV 상업영상에 대한 대항적 차원과는 달리, 우리는 상업영상, 대중영상매체 등을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의 주요 발화 지대로 볼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 현장을 보면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대규모 비디오/영상 전시들이 다수 개최되었고, 영상과 뉴미디어 전용기관들이 개관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상과 뉴미디어를 대중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가로 김세진, 박화영, 함양아, 서현석, 박혜성, 유비호, 한계륜 등이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 이들의 초기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해외 유학을 통해 영상을 전공했거나 우리 영상문화를 토대로 비디오 아트를 체득하여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 1세대로서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박화영_소리_단채널 비디오, 컬러, 흑백, 사운드_00:15:12_1998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박화영(1968~)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비디오, 영화를 공부했다. 작가는 주관적인 자신의 태도와 시선을 담아내는데 알맞은 경로를 찾기 위해 비선형적 내러티브, 탈장르적 연출, 영상, 설치, 출판 등 다양한 방법과 매체를 활용한다. 「소리」(1998)는 작가가 거주하던 아파트 단지를 1년 정도 떠돌던 강아지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사진, 글, 드로잉, 나래이션과 사운드를 더해 비디오 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각자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단절된 개체 간의 '절대 공감 (ultimate empathy)'를 향한 동경, '개와 '나'라는 개체 간의 상호 유관성, 유대감을 매개로 접근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블러디 모나」(2000)에서 작가는 '모나'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여성에게 부여된 고정관념을 비튼다. 전반적으로 붉은색 화면에 '모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모나는 드레스를 사러 간다' '모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모나는 이민국에 인터뷰를 하러 간다' '모나는 공항에 간다'라는 단편이 비선형적으로 얽혀있다.

김세진_꿈속에서(In Dreams)_단채널 비디오_00:06:02_1999_작가 소장

김세진(1971~)은 이야기 구조를 만들기보다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공감각적인 서사구조를 만든다. 영화가 가진 전형적인 서사구조가 아닌 다른 차원의 서사를 구축하고자 한다. 형식적으로는 영화적 문법과 다큐멘터리의 사실적 기법을 주로 활용한다. 김세진에게 영상은 촬영, 편집, 사운드 등의 작업을 통해 세밀한 감정과 공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데 있어 효과적인 매체이다. 「꿈속에서」(1999) 역시 서사보다 이미지를 탐구한 작업이다. 작가는 현대인의 어긋난 관계들, 심지어 자신과의 의사소통마저 부재한 상황이 암시하는 암울한 현실을 뮤직비디오 형식을 빌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는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되며 유네스코상을 수상했던 「기념사진」(2002)은 역사적인 공간인 광주에 대한 집단적 혹은 개인적 기억의 왜곡과 변형을 다루고 있다. 영상 속에서 예고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듯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복원, 재현함으로써 기념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보았는데, 작가는 기념사진을 찍기 전, 플래시가 터지고 셔터가 눌리기 바로 직전, 작은 긴장의 순간과 기념사진을 찍고 난 후 소란스러운 행위가 잦아드는 시점, 동작을 멈추고 소음이 멀어지는 순간 사이의 일종의 일시정지 상태에 주목한다.

함양아_픽셔너리_단채널 비디오_00:04:30_2002~3_작가 소장

함양아(1968~)는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 1세대이자 한국 비디오 아트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유학 시절 1970년대 대표적인 비디오 작가 피터 캠퍼스의 지도 아래 비디오 매체의 특성을 익히며 본격인 비디오 작업을 시작했다. 함양아는 현실을 작업의 소재로 삼으면서, 영상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고 추상화한다. 함양아는 초기 작업에서 시간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어 왔다. 「치즈」(1996-1997)는 약 2주 동안 치즈가 부패하는 과정을 촬영한 작품이다. 본래 재생속도로 또는 빠르게 압축하여 보여주며 '과정'에 담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2000년대 초 작가는 보다 확장된 차원의 사회라는 구조와 개인의 관계에 주목한다. 「픽셔너리」(2002-2003)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구성원일 수밖에 없는 개인이 직면한 현실과 집단적 환상으로 영상으로 풀어냈다. 영상 속 장면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며 마치 필름이 돌아가는 것과 같은 화면을 보여준다.

유비호_검은 질주_3채널 비디오_00:04:03_2000_작가 소장

유비호(1970~)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담아내는 작가이다. 2000년 보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강철태양』전을 통해 주목받았다. 유비호는 회화적 어법의 확장 차원에서 비디오 매체를 활용했으며 이미지가 구축하는 공간적 구도에 관심을 가졌다. 작가의 초기 다채널 비디오 작품들은 개별 영상들이 부분이 되어 하나의 이미지를 이루는 형태임을 볼 수 있다. 유비호의 초기 대표작 「검은 질주」(2000)는 3개의 채널로 구성되어 있는데, 채널당 3명, 5명, 3명의 인물이 끊임없이 달리고, 거친 숨을 내쉬고, 발을 구르고, 서로 모습을 바꾸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상영된다. 이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모습을 의미한다. 정부나 기업에 의해 개인이 감시되고 통제되는 것을 경계했던 작가는 사회의 감시체계 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을 그려냈다.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및 작가와의 대화 학예사와의 대화: 배명지 / 12.11(수) 작가와의 대화: 박화영 작가 / 12.13(금) 작가와의 대화: 김세진 작가 / 12.18(수) 학예사와의 대화: 김형미 / 2020.2.26(수) 작가와의 대화: 육근병 작가 / 2020.3.18(수) 작가와의 대화: 김해민 작가 / 2020.3.25(수) 작가와의 대화: 신진식 작가 / 2020.4.8(수) 시간 / 15:00-17:00

연계 학술대회 - 행 사 명: 1970년대~1990년대 한국 비디오 아트: 시간 이미지 장치 - 행사일시: 2020. 3~4월 중 예정 - 행사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소강당 -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Vol.20191122h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Korean Video Art from 1970s to 1990s: Time Image Apparatu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