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등대

이원철展 / LEEWONCHUL / 李源喆 / photography   2019_1217 ▶︎ 2019_1229 / 월요일 휴관

이원철_불 꺼진 등대_감포, 경주_피그먼트 프린트_141×191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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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비트리 갤러리 B-tree gallery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94 홍익대학교 홍문관 1층 Tel. +82.(0)2.6951.0008 www.b-treegallery.com

2014년 4월 「TIME」 시리즈로 개인전을 하는 동안 세월호 참사라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선박의 균형을 유지하는 평형수를 빼고, 대신 화물을 과적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사태를 수습하고 승객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위치에 있는 선장은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먼저 배 안에서 빠져나왔다. 객관적으로 알려진 사실 외에도 사건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무수히 많았고, 언론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빗대어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이원철_불 꺼진 등대_강정, 서귀포_피그먼트 프린트_141×188cm_2017

그럼 한국사회의 단면은 무엇일까? 수십 년 동안 경제성장을 목표로 달려오며 등한시한 개인의 인권과 뒤늦은 민주화... 그 사이에 신자유주의와 함께 찾아온 배금주의(拜金主義) 1) 가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대학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수천억원의 적립금을 쌓았으며, 종교집단의 불법세습과 성직자들의 성추행 등 부조리한 모습은 뉴스를 통해서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한 나라의 앞날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인해 파면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다 하지 못했다. 학교가 만들어진 목적, 종교가 생겨난 목적, 대통령이란 자리를 만든 목적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리더 역할을 해야 할 기관과 사람이 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원철_불 꺼진 등대_한경, 제주_피그먼트 프린트_105×140cm_2017
이원철_불 꺼진 등대_돌산, 여수_피그먼트 프린트_141×188cm_2017

「불 꺼진 등대」는 이런 한국사회의 모습을 '등대'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사진작업이다. 등대는 어두운 밤에 뱃사람들이 안전하게 항해하고, 무사히 육지로 귀환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러한 등대에 불이 꺼졌을 때 배는 암초에 부딪혀 난파하거나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등대'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제 역할을 못 한다면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원철_불 꺼진 등대_기장, 부산_피그먼트 프린트_105×140cm_2019
이원철_불 꺼진 등대_송도, 부산_피그먼트 프린트_105×140cm_2017

등대를 소재로 삼아 작업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다. 물론 세월호가 등대에 불이 꺼져 있어서 암초에 부딪혀 난파된 것은 아니지만, 배경이 바다라는 점과 등대에 불이 꺼져있을 경우에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유사점을 차용해 세월호 참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불 꺼진 등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은유적 기념사진 2)'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원철_불 꺼진 등대_기장, 부산_피그먼트 프린트_141×188cm_2017

두 번째 이유는, 등대가 갖고 있는 본질적 의미 때문이다. 등대는 항로 표지의 하나로, 바닷가나 섬 같은 곳에 탑 모양으로 높이 세워 밤에 다니는 배에 목표, 뱃길, 위험한 곳 따위를 알려 준다. 불을 켜 비추는 시설이란 뜻도 있지만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 주는 사람이나 사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의미도 있다. 후자의 의미로 불 꺼진 등대를 해석하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 길을 제대로 밝혀 주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 꺼진 등대를 촬영대상으로 삼았다.

이원철_불 꺼진 등대_해운대, 부산_피그먼트 프린트_105×140cm_2017

세 번째는 등대 자체가 갖고 있는 은유성 때문이다. 등대는 불을 밝힘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다른 불빛(인공광)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이나 공간을 밝힌다. 예컨대 가로등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역할보단 길이나 지나가는 차와 사람을 밝힌다. 하지만 등대는 다르다. 자신의 위치,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위치를 알림으로써 그 밑에 보이지 않는 암초의 존재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벤야민이 프루스트의 글에는 메타포가 있다고 말하면서 비유한 '어부의 팔뚝 3)'과 같다. 그물이 바닷속에 있어서 고기의 양은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어부의 팔근육을 통해 수확량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등대의 불이 지시하는 것은 등대 자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암초의 존재를 은유한다. 이런 등대의 은유성은 예술적 행위와 맞닿아 있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 예술이 등대라면 현실은 암초인 것이다. 예술이 지시하는 것은 결국에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등대가 갖고 있는 은유성과 예술적 속성이 닮았다는 점이, 이번 작업에서 등대를 소재로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이원철_불 꺼진 등대_다대, 부산_피그먼트 프린트_105×140cm_2019
이원철_불 꺼진 등대_영도, 부산_피그먼트 프린트_105×140cm_2018

「불 꺼진 등대」 작업이 지시하는 것은 현실(사회) 중에서도 등대처럼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기관과 자리(사람)이다. 그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목적론을 기준으로 삼았다. 등대를 만든 목적이 불을 밝혀 항해하는 배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불이 꺼진 등대는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이고 만든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든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맞지 않게 왜곡되게 기능하거나 목적을 상실할 경우 배가 난파되듯 우리사회도 암초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불 꺼진 등대」 작업은 목적론을 빗대어 사회의 흐름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데 본 작업의 목적과 의의가 있다. ■ 이원철

* 각주 1) 배금주의(拜金主義),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하여 삶의 목적을 돈 모으기에 두는 경향이나 태도 2) 기념사진(紀念寫眞)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어떤 일에 대하여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간직하기 위하여 찍는 사진'이란 뜻을 갖고 있다. 3)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언급하며, 프루스트의 글에는 메타포가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프루스트라는 어부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을 때, 바닷속에 있는 그물에 고기가 얼마나 잡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부(프루스트)의 팔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Vol.20191217h | 이원철展 / LEEWONCHUL / 李源喆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