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이정록展 / LEEJEONGLOK / 李政錄 / photography   2019_1212 ▶︎ 2020_0205 / 월요일 휴관

이정록_Santiago 05_C 프린트_120×16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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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홈페이지_www.leejeonglok.com

초대일시 / 2019_1212_목요일_03:00pm

소울아트스페이스 개관 14주년 기념展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주말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소울아트스페이스 SOUL ART SPACE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 해변로 30 Tel. +82.(0)51.731.5878 www.soulartspace.com blog.naver.com/soulartspace www.instagram.com/soulartspace www.facebook.com/soulartspace

산티아고가 기다렸다 ● 이정록과 대화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가 작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종교와 관련한 일을 했을 거라고. 그만큼 이정록은 작업에 담고자 하는 내용을 탐색하는 과정과 함께 불명확하고 언어로서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길'을 간다. 그런데 그 행보가 일견 매개자의 그것과 비슷하다. 알려졌듯 신적 존재와 인간을 연결해 주는 존재를 '영매(靈媒, medium)'라 한다. 다다를 수 없는, 아니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없는 존재는 인간이 이성으로 인지할 수 없는 세계에 존재한다. 그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이정록이다. ● 이정록이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여는 개인전 『the Way』는 그의 「생명나무」, 「나비」 연작을 비롯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조우한 그의 역할과의 소통을 펼친 자리다. 1, 2부로 나눠 열리는 이번 전시는 회고와 현재의 이정록을 이전 작업과 신작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 먼저 이정록의 이전 작업을 보자. 「신화적 풍경(Mythic Scape)」, 「사적 성소(Private sacred place)」, 「생명나무(Tree of Life)」, 「나비(Nabi)」 연작은 앞서 언급한 매개자 이정록이 대상과 그것이 존재하는 장소와 교감한 흔적이다. 그 흔적을 보여주는 요소는 바로 '빛'이다. 그의 프레임에는 주요한 대상인 자연, 나무 혹은 오랜 역사의 공간이라는 분명한 가시적 대상과 더불어 작가적 시각으로 발견한 비가시적 요소가 원형 혹은 문자, 나비 등 빛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이정록의 작업을 대하는 관람객은 먼저 작업에 들였던 그의 테크니컬한 요소에 경탄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정교하게 계산된 그의 프레임은 더러는 흔한 디지털 후작업으로 완성하지 않았냐는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작가노트를 읽어보면 작가는 그와 자연이 교통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해 과장된 수사(修辭)를 동원한 것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 교통의 과정을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획득해냈다. 아니 획득하고 이룩한 것이 아니라 기다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막상 촬영장소에서 카메라 가방을 열지도 못했던 그가 대상에서 발견한 에너지를 자신과 연결 짓고 교신하며 그것을 모자람 없이 표현하려한 작업 과정은 과몰입만으로는 이룩될 수 없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 "나는 햇살 좋은 날, 영겁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한 광활한 갯벌이나 해뜨기 직전의 안개 자욱한 호수 같은 풍경을 대할 때면 하늘에서 신령스런 알이 내려와 우리 미래를 감당해 낼 그 누군가가 탄생할 것 같다." (작가노트, 2007)

이정록_Santiago 19_C 프린트_120×160cm_2019

이정록의 작업실에서 이뤄진 대화를 복기해보니 마치 TV에서 방영되는 오락프로그램의 '스피드 퀴즈'와도 같았다. 제한된 시간 내 최소한의 단서로 적확한 어떤 '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진 오답과 그것을 정정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가 찾아내고자 하는 답은 우주에 오로지 하나만 있었다. 그의 작업을 설명하거나 분석할 언어를 찾는 일이 '0'에 수렴한다는 의미와 같다. ● '있으나 없다'라? 그래서일까? 이정록이 발견한 대상의 에너지 혹은 기운은 쉽게, 기술적인 완성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 박힌 "오묘한 색감, 조형적인 구성"의 그 광경이 필름의 잠상(潛像)에서 인화지에 자리 잡았을 때 부지기수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것은 완벽주의자의 유난스러움이 아니라 그가 발견한 형상이 작업의 과정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며 그만이 알고 있는 그 광경이 실로 창대한 것임을 의미한다. ● 그렇다면 그의 작업은 대단히 종교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현대미술은 물론이거니와 미술의 역사 내내 종교성은 미술과 반목했다. 이를 상기해보면 이정록은 대단히 위험한 주제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신성의 비재현, 비가시화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과학이나 언어 모두가 그에게 뾰족한 답을 주지 않아 그가 작품에 임하면서 종교적 태도를 벗어날 어떠한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정록이 산티아고를 찾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산티아고가 이정록을 기다렸다는 말도 맞다.

이정록_Santiago 23_C 프린트_150×200cm_2019

이정록의 이번 개인전에 등장하는 장소는 이미 대표적인 순례지로 카톨릭이나 기독교 교인이 아니더라도 전세계 탐방객들이 모여드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이다. 프랑스령(領)인 생 장 피에드 드 포르(S.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 피렌체 산맥을 넘어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거쳐 이른바 유럽의 '땅끝'으로 불린다는 피스테라(Fisterra)까지 이르는 900km의 머나먼 길. 작가는 과거 이곳을 걸었던 이들이 만든 길에서 무엇을 만나려 한 것일까? 그 멀고 편치 않은 순례길. 이 길을 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순례(pilgrimage)는 "종교상의 여러 성지나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행위"다. 보통 순례 행위의 이유는 그 장소가 특정 종교의 경전의 내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성립하기 위한 여러 조건이 있지만 창시자와 경전, 그리고 그 추종자가 존재해야 하는데 순례는 바로 경전에 등장하는 여러 상황을 확인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며 고단함을 수반한다. 이를 통해 신자로서 공통된 의식을 확인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영향 미치게 한다. 독립큐레이터 수전 솔린스(Susan Sollins)는 "우리 자신과 주변 세상의 연관에 대해 숙고하며, 설명할 수 없어 보이는 경험에 대해 검토한다"는 말을 했듯이. ● 그의 이번 신작은 여정에서 만난 화려한 공간보다 그와 충분히 교신한 장소에 천착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낯선 장소와 작가 자신을 부딪치게 하여 이미지화한 흔적"의 결과물이다. 자신이 여기에서 발견한 빛이 길을 따라 이어졌기도 했고 역으로 길이 빛으로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걸었던 길이기도 하지만 이정록이라는 순례자가 새롭게 닦은 길도 발견할 수 있다. 길의 형태가 아닌 장소에서 발견한 에너지가 원형 혹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과도 같은 조가비 형태로도 드러나 있다. 그가 이전 작업을 통해 선보였던 나비는 '영혼'과 '선지자'라는 동서양의 의미가 중첩된 바, 종교적 성지라는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와 의미와 어우러져 영성성의 상승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이정록은 과함을 경계하는 듯했다. 종교성을 그의 여정에서 극단적으로 제한했고 오히려 밀어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이정록_Santiago 27_C 프린트_120×160cm_2019

이정록은 바로 자신의 삶에 영향 미치는 요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알고, 인식하고 최종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이번 작업을 벌인 것 같다. 온전히 스스로 내부에 억압됐던 생각들. 작가는 대면하기 싫어 묻어둔 자신의 모습은 온전히 스스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을 것이다. 그래야만 그가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상의 에너지를 자신과 동기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자신이 작업을 하는 이유라고 믿는 이정록이다. ● 이정록과의 대화에서 그가 한 말이 있다. "내가 작업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작업이 나를 이끌었다"라고. 얼핏 그의 이러한 발언을 보면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어떤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이 투영됐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른바 종교의 수행을 거친 이들이 다다르는 무아의 상태 혹은 작업이 스스로 그러하게끔 만들며 작가적 개입(욕망)을 최소화하려는. 하지만 이 말과 달리 그는 지독히도 스스로를 몰아가는 작업을 한다. 그가 완성이 아니라고 말한, 그의 작업실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작업 「생명나무」가 그 증거다. ● 글의 마지막은 그에게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물었던 필자의 질문에 답한 그의 말로 마무리 해야겠다. 그의 말이 묘하게도 그간의 작업과정을 함축해 설명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정록은 다다랐던 곳을 목적지로 삼지 않는다. 잠시 배낭을 벗었던 곳이 중간 기착지였던 것이다. 곧 채비를 할 그이다. ● "걷다보니 목적지는 숙소가 아니라 길이었다."황석권

Vol.20191213g | 이정록展 / LEEJEONGLOK / 李政錄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