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보는' to be seen, see

진은정展 / JINEUNJEONG / 陳垠靜 / painting   2019_1120 ▶︎ 2019_1125

진은정_Slow slo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391cm_2018

초대일시 / 2019_112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관훈동 188번지) 5층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선(線)에서 선(善)으로 ● 20세기를 관통하여 현재까지 우리의 세계 이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새로운 철학적 각성은 '고정된 진리'의 현전 가능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철학의 대상이 존재(Being) 혹은 동일성(Identity)에 대한 사유에서 생성(Becoming)과 과정(Process)에 대한 사유로 옮겨가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모든 존재의 본성은 '규정할 수 있는 진리'라는 단일한 의미로 묶어 둘 수 없는 것이며, 세계와 존재는 차이와 변화의 장엄한 변주곡이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잠재성과 역동성을 일깨웠던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도 모든 생성과 진화를 가능케 하는 주역을'엘랑비탈(Élan vital: 생명의 도약)'이라고 명명하면서 현대적 철학의 면모를 다졌다. 그가 말하는 엘랑비탈은 현실화하고 있는 총체성이자 나누어지고 있는 총체성으로서, 이 엘랑비탈에 의해 생명은분리와 양분을 거치게 된다. 자연이 동물과 식물로 나누어지고, 동물은 또다시 본능과 지성으로 나누어지듯이, 모든 생명 활동은 분화의 충동과 그 충동의 주체인 생명의 폭발적인 힘에 따라 이루어지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요컨대 베르그송은 긍정, 연장, 진전의 운동 속에서 나타나는 지속이 생명 개념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진은정_시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9×283.2cm_2018

작가 진은정에게 세계는 이러한 현대적 각성이 투영된 곳으로서, "무언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 늘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그의 회화는 분화하는 총체성으로서 수많은 빗금이 빗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형국이다. 물론 위에서 아래로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중력의 절대적 권위도 없고 짐작되는 개연성도 없이 자유 방사되는 선들이다. 작가의 선은 난폭하고 순수하다. 아주 쉽게 아이들의 그림 장난이 연상되면서 선들의 감정은 묵직한 의미들과 결별한다. 한국화 전통에서 본다면, 작가의 그림은 발묵과 퇴묵이 수없이 교차하고, 갈필, 백묘, 몰골, 우점준과 부벽준이 뒤섞인다. 감각의 면에서 볼 때도 복합적이다. 보이는 것은 물론, 촉각적인 마찰감,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귀에 강하게 전달되는 파열음, 혀의 기억을 떠올리는 음식물 등으로 인해 진은정이 제안하는 이미지는 우리의 오감까지 자극하고 있다. 이 풍부한 오감의 동인(動因)들은 '비정형 충동'과 연결되면서 단절과 연결, 휘몰아침과 고요함, 채워진 곳과 빈 곳, 먹과 유화물감, 간결함과 복잡함, 구상과 추상, 미적인 것과 미적이지 않은 것,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들을 간결한 언어의 형태로 통합되고 있다. 주저함이나 인위적 의도 따위는 이미 캔버스 밖으로 던져 버린 지 오래다. 진은정의 회화는 명상을 강요하지도, 재야(在野)의 신비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신의 흔적과 대상성의 파편만이 고스란히 전사(轉寫)될 뿐이다. '완벽'의 개념이 남다르기에 매번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림이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건 필자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진은정_시선_한지에 크레용_69×110cm_2019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미술은 무엇이며, 그린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진은정의 회화는 화면 안에 널려진 가지나 명태가 지닌 극한의 감성일 수도 있고, 오래 묵은 것들에 스며든 연민의 감정일 수도 있고, 비와 바람의 기하학적 흥분 상태일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어릴 적 경험의 강도 높은 회상일 수도 있고, 코에 닿은 비릿한 냄새나 비뚤비뚤 굴곡진 모양새의 지극히 주관적인 버전일 수도 있고, 특정한 가치 판단 없이 모든 것들과 접속하며 증식하는 리좀(Rhizom/질 들뢰즈의 용어)의 모티프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간에 진은정이 그리는 대상은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도)의 지속적이고 광활한 에너지 안에서 생성한 어떤 미적 대상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회화가 고정성을 버리고 탈주하는 방식, 경계를 지우며 자유를 획득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는 작가의 기이한 재현 태도는 세계의 리얼리티를 '비결정'이라는 무한 긍정의 공간으로 옮기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작가가 자주 그림의 모델로 삼는 제사상도 밥상을 받는 '보이지 않는 자'로부터 느껴지는 부재(不在)의 현실적 섬뜩함을 훌쩍 뛰어넘고 있으며, 선들의 과감한 운동도 방종과 파괴의 부정성을 뛰어넘고 있다. 이는 꽤 통쾌한 예술적 사건이며, 꽤 지적인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진은정_Long lo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0×182cm_2019
진은정_Long lo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0×165cm_2018

작가의 회화가 아름다운 형상성을 포기하고 얻은 것은 세계의 또 다른 세계다움이며, '알 수 없는 것으로서의 존재'가 주는 무한한 잠재성이다. 그 맛이 쓸지 달콤할지는 관객의 입맛에 달려 있을 터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의 거칠고 산만한 그림 앞에서 우리의 일상과 정신은 해방의 경험을 얻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의 선(線)은 선(善)해질 수 있는 조건에 충족해 간다. '결정된 것들'의 폭력을 마다하고 차라리 '회화적 폭력'을 선택하여 자신의 비폭력적 동기를 드러내는 작가의 회화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작가가 제안하는 이 독특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우리의 감상 목록에 넣어 긍정해보면 어떨까? 무감각을 깨우는 청량한 선(線)의 도약, 그렇게 진은정의 예술은 나름의 방식으로 현대회화의 올바른 지향(志向)에 다가가고 있으니 말이다. ■ 이재걸

진은정_시선_아크릴패널에 크레용_42×42cm_2019
진은정_시선_아크릴패널에 크레용_42×42cm_2019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안타까운 동물의 사체, 없어야 할 곳에 보이는 사물, 어설프지만 간결함을 선사하는 생명력, 잘차려진 밥상에 지나간 삶의 기록들, 숙성을 위한 긴 기다림의 음식풍경..등 주변에 무수한 장면들이 보이지만 찰나의 순간 우연한 지점에서 보이는 시선에 주목한다.이것은 그 순간이 지나도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가시적 세계와 주관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의 의식과 감성에 자발적 행동을 일으킨다. 이 행위는 명확하지 않은 중첩된 선으로 분할되고 왜곡된 형태들로 한데 뒤섞여 표현되어 심상의 표현을 여러 가지 의미로 확장한다. 이것은 그려진 대상과 나 사이의 '바라보기'이며 이 관계는 반복과 번복의 치열한 모순속에 명확하지 않은 형태로 남는다. ■ 진은정

진은정_Slow slo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0×560cm_2019

From lines to goodness ● Throughout the 20th century, the new philosophical realization that played a critical role in our understanding of the world is when we started doubting a 'fixed truth.' This doubt served as a critical factor that pushed the subject of philsophy from that of being and identity to that of becoming and process. The essence of all beings cannot be defined by a single meaning of 'definable truth'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 world and being came to be seen as a grand variation of change. Henri Bergson (1859-1941) who played a main role in opening up the potential and dynamism in 20th century French philosophy called the key to generation and evolution 'Élan vital'. This is the totality that is realized, and through this life goes through division and categorization. That is, nature is divided into animals and plants. Animals are again divided into instinct and intellect. In the same manner, all biological activities are said to go through the impulse of division and the explosive power of life. Bergson saw the continuity of positivity, extension and progress as key to the concept of life. ● To the artist Eunjeong Jin, the world is where contemporary minds are projected. It is "a place that is not given, but a place that holds events at all times." Her paintings are similar to a scene where rain drops constantly fall along a pane of glass, forming diagonal trails. And it is not just from top to bottom that these lines are formed. The lines are not governed by the absolute power of gravity, nor does it hold any form of plausibility. They are free-flowing lines of the artist, at times violent and at times pure. They are easily reminiscent of drawings made by children, and as such, the emotions they evoke put a distance from serious topics. Seen from the tradition of Korean paintings, Jin's paintings see numerous criss-crossing of dark and light tones of the ink, with a mixture of rough brush touches, dots and techniques known as Molgol, Wujeomjun or Bubyeokjun. The senses the drawings evoke are also complex. Not only are they visible to the eye, but they carry a sense of friction to the touch, a distinct odor, a strong sound of destruction and taste that conjures up memories of certain foods. The images suggested by Jin stimulate our senses. These rich triggers for the senses are linked with irregular forms of impulse to portray a contrast between disconnection and connection, a swirl of torrent and calmness, emptiness and being full, Asian ink and oil paint, simplicity and complexity, abstract and concrete forms, beautiful items and not so beautiful items, and finally Asian items and Western items. Hesitancy or artificial intentions do not belong on her canvas. The works of Jin do not force meditation, nor claims to be something of a mystery. It simply portrays the traces of the mind and pieces of the object. Since the concept of "being perfect" is unique, the paintings may leave some room to be desired, but it also leaves you with great expectation for the artist's next work. ● Seen from this perspective, how can we define art or the act of painting? Jin's paintings can feature extreme emotions through random tree branches or fish. Or it could draw out emotions of empathy through old items. Or it could be a symbol of geometric excitement portrayed by rain and wind. All of these elements can come from intense memories of childhood, or they could be extremely subjective visions, as in the case of an odd odor that happens to hit your nose or a wobbly line. They can be a motif of Rhizom that connects with everything without a particular value judgment. In any case, the objects drawn by Jin are no doubt a certain aesthetic object generated within a consistent and broad energy field. This is all the more so as her paintings break away from the mold to 'run away', blur borders and seek freedom. The reality is placed in an infinitely positive space. The ritual tables in Korea used to commemorate the dead, an object that is frequently used by the artist, is also a symbol of absence but it goes beyond that. The drastic movements of the lines also go beyond the negativity of destruction and recklessness. All of these elements form a breakthrough artistic event and offer great intellectual insight. ● What the artist's painting acquires in exchange for giving up on form is a unique beauty of the world and the infinite potential brought by 'unknown beings'. It is up to the audience to determine whether it will taste sweet or bitter. But what is clear is that when you stand in front of Jin's art work that is often portrayed in a rough and seemingly scattered manner, you feel a sense of freedom from your daily life. That moment is when the artist's line becomes a being of goodness. Jin refuses to be subject to the violence of 'what has already been defined' and opts for 'violence of the painting' to showcase her own non-violent motivation. That in itself, brings benefits to us. What is beauty? How about we include the unique definition of beauty presented to us by this artist in our daily vocabulary? The jolt of lines that waken up our senses set the ultimate direction for contemporary paintings in a unique manner. ■ Jaegul Lee

Vol.20191122i | 진은정展 / JINEUNJEONG / 陳垠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