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22

담소 미술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展   2019_1201 ▶︎ 2019_1215

김미지_duplication-my life 복제하다-마이 라이프_핫멜트 와이어_74×58×36cm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미지_김순관_김애란_김효은_두원_박금옥 부상철_서성봉_소현경_소희진_예미킴_이소아 이지현_정민숙_최정우

주최 / 담소 미술 창작 스튜디오 http://artstudiodamso.com/

관람시간 / 11:00am~09:00pm

갤러리 거인의 정원 Giant's Garden 제주도 제주시 대원길 58 Tel. +82.(0)64.759.5759 거인의정원.com

미술환경의 변화와 창작 공간 ● 현대미술은 단순히 작품 생산에 따른 결과(작품) 뿐 아니라 창작에서부터 소비에 이르는 시공간적 서사과정을 매우 중시한다. 특히 뉴미디어와 설치미술이 주류를 이루는 동시대의 창작풍토에서 완결된 작품보다는 그 작품이 이루어지는 생산과정에서의 연구, 토론, 협업 등 창작환경이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그래서 각국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슬럼화 되거나 재개발 상태에 놓인 역사적 명소들을 구입하여 문화예술 기반시설로 전환하여 예술가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도시마케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오늘날 진취적인 예술가들은 하나의 지역이나 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이국을 떠돌며 다양한 문화체험 속에서 작업을 지속해 나간다. 진작부터 구미에서는 '레지던시' 개념이 생소한 것이 아니었으며, 역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지금까지도 예술가들의 주요 창작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실, 예술가들에게 있어 '레지던시 프로그램' 혹은 '창작스튜디오'는 예술가 자신의 존재 조건과 분리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공간이자 작업 공간이다.

김순관_화양연화-일상_캔버스에 유채_27×120cm_2018
김애란_평화3_캔버스에 유채_70×161.8cm_2019
김효은_섬_화선지에 먹 혼합재료_138×69cm_2019
두원_매난국죽도_자개병풍에 과슈, 먹_90×120cm_2018

결국 매체의 다양한 수용과 장르의 혼성이나 통합이 빈번한 현시점의 미술환경 하에서 각 분야 및 지역의 예술가들이 협업하고 토론하는 장(場)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레지던시 공간과 프로그램들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으며, 1980년대 이후부터는 여러 나라에서 지역정부나 미술관의 주도하에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창작스튜디오들은 작가들의 예술적인 성장을 지원하고 예술을 통한 의사소통 및 새로운 프로모션, 그리고 작가와 대중 사이의 원활한 상호교감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박금옥_발동_스프러스_30×60×30cm_2019
부상철_자연을 노래하다_아크릴채색, 혼합재료_50×100cm_2019
서성봉_코뿔소-섬_스테인리스 스틸, 제주석 단조기법_40×70×20cm_2018
소현경_숨-쉬다VIII_제주토 흑토 재유_41×36cm_2019

현대적 의미로서 '레지던시'의 시초는 1666년 프랑스 루이14세가 예술보호책 중 하나로 '로마대상' 수상자를 이탈리아로 유학 보내, 빌라메디치에서 5년간 체제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수여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를 통해 배출된 유명 작가로는 구노, 드뷔시, 라벨, 파스칼, 다비드 등을 손꼽고 있다. 신대륙, 미국 역시 현대적 '레지던시'의 역사가 짧지 않다. 미국 내에서 최초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 곳은 1900년 당시 재력가였던 스펜서 트라스크(S. Trask)와 그의 아내인 카트리나(Katrina)에 의해 설립되었던 '야도 협회(Cooperation of YADDO)'로 조사 되고 있다. 야도의 설립목적은 '예술가들에게 아무런 방해됨 없이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창조적 작업 과정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였다. 설립자인 카트리나 역시 이곳 야도에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소희진_두물머리에서는_한지에 수묵담채_39×131.5cm_2017
예미킴_Bee lake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9
이소아_above the waves-시간_45.5×53cm_2018

담소미술창작스튜디오는 제주 미술의 발전을 위해 공간을 기증한 예술애호가의 호의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야도의 설립취지와 부합되는 창작공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시대 미술지형의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창작실험에 몰두하는 국내외 젊은 작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교류를 통한 미술가들의 자생성 확보와 미술담론의 확장을 도모하고있는 것이다. ● 사실 동시대 한국미술은 다양하고 새로운 미술지형에 대한 제언이나 대안적 담론 생산이 부족한 상황을 처절하게 겪고 있다. 이러한 쟁점부재와 논의결핍 상황은 낡고 진부해 보이던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가로막고 아류와 패배주의가 판치는 미술판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지나친 본질주의적 환원성에 경도되어 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토픽이나 맥락에 대한 폭넓은 반성과 재인식의 기회를 상실한 비평의 책임이 크다. 비평 언어가 전문성과 대중성을 견지하면서 미술에 대한 사유의 장을 넓혀가기보다는 인상비평이나 과도한 개념화로 인한 자폐적 비평 등 수없이 지적된 적폐 요인이 누적된 결과인 것이다. 돌아가는 꼴을 볼 때 이를 극복하고 다시 서기는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현상을 직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일종의 알리바이고 상황 자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창작 분야에서 새로운 형상미술 등의 복고적 경향, 행위예술 등 대안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운동이라든가, 페미니즘이나 제3세계 미술, 디지털 미디어 등에 주목해 온 것도 비평의 위기 하에서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어 왔던 미학적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문화적 반성 내지는 그 한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 인류가 존재하는 한 미술은 항상 존재해 왔고, 이에 따른 우스갯 소리로 한 비평가는 미술의 속성을 바퀴벌레의 그것에 비유한 바 있다. 계속 존립 할 수밖에 없는 미술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써 유아독존적이었던 미술의 가부장적 위상을 격하시키고 상대적이고 주변부적이며 다원적인 특성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대타협의 시기에 도래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른 바 있다. 한국의 경우 이는 8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작가나 비평가들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켜 왔는데, 서구라는 체제의 범주 속에서 발생한 문화현상을 보다 특수한 우리의 문화 체계에 무차별적으로 대입시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모더니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아방가르드정신 마저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그 표피적 양상만을 주목하여 그것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비판정신이나 저항정신을 도외시하고 순수성이나 자율성, 형식성 만을 주목하여 왔음을 자인해야 할 것이다.

이지현_굿모닝-제주_제주신문 뜯다_30×37×6cm_2019
정민숙_어울림_한지에 먹, 채색_50.3×50.3cm_2019
최정우_LIISE I II III_피그먼트 프린트_각 70×28cm_2018

이미 대세로 접어든 회화 ․ 조각 매체의 고정관념 파기에 따른 탈 장르화 경향이나, 산업사회의 잔유물이라든가 도시적 이미지, 일상적 이미지의 차용은 모더니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다정신이 사회의 분화 및 축적된 정보의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보다 확대 ․재편된 것이고, 리얼리즘 역시 종래의 고답적 표현방식을 파기하고 내용과 형식면에서 보다 폭넓고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단지 종래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에 한정되었던 비평적 양상이 편의상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리얼리즘으로 세분화되었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현 단계 미술의 양상이 70년대 이후 평면에서 입체로, 은유에서 서술로, 환원에서 확산으로, 형식에서 내용으로, 순용에서 반발로 그리고 창조에서 차용으로 갑자기 변모한 것처럼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이행의 국면은 분명 오늘날 미술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현상이 제대로 파악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성급한 이분법적 규명은 또 다른 그린버그적 도그마티즘을 잉태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 단계 미술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일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속성상 해체 이후에는 분명히 조립충동이 발동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자는 이야기다. ● 일말의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이르러 우리 미술계 상황과 연관하여 다양한 담론들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점은 세계가 하나의 초개성적 카테고리를 이루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의 적용 가능성과 한계를 검토한다는 측면에서 일단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주변과 중심의 개념이 와해되고 구조적 측면이 서술적 양상으로 변모된 오늘날 아직도 현대미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제주라는 척박한 토양 내에서 다시금 새로운 모드의 개성적 작업이 선보인다는 것은 시대에 걸맞은 다양성으로의 체질개선을 위한 전환적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 우리는 미술에서 시대적 표현 형식은 단순히 시각적 표현 가능성뿐 아니라 작품 제작의 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테크놀로지의 변천, 그리고 인식론의 변화에 따라 작품에 대한 사회 내에서의 평가 가치도 변증법적인 진화를 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성향은 우리 시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으며, 당연히 이는 필연적 현상이라는 단정도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금번 『헬로! 22』전은 변모하는 미술환경에 대응하여 예술의 가능성과 비판성은 늘 항상화(恒常化)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이경모

Vol.20191202e | 헬로!22-담소 미술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