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ttered 흩어지다

정보영展 / JEONGBOYOUNG / 鄭寶英 / painting   2019_1211 ▶ 2019_1221 / 일,월요일 휴관

정보영_한계지어지다 Being Limited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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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20세기 후기 이래 현대회화는 실재의 해체라는 맥락에서 재현을 더 이상 지시대상과의 연관성을 기하려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그 대신 실재의 부재를 현전시키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재현을 용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분명히 재현의 역사에 있어서 재현의 또 다른 면모의 것이다. 여기서 전 근대기에 풍미했던 리얼리즘적 재현을 떠나, 달라진 시대에서의 재현의 방법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근대성에서 금기시했던 소위 '재현'(representation)의 입지를 재조명하고 실재의 부재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른바 '부재의 현전'(presentation of absence)을 위한 재현을 문제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 근대회화가 실재론(實在論)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과 그 너머의 실재(實在, Reality)를 추구하며 근대이전과 의식적 대립에서 발전하였다면, 탈근대회화는 실재의 불가지성, 나아가 현전 불가능성을 주장하며 근대주의의 실재에 대한 믿음에 회의적 입장을 취한다. 탈근대의 세계상에서 실재는 어떤 식으로든 알 수 없는 것, 표현할 수 없는 것, 상실, 공허, 부재와 연관되며 여러 이론들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라캉(J. Lacan)은 '실재'(le réel)를 '불가능한 것'(l'impossible)으로서, 상징화와 형식화에 저항하는 것, 문자화와 표상화의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실재를 부재이자 공허, 소급적으로 구성된 심리적 구성물이라 언급하며 숭고한 대상이라는 신기루가 실재의 공허를 채운다고 주장한다. 리오타르(J. F. Lyotard)는 진실을 드러내는 무능력에 대해 "실재에서 물러남"이라 말하며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강조한다. 또한 예술 자체를 '현전 시킬 수 없는 것'(the unpresentable)으로 파악하여 칸트의 숭고개념과 차별화된 현대적 숭고를 언급하고, 하나의 사건, 출현으로서의 예술작품을 논한다.

정보영_한계지어지다 Being Limited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9
정보영_한계지어지다 Being Limited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9

이렇게 볼 때 탈근대회화는 리오타르가 언급한 바와 같이 '현전 시킬 수 없는 것' 을 '현전 시키고자 하는 행위 그 자체' (presentation itself)를 통해서 제시하고, 나아가 현전시킬 수 없는 것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의미의 현전'(new presentation)을 궁구한다. 이를 '부재의 현전'(pesentation of absence)이라 요약할 수 있다. ● 초기작이 재현의 절차를 도입하고 시점에 따른 시간 차이와 사건으로 부재의 현전을 제시하였다면, 근작은 이에 근거하여 실재의 부재에 대한 개념을 확고히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부재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 건축물 내부로의 빛의 유입은 작품제작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빛에 의한 자극은 제작의 동기적 측면이 되기도 한다. 빛은 재현의 기본 요소로 시각과 감각에 관련되기도 하지만 상징적 의미에서 신성하고 무한한 존재를 암시하기도 한다. 비물질적 요소인 빛은 물리적 공간과 결합함으로써 부재를 화면에 드러내는 가장 근본이 되는 측면이 된다. 또한 시간의 문제에 대한 논의도 빛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빛의 각도와 양에 따라 공간은 하나의 시점에 의해 합리적으로 구조화 되는 것이 아닌, 빛과 어두움의 영역으로 구조화 된다. 빛과 어두움의 영역 내에서 건축물은 전체의 구조보다는 그것의 표면의 흐름을 보여준다.

정보영_흩어지다 Scattered_캔버스에 유채_72.7×100cm_2018
정보영_투명한 그림자-흩어지다 Transparent shadow- Scattered_종이에 색연필_76×57.7cm_2019
정보영_흩어지다 Scattered_캔버스에 유채_45.5×37.9cm_2018

이와 같이 재현은 실재의 부재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부재의 현전을 위한 재현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부재는 공간에 시간과 사건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사건이란 들뢰즈(G. Deleuze)가 『의미의 논리』에서 말한 '순수사건'으로, 작품의 명제는 부정법으로 제시된다. '나뉘어지다'(divided), '다가오다'(approaching), '바라보다'(looking), '한계지어지다' (being limited), '어두워지다'(become dark), '겹쳐지다'(lie one upon another), '흐르다'(flowing), '사라지다'(disappearing), '흩어지다'(scattered) 등이 그것이다. ● 작품은 실재하는 건축물을 도입하여 공간 자체를 재현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하여 실재하는 공간을 통해 부재를 드러낸다. 부재의 요소로서 빛, 시간, 사건, 부재를 암시하는 소재들(촛불, 유리구와 유리병, 오르골, 빈 의자와 테이블 등)이 등장하며 이 요소들의 개입으로 소실점에 의해 구축된 공간은 파열된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오르골이 주요 소재로 보여진다. 화면의 전면에 부각되거나 사다리 위에 혹은 유리 진열대에 놓여진 오르골(orgel, 自鳴琴)은 시간이 지나면 멈추는, 시간의 지시물이 된다. 오르골은 태엽이 감긴 정도의 시간 동안만 울리며 매 순간 사라지는 멜로디를 통해 부재를 드러내는 지표로서 기능한다.

정보영_지나가다 Passing by_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17
정보영_사라지다 Disappearing_캔버스에 유채_65.2×80.3cm_2018
정보영_세우다 Lighting up_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18

공간에 테이블을 배치하고 테이블 위에 유리병 혹은 플라스크를 놓은 후 조명을 설치한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정물화를 그리기 위한 세팅으로 보이는 사물과 공간은 집중조명(spot light)이 투사되는 순간 극적인 사건으로 변모된다. 이렇게 극적 상황으로 연출된 장면을 수백 장의 사진에 담아내고 그림으로 재현한다. '흩어지다' (Scattered 72.7×100cm oil on canvas 2018) 는 견고한 사물들이 빛에 의해 단계적으로 사라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예측한다. 사물의 그림자 윤곽선이 빛의 중첩에 의해 단계적으로 옅어지고 흩어지고 산란되며 최종적으로 빛에 통합되는 장면을 예측하여 그 출발점으로 두 개의 빛의 투사를 제시한다. 이제 나의 건너편에 견고하게 존재하여 긴장상태에 있던 사물들은 빛에 의해 흩어지고 사라진다. ● 되돌아보면 '사실성(reality)을 향한 충동'이 그림의 큰 부분을 지배해왔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빛에 여과된 사실성, 연출된 사실성일 것이다. 텅 빈 공간 혹은 사물에 드리워지는 빛, 시간에 따른 대기 색조의 변화만큼 그리기에 대한 충동을 주는 요소는 없었다. '빛을 그린다는 것은 동시에 그림자를, 그림자를 그린다는 것은 동시에 빛을 그린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정물을 빌어, 공간을 빌어 빛을 그려온 지금, 지극히 근본적이고 자명한 이 문구를 떠올리게 된다. ■ 정보영

Vol.20191211h | 정보영展 / JEONGBOYOUNG / 鄭寶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