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영 아카이브

정신영展 / CHUNGSHINYOUNG / 鄭信永 / mixed media   2019_1130 ▶︎ 2020_0408

정신영_무우공유프로젝트_공간 설치_600×600×280cm_2019

초대일시 / 2019_1201_일요일_02:00pm

2019_1130 / 유족과 지인을 위한 오픈 2019_1201 ▶︎ 2019_1214 / 일반전시 2020_0408 / 유족과 지인을 위한 재회

2019_1201_일요일_04:00pm / 윤병철작가 발제 2019_1208_일요일_02:00pm / 김지섭작가 발제 2019_1214_토요일_02:00pm / 차정인작가 발제

후원 / 경기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5:00pm / 04:00am 개별 문의 후 관람 가능 2019년 12월 15일~2020년 4월 8일은 개별 문의 후 관람 가능

그음공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 90-2 Tel. +82.(0)10.2667.9933 www.facebook.com/meaningform

문자그음을 창시하고, 다양한 문자그음 작업과 이론들, 그리고 디자인을 남긴 정신영 작가의 작업을 아카이브하여 전시합니다. 사진 속 2005년 무우가 아직도 싱싱합니다. 정신영작가의 제안에 따라 공유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삼각김밥으로 입맛을 잃어버린 작가님들 정신영 아카이브 전시에서 순무, 순무청절임, 순무시레기를 가져가세요.

정신영_사기형자_공간 설치_3000×4000×650cm_2011

비탈진 계곡의 높은 곳에 샘이 솟고 있다. 그 앞에 정신영작가는 익숙한 의자 하나를 6미터 높이에 올려 놓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그 형태가 두드러진다. 그렇지만 앉을 수가 없다. 힘들게 비탈길을 오르다가 만난 의자가 그림의 떡이다. 왜? 약이 오르고 그 의도가 몹시 궁금하다. form follow function을 벗어나라는 디자이너의 주장인가? 작가는 아무런 구체적인 대답 없이, 공자가 초나라 가다가 만난 돼지 이야기를 한다. 큰 어미돼지의 젖을 빨던 새끼 돼지들이 갑자기 모두 달아났다. 그 순간에 어미돼지가 죽은 것이다. 그것을 본 공자가 새끼 돼지가 사랑한 것은 그 어미의 모양이 아니라 그 모양을 부리는 것(사기형자)이라고 말한다. 6미터 위에 올려진 의자에 사기형자라고 제목 붙였다.

정신영_기울여서 바로보라_평면 인쇄_84.1×118.9cm_2007

정신영작가의 주기도문 작업은 타이포그라퍼가 어떻게 순수 창작에 다가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단지 글자들을 길게 늘여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평면으로 마주했을 때 익숙하게 읽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없는 자극으로 버릴 수도 없다. 어느 순간 그 평면을 기울여 볼 생각을 하게 된다면, 갑자기 익숙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편하게 읽히지 않는다. 마주한 평면은 단축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기울여진 것들이 단순한 투시로 솟아올라 마주서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어렵게 다시 그것을 세워 일으키고 마주해야 한다. 화가나 평면 디자이너는 늘 보이는 삼차원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평면으로 압축한다. 그렇게 기울어진 것을 마주하는 것은 그림의 본질을 이룬다. 우리말로 '전망'이라 번역하는 역사에 대한 루카치의 개념(Perspektive)은 문자 그대로 '투시'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역사는, 기울여 마주하지 않는다면, 그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다. 삶에서 마주한 것을 기울여 투시할 때만 접근가능성을 제공한다. 우리 일상의 경험이나 삶의 역사적 상황을 생각할 때, "기울여 바로보라"는 작가의 주장은 사려깊은 성찰을 보여주며, 작가의 성공적인 뒤틀기를 드러낸다. 그러나 작가가 제시한 왜곡된 문자를 기울여 바로하여 읽어 보면, 그것이 주기도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왜 믿음의 문제를 기울여 바로보라 했을까? 갑자기 소용돌이친다.

정신영_반야심경_공간 설치_1000×1500×250cm_2005

새벽 4시 쌍계사, 입장료를 내는 관객들이 자취를 감춘, 새벽의 어두움 속에 반야심경 독송이 퍼진다. 297자 한자 한자 방울방울 파문을 만든다. 각각이 너무 영롱하여 금방 사라진 것들이 아쉽다. 시간은 무상하다. 2005년 문자그음을 창시한 정신영작가는 반야심경 작업을 선보인다. 다른 작가들과 연기하여 반야심경 297자를 작업들 사이를 가로질러 전시공간 전체를 감싸서 설치하고, 천장에는 297개의 낱자들을 무작위로 뭉친 덩어리를 놓았다. 1분 행위로 각 관객에게 반야심경의 낱자 하나씩 고르게 하고 작가의 지휘에 따라 함께 독송하였다 낱자로 시간 속으로 굴러 흩어지던 마음들이 모두 함께 울린다

정신영_'Spiel(연극)'_북아트, Samuel Beckett의 희곡작품_14.5×24.5cm_2004

"대화란 주고받음이다. 원작에서 등장인물 세 사람은 조명의 지시에 따라 한 명씩 차례대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대사의 내용은 주고 받음 없는 독백의 형식이다. 베케트의 단막극 "Play"에서 인물간의 주고 받는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지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뿐이다. 나는 내 작품에서 세 명의 등장인물이 자조적으로 쏟아내는 동시적인 독백이 만들어내는 텍스트의 엉킴을 통하여 자신과 외부와의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음/ 이해할 필요 없음/ 최소한의 소통을 표현하고자 시도했다. 대화는 주고 받음인데 나와 외부와의 주고 받음이 아닌 나와 내 내면과의 주고 받음일 뿐이다." (정신영)

정신영_안과 밖_공간 설치_15000×4000×140cm_2010

정신영 작가는 자기 작품집 제목을 『배경이고 싶다』(ISBN 979 11 85429 21 2) 라고 정했다. 이 말은 누구나 원하는 나는 "주인공이고 싶다"의 반댓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이루어지는 근본은 동일하다. 그 둘은 형상과 배경이 떼어내어 나누어져야만 나타난다. 이 나눔을 잘 보여주는 작업이 안과 밖이다. 정신영 작가는 한참 익어가는 콩밭 가운데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한 기둥에 빔 포인터를 그리고 나머지 세 기둥에 거울을 설치하여, 레이져 빔이 하나의 닫힌 경계선을 만들도록 했다. 그 경계선으로 안과 밖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안이라고 주장하면 주인공일 것이고 밖이라고 주장하면 배경이 된다. 그런데 그 작가는 네 개의 기둥이 내려 보이는 지점에 바라 볼 수 있는 정사각형의 관을 설치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네 귀퉁이가 네 기둥과 일치하게 배치 하였다. 안과 밖, 포함과 배제의 폭력적인 논리를 결정하는 것이 어떤 시선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어떤 시선에 의해서 결정되는 안과 밖이라면, 기꺼이 주인공까지 포함하여 드러내는, 그래서 더 폭이 넓은 배경이고 싶어 했을까? 실제 안과 밖 작업은, 빔으로 쏘아지는 선이 거의 형태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평범한 시각으로는 도저히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작업이 자리한 설악의 기후조건은 남한강과 북한강으로 둘러싸여 새벽녁에는 짙은 안개가 낀다. 그 짙은 안개는 레이저 빔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단지 그것을 보고 싶은 사람은 새벽 4시에 전시장으로 와야 한다.

정신영_비물_공간 설치_600×1600×160cm_2017

돌아간 자가 남겨둔 물건은 무엇인가? 혼백이 되어버린 사람의 손때 묻은 물건들은 강력한 접촉마술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그 물건들이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 때 모방마술까지 함께 한다. 눈에 익은 물건이지만 더 이상 그 익숙한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비물(Unding)이라고 이름하려고 한다. 한 사람이 남기고 간 물건을 누가 소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원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 조건은 그 물건이 필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신영 작가의 회고전이 있을 때, 무상으로 대여한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그러면 그 물건 아닌 비물을 보유할 수 있다. ■ 김지섭

Vol.20191130b | 정신영展 / CHUNGSHINYOUNG / 鄭信永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