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 形 省 察 Reflection on Formativeness

이정목展 / LEEJEONGMOK / 李征穆 / photography   2019_1219 ▶ 2020_0111 / 일요일 휴관

이정목_Untitled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6×130cm_2014~9

초대일시 / 2019_1219_목요일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초이 GALLERY CHOI 서울 마포구 토정로 17-7 Tel. +82.(0)2.323.4900 www.gallerychoi.com

파괴(破壞), 그리고 공감(共感) ● 사진이란, 시각이미지를 본질로 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한 수단일 뿐이다. 문자라는 도형적 기호가 업무용 메일이나 연구보고서를 구성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이들은 그래서 그 기능과 역할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도구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적 도구일 뿐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사진은 시각적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다른 어느 경우보다 가장 분명하고 사실적이며 기계적인 소통의 도구이다. ● 하지만 사진이라고 해서 단지 기록과 전달의 장치만으로 의미를 제한받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자판기를 두들겨 만들어낸 문자가 때론 편지가 되고 시가 되어 가슴을 적시듯이 사진도 비록 셔터를 눌러 만들어 낸 화면일 뿐이지만 이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때로는 느끼게 하고 공감하게 하며 이해하게도 해 준다. 사진 또한 다분히 창의적인 역량으로 예술로서의 성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 물상과 상황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어느 경우보다 객관화되고 시각화된 경로인 만큼 사진은 이러한 기능을 적극 응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조형예술의 한 축으로 성장시켜 왔다. 심지어 사진은 카메라의 기계적인 조작과 활용을 통해 스스로를 환상적 대상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구현해내는 대단히 특별한 예술방식으로 특화시켜 왔다. ● 그래서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록과 예술 사이의 폭은 다른 매체에 비해 매우 넓고 다양하다. 그리고 그 성격은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예술로서의 사진이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창작경로이며 매우 독특하고 어려운 영역이다.

이정목_Empathiz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70cm_2015

에드워드 웨스톤(Edward Weston)은 말한다. "훌륭한 사진(구도)의 탄생은 오로지 열심히 피사체를 보는 것(Way of Seeing)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창조적인 노력이 그러하듯이 사진예술의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개개인의 누적된 역량에 비례할 뿐 누군가에 의해서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오늘의 자리에서 이정목을 새삼 떠올리며 그와 그의 사진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사진을 안다. 학술적이거나 교육적인 의미에서의 사진 지식보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미묘한 역량에 대해 체감해 온 그만의 축적된 역량이 결코 적지 않다는 말이다. 웨스톤의 말에서처럼, 사진이 스스로를 예술로 만들기 위해 강력하게 요구했던 이른바 '누적된 역량'을 이정목은 자신의 삶 속에서 꾸준히 쌓아 온 것이다. ● 실내건축 디자이너로서 이정목은 건축물의 기능과 역할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고, 그런가 하면 좀 더 새로운 그리고 좀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꿈꾸면서도 사진을 찍어 왔다. 그래서 디자이너인 그는 카메라의 호흡을 감지하며 카메라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디자인에 접목해 낼 수 있는 결코 흔치 않은 역량의 소유자다.

이정목_Concrete,Romanc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6×50cm_2019

이정목은 그래서 사진과 디자인의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낼 수 있는 전문가이면서 이들을 통해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고 대상을 분석하며 대안을 모색할 줄 아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자신의 꿈을 디자인하고 이를 사진으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인 셈이다. 특히 나는 이정목의 사진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논의 중에 '건축물과 파괴의 접점'에서 그가 찾아낸 사진예술에 많은 비중과 관심을 두고 살펴보고자 했다. 이들 사진의 경우 결코 그 노력과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유(類)의 사진이 가진 희소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이들 사진이 주는 문명사회와 인간에 대한 자기 성찰의 계기라고 하는 것이 결코 작지 않은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를 이렇게 적절한 구도와 화면으로 완성시켜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파괴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재료 및 외적조건에 의해서 하나의 것이 2개, 혹은 그 이상의 것으로 분리되는 현상이다." 그렇게 보면 파괴의 의미란 일차적으로는 이미 있는 것의 해체라는 뜻이지만 이차적으로 본다면 파괴에 의해 새롭게 생산되는상황이나 양태의 제작과정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니 건축물의 파괴 과정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구성해 내는 것은 또 다른 생산의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창조적인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정목의 이러한 노력과 포착과 완성의 조화(調和)를 눈여겨보고자 하는 것이다. ● 사실 파괴의 과정(Fracture mechanism)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고 많은 준비와 실행이 필요한 일이다. 실제로 건축물의 파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수의 도구와 작업과 사람이 참여해야만 한다. 그래서 파괴는 협업이며 관계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정목_Concrete,Romanc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6×50cm_2019

작가 이정목은 이러한 과정과 이 과정에 참여하는 수많은 기구들과 그 기구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 기구들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시선을 사진 속에서 펼쳐내고 있다. 파괴의 현장에서 그가 찾아낸 현장의 의미는 그래서 병존, 협력, 동작, 정지, 그리고 움직임과 힘, 순간과 지속 등등의 실로 지워지지 않는 수많은 감성들이다. 특히 그의 사진에서 내가 찾아낸 것은이러한 감성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이해 그리고 더 나아가 공감(Empathize)의 흔적이 사진 속에 오롯이 자리해 있다는 점이다. ● 특히 작가 이정목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집합주거지(Apartment)라는 조형물은 이러한 공감의 자취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아파트는 지극히 일상적인 그래서 가식도 허위도 없었던 인간의 삶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아파트라는 건축물 자체도 토지의 선정과 신축공사와 보수와 철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생로병사로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서도 공감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아파트를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공감의 자취를 소중히 여기는 일종의 애정 어린 몸짓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파트를 디자인하고 아파트 안에서의 일상을 디자인했던 디자이너 이정목에게 아파트는 결코 무기질의 사물이 아니다. 반려상대에 준하는 생명체이다. 그러니 이정목에게 아파트의 해체란 반려상대의 죽음이며 동시에 새로운 방식의 탄생이라는 복잡한 공감(共感)으로 다가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런 이유에서 이정목의 아파트 사진 그 중에서도 아파트 해체의 사진들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공감의 재구성이라고 하겠다.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시선을 두고 초점을 맞추어 직접 태그(Tag)를 놓아가며 의미를 부여하고 정리해 놓은 아름다운 공감이다.

이정목_Concrete,Romanc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6×50cm_2019

새삼 독자로서의 공감이 뒤따른다. 파괴와 해체의 공간을 담긴 사진을 보면서 내게 들려 오는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 "이제 파괴된 자리에 있던 아파트는 어디에도 없지만 파괴와 함께 어디에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 왔던 모든 우리들의 삶 역시 이제부터는 어디에나 있는 가슴 따뜻한 기억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구축과 파괴는 서로 다르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 또한 그러하다.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지극히 즉흥적으로 살아 왔던 날들의 익숙함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지간히 소중하기도 하다." ● 사회가 복잡해지고, 문화적 활동이 다양해질수록 이정목 작가처럼 파괴되는 건축물에서 조형적 향기를 찾으려는 몸짓은 더욱확산될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말할 것이다. 그런 변화의 맨 앞 자리에 이정목의 시선이 놓여 있다고 말이다. ● 아무튼 이번 사진전에서의 성과는 이정목의 몫이다. 그만의 '새로운 바라보기'는 분명히 날카롭고 예리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찾아 낸 그만의 공감능력은 새롭고 의의가 큰 작업이었다. 리고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 순간도 예술작품을 목표로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순수했던 그의 진실이 이루어 낸 쾌거이기도 하다. 우리를 향해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보게 했던 이정목의 사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 김성현

Vol.20191218g | 이정목展 / LEEJEONGMOK / 李征穆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