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산다

박소현_이우수 2인展   2019_1127 ▶︎ 2019_120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관계를 기억하고 극복하는 조형법 ● 서로 다른 스타일로 작업하고 있는 박소현, 이우수 두 작가가 『별일 없이 산다』를 함께 만든 이유는 개별적임에도 보편적일 수밖에 없는 가족의 죽음과 병 등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애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동하였기 때문이고, 이와 연결된 작업들이 어느 정도는 작가 자신의 조형 언어가 변화하는 작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작가는 생활을 나누었던 가족 구성원과 맺은 관계가 사라지거나 변해버린 상황을 기억해내는 방법을 조형으로 표현해 낸다. 그 과정은 고통을 끌어안고자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사라지거나 아픈 기억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소현_그그그_편물에 자수_각 28×22cm_2017
박소현_5_소포지_각 22.9×15.2cm_2019
박소현_89_종이에 파스텔, 과슈_각 29.7×21cm_2016

박소현은 할아버지의 치매 투병과 임종을 지켜본 이후 스스로 그 시간을 치유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승화시킨다.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따랐기에 그 과정은 가족으로 맞아야하는 낯선 경험이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증언인 「0」, 「그그그」, 「5」, 「89」는 모두 다른 작업 방식을 취한 것이다. 무언가를 비우는 것이자 채우는 과정은 이전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했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는 자신의 생활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음식이라는 소재를 택했다. 작가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나서 그에 대한 애정을 글로 서술한 작업이 있다. 이는 그림일기처럼 음식에 대한 묘사 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게 한다. 그런데 많은 음식들을 한 자리에 모아둔 작업은 풍요롭고 꽉 찬 무언가를 담아내고자 했다는 의도를 읽게 한다. 그 음식들은 사실적인 모습으로 하나하나 살아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 음식들에 원래 색을 부여하지는 않고 흑백으로 선들의 밀도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 그림들은 단순히 먹음직스러운 음식 그림이 아니라 음식으로 표현된 선의 밀도와 묘사를 보여준다. 즉 무언가를 가득 채운 것을 그리고야 말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읽혀진다.

박소현_0_종이에 연필_각 29.7×21cm_2017
박소현_0_종이에 연필_각 29.7×21cm_2017

이처럼 무언가를 정확히 그리고 많이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가 현실적인 사물로서의 대상을 통한 표현 대신 다른 방식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 작업이 이번에 전시되는 작업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선이라고 하는 방식에 대한 애착이다. 작가는 할아버지라는 대상,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미술 언어인 선으로 표현하되 이전과 달리 여러 재료를 이용하여 표현해보고 잠정적으로는 드로잉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말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할아버지의 축적된 기억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작가가 그에 대한 경험이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고자 했을 때에 어떤 의미에서는 뚜렷한 형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득했던 것들은 무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기억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그그그」와 「89」는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을 형상 대신에 글로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그그그」는 흰색 실을 뜨개질하여 원고지 형태의 따뜻한 표면을 만든 후 할아버지의 사라지는 기억을 부여잡는 듯 짧은 말들을 검은 실로 삐뚤삐뚤하게 새긴 것이다. 반면 할아버지와 나눈 소중한 기억에 대한 진술은 「89」를 통해 작가 자신의 글씨체로 또박또박 새겨진다.

박소현_0_종이에 연필_각 29.7×21cm_2017
박소현_0_종이에 연필_각 29.7×21cm_2018
박소현_0_종이에 연필_각 29.7×21cm_2018

이 작업들과 달리 「5」는 그리는 대신 종이를 각각의 형태로 접어 그 구김으로부터 선을 만든 것이다. 여기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 상태를 손의 행위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0」 드로잉 연작이다. 이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대한 표현으로, 잃어버린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한 행위였다. 그렇게 연필로 그려진 한 장 한 장의 드로잉들은 300장의 작업을 채우게 된다. 작가에게 '0'은 무엇이었을까. 할아버지를 보내야 했지만 할아버지가 작가에게 남긴 선물처럼 그 시간 동안 작가는 무한히 반복되는 선들을 다르게 표현해봄으로써 한 장 한 장의 드로잉을 만들어간다. 애초 형상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자유로운 표현을 늘려보는 방법이었지만 그려진 한 장 한 장의 종이에는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다른 세계가 그려진다. 이 드로잉 작업들은 그의 다음 개인전인 『확대된 세계』로 이어진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작가에게 전환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우수_소실·숨_실, 자개화장대, 프로젝션 맵핑_가변설치_2019
이우수_소실·숨_실, 자개화장대, 프로젝션 맵핑_가변설치_2019
이우수_소실·숨_부분

이우수는 일정한 작업 공백기를 가진 이후 자신의 변화된 삶으로부터 작업의 계기를 찾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그것과는 다른 시간을 찾은 것이 유년의 기억과 같이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었다. 「소실·숨」도 그런 맥락에 놓인 작업으로 치매판정을 받은 어머니와의 삶을 나누면서 변화된 상황을 바라보던 심경을 표현한 작업이다. 작가가 느낀 상실감은 유년 시절 어머니와 나누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걸어왔던 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을 공간 안에 설치로 풀어낸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머리카락을 땋아주던 한 순간의 장면은 실로 땋은 머리카락의 수많은 가닥들이 천정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형태로 매달린 모습으로 전환된다. 그 가닥들은 어머니가 걷는 길을 마련해주는 설치물이 된다. 그 사이를 통과하는 영상의 빛은 자개화장대에서 투사된 빛이 되비춘 것으로 어머니가 걸어온 길을 상상하도록 하며 그 끝에 산책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으로 그 길을 걷고 있지만 이제 딸에게 그 뒷모습은 기우뚱해 보이고 압축된 시간 마냥 빠른 속도로 걷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어머니가 걸어왔던 길,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애잔한 심정이 표현되어 있다.

이우수_소실·숨_부분
이우수_소실·숨_부분

「끝.시작」은 최근 했던 개인전 작업의 일부를 보여준다. 이 작업은 직접적으로 어머니와 관계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상태를 공간 설치로 표현해낸 것이었다. 이 작업 역시 현재의 상태를 표현하면서도 유년기의 어떤 순간을 향해 있다. 손바느질로 만든 많은 그물은 현실에서 작가가 맺는 여러 관계로부터 오는 복잡함과 공허함을 드러낸 것이면서 과거를 담는 그릇이 되어 준다. 왜냐하면 많은 그물들은 무정형의 상태를 이루면서 아래를 향해 떨어지지만 같은 실을 이용하여 손바느질로 만들어진 목마와 그 잔해들을 감싸 안아주기 때문이다. 이 목마는 현재의 복잡함과 달리 유년기의 단순하고 순수한 상태를 상징한다. 그리고 작가가 그 그물들을 따라 만들어 놓은 길 끝에는 내용을 알아듣기는 어렵지만 작가의 가족들이 나누었던 대화 소리를 듣도록 한다. 작가에게는 일상을 나누는 가족이라는 자리는 또 다른 위안의 장소를 의미한다. 이 작업은 현재를 벗어나서 가장 순수한 시절로 그리고 편안함을 주는 장소로 돌아가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고 가족과의 생활도 늘 아름다울 수 없기에 쓸쓸함을 자아낸다. 작가에게 끝과 시작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끝이 시작이 되고, 또 그 시작이 끝이 되는 순환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변화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닌 상처를 들여다보고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처럼 보이기에 비극처럼 보인다. 그물 사이 간간히 놓인 조명들의 아련한 빛들은 비애미를 배가한다.

이우수_소실·숨_부분
이우수_소실·숨_부분
이우수_끝.시작_실_가변설치_2019

'별일 없이 산다'는 무심해 보이는 제목은 가족과 맺은 관계가 변하고 또 그 과정은 고통이었지만 또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모습, 우리 삶을 닮은 제목이다. 그런데 그 관계들이 작가들에게는 작업의 동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별일'이었을 것이다. 작가들은 그것들을 끌어안고 그 기억을 그리워하고 애도하고 치유하려하면서 미술 언어를 발전시킨다. 그래서 이 작업들은 관계를 기억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각자의 조형법을 이루어낸다. ■ 신양희

Vol.20191128h | 별일 없이 산다-박소현_이우수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