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배움

김다움_구지윤_이우성_해오展   2019_1111 ▶︎ 2019_112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서울교육대학교 국립대학육성사업단 주관 /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후원 /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기획 / 황윤중 설치 / 최진연 디자인 / 최수빈

관람시간 / 12:00pm~07:00pm

서울교육대학교 샘(SAM) 미술관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96 사향융합체육관 1층 Tel. +82.(0)2.3475.2490

본 전시는 국립대학육성사업 지역사회기여('문화공간으로서의 대학')의 일환으로 지역 주민, 서울교대 구성원, 문화예술계 관계자 및 감상자를 대상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마주침 ●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마주침의 순간들이 있다. 그 마주침은 우리의 영혼을 뒤흔든다. 동시에 마주침이 낳은 그 특별한 느낌은 우리를 압박한다. 어째서 이 대상과의 마주침이 내게 이토록 특별한 감정을 일으키는지 그 이유를 찾도록. 하지만 그 이유를 바로 깨닫기는 어렵다. 모종의 배움의 시간을 거치고 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 우리가 마주치는 대상은 그러므로 하나의 기호다. 그 의미를 해석하고 해독해내야 하는. 사유는 이렇게 마주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마주침을 통한 사유의 운동, 배움의 운동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깊이 접촉하게 된다. 평소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무의식적 감수성과 심리 상태, 욕망, 상상력, 기억 등 우리 안에 심연처럼 숨겨져 있던 세계와.1) ● 예술가들에게도 이처럼 중요한 마주침의 대상(기호)들이 있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마다 자신의 영혼을 뒤흔든 기호는 각자 다르다. 각자에게 특별한 정서와 감각을 일으킨 기호의 종류와 유형의 차이만큼 그 기호들은 서로 다른 여행지로 그들을 데려간다. 누구는 마주침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인 미감을 발견하고, 누구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구성하는 삶의 조건들을 진단하고, 누구는 삶의 목적지를 설정하는 방향의 전환을 시도한다. ● 이번 전시는 각 작가들의 창작 원인이 된 마주침의 대상을, 즉 배움의 기호를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제시한다. 작가에 따라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암시적으로 제시되는 기호들을 통해 각 작가의 결과물(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보다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구지윤_감정 소모_캔버스에 유채_61×76cm_2009 구지윤_밤샘 공사_캔버스에 유채_55.7×71cm_2009

공사장 풍경(구지윤, 해오의 경우) ●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종종 공사 현장을 마주치게 된다. 깔끔하게 마감된 주변 건물들 사이로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단편이 갑자기 끼어들어가 있는 모습에 우린 간혹 낯선 장면을 발견한 듯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이 미완의 장면에 오랜 시간 붙들리게 되는 걸까? 우리 삶은 생각보다 마감이 완료된 건물의 외관처럼 매끈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 내면의 심리적 상황은 공사장의 불안한 풍경과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어지럽고 소란스럽고 정돈되지 않은, 짓다 만 건물의 공사장 풍경은 우리 내면의 불안과 공명하는지도 모른다. ● 현대인들이 겪는 무기력, 권태, 불안, 신경질, 현기증 등 모든 감정과 감각들은 하나의 끈으로 묶여있다. 이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주기 속에 순환한다. 이러한 심리적 상황은 무너지고 세우고,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는 공사장의 운동과 닮았다. 어쩌면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운동과 그로부터 비롯된 감각들은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적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주제일지 모른다.

구지윤_섬광_캔버스에 유채_72×60cm_2017 구지윤_오가닉 페이스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15

구지윤의 그림은 공사장 풍경과 현대인의 내면 풍경을 결합하는 하나의 시도를 보여준다. 초기에는 공사장 풍경을 형태적 유사성에 기반해 묘사했지만(「감정소모」(2009), 「밤샘공사」(2009))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풍경 안에서 벌어지는 운동과 그로부터 촉발되는 신체-감각적 반응들을 표현하는 일에 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공사장 풍경과 결합한 기이한 얼굴들이 탄생한다. 온몸으로 파고든 굉음과 같은 모종의 충격에 몸과 마음의 작동이 멎고 마비된 얼굴, 어떤 힘에 의해 유기적 형태와 위치가 휘저어지고 경계를 이탈하는 얼굴,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공간을 배경으로 무기력과 권태감으로 축 길게 늘어진 얼굴 등(「보라색 소음」(2017), 「섬광」(2017), 「오가닉 페이스」(2015), 「턱을 괸 사람」(2016)). 더 나아가 최근작들(「얼굴-풍경 연작」 (2019))에 이르면, 더 이상 얼굴의 윤곽마저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색채와 배열, 붓질 등 보다 순수한 감각적 표현 요소만을 화면에 남기려고 한다. 얼굴의 윤곽 마저도 유동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정체되고 멈춰진 요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구지윤_보라색 소음_리넨에 유채_100×80cm_2017 구지윤_턱을 괸 사람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16

해오는 구지윤의 주요 작업 동기가 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종류의 소음들을 재구성한 3채널 사운드 작업(「A Bleached Anxiety」(2019))을 전시장에 그림과 함께 설치하여 작품 감상에 시너지를 일으키도록 유도한다. 공사장의 운동에서 비롯되는 주요 감정은 '불안'이다. 그곳에서 발생하는 자극들은 여러 가지 감각과 정서를 폭넓게 촉발시키지만 기본적으로 불안이란 정서로 귀결된다. 해오는 금속성 소리와 극저음 등을 사용해 불안감을 자극하는 음원을 들려준다. 건반을 타악기처럼 두드려 발생시킨 금속성 소리는 공사장에서 망치나 드릴로 무언가를 두들길 때 나는 듯한 소리를 연상시키고, 긴장과 이완의 상태를 오르내리며 강도 높은 금속성 마찰음을 내는 첼로 소리는 신경질적 흥분과 불안감을 자아낸다. 또한 신비롭고 장대한 공간감을 형성하는 신디사이저와 모듈러 소리는 구지윤의 그림에서 서로 다른 두 사물인 공사장 풍경과 사람의 얼굴이 겹쳐지며 발생하는 기이한 결합감을 증폭시킨다.

구지윤_얼굴-풍경 연작_캔버스에 유채_76×61cm×6_2019 구지윤_추상적인 대답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15

해오에겐 구지윤의 회화 작품이 곧 마주침의 기호다. 그가 만든 음원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구지윤의 그림들과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즉 구지윤의 마주침의 기호로서 작용하는 동시에 구지윤의 그림이라는 기호에 의해 촉발되어 생산된 또 다른 예술의 기호이기도 하다.

이우성_추억은 언제나 무지개_ 천에 수성 페인트, 아크릴릭 과슈, 아크릴채색_210×210cm_2015 이우성_땀 흘리며 달려간다_ 천에 수성 페인트, 아크릴릭 과슈, 아크릴채색_165×300cm_2019

바람, 시간, 거리 위의 이미지(이우성의 경우) ● 이우성의 오래된 영상 작업 「보이지 않는 얼굴」(2009)과 신작 드로잉 「흘러가다 멈춰서다」(2019)는 현재 그가 사용하는 천 그림이라는 매체, 접혔다 펼칠 수 있으며 여기저기 이동하며 야외에 걸었다 철수할 수 있는 매체에 도달하게 만든 특정 대상들과의 만남이 제시된다. ● 바람에 펄럭이고 흔들리는 공사장의 비닐이나 나뭇잎(바람의 효과에 대한 애호),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거리에 노출된 커다란 이미지들(손으로 그린 과거의 영화 간판, 광고 전광판 등), 야외에 장시간 노출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식되고, 닳고, 변질된 사물의 모습(낡은 가게 간판) 등이 바로 그가 마주친 대상(기호)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의 효과, 거리 위의 이미지, 시간성이 담긴 사물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애호와 미감이 그의 천 그림이라는 표현 매체에 담겨 있다. 그는 위에 열거한 대상들과의 무의식적인 접촉과 마주침들을 통해 자신의 미감을 점진적으로 각성하였을 것이라 예상되며 자신의 미감과 호응하고 결합 가능한 천 그림이라는 매체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우성_바닥에 떨어진 작은 조각_ 천에 수성 페인트, 아크릴릭 과슈, 아크릴채색_210×210cm_2015 이우성_신도림역에서_천에 아크릴릭 과슈, 바인더_210×210cm_2018

그의 천 그림은 거리 위에 노출되어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 개방된다는 조건에 걸맞는 장면들을 담아낸다. 특히 「땀 흘리며 달려간다」(2019)를 보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는 세심한 관찰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 태도, 제스쳐, 반응들을 담는다. 기쁜 얼굴, 무관심하거나 무표정한 얼굴,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 주변을 의식하고 눈치 보는 사람, 빨강, 초록, 납빛 얼굴, 다양한 옷차림까지. 서로가 모두 다른 감정과 가치관을 지닌 채로 이마와 겨드랑이에 땀을 흘리며 삶이란 레이스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우성_흘러가다 멈춰서다_종이에 펜 드로잉, 스크린 톤_11×11cm×20_2019

한편 천 그림이란 본성에 맞게 작법도 변화해오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조각」(2015)의 경우, 캔버스 작업을 하던 방식을 사용해 밑칠을 하고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천 그림을 그린다면 굳이 이 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그 뒤로는 밑칠 없이 천 위에 바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 「신도림 역에서」(2018)는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인 지하철 역사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을 그린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버스킹 행위처럼 그의 천 그림 역시 이동하며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형태의, 일종의 그림으로 수행하는 버스킹 행위일 수 있다. ● 그의 몇몇 천그림에는 접히고, 얼룩지고, 닳고 변색된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추억은 언제나 무지개」(2015), 「산 너머 굽이 굽이」(2015)). 이러한 흔적들은 그의 천 그림들이 그저 잘 관리되는 실내에 있기 위해서만 태어난 게 아니라 거친 야외 환경에서 보이기 위해 태어났음을 증언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천 그림의 본성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설치 방식에서도 실제 빨랫줄에 빨랫감이 걸려 있는 듯이 연출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서울」(2014-2015),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뉴욕」(2016)과 「접혔다 펼쳐지는 그림-크라이스 처치(2016)」는 실제 야외에 그가 천 그림들을 설치하는 과정과 장면들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우성_예술가의 배움展_서울교육대학교 샘(SAM) 미술관_2019

모두가 알아봐 주진 않겠지만 바람에 펄럭이는 공사장 비닐에서 그는 아름다움을 발견했듯이, 누군가는 그의 천 그림을 마주치고는 "흘러가다 멈춰"설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 스스로 마주침의 기호가 될 것이다. 그 효과로 우리의 미감을 일상적 풍경과 사물들로까지 담백하게 확장시키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가깝게는 이우성의 천 그림이 줄 위에 매달린 모습을 눈에 남긴 채 동네 골목길을 거닐어보자. 오래된 단독 주택들에 설치된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들이 그의 천 그림과 겹쳐 보일 수도 있다.

김다움_유인 3_2채널 영상, 무음_00:05:10_2019

태아 그리고 예술 작품들(김다움의 경우) ● 김다움의 경우, 이미 그의 영상 작품 속에 창작 원인이 된 마주침의 대상이 함께 등장한다. 바로 임신부의 배 속에 자리한 태아다(「유인 3」(2019)). 본래 늘 자신 밖에 목적지를 설정하고 살아온 그는 어느 날 부모가 되어 태아를 마주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 태아의 목적지가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타자의 목적지가 되는 경험을 겪으며 자신 밖에 무언가를 목적지로 삼고 살아가는 방식이 아닌, 자기 자신이 목적지가 되어 타자들을 유인하고 기다리는 시도들을 구상하게 되었다(태아를 기다리며 마사지를 받는 임신부, 피뢰침을 들고 번개를 기다리기, 새의 모이를 손에 들고 새를 기다리기). ● 3편의 「유인」 작업에는 기본적으로 '만남'의 가치를 긍정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선율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상호작용하며 탄생하는 대위법과도 같은 만남. 각각의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기다림은 초조할지언정 조급하지는 않다. 임신부의 배를 천천히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의 움직임, 손에 모이를 들고 하염없이 새를 기다리는 손, 그리고 피뢰침을 들고 번개를 기다리는 모습 등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차분함은 그가 타자를 유인하고 기다리는 시도를 통해 추구하는 만남이 순간적인 욕구의 해소나 필요를 위한 종류의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 이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 새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풍경들을 전해주고, 번개의 번쩍임과 함께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미지의 존재, 타자와의 만남으로 일어나는 사건들로 삶을 구성해나가기. 그의 「유인」 작업은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한 방식을 제안한다. 더불어 「마중」(2019)은 그가 수행한 기다림의 시간의 감각과 정서를 담은 음악이다. 영상 속에서 무언가를 유인하며 기다리는 시간의 리듬, 호흡과 상응하는 형식의 음악으로 영상 감상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김다움_컴필레이션-피스 피스_레이져 프린트_29.7×21cm_2019

「유인」을 감상하고 나오는 길에 잠시 뒤돌아 커튼 위에 부착된 한 장의 도면(「컴필레이션-피스 피스」(2019))을 바라보라. 비록 그 크기는 작을지언정 그 안에 내포된 시간과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 작품은 김다움 본인의 예술가로서의 배움의 운동과 궤적을 플로어 플랜(전시 도면)의 형식으로 담아낸 작업으로 감상자가 각각의 음악 기보 기호들에 적힌 작품들을 검색하여 감상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작업이다. 자신의 배움을 주제로 한 일종의 플레이 리스트라고 봐도 좋다. 이 목록 안에는 그의 작업 태도, 형식, 주제 등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매체와 형태의 작품들(퍼포먼스, 개념미술, 추상과 구상 회화, 영화, 영상)이 들어 있다. ● 더 나아가 이 플로어 플랜에 그려진 도안은 충분히 다른 작가들의 배움의 운동에도 적용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각각의 음악 기보 기호들의 자리에 들어갈 작품들이나 마주침의 대상은 작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아니, 이 도안에 예술가의 배움만을 한정해서 대입할 필요가 있을까? ■ 황윤중

* 각주 1) 기호와의 마주침을 통한 배움에 관한 이론은 기본적으로 들뢰즈의 프루스트론에 기반한다(질 들뢰즈, 서동욱 외 옮김, 『프루스트와 기호들))(민음사, 2004)).

Vol.20191123f | 예술가의 배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