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빛 인생

박민광展 / PARKMINKWANG / 朴鍲光 / sculpture   2019_1128 ▶︎ 2019_1228

박민광_찰나_대리석 가루, 수지_40×79×37cm_2019

초대일시 / 2019_1128_목요일_06:00pm

후원,주최 / 롯데백화점 광주점 기획 / 롯데갤러리 광주점

관람시간 / 10:30am~07:30pm / 12월28일_10:30am~03:00pm

롯데갤러리 광주점 LOTTE GALLERY GWANGJU STORE 광주광역시 동구 독립로 268 롯데백화점 광주점 11층 Tel. +82.(0)62.221.1807~8 blog.naver.com/glotteart www.instagram.com/lottegallery_official

조각, 그 재현의 힘 ● 표현(表現)의 기저에는 필히 표현하는 주체의 생각과 감정이 담긴다. 다분히 사적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작품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3자에게 전달하는 창작활동의 경우, 그 숨은 서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가의 문제는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쟁점이다. 미술의 표현행위에서 '일차적으로' 우선시 되는 부분은 물리적인 표현력, 즉 기술적인 부분이다. 실험과 전위로 무장해온 현대미술 안에서도 여전히 고전적인 태도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도, 형식이 바로 설 때 내용도 바로 설 수 있다는 당연한 이치 때문일 것이다.

박민광_길 위의 꽃_테라코타_36×25×30cm_2019

롯데갤러리는 그러한 태도에 천착하는 조각가를 초대한다. 본 전시의 주체인 박민광은 광주에서의 학부 과정 이후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에서 리얼리즘 미술을 수학했다. 조각의 특질, 즉 삼차원이라는 '공간'의 점유를 통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장르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재현미술의 전통이 확고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의 유학은 작업적 완성도를 구축하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유학 시기의 작품과 함께 1998년 귀국 이후 시기의 작품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을 아우른다.

박민광_남몰래 흘리는 눈물_대리석 가루, 수지_25×23×27cm_2019

따뜻한 흙의 질감과 회화적인 손맛이 두드러지는 유학시기의 작품은 주로 석고로 제작되었다. 코스튬(costume)이 아닌 대부분의 작품은 누드 작업이며, 실재하는 인체의 동세와 인물의 표정에 주안점을 두고 사실적인 모델링에 집중했다. 자못 투박해 보이는 질감이지만, 작가는 근육의 흐름과 미묘한 제스처까지 신체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대상의 현존(現存)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다. 97년의 작품 「빅터르」 「샤샤」 「아냐」 등의 작품은 놓인 공간과 무관하게, 아직도 작업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민광_성숙_테라코타_48×21×16cm_2017

2000년 초반부터 15여 년간의 작품에서 부각되는 것은 여성의 신체이다. 질감은 이전 작업에 비해 매끈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테라코타와 FRP, 대리석 가루 등의 재료를 통해 작품의 향수자로 하여금 다양한 미감을 자극한다. 작업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의 창작자는 늘상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끌어낸다. 진솔한 접근이 가능한 탓도 있겠지만, 주체로서의 나의 서사는 자못 타자의 서사를 수렴하기도 하기에, 나의 이야기는 예상 외로 교감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박민광은 그 자신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적극 작업에 투영해가며 본인 조각에 특유의 색깔을 덧씌워왔다. 작품 「사랑으로 피는 꽃」 「세월의 향기」 「기다림」에서는 가족을 포함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양한 관계망이 읽혀진다. 작가는 근작에서 자연의 순리에 맞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꽃을 여성의 삶과 병치시킨다. 단순히 시선의 즐거움을 위한 꽃이 아닌, 생에 대한 갈망과 내적 욕망이 함축된 대상으로서 꽃을 해석한다. 꽃의 대명사격인 장미가 상징하는 풍성함과 아름다움은 열정적인 삶에 보내는 찬사이며, 겨울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은 내적 강인함을 연상시킨다. 꽃송이 전체가 낙화하는 동백은 처연한 감성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낙화한 자리에 열매가 맺혀 이내 다시 한 번 꽃을 피우기에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잉태한 여인을 비롯하여, 박민광이 조각으로써 표출한 살아온 시간, 그리고 살아갈 시간들에는 작가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한 본연의 여성성이 데포르메(Deformer)의 형태로 제시돼 있다. 「깊은 생각」과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임신한 여인, 「몽환」과 같이 신체의 일부분을 과장한 여타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여성 본연의 생명력, 혹은 욕망은 터부시되어야 할 여성성이 아닌 존중 받아야 할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성임을 역설한다.

박민광_흔들리며 피는 꽃_대리석 가루, 수지_62×55×28cm_2015

지천명을 넘긴 작가가 그간의 시간과 작업들을 참으로 어렵게도 끄집어냈다. 힘에 부치고 더디지만 스스로가 가장 잘 다루는 흙, 그리고 전통 조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매체와 장르가 선사하는 살아 움직이는 힘에 기인한 것일 테다. 탄탄한 기법을 바탕으로 조각미술 본연의 표현력을 제고해온 박민광의 첫 개인전에 많은 격려와 조언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 고영재

박민광_꽃사슴_대리석 가루, 수지_75×32×25cm_2015

꿈과 리얼리즘 ● 박민광은 조각가를 꿈꾸는 조각가이다. 남도예고와 전남대 미술학과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우즈베스키탄의 국립 마논 위구르 예술 대학원에서 모뉴먼트 장식예술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이다. 그 후에도 러시아의 국립 레핀 미술아카데미 조소과를 수료하였다. 광주광역시 미술대전에서 대상도 두 번이나 수상하였다. 오직 순수한 조각가가 되기만을 꿈꾸던 그녀인데 이번이 첫 번째 개인전이다. 조각가를 꿈꾸는 작가로서의 지난 여정이 길었을 것이다.

박민광_세월의 향기_F.R.P_30×50×14cm_2003

까미유 끌로델. 로뎅의 연인이자 제자였고 모델이었던, 죽어서야 꿈을 이룬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 그녀는 평생 로뎅의 그늘에 가려 작가로서의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모두 안다. 까미유 끌로델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모두 인정한다. 까미유 끌로델이 로뎅 못지 않은 훌륭한 조각가였음을. 무화과의 꽃은 보이지 않는다. 열매 속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장미나 동백처럼 자신을 뽐내지는 않지만 그녀의 열매 속에 아름다운 꽃이 깃들여 있음을 안다. 조각가 박민광이 그러하다. ● 그녀의 작업은 러시아의 리얼리즘적 전통에 기초하여 사실적인 인체해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과 현실, 꿈과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예술은 자본이다'라는 요셉 보이스의 역사적 명언처럼, 특히 조각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그녀의 개인전이 뒤늦은 이유이다. 그러나 꿈은 성취할 때가 아니라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더욱 가치가 있음도 우리는 안다. 테라코타, 대리석, 석고, FRP로 이루어진 이번 출품작품들은 러시아 유학시절부터 틈틈이 제작하였던 그녀의 꿈의 조형물들이다.

박민광_기다림_F.R.P_51×25×11cm_2001

사실적인 인체 묘사를 통해 조각의 꿈을 키웠던 시기에 석고로 제작된 "사샤"(1997), "안톤"(1997), "러시아 여인 Ⅰ"(1996), "러시아 여인 Ⅱ"(1998) 등의 작품은 조형물 제작에 관한한 그녀의 기본기가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얼리즘에 기초하여 인체에 대한 탄탄한 묘사를 통해 한 인간의 서사를 보여주고, 모델이 된 한 인간에 대한 조형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적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 2000년대 초반 유행하였던 FRP를 이용하여 제작된 "기다림"(2001). "세월의 향기"(2003). "비밀 이야기"(2005)에는 한 가정을 꾸리는 여성으로서 보는 세상에 대한 시각이 담겨져 있다. 여성적 시각으로 바라본 인생에 대한 고찰의 조형적 결과물들이다. 때로는 은밀하고, 때로는 기다리고, 때로는 인생을 통찰하는 여성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들을 형상화하였다.

박민광_빅터르_석고_45×24×32cm_1998

대리석의 느낌을 주는"이기적인 꿈"(2011), "꽃사슴"(2015), "흔들리며 피는 꽃"(2015), "몽환"(2016), "찰나"(2019) 등은 대리석가루와 수지를 혼합하여 만든 것이다. 대리석 원석을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앞서 말한 요셉보이스의 명언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며 농염해지고 한층 깊어진 작가의 세계관과 조형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찰나"는 그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로뎅이 까미유 끌로델을 모델로 하여 제작한 "다나이드"처럼,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원소인 대리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를 묘사한 작품이다. 놀랍게도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원소는 생명의 근원인 여성성과도 맞닿아 있다, 무에서 유가 탄생하듯, 돌덩어리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 활처럼 휘어져서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것은 탁한 연못에서 순결한 연꽃이 피어나는 순간과도 같다.

박민광_휴식_석고_31×21×30cm_1997

아름다운 여인의 인체를 조형적 언어로 빚어내고 창조하는 작업, 그녀의 손을 거쳐 무생물인 흙이나 돌이 생명을 가진 아름다운 인체로 새로 태어난다. 조각가란 단순히 조각을 하는 작가가 아니다. 조각가란 어머니처럼 생명을 빚어내는 창조자이다. 조각가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각작품을 상상과 서사의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민광은 진정한 조각가이다. 삶과 예술 사이에서 고뇌할 때에도 그녀의 꿈이 그녀를 지탱해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꿈은 실제로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그녀의 꿈이 계속 이어지는 것, 그것이 그녀를 조각가이게 하는 힘이고, 그녀 작품이 가지는 생명력의 근원이다. ■ 변길현

Vol.20191128e | 박민광展 / PARKMINKWANG / 朴鍲光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