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감각-일상을 상생하다

2019 예술공간 이아 기획展   2019_1221 ▶︎ 2020_0228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1221_토요일_04:00pm

기획 / 오민수

참여작가 고순철_문창배_이승수_강주현_홍시야_김수연 현덕식_이상원_정승_독한녀석들(최창훈, 고윤식) 홍지윤_박능생_윤세열_박정선_손승범

주최 / 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_예술공간 이아 후원 /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이아 ARTSPACE IAA 제주도 제주시 중앙로14길 21(삼도2동) Tel. +82.(0)64.800.9339 www.artspaceiaa.kr

사물성의 회복과 감각의 조우 ● "이것은 예술인가, 아닌가?" 오랫동안 예술을 둘러싸고 지속되는 논란들은 결국 예술과 일상, 혹은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경계가 늘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경계에는 항상 감각이 관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앤디워홀(Andy Warhol, 1928-1987)을 다시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예술을 말할 때, 1964년 4월 미국 맨해튼 스테이블갤러리에서 선보였던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 Brillo Box」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등장으로 뒤샹의 레디메이드의 개념은 더 분명하게 현대성으로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현대예술이 어떻게 사물과 감각으로 조우하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고순철_달의 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9
김수연_memory_캔버스에 에나멜_97×162.2cm_2018
문창배_삶, 시간-이미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메스_91.9×72.7cm_2018
현덕식_아드님! 시작합니다_장지에 먹, 안료, 염료, 옻칠_73×61cm_2019
홍시야_공 존 #평화_캔버스에 혼합재료_140×181cm_2019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존재론적으로 어떤 힘을 갖는가, 특히 세잔과 메를로-퐁티, 그들을 만나 확신하게 된 감각덩어리의 존재론에 비추어볼 때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 감각덩어리로 되어 있다. 감각적인 떨림과 리듬이 없이는 개별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각각의 것들은 생겨날 수 없다. 개별적인 사물들은 전 우주적인 감각덩어리의 떨림과 리듬이 응축된 매듭인 개별적인 사물들은 이미 언제든지 풀려나면서 내적으로 폭발하고 있고, 그 폭발의 떨림과 리듬이 이미 언제든지 다른 모든 것들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 흘러넘치고 있다. 감각과 사물은 하나다. (조광제, 「미술속, 발기하는 사물들, 2007」)

독한녀석들 (고윤식, 최창훈)_오아시스_혼합재료_130×130×280cm_2019
강주현_감정의 신체 - 불안한 다리 The Body of Emotion - Insecure Legs_ PVC, 레진, 스테인레스, 디지털 프린트_210×140×230cm_2017
이승수_숨비-해녀의부재 시간, 기억_오리발, 영상_설치_2018
박능생_SpainToledo-VerticalJump_종이에 먹, 아크릴채색_138×100cm_2019

워홀의 「브릴로 박스 Brillo Box」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제박스가 왜 예술작품이야 하는지 의문점을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더 심하게는 워홀을 정신이상자로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일 '브릴로 세제'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어떠했을까. 현대문명을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아프리카 원주민이나 알래스카의 이누이트족이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세제'라는 생활용품 보다는 그 사물자체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이 사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모든 감각들을 동원해 살피고 만져보고, 맛보고, 두드려보는 행위들을 할 것이다. 이후에 이것은 의도치 않게 감상의 대상이거나 숭배의 대상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며 의자나 기타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워홀이 의도한 바는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지점에서 관념이나 선입견을 제거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뒤샹이나 워홀의 의도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본질, 관념과 의식을 제거한 그 자체가 발산하는 감각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감각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감각덩어리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사물을 도구나 자연, 예술로 구분할 뿐이다. 그런 전제하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예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987-1968)이 남성용 소변기를 통해 주장한 것은 전시장에 진열된 소변기는 더 이상 소변기가 아니고 독립적인 그 사물자체라는 것이다. 우리가 소변기라고 규정하는 이 사물의 물성에 집중해보자. 하얗고 매끈하며 단단하게 느껴지는 이 물체는 귀한 예술작품으로 대접받는 도자기와 비교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령 모든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무선청소기가 청소기라는 기능성을 빼면 이 물건이 꽤 아름다운 조형미를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예술과 일상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도 우리는 수많은 감각의 자극들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처럼 뒤샹과 워홀은 우리가 일상, 혹은 비예술과 예술을 구분 짓는 어떠한 전제나 경계가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감각이 존재한다. 사물과 사물 혹은 인간과 사물이 만날 때 감각의 가닥들이 실타래처럼 무수히 얽히고설킨다. 예술은 이러한 감각의 실타래를 탐색하고 그 끝에 사물에 내재한 본질을 읽어내고 드러내는 일이다.

윤세열_폭포_캔버스에 오일파스텔_450×167cm_2019
박정선_잔상 2019003 (afterimage 20190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_112×162cm_2019
손승범_투명하게 사라지는 믿음_한지에 혼합재료_가변설치_2019

현대사회에서 대량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들의 원본과 복제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강주현의 작품에서 보이는 사물들은 언뜻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계장치나 도구들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이 사물들은 기능성이 사라진 복제품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강주현의 작품은 앤디워홀의 「브릴로 박스」처럼 워홀의 복제방식들을 차용했지만 작가의 주관성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또 앤디워홀은 복제의 사실을 은밀하게 감춘다면 강주현은 노골적으로 복제된 사물임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르다. 강주현작가의 작업은 사진과 입체를 결합하며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으로 복제하고 다시 3차원의 입체로 되돌리는 방식을 통해 사물의 실체에 접근한다. 하지만 복제된 이 사물들은 본래의 물성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것으로 변환되며 여기서 작가의 주관이 개입하고 물성의 변화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물들의 변형과 조작을 시도한다. 때문에 일상의 도구들은 작가의 감각을 통해 전혀 새로운 감각적 사물로 태어나는 것이다. ● 강주현의 작품이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교차방식을 선택했다면 이상원은 가상현실, 즉 2차원의 평면을 유지하면서도 움직이는 동적인 가상현실을 만들어낸다. 대중매체의 대표적인 TV나 영화를 통해 대량 생산되고 소비되는 영상이미지 들, 이상원은 자신의 손을 통해 일상적으로 스쳐가는 풍경들, 무심하게 지나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그것은 관찰자이기도 하지만 연출자이자 제작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 손승범의 작품에서도 작가의 개입과 사물의 변형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작가가 만들어낸 구조(사각이나 원형)의 틀 속에 사물들은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이지만 흐릿하고 모호하며 확고한 형식아래에 갇혀 있다. 아마 이 틀은 작가의 시선이기 보다는 보편적인 사고(관념)의 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단순한 사각이나 원형의 틀이 하나의 소우주를 의미한다면 여러 크기의 소우주가 다시 무수하게 결합되면서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 독한녀석들(고윤식, 최창훈)의 작품에서 악기는 더 이상 악기가 아니며 사물 그 자체이다. 사물에서 기능성을 제거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뒤샹의 주장은 이 작품에서 다시 반복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금속악기는 소리를 내는 도구가 아닌 그자체가 아름다운 형태와 색, 질감을 가진 조형물이다. ● 이승수작가의 작품은 즉물적이다. 작가는 개입을 최소하면서 사물과 관객이 직접 만나는 접선자의 역할을 한다. 이승수의 작품에 사용된 제주해녀가 입었던 잠수복이나 오리발은 실제 사용되었던 것 들이며 우리가 손때가 묻은 물건들에서 그 안에 담긴 사연들을 추적하듯이 이승수의 작품은 사물 표면에 새겨진 흔적들을 통해 해녀들의 삶을 이야기 한다. 감각은 사유를 통해 감성을 증폭한다. ● 고순철, 김수연, 박정선, 현덕식, 윤세열, 홍시아의 작품들은 사물의 감각과 작가의 감각이 어떻게 조우되고, 축적되며 감성으로 치환되는지 보여준다. 평범한 자연, 일상의 풍경은 기억과 경험으로 사유되고 재해석되기에 감각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한다. 감각은 기억과 축적된 경험을 관통하면서 순화된 감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의 감각을 기억하거나 기록하고 싶은 무의식적 충동이 "그리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 박능생의 작품은 전통적인 산수화의 기법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다. 전통과 현대가 때로는 충돌하고 뒤섞인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복잡성과 현대인들의 현실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전통적인 회화기법의 현대적 차용은 홍지윤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시,서,화의 일치와 서화동원을 근본으로 하는 동양미학의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홍지윤의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든다. ● 실상과 허상,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이미지는 허상이며 산술적인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매체와 대중스타의 이미지도 그렇다. 스타는 순간 소비되고 사라진다. 문창배는 그리는 행위를 통해 이 허상들의 포획을 시도한다. 문창배의 작품은 언뜻 사진을 복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 표면에 그어진 무수한 선들과 질감에서 회화임을 깨달았을 때의 전율과 의외(意外)성은 작가가 노리는 방식이다.

이상원_Patterns of Life 6ch_6채널 영상, 모니터(50인치)_00:03:00_2008~19
정승_감각의 문(The gate of senses)_소리반응 인터랙티브 애니메이션_가변크기_2019
홍지윤_Bohemian Edition_플렉시 글라스에 C 프린트_140×200cm_2008

현대문명이 가져온 편리성은 사물을 단순한 소비의 대상과 욕망의 도구로 삼는 인간의 이기심을 증폭시켰다. 따라서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의 본질들을 회복하고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감각들을 일깨우며 사물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예술가들은 매개자이자 의식을 실행하는 무당이다. 이제 일상과 예술을 나누는 경계는 무의미하다. ■ 이경은

Vol.20191221c | 경계의 감각-일상을 상생하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