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Banner (복수의 화신)

이현호展 / LEEHYUNHO / 李賢浩 / painting.mixed media   2019_1221 ▶︎ 2019_1231

이현호_창고공장_현수막에 채색_90×194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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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221_토요일_05: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스페이스 빔 SPACE BEAM community 인천시 동구 서해대로513번길 15(창영동 7번지) Tel. +82.(0)32.422.8630 www.spacebeam.net www.facebook.com/spacebeamcom

B "배너(banner), 복수의 화신" ●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들, 그 옆을 일렬로 메운 가로수, 전봇대 따위에 버젓이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 보인다. 선착순 특별분양, 명품아파트, 350세대, 프리미엄을 누려라...같은 무미한 문구들. 불법이기 때문에 적발되거나 신고가 접수 되는대로 잘려 없어지는 출력물의 무기력한 말로는 어쩌면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다. ● 나무 쫄대나 노끈에 의지하지 않으면 제대로 서있을 수조차 없는 팔랑이는 현수막처럼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도 위태롭긴 매한가지다. 정부, 공공기관, 건설사와 같은 초대형기관과 자본의 침투아래, '오래되고 낡고 못사는 동네' 라는 낙인과 누명 속에 속절없이 터전을 잃고 어딘가로 사라져가는 사람들. ● '명품, 프리미엄, 혜택, 가치'라는 허울 아래 60m2, 76m2, 125m2의 평방미터에 삶을 송두리째 끼워 넣는 사람들.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보금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가지지 못해 무기력하고 가지기 위해 빌려서 무기력하다.

이현호_파란공사장_현수막에 채색_90×243.5cm_2017
이현호_뜰_현수막에 채색_90×446cm_2017

생성과 제거의 산란한 파생 속에 소외되어 있는 개인들과, 곳곳에 쟁여졌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현수막들은 어딘가 닮아 있다. 비극을 겪은 후엔 망각 속에 노출된다는 점도, 어떤 목적을 위한 부속으로 사용됐다가 내버려진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사회는 어느덧 구성원들 개개인과 그들의 삶을 거리의 현수막처럼 내걸었다가, 돌연 삭제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 이런 속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뭔가를 그리는 것으로써, 뭔가를 만드는 것으로써, 이런 부조리한 무기력이 일상화된 현실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현호가 택한 것은 '복수'다. 그에게 있어 작업이란 작가 본인을 둘러싼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증이자, 성토이다. 회화는 그가 세상에 맞서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 그의 작품은 주로 '풍경'에 대한 관심과 흥미에 의거한다. 친구들과 낚시를 하기 위해 저수지를 찾아가든,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굽어진 도로를 거슬러 올라 학교를 가든, 몇몇 사람들이 공을 주고 받으며 축구를 하고 있는 너른 운동장을 보든, 앵커가 딱딱한 표정으로 온갖 이슈들을 망라하는 8시 뉴스를 보든, 그의 초점은 늘 '그때의 풍경은 어땠는가'에 맞춰져 있다.

이현호_인공호수_현수막에 채색_90×463cm_2017
이현호_pattern_현수막에 채색_180×486cm_2017

그가 현수막에 그린 그림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현수막에 그것이 걸려 있었던 뒤편의 공사현장을 그리거나, 그것에 숱하게 적혀있는 찬란하고 세련된 고급아파트가 지어질 어느 거대한 건설예정지의 공동을 그린다. 누누이 버려지고 소모되는 현수막에 노련한 솜씨로 아크릴물감이나 분채를 덧발라 풍경을 그린다. 현수막의 글자들은 그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묘하게도 몬드리안의 구성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품의 메시지와 구성을 위해 쌀포대나 스티커에 인쇄된 글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이종구의 작품도 떠오른다. 버리고 짓이기는데 일말의 의구심조차 들게 하지 않는 허무맹랑한 문구들이 그의 붓질과 만나 요긴한 회화적 요소로 탈바꿈한다. 무엇이든 쉽게 내치고 부수는 세상을 현수막에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 그는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와 망각에 대한 불감증을 꼬집는다. 이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것들이 지닌 나름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역설한다. 거침없이 잘리고 삭제되어야 할 것은 현수막이 아닌 현수막을 만든 시스템임을 웅변한다. 그렇게 버려진 자본의 산물들은 자신을 만든 주체를 겨누고 그의 혐의를 낱낱이 술회하는 확실한 증인이 되어 의미심장하게 복귀한다. 말 그대로, 복수의 화신('畵'神)이다. 회화는 작가가 세상에 행하는 작지만 실랄한 복수다. 그 복수는 계란에 바위치기처럼 미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론 바위만한 계란처럼 마법 같은 것이 되어 저멀리까지 횃불처럼 번지는 닭울음소리 같은 경종이 되기도 한다.

이현호_여덟시_한지에 채색_25.2×25.2cm_2019

이번 전시에서는 이렇듯 때로는 날카로운 복수의 칼날이 되기도, 때로는 삶을 기억하고 기록함에 있어 소중한 도구가 되기도 하는 그의 풍경작업 일체를 선보인다. 회색의 풍경들을 담은 현수막 연작과 여덟시 뉴스를 시청하며 방송국 스튜디오의 배경에 보여지는 풍경을 그린 연작회화, 그리고 동료작가인 서영호가 작가를 직접 출연시켜 제작한 영상작업 등이 전시공간을 채울 것이다. ● 이현호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그간 쌓아온 작업들의 스펙트럼에 접속해 회화를 통해 기억을 다루는 방법, 그냥 지나치던 단순배경으로서의 일상 속 풍경들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방법, 우리가 주목하고 초점을 맞추는 사건이나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지만 가려졌던 것들, 혹은 그동안 계속, 그대로 그곳에 있었으나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보이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금 시야에 접어들게 하여 그것들에 대해 사고하여 현실과 자신에 대해 보다 기민해 지는 방법, 거대자본의 논리로 재단되고 제약되는 현대인들의 팍팍한 삶 속에서 재치있게 저항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방법에 대한 유쾌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어떻게 예술이 되어 가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현호_배너_단채널 영상_00:02:19_2019

그는 자신의 작업일지에 이와 같이 적어 놓았다. "주말에 쉬는 것도 부족한데 그림보러 돌아다닐 기운이 어디있어. 그냥 집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이나 할래. 그런데 보기 좋은 그림도 아니고 공사현장이 그려진 그런걸 보라구?" 자조적으로 끄적거린 이 문구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답하겠다. '그런걸' 마땅히 보았으면 한다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그냥 집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이나 하는데' 사용하는 성냥갑 같은 삶을 일깨워 위트있는 저항과 생생한 창작의 지평을 열고 싶다면, 마땅히 그렇게 하라고 말이다. '그런게 그런게 아니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전시는 그런걸 위해 보는 것이다. ■ 김동균

Vol.20191221h | 이현호展 / LEEHYUNHO / 李賢浩 / painting.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