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부유

박정혁展 / PARKJUNGHYUK / 朴正爀 / painting   2019_1220 ▶︎ 2020_0114 / 일요일 휴관

박정혁_park_s memory12_은색 PET필름에 혼합재료_53×45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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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220_금요일_06:00pm

기획 / 아터테인

관람시간 / 월~토요일_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그의 거짓말은, 사실이었다. ● 70억.. 보다 많을 것이다. 지금 현, 인류는. 대략 추산된 숫자다. 70억. 우리가 이 지구를 살고 있는데. 과연 그 숫자가 몇 명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지. 그냥, 지금 당장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제일 현실적이니까. 그렇게 살 수 있는 가장 편한 것들이 내 삶이 추구해야 할, 아니 추구하고 있는 것 전부이지 않을까. 70억 인구가 지구에서 같이 산다. 나름, 영역을 만들어서. 아니, 시스템을 만들어서.

박정혁_park_s memory12_은색 PET필름에 혼합재료_53×45cm_2019

밑도 끝도 없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시대의 언어는, 지극히 정직했다. 해서 당시에는 사냥의 원칙대로 살았다. 그리고, 그 삶을 서로 인정했다. 하지만, 삶이 지루해지고 그 지루한 삶이 반복되면서, 또 다른 삶의 방편이 발명되었다. 거짓말이다. 해서, 거짓말을 발명한 호모사피엔스는, 말 그대로 사피엔스. 생각. 생각.. 그것으로, 당시에 같이 지구를 누리고 있던 또 다른 인류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고 한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너의 그것과 나의 그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 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은. 그러나 그것이 조금이라도 나의 생각과 어긋난다고 하면, 말한다. 나는 너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그리고, 다음 사람에게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거짓말의 탄생이었다. 자기 만족을 위해.

박정혁_park_s memory12_은색 PET필름에 혼합재료_53×45cm_2019

박정혁의 은박비닐 회화는, 첫 번째, 재료만으로 봤을 때, 너무 작위적이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회화 재료가 발견 혹은 이용되나 보다.. 했다. 어차피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는데.. 청동시대, 철기시대, 플라스틱시대(?).. 조금 과하게 말하면, 지금이 지나, 몇 천년 후, 우리를 플라스틱 잘 만든 호모사피엔스플라스틱(?) 이라고 정의 할 것 같으니,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완전한 평면 위에 그리는 회화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닐까. 정도로 작가의 재료적 발견은 정의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에게 은박비닐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즉, 단순히 정형화되어 있는 회화의 정의, 캔버스를 벗어나고자 발견된 재료만은 아니었다. 거기엔 작가의 유년의 기억과 그의 회화적 고민이 완성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꼭, 은박비닐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박비닐이어야 그의 이야기가 더 잘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혁_park_s memory 9_은색 PET필름에 혼합재료, 가변프레임_116.8×91cm_2019
박정혁_park_s memory 9_은색 PET필름에 혼합재료, 가변프레임_116.8×91cm_2019

인류의 자기 만족을 위해 혹은, 자기 부패의 회피를 위해 발명한 거짓말. 박정혁의 회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거짓말은 언어유희의 가장 선봉에 있으면서, 엄청난 믿음의 힘을 지닌다. 우린 주로 가장 절박할 때, 거짓말을 하고, 그것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 사기가 언제나 그때를 노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또한, 거짓말은 기억을 조작한다. 아니, 기억을 조작하고자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것을 자기의 기억으로 믿는다. 이 얼마나 편리한 정신의 힘인가. 인류가 만들어 놓은 또 다른 정신이 힘들. 종교, 예술 혹은 철학. 어쩌면 이왕에 발명된 거짓말들을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것들은 아니었을까. 어차피 모두 다 정신에 관한 것들인데.

박정혁_나른한 부유展_아터테인_2019
박정혁_나른한 부유展_아터테인_2019

박정혁은 그것이 정말 거짓말이었든,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었든 일단 먼저 의심부터 했던 것 같다. 과연, 인류의 역사를 은유 했던 신화와 그것을 바탕으로 그려진 명화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 주었던 종교까지. 해서 그의 회화에는 모든 것들이 섞인다. 일종의 패러디고 은유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어디선가 봤던 것들이거나 봤을 것 같은 이미지들로 재편성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섞어놓은 그 거짓말들을, 전통(정통) 신화와 종교에서 비롯되었다고 감쪽같이 믿게 된다. 아이러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의식적으로 구조화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정혁_근 기억을 위한 드로잉 19005_종이에 수채_30.4×42.4cm_2019

이와 같은 박정혁의 회화적 장치의 완성에는 은박비닐이 필요했다. 의식이 기억을 자기 편의에 의해 조작할 수 있다는 것. 과연 전통적으로 고정된 캔버스 위에 표현이 가능했을까. 새로운 재료를 찾았다기 보다는, 보다 정확한 그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그에게는 유동적인 화면이 필요했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회화적 표현과 보는 사람과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들이 동시에 존재 가능한 그런 화면. 해서, 작가의 유년의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던, 약국(그의 어머니의) 그곳에서 그는 스스로 위로와 치유를 받았고, 그때 그의 기억에는 은박비닐로 포장된 약들이 자리를 잡았다. 거울처럼, 빛나던 그 은박비닐들은 어쩌면 작가에게는 치유와 보호 그리고 위로인 듯 또한, 밝고 건강한 미래의 상징으로 각인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박정혁은 은박비닐을 실험적으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의 유동하는 화면으로 정. 했. 다.

박정혁_근 기억을 위한 드로잉 19011_종이에 수채_30.4×42.4cm_2019

흔들리고, 반짝이며 반사되는 은박비닐은 그리는 행위를 담는 동시에 보는 행위까지 담는다. 보는 것을 넘어 아예, 작품을 보는 우리까지 작품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로 만든다. 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그의 작품 속에 비친다. 내가 입고 있는 옷도, 그리고 그 색들도. ● 그리고, 박정혁은 같은 이야기를 종이 위에도 남긴다. '근(荕)기억을 위한 드로잉'이라고. 내용은 은박회화와 같다. 대신 표현은 보다 직접적이다. 연기와 불과 같이 늘 변화하는 소재로, 우리의 기억이 선명할 수 없음을. 또한, 우리 정신의 의식적 구조화를 이야기 하는 은박회화 보다는 더 그럴싸하게 종교와 신화 등을 섞는다. 그리는 행위를 잊지 않고자 즉, 자신의 근육에 그리는 행위를 각인시키고자 끊임없이 작업하고 있는 드로잉이라고 하는데. 박정혁이 뒤틀고 섞고 있는, 신화와 종교, 나아가 인류 정신의 힘으로 대변되는 모든 세계는 그의 근육에서부터 이미 형성되고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박정혁_근 기억을 위한 드로잉 19003_종이에 수채_30.4×42.4cm_2019

느닷없이 발이 푹 빠지는 늪을 밟아본 사람은 알 것 같다. 땅이 단단하지 않았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 땅은 늘 단단해야 한다는 믿음으로부터의 배신감을. 박정혁의 은박회화는 나의 그 배신감까지 포함시킨다. 철저한 나의 현존으로부터 저 먼 인류의 거짓말로 비롯되어 왔을지도 모를 정신의 힘까지. 작가의 유동하는 화면은 그렇게 사고하는 방식의 전환을, 진실은 어디까지나 서로의 합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 임대식

Vol.20191222f | 박정혁展 / PARKJUNGHYUK / 朴正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