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몸 Body of Events

엄민희_남지연_왕선정_정다운_김소영展   2019_1126 ▶︎ 2019_1208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1126_화요일_05:00pm

기획 / 김소영 후원 / 갤러리175_한국예술종합학교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어떤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고 벌어질 것인가 ● 사건 현장에 서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는 형사나 검시관, 기자일 수도 있고 혹은 지금 막 범행을 마친 범인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정체가 누구냐에 따라 현장에서의 움직임은 달라진다. 형사는 성큼성큼 현장을 훑으며 직감에 따라 단서를 연결하고 기자는 종종걸음으로 인물들을 오가며 출처가 다른 정보들을 교차/조합한다. 과학자는 미시적인 시선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며 범인은 강박적으로 흔적을 감추거나 조작하려 한다. 그러므로 현장에서는 다양한 경로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과정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은. ● 하나의 결론이 존재하지 않는 현장이 있다면 어떨까. 탐정은 매일 다른 버전의 보고서를 쓰고, 범인은 그중 무엇과도 일치하지 않는 자백을 한다. 현장으로부터 설계된 이야기들은 각자의 결말을 향해 뻗어 나가고 그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단서의 의미와 역할은 계속해서 변한다. 나는 한 지점에서 생겨나 점점 복잡해지는 이야기 망을 상상한다. 그것은 각 관찰자의 움직임에 의해 달라진다. 현미경의 시선과 인공위성의 시선이 수시로 교차하고 이에 단서를 연결하는 각각의 선들은 사라졌다가 생겨나고 돌연 방향을 바꾼다. 이야기망은 이제 관찰자의 기억/습관/정서와 접속하여 그 공간 너머까지 확장된다. ● 그림은 행위자의 물리적/사색적 흔적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사건 현장이다. 그것은 여러 경위로 일어난다. 대상의 내부를 포착하려는 반복된 시도로 노출되거나 출처가 다른 이미지의 파편들로 직조되기도 하고 표면과 매제의 화학반응, 제어되거나 제어되지 않은 움직임을 통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사건은 시간이 제거된 채 평면 안으로 들어오고 그 흔적만이 공간(을 가장한 평면) 안에 흩어진다. 질서가 사라진 인과에는 온갖 헛것들이 끼어들고 우리는 자꾸만 단서를 놓치게 된다. 그럼에도 화면에 작용한 힘을 추적하거나 배후의 움직임을 떠올리는 일은 늘 흥미롭다. 우리가 찾아야 할 단 하나의 목적지란 없으며 그저 내키는 대로 헤매다 보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도가 그려지곤 하는 것이다. ● 지금 소개할 5명의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평면 안에 사건을 발생시키고 그것에 회화적 몸을 부여한다. 이 전시를 통해 이들에게 입력된 정보 더미가 어떻게 회화적 사건들로 출력되는지 살펴보고 또 그것들이 하나의 공간에 합류했을 때 어떤 작용/반작용을 일으키는지 지켜보고자 한다.

엄민희_손1_캔버스에 유채_40×32cm_2019
엄민희_외벽_캔버스에 유채_73×61cm_2019

엄민희: 그리는 자에게는 대상과의 만남 또한 사건이 된다. 그것은 어떤 사물이나 풍경을 마주쳤을 때의 알 수 없는 끌림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그렇게 수집한 대상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마음에 들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린다. 이때 다시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그려지는 대상과 그리는 순간 표현되는 물성의 관계를 통해서다. 그것은 그리는 자가 제어하는 요소 즉, 물감의 농도, 붓질의 속도와 압력이 우연적 요소를 만나 충돌한다. 그녀는 또한 동일한 대상을 반복해서 그려나가는데 그때마다 달라지는 미세한 것들을 포획해 마치 얇은 막을 하나씩 펼쳐두듯 공간에 놓는다.

남지연_선동나무_종이에 수채_31×23cm_2019 남지연_어둠속의 증인_종이에 수채_31×23cm_2019

남지연: 그녀는 그림 안에 여러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사건을 발생시킨다. 뉴스나 신문 기사, 광고 이미지 등에서 발췌된 인물들에게는 희극배우의 역할이 주어진다. 무대에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과장되게 펼쳐진다. 졸지에 낯선 상황 속에 놓이게 된 인물들은 진지하게 이 극에 참여하지만 감출 수 없는 허세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몸짓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작가는 이 극의 연출자로서 상황에 계속해서 개입한다. 이때 평면이라는 조건은 불가능한 공간을 재치 있게 제공하며 그 뒤틀린 공간 또한 사건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왕선정_Hey I'm afraid of the bright shines_캔버스에 유채_18×55cm_2019
왕선정_오필리아_캔버스에 유채_195×200cm_2019

왕선정: 그녀가 탄생시킨 여러 군상들은 자신들의 심리 상태를 감각적으로 고백한다. 그것은 그리는 자의 고백인 동시에 가상의 고백이다. 고백은 대개 청취자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감정을 촉발한다. 그러므로 관객은 어느 순간 이 독백자들의 심리적 공간으로 깊숙이 초대된다. 그들의 표정과 제스처는 결핍과 상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색과 물감의 궤적은 그것을 보충한다. 이 독백의 공간은 유기체의 신체처럼 감각적/정서적 반응을 유발하고 그 자체로 화자가 되어 우리의 고백을 요구한다.

정다운_my museum_에칭_30×35.5cm_2019
정다운_誤配_에칭_36.5×51cm_2019

정다운: 그는 꿈속이나 소설에서 본 듯한 상황을 화면 안에 새기고 찍어낸다. 사건은 화면 안에서 이야기의 형식으로 짜여지고 어둠의 밀도를 통해 연출된다. 섬세하게 연산된 것과 구조적으로 작동된 것들은 화학작용을 거쳐 사건의 질감이 되고 다시 이야기에 병합된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사건들은 다양한 질감을 입고 출판되며 그럼으로써 현재에 확정된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단단한 조각처럼 현실을 자극한다.

김소영_Disappearance_캔버스에 유성펜_60.6×40.9cm_2018 김소영_Appearance_캔버스에 유성펜_25.8×17.9cm_2018

김소영: 그녀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수행함으로써 사건을 전개한다. 이때 규칙은 사건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끊임없이 개입하고 적극적으로 서사를 견인한다. 이때 공간 안에서 전개되는 사건은 이미지 간의 관계에 의존한다. 즉, 개별 이미지의 크기와 위치, 결합 방식이 사건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사건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며 변화하고 일시적으로 공간에 고정된다. ● 여러 겹의 사건들로 범벅된 덩어리가 표면을 입고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일시 정지된 TV 화면처럼 전후의 상황이 병합된다. 장면을 어디서 멈출 것인가는 행위자의 마지막 선택이다. 화가가 보고 있던 마지막 장면은 관람자의 첫 장면이 된다. 관객들은 그 지점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돌아가며 사건을 새롭게 구성한다. 그러므로 화가들은 시간을 원하는 형태로 멈추는 자들이고 시간이 정지된 공간 안에서 관객만이 유일하게 시간을 지닌다. 이들은 유령이 되어 이미 완료된 세계의 표면을 유영하며 단절된 것들을 연결한다. 이로 인해 시간은 다시 흐르고 새로 결합된 인과들은 유령처럼 프레임을 빠져나와 현재와 섞여들게 되는 것이다. 사건은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킨다. 모르는 새 신발 밑에 붙여 온 외계의 씨앗처럼 바깥 세계의 과정이 되는 것. 이것이 폐쇄회로 안의 사건이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 김소영

Vol.20191126b | 사건의 몸 Body of Event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