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생탈출기

박영경展 / PARKYOUNGKYOUNG / 朴嶸耿 / installation   2019_1209 ▶︎ 2019_1215

박영경_혐생 탈출기_유리창에 출력_150×167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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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2019_1209_월요일_11:00am~03:30pm 2019_1210_화요일_11:00am~05:00pm 2019_1211_목요일_11:00am~02:30pm 2019_1212_금요일_11:00am~04:00pm 퍼포먼스 참여 가능시간

관람시간 / 11:00am~07:00pm

플랫폼 팜파 Platform Pampa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마길 39 www.instagram.com/platform_pampa

하하 깔깔 까르르르 잇몸 마르게 웃어제끼는 심청이가 상상 되는가? 사람들은 심청이가 심청전의 주인공이라 말하지만 심청이의 말 중에 고사와 아버지를 제외하면 쓸모 없는 자신에 대한 한탄 밖에 없다. 6세, 아비의 지팡이를 잡고 동냥을 돕다 11세, 홀로 동냥과 허드렛일을 하다. 15세, 아비의 눈을 위해 인당수에 간다. 정승상댁 부인이 삼백석을 대신 내어준다고 했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효녀 심청"으로 보이는가, 칭찬받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 당연해지다 못해 역할로 바뀌었다. 심청이의 죽음은 이런 현실의 고리를 끊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남성향 판타지나 여성향 로·판에서는 몇 년 동안 심청전의 구조(고난→죽음→이세계→신분상승)이 주류가 되어 반복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고난으로 대표되는 현실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그럼에도 삶은 계속 이어지기를 현시대 사람들도 소망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여기서 용궁의 의미를 다시 짚고자 한다. 용궁이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면 심청이는 왜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까? 왕비가 되어 다시 찾은 아버지와 인당수에 빠지기 전 아버지는 심청이에게 같은 의미일까? 현실 고난에 고리 끊기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용궁을 가야할까? ■ 박영경

박영경_친절하자_종이상자에 비단_12.5×17.5cm_2019
박영경_이해해야지_종이상자에 비단_17.5×12.5cm_2019
박영경_심청, 뱃머리 위에서_가변설치_2019
박영경_깨달음_가변설치_2019
박영경_풍덩_문에 영상설치_2019
박영경_깊은 바다안에서_천장설치, 240×180cm_2019
박영경_지우고 그리다._영상, 인형에 색칠_2019
박영경_존나25시_비단에 채색_가변설치_2019
박영경_용궁_2019

Vol.20191209c | 박영경展 / PARKYOUNGKYOUNG / 朴嶸耿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