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ertain Landscape

송은영展 / SONGEUNYOUNG / 宋恩英 / painting   2019_1212 ▶︎ 2020_0131 / 일요일, 12월25일, 1월1~2일 휴관

송은영_51(터키석색 벽) 51(Turquoise Wall)_리넨에 유채_ 242.4×162.2cm×2(162.2×112.1cm, 162.2×130.3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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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영 블로그_https://blog.naver.com/erisong/ 송은영 페이스북_http://www.facebook.com/eunyoung.song.73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12월25일, 1월1~2일 휴관

아뜰리에 아키 atelier aki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32-14 갤러리아 포레 1층 Tel. +82.(0)2.464.7710 www.atelieraki.com

온화한 재현 속의 대조와 조화 ● 우리가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기본적인 수단은 오감(五感)이다. 아주 단순한 대상이나 단순한 현상은 오감 가운데 하나의 감각에 의존하여 인지하고 경험과 지식으로 그것을 규정할 수 있지만, 좀 더 복합적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감 가운데 다중적인 감각들이 복수로 개입하게 되며 그만큼 실체를 파악하는 데에도 복잡한 절차가 수반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인식의 과정에서는 단순함을 넘어 복잡하고 때로는 대조적인 감각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하나의 감각을 작동시키는 데에 있어서도 때로는 우리들 대부분이 선형적(linear) 인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를 교란할 경우에는 적지 않게 당혹스러워진다.

송은영_48(야자수) 48(Palm Trees)_리넨에 유채_112×193.9cm_2019

송은영의 작품은 반의적(反意的) 혹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분명하게 인식되면서도 최종적인 규정을 유보한 채로 화면 안에 그러한 요소들이 공존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고, 단순하면서 동시에 이중적이고, 뒤에 있으면서 동시에 앞에 있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송은영의 작품에서 안정적이고 온화한 이미지를 발견하면서도 동시에 그 이미지들의 배치가 가져다주는 비선형적 경험으로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하고 인지하는 인식이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불가지론(agnosticism)에서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듯이, 작가는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알지 못하고 제대로 본 것 같지만 실제로 보지 못한 대상을 시각적 영역에서 자신의 개성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 그렇다면 송은영은 무엇을 표현하려(혹은 표현하지 않으려)고 이러한 그림들을 그린 것일까? 작가는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화면에 '동시성'을 담아내고 있다고 말한다. 즉 송은영의 작품화면 속에 등장하는 일상의 장면들은 현실이면서 비현실이고, 현재이면서 과거 혹은 미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는 세잔의 조형적 탐구가 예술의 본질을 추구하는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는 세잔이 인상주의나 고전주의 가운데 어느 하나에 안주하지 않고 자연, 원근법, 색, 선, 깊이의 문제를 탐구하여 제3의 영역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하려 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의 동시성을 인용하고 있는 송은영의 화면은 곧 작가의 시각의 반영이며, 표현되는 것과 가려지는 것의 선택은 작가의 시선이 화면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시각적 불편함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송은영_46(파란 화분) 46(A Blue Plant Pot)_리넨에 유채_100×100cm_2019
송은영_49(네모난 햇빛) 49(Square Sunshine)_100×100cm_2019

송은영의 경우에는 가려져 있거나 소외된 사물을 드러내기 위하여 후경이 부분적으로 전경을 침범하는 화면을 구성하여 우리의 경험이 부여해주는 인식에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를 구현하는 방법으로서 화면 안에 전경과 후경의 경계 지점을 설정하고 이곳에서 우리의 시각적 경험과 논리적 인식을 교란시킨다. 이러한 방법은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다. 한 화면 안에 낮이면서 밤이 나타나고, 무거우면서 가볍고,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들을 담고 있는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우리의 의식을 전복시키고 조롱하며 오히려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의존한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거대한 비극과 충격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송은영이 살아가는 현대의 상황과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세부적으로 관찰해보면 송은영의 작품에서는 전복이나 조롱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으며 오히려 작가가 선택한 모티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발견된다. ● 송은영의 작품에서는 가려져 있거나 소외된 사물들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화면이 구성되고 있으며, 작가는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Vermeer)가 구성하는 화면의 미묘한 감각과 그 안에 숨은 듯하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하면서 빛의 농도에 의해 은은하게 드러나는 사물들과 공간에 더 관심을 가져왔다. 사망 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평론가 테오필 토레에 의해 발굴된 베르메르는 당시의 어느 작가보다도 물감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화면 속의 빛의 작용을 능숙하게 다루었던 작가로 평가된다. 아마 이러한 점이 송은영으로부터 눈길을 끌 수 있었던 것이다.

송은영_44(복도) 44(Hallway)_리넨에 유채_145×97cm_2018~9

송은영의 화면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충돌은 초현실주의적 조롱과 부정보다는 일상의 평범한 공간을 대상으로 하여 인식의 불변성에 대한 재고와 제 3의 인식을 유도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에 있어서 과격하지 않고 낯설지 않게 평범한 일상의 공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묘사 기법에 있어서도 충실하고 밀도 있는 사실주의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면에서 중첩되고 침범하는 이미지들의 공간은 낯설기는 하지만 불안하기보다는 우리의 경험과 인식으로 형성된 고정관념이 진정 참(truth)일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보게 유도하는 장으로서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 작품 제작 방식에 있어서 송은영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한 작품 한 작품을 완성시키는 스타일의 작가다. 작가가 의도하는 색채의 미묘한 뉘앙스를 찾아내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사물의 경계를 부드럽게 표현함으로써 화면 전체에 긴장과 대립보다는 온화함과 부드러움이 잘 드러난다. 작가는 유화 작업을 유지하면서, 자칫 복잡하고 모호할 수 있는 주제와는 별도로 이미지의 표현에 있어서 세심하게 색채를 다루고 있으며 색채들 사이의 대조와 조화에 대해서도 적지 않게 집중력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다. 아폴리네르는 "순수한 회화는 재현이 아니라 하모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는 송은영의 작품에서 능숙한 재현과 함께 대조와 하모니를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잠시 아폴리네르를 떠올려 보았다. ■ 하계훈

송은영_45(상자와 창) 45(Boxes & Window)_리넨에 유채_112.1×162.3cm_2019

"Elle(la peinture) seule nous apprend que des êtres différents, "extérieurs", étrangers l'un à l'autre, sont pourtant absolument ensemble, la "simultanéité". (Merleau-Ponty, L'Œil et l'Esprit(1964), Paris, éd. Gallimard, 1997, p.84) 오직 그림만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서로 '외부적이고' 낯섦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함께 있음을, 즉 '동시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메를로-퐁티, 눈과 마음(1964), 갈리마르, p. 84) ● 작업을 하는 동안 늘 떠나지 않는 물음들, '내가 왜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예전에는 왜 그렇게 했었나? 무엇을 원하고 있지?' 어느 순간 이 물음에 대한 대답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가 있다. 먼저 다가온 '그림'을 따라가며 그려내고, 나중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과정은 나의 삶과도 닮아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대답들이 가슴을 뛰게 하겠지만. ●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던 어느 날 불현듯 '나의 그림 안에는 서로 다른 것들이 동시에 기어코 함께 있다' 라는 말이 되뇌어졌다. 그리고 나의 상념은 바로 메를로 퐁티 (Merleau-Ponty)가 언급한 '동시성'으로 이어져갔다.

송은영_52(An Indigo Blue Turntable)_리넨에 유채_97×145.5cm_2019

작품 속에서 풍경들은 사물과 공간의 경계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단절되고, 이 지점에서 가려져 있는 후경의 사물/공간이 전경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이 비현실적 어긋남은 덮여 있거나 가려져 소외된 사물을 드러내면서 사실적인 이미지와 수수께끼처럼 뒤섞인다. ● 또한 나의 작품 속 장면들은 종종 2개의 캔버스로 분할되거나, 꺾여서 배치되는 설치 작업의 형태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것은 관객이 규정한 지각의 습관에서 벗어나 '눈과 마음'을 열고 낯선 경계들을 감지하기 바라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 나는 나의 작업이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고, 공간적이면서 평면적이며, 뒤(밖)에 있으면서 앞(안)에 있고, 명확하면서 모호하고, 전체적이면서 부분적이고, 단순하면서 이중적이고,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기를 원한다. ● 그리하여 서로 낯설고 반의적인 요소들이 규정되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 같이 공존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비확정적 풍경(Uncertain Landscape)이다. ■ 송은영

Vol.20191212c | 송은영展 / SONGEUNYOUNG / 宋恩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