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앉아 있던 공(空) an empty space sitting green

박형진展 / PARKHYUNGJIN / 朴亨珍 / painting   2019_1213 ▶︎ 2019_1224 / 월요일 휴관

박형진_9월_모눈종이에 채색_53.7×78.5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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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213_금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서울특별시_문화체육관광부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온그라운드_지상소 ONGROUND GALLERY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3 (창성동 122-12번지) Tel. +82.(0)2.720.8260 www.on-ground.com facebook.com/ongroundgallery @ongroundgallery

풍경의 시대_박형진은 주변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그 풍경은 일상적인 풍경이되 평화롭거나 픽처레스크 하기 보다는 작가가 일상생활 중에 지속적으로 관찰하게 된 변화나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는 풍경이다. 작가는 "매일 지나다니며 벽으로 마주하던 담장, 그 속의 땅,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장소, 누군가의 반복된 행위, 변화하는 풍경, 모눈종이,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 등"이 작업의 주된 소재라고 말한다. 1) 특히 그는 도시외곽에서 성장하면서 난개발로 인해 무질서하게 전개되는 풍경의 변화를 목격하였고, 이 모든 광경이 인간의 욕망과 자본의 논리라는 측면에서 함부로 다뤄지거나 방치되기를 반복하며 펼쳐진 풍경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렇게 난폭하게 다뤄진 풍경이 도시 외곽뿐만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서도 바리케이트 한겹을 사이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도 상기시킨다.

박형진_푸르게 앉아있던 공展_온그라운드 지상소_2019

지난 여름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 레지던스 내 전시공간에서 개최한 박형진의 개인전 『얕은 기록』은 작가가 이곳에 체류하면서 관찰한 작업실 주변 풍경을 그린 작업들과 작가의 이전 작업들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였다. '얕은 기록'이라고 칭한 전시제목으로 보아 작가는 이 전시를 한시적인 체류자로서의 기록이자 작업으로 여긴 듯하다. 그는 양주 레지던시에서 생활과 작업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작업실을 이곳으로 옮겨 오며 나는 5층의 작은 방에서 창을 통해 풍경을 마주한다. 창문 가까이 의자를 두고 앉으면 보이는 요양원의 창과 불빛, 할머니, 시계, 창문과 떨어져 테이블을 두고 의자에 앉았을 때 보이는 전면의 산, 시간이 주는 풍경의 변화를 바라보며 앙상한 가지뿐이었던 겨울에는 가지뿐인 나무를 그렸고 여름으로 넘어가며 짙어진 녹색을 마주하면서는 내가 가진 초록의 물감을 펼쳐두고 눈앞의 여름 숲의 초록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2)

박형진_7월부터 12월_모눈종이에 채색_161×157cm_2019

작가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형진의 작업은 가까운 거리에있는 풍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 및 기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는 교외 풍경이라고 하면 언뜻 한적하고 평화로운 자연 풍광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작가가 보는 풍경은 자본의 논리로 땅의 가치를 환산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환경이다. 이는 현재 작가가 체류 중인 레지던시 주변의 풍경이기도 하고, 과거 그가 성장한 동네의 풍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도심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작가의 이전 작업인「주인 있는 땅_송현동 48-1」(2015)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였으나 거대 자본이 설치해 놓은 높은 담으로 인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땅의 풍경화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탓에 일반인들에게는 미스테리했던 이 땅은 이곳이 소재한 지역의 역사적 맥락이나 현재 주변 시설에 대한 세심한 고려 없이 오직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라는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개발이 잠정 중단되었음을 보여주는 듯 잡풀이 무성해진 담장 안의 풍경과 달리 박형진은 담장 밖의 풍경을 그리지 않고 여백으로 비워두었다. 마치 실제 장소에서 이 부분만 오려낸 것처럼 묘사한 이 그림은 오늘날 우리가 땅을 어떻게 인식하고 다루는지 보여준다. 높이 둘러져 있는 담장은 우리가 땅을 전적으로 소유의 개념에 입각해 인식하고 있으며, 잡풀이 무성한 땅의 모습은 자연으로서 보호되기 보다는 자본의 개발 논리에 의해서 땅이 다뤄지고 있음으로 보여준다.

박형진_초록 창문 시간_모눈종이에 채색_29.7×21cm_2019 박형진_태풍_모눈종이에 채색_42×30cm_2019
박형진_푸르게 앉아있던 공展_온그라운드 지상소_2019

오늘의 우리가 자연과 땅을 땅을 더불어 사는 자연이 아니라, 자본이자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박형진의 회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주인 있는 땅_송현동48-1」에서처럼 담장을 경계로 하여 안쪽의 사유지를 묘사하고 여백은 과감히 비워두기도 하고,「좁은 방 넓은 들」(2016)에서는 집단묘지의 분묘를 일일이 그려 넣었다. 낮은 능선 자락을 밀어내 집단묘지로 개발한 광경은 우리가 교외에서 종종 목격하게 되는 풍경이다. 여기에 분묘자리로 일일이 묘사된 사각형은 대략 우리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갈 때 소유하게 되는 면적이다. 또한 이 그림 표면 전체에는 지도에서나 볼 법한 세필로 그은 모눈 눈금과 망점이 규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 전면에 고르게 그어진 눈금은 지도에서처럼 마치 측량의 단위를 제시하는 듯하다. 동시에 회화적으로는 원근이 있는 공간적 묘사에 올오버, 즉 전면적인 평면성을 겹쳐 놓는다. 그럼으로써 회화가 재현한 풍경의 공간감을 모눈 눈금이 방해하게 된다. 이것은 자본이라는 잣대로 땅과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도 같다.

박형진_보이지 않아도 보았다고 말하던 밤_01_장지에 먹_56×43cm_2019
박형진_주인있는 땅_성북동_장지에 먹, 혼합재료_130×194cm_2019

「좁은 방 넓은들」에서처럼 작가에게 모눈 눈금은 인간이 자연의 개발과 소유를 위해 측량하는 잣대를 연상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작업을 위해 작가가 풍경과 마주한 시간의 단위이기도 하다. 그는 모눈종이에서 시작해서 전지로 작업을 발전시키기도 하며, 어떤 작품은 모눈종이에서 시작해서 모눈종이에서 마무리된다. 「초록 창문 시간」 시리즈는 작가가 양주 작업실 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을 담았다. 그는 거의 매일 같이 일정한 시간 동안 창 너머로 보이는 자연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녹색 물감의 색조를 통해서만 기록했다. 수십장의 모눈종이에 담긴 물감자국은 그가 창밖의 풍경을 내다본 시간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동시에 자연이 자연적으로, 즉 인간이 아무것도 가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풍경을 장면이자 공간으로만 인식하는 우리에게 풍경이 담지한 시간을 주지 시킨다.

박형진_점이 있던 자리_장지에 먹_168×172cm_2019
박형진_흘러내리는 벽_01_장지에 먹_56×43cm_2019 박형진_네모난 벽_장지에 먹_56×43cm_2019

서양 회화사에서는 풍경화를 통해 시대, 정치적 상황, 종교, 이데올로기, 계급 문제 등을 읽어내곤 한다. 박형진의 회화 역시 21세기 특정한 시대를 사는 우리가 자연을 어떤 논리에 의해 개발하고 다루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대적 풍경이자 정치적 풍경이다. 우리는 풍경화를 자연에 충실한 중성적인 성격의 장르로 이해하기 쉽지만 어쩌면 자연의 충실한 묘사라는 것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박형진이 '얕은 기록'이라고 칭한 그의 작업들은 오늘의 우리가 자연에 투사한 욕망이 얼마나 시대적인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 이성휘

* 각주 1) 박형진, 『얕은 기록』(2019.7.30-8.11,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갤러리777)의 전시도록에 수록된 작가의 글에서 인용. 2) 위의 글에서 인용.

Vol.20191213h | 박형진展 / PARKHYUNGJIN / 朴亨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