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l-I see you

정선영展 / CHUNGSUNYOUNG / 鄭善英 / painting   2019_1220 ▶ 2019_1231 / 주말,공휴일 휴관

정선영_The wall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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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5:30pm / 주말,공휴일 휴관

성북동 작은 갤러리 Seongbuk-dong Small Gallery 서울 성북구 혜화로 88 1층 Tel. +82.(0)2.2241.5004

정선영의 첫 번째 벽을 마주하며 ● 누군가 이젤 너머 작업실의 빈 벽을 그리고 있어요.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벽이어요. 그리고 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논밭, 나지막한 구릉, 그리고 하늘과 구름을 그리고 있네요. 다 그렸나 싶었는데 그 풍경 위에 선을 그어대고 면으로 나누고 색을 입히고 있어요. 일주일 뒤, 그리고 또 일주일이 후에도 그림은 계속 전면적인 변화를 거듭합니다. 저 그림이 대체 무엇이기에 뜨거운 여름과 그토록 스산한 가을이 다 가도록 덧칠에 덧칠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요. ● 들판이, 아니 논과 밭이 벌떡 일어나 벽이 서고 구름이 옹골차게 굳어 벽이 되고 먼 하늘마저 완고한 벽이 되어버렸을 때, 이 화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쩌면 그림 속에서 그 벽을 허물고 다시 세우고 지우는 것이 전부였을 거여요. 그녀를 애워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벽이 저 그림 속에서 꿈틀대며 언젠가 또 걸음을 방해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벽은 벽일 뿐이어요. 지워버리면 그뿐인 벽.

정선영_Blue and grey_캔버스에 유채_24.2×33.4cm_2018
정선영_Spring1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9

곰곰 생각해보니 세상에는 세 가지의 벽이 있는 것 같아요. 공간을 구획하는 벽이 있고, 나아가고자 하는데 앞을 가로막고 선 벽이 있는가하면, 등을 기댈 수 있는 벽도 있어요. 먼저, 공간을 구획하는 벽은 우리의 생활을 기능적으로 나누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 수직의 건조물들을 세운 애초의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둘째는 그렇게 세워진 벽들이 누군가에게는 진입/진로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 버리는 경우입니다. 더군다나 건축공학적 벽이 아니라 사회적 체계와 관계에서의 벽은 서로를 단절시키고 누군가의 꿈을 가로막는 참으로 무심한 벽입니다. 셋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좌절된 꿈으로 지친 그 누군가에게 기댈 면을 내어주는 고마운 유심의 벽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겠어요. 좌절한 바로 그 자리에서 꿈이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저 허공에 떠도는 무수한 벽을 허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세워봄직하다 생각해요. 이제 그 첫 번째 벽을 세우고 저 벽들에게 물음을 던지기 시작하셨으니 참으로 기쁜 날이어요. ■ 배종헌

정선영_Hoejin1_캔버스에 유채_17.9×25.8cm_2018
정선영_Hoejin2_캔버스에 유채_17.9×25.8cm_2018

나의 작품의 테마는 '벽'이다. '벽'은 내가 그동안 층층이 쌓여진 흔적이다. 벽의 퇴적층을 연상하면 된다. 구축된 퇴적층은 그동안 형성된 나의 고정관념과 많이 닮아있다. 무엇을 이야기하면서 소통하려 할까? 나의 소소하고 평범한 스토리는 소통의 가치가 있을까? 나의 잠재된 소통의 가치를 어떻게 나열하고 풀어나갈지 난감하다. ● 그런데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다. 나를 알리고 싶은 욕망의 차원인지도 모른다. 나의 욕망을 마주하고 바라보고 있다. 그 욕망을 화면에 층을 내면서 조각하고 해체시키고, 타임머신을 조종하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러한 회화작가가 되고 싶어서 공부하고 있다.

정선영_Calm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9

나의 욕망은 벽처럼 쌓아 올라가고 있다. 그 욕망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지탱하고 생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흡수하고 받아들여진 복합체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한 욕망 덩어리는 단단한 콘크리트의 벽으로서 존재하기도 하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불완전한 덩어리로 존재하기도 한다. ● 그러한 욕망을 마구 여기저기 표현하는 것은 나의 메세지가 아니다. 그러한 욕망을 넘어서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고 욕망을 너머 서서 해탈하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서서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지점에서 바라보는 고요한 것을 그리고자 한다. 그 고요한 대상은 무의식, 꿈, 고정관념이 해체된 지점에 존재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정선영_The red wall2_종이에 유채_34×26cm_2019

인간의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해 주고 다독거려주는 것으로서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것의 존재는... 알 수 없다. 최우선으로, 소소한 어떤 것이 제 방식대로 삶을 헤쳐나가는 과정의 가치를 나의 보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벽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 탐구 프로젝트 - The wall :'I see you'를 진행해 나가면서 두서없이 생각나는 생각의 줄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놓치고 지나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둘러싼 궤적들을 돌아보게 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작업들 또한 두서가 없이 빠르기만 하다. 나 위주의 범위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뜻이다. 이 과정들을 헤쳐나가야 나의 메세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The wall의 본격적인 행보를 향한 미리보기이다.

정선영_Black line_캔버스에 유채_17.9×25.8cm_2018

여러 겹의 퇴적층으로 구축된 실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하고 있다. ● 형성되어진 나의 본질은 전적으로 나 스스로 구축되어 진 것 이기 보다는 이미 그 바탕에는 어떤 증축된 본질이 깔려있다. ● 의무와 책임감으로 쌓아 올려진 그들의 고운 벽, 그들의 벽은 사라지지 않고 실존한다. 그 위에 나의 벽은 증축되고 있다. 나는 그들이 이룩해 놓은 고운 벽을 선물 받았다. 보이지 않은 고마운 선물, 마음 속에 침전되어서 오랫동안 메아리쳐 전해져오고 있다. 그들의 자상하고 고상한 정신세계를 따라하고자 한다.

정선영_The red wall1_캔버스에 유채_33.4×24.2cm_2019

건물 지을 때 초기 단계인 철근 지지대 등등 여러 구축물이 사람에 의해 구축 생성된다. 반면에 같은 것이 반복될 때에도 본인만의 미세한 차이가 생긴다. 병원에서의 매일매일 처방전이 다르듯이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다. ● 일상은 서서히 자기도 모르게 변화하고 있다. 벽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고정관념은 일상의 변화와 맞물린다. ● 과거(퇴적)와 현실(단단하다. 일상), 미래(현실 너머 동경, 꿈, 고정관념에 머무르지 않고)에 대하여 꿈꾸고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 정선영

Vol.20191220e | 정선영展 / CHUNGSUNYOUNG / 鄭善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