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보다

Seeing Time展   2019_1226 ▶︎ 2020_0312 / 월요일,설날 당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1226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구본창_김태헌_노경희_박승원 배남경_배수경_성낙인_이가경 이만나_이현우_이창훈_임윤경 임윤수_정재호_천창환_홍희령_Roman Opalka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설날 당일 휴관

서울대학교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Tel. +82.(0)2.880.9504 www.snumoa.org

현대미술에 있어서 개념의 변화와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사고와 표현방식의 확장은 시각예술의 "시간성"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습니다. 예술가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특정하거나 인상적인 순간을 박제하고자 하는 욕망, 시간의 흐름을 작품을 통하여 포착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수행을 통한 작품의 시간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 등으로부터 출발하는 다양한 표현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시간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방식, 더 나아가 예술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집약하여 드러냅니다. ● 『시간을 보다』는 예술가들이 시간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가시화하는 작품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전시에 참여한 17인의 작가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시간을 바라보고, 시간에 도전합니다. 이러한 도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우리의 삶 자체를 가장 본질적으로 보여주고, 우리의 흔적을 남기려는 의지의 표출일 것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기도 한 시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본창_Soap 10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9×32cm_2007

구본창의 사진 연작 「Soap」 시리즈는 마모되어 작아지고 부서져가는 다양한 종류의 비누를 촬영한 작품이다. 작가는 닳고 닳은 비누 쪼가리를 마치 흐르는 물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매끄러운 외형을 갖게 되는 자갈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한다. 시간의 흐름은 비누를 필연적인 죽음으로 이끌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비누는 점점 사라지는 물질적, 존재론적 소멸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연마해 '실재' 이상의 예술적 의미를 획득한다. 「Soap」 시리즈는 필멸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존재들이 간직하는 찰나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배남경_탱고구두 (먹)_목판화(한지, 먹)_119×79cm_2009

배남경의 판화작업은 이미 사라져버린 무언가를 갈구하는 비애감(melancholy)을 드러낸다. 재현의 대상인 판화 이미지와, 이미지를 새겨 넣기 전 목판의 원래 결을 중첩시키는 방법론은 작품의 '물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으로 독해할 수도 있지만, 반면에 바탕(media)과 내용(content)이 서로를 간섭하며 그 무엇도 원래 존재했던 바, 추구하는 바를 온전히 지속할 수 없음을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남경의 작품에서 과거의 시간들은 빛바래 사라지지 않고 나무의 나이테에 아로새겨진다.

성낙인_미술대학 합격자 발표 1956년 3월 오후 2시_디지털 프린트_56×76cm_201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제1기 입학생인 성낙인은 대학원에 진학한 직후 본격적으로 서울미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2016년 서울대학교 개교 70주년 기념전 『사진(寫眞)하다: 미술대학의 옛 모습들』에 출품하였던 성낙인의 '1950년대 서울미대 입시광경' 작품과, 2016년 전시를 위하여 새롭게 촬영한 '2016년도 서울미대 킨텍스 수시모집 시험장' 촬영사진은 서울미대 입시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해봄으로써, 각각의 시절 치열하게 예술가로의 진입로에 들어서고자 노력한 어린 학생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만나_벽16-2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6

이만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거리의 풍경들, 그 중에서도 사소해 보이는 담벼락과 수목을 통해 드러나는 누적된 시간의 무게를 정교하면서도 표현적인 필치로 잡아낸다. 이끼에 덮이거나, 칠이 벗겨지고 금이 간 담벼락의 모습은 점묘화를 방불케 하는 중첩된 색상표현과 꼼꼼한 묘사를 통해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재현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작가가 순간적으로 포착해내는 담벼락의 이미지가 역설적이게도 오랜 시간의 노력을 통해 완성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이현우_줄 긋기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18

이현우의 작업은 일상이 만들어내는 의외성을 가진, 단순하지만 특별한 화면조형에 주목한다. 그것은 특정 시간대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공간적 특징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혹은 태양의 방향(시간)과 건물의 특정부위(공간)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기울기를 통해, 마치 해시계와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찰나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단색의 면들이 만들어내는 평면적 화면구성과, 감정을 덜어낸 것 같은 차분한 색조는, 화면의 구체성을 거세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상의 특별한 대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윤수_꼬리달린 도마뱀은 어디로 갔을까_다큐멘터리_01:18:00_2010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문제와, 일본 내 조총련(북한계 조직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재일동포 문제를 바라보는 임윤수의 시선은 정치·사회적 입장의 대립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특정 시선을 강요하는 대립적 이슈들은, 그 이슈의 한 복판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실제 인간들의 삶을 부재하는 경우가 많다. 두 편의 장편영화 「꼬리달린 도마뱀은 어디로 갔을까」(2010)와 「햇빛과 사이렌」(2012)은 정치·사회적 이슈에서 소외된 당사자들의 기억과 입장을 작업을 통하여 소환한다.

정재호_소공로 93-1_한지에 아크릴채색_209×149cm_2018

정재호는 1960-1970년대 한국 산업화 시기 건축물의 외형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한국화의 미디어인 장지 위에 서양화의 재료인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진 창백한 건축물들은,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며 한국사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다양한 비판과 의문들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한국 산업화 시기의 다양한 이미지를 선별한 「아카이브 회화」(2012-2018) 시리즈 역시, 과거의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들의 기억을 박제하여 우리의 일상 속에 불러들이며, 현실에 잔존한 산업화 시대의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지를 만든다.

배수경_풍경 연작_종이에 펜_가변크기_2019

배수경의 작업은 미물과 대자연의 입장차가 만들어내는 시간의 궤적을 대비시킨다. 단순한 선으로 묘사한 지렁이 한 마리가 움직이는 「달 밤」(2013)의, 아무것도 아닌 듯한 벌레의 꿈틀거림은 지렁이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길고 험난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모든 생명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지렁이의 꿈틀거림이 만들어내는 짧은 시간의 궤적이 하찮게 느껴진다면, 수천만 년의 풍파를 겪어낸 거산(居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일생은 어떠한 궤적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일까.

이가경_걷기-2009_애니메이션, 종이에 콘테, 연필 드로잉_00:03:00_2009

이가경의 영상작업은 한 장의 종이 위에 연필이나 콘테, 목탄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이를 촬영한 후 지우개로 지우고 다음 장면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전 시퀀스의 흔적이 다음 시퀀스에 중첩되는 '시간의 궤적'을 드러낸다. 이러한 효과는 우리의 일상이 비슷한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걷기-2009」(2009)는 이러한 작가의 일상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이러한 반복되는 일상성을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표현방식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이창훈_미완의 프로젝트-두물머리_단채널 영상, 드로잉, 깃발_00:07:57_2015~7

이창훈은 경기도 양수리 "두물머리"의 유기농업 육성정책 취소를 환기시키는 의미로 붉은 깃발 12개를 2015년 1년 간 한 달에 한 기씩 추가하여 개양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거나, 1년 간 사용한 메모용 칠판의 궤적을 기록하고 이를 책자로 만들어 실제 칠판과 함께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사회적 이슈를 대변하거나, 개인적 의미를 가진 특정한 사물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가는 궤적을 시각화하는 이창훈의 작업은, 이념의 취약함과 존재의 가변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지켜나가야 하는 소중한 가치를 부각시킨다.

임윤경_프로파일 02-07_벽에 펜 드로잉, 패션 잡지_230×230×430cm_2007

임윤경은 동아시아계가 대다수인 한국 여성을 소비대상으로 하는 패션지들이, 어째서 같은 동아시아계 여성 모델들을 섭외하는데 인색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발행한 패션지의 여성모델들의 '옆얼굴'(profile) 라인을 수집하였다. 이 라인들은 작가 자신의 옆얼굴 라인과 겹쳐 마치 그래프와 같은 형태로 제시된다. 이러한 옆얼굴라인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내제화하는 인종적 편견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럼에도 시간의 궤적을 따라 조금씩 변화해 나가는 어떤 인식의 변화를 드러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보한다.

김태헌_붕붕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4×72cm_2018

김태헌(1965-)은 일상의 예술화를 작업을 통해 실천한다. 작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일상의 시간을 작업으로 전환하고, 그 작업이 쌓여 나가며 작가의 창작행위 자체가 수행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양한 스타일의 드로잉 작업들은, 오만가지 생각들과 흥미가 끝없이 유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생 그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의 시간을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예술적 수행'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하는 한 작가의 유쾌한 인생의 이야기들과 만나게 된다.

노경희_2019_02_종이에 파스텔_72.5×56.5cm_2019

노경희는 사진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숲의 풍경을,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풍경이미지와 비교하며 화면 위에 생략과 중첩, 조합과 강조를 통해 끊임없이 조율해 나간다. 최종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풍경이 화면 위에 온전히 발현할 수 있도록 끝없이 손을 움직인다. 주어진 환경(이미지) 속에서 동경하는 바(작품)를 추구하는 '수행'의 연속은, 긴 시간을 들여 자신의 창작물과 대화를 진행해 온 작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는 '자동기술적 이상향의 추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승원_검은 발_단채널 영상_00:07:30_2019

눈밭 위에 맨발로 추위를 감내하거나, 옥탑 위에서 호루라기로 '숨'을 쉬는 행동을 반복하고, 누구도 보거나 듣지 않는 한 밤 중에 지붕 위에서 얼굴이 일그러질 때까지 발을 구르며 무언가를 갈구하는 박승원의 퍼포먼스는 절박하지만 공허하다. 눈 내린 땅 위에서 인내하거나, 호루라기로 숨을 쉬더라도 그 몸부림은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힘든 시간을 버티며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하고자 노력한다. 이 모든 '무의미한 수행'들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웃기면서도 슬픈' 초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창환_작업실에 온 일수_광목에 일수 명함 가루/갈아낸 일수 명함_ 달력 각 69.5×49.5cm, 일수 명함 각 5.4×8.8cm_2016

2016년 한 해 동안 천창환은 해방촌 작업실에 나온 날짜마다 작업실 앞에 뿌려진 대부업체 막명함을 사용하여 「작업실에 온 일수」(2016)를 제작하였다. 작업은 일수명함 표면을 갈아내어 선전용 캐릭터 이미지나 희망적인 응원문구 만을 남기는데, 이 때 갈아낸 표면의 안료들은 작가의 작업일지로서 달력 페인팅에 해당 날짜의 색면 안료로 사용한다. 작업실에 나온 '일 수'와 작업실 앞에 던져진 '일수'명함이라는 동음이의어에서 착안한 1년짜리 프로젝트는 해당 일자의 작업을 무조건 진행한다는 자기치유적 의미를 가진 '수행'이 되었다.

홍희령_DA 지우개_지우개 가루, 나무틀_19×750×650cm_2016

홍희령은 빈 책상을 기억이 깨끗해질 때까지 지우개로 지우는 관객참여작품 「마음에 지우다」(2016)를 제작하였고, 「마음에 지우다」에서 파생한 대량의 지우개 찌꺼기를 모아 설치작업 「DA 지우게」(2016)를 제작하였다. 지우개를 더 많이 지울수록 우리에게 지워지는 지우개 찌꺼기는 늘어난다. 두 개의 "지우개" 작업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지워진 고통에 대한 해소의 의지를 "지운다"는 행위를 통해 드러냄과 동시에,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재하며 우리에게 짊어 "지워지는" 문제들을 보여준다.

로만 오팔카_1965/1-∞ Detail 1503485-1520431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6×135cm_1965~2011

1965년부터 동일한 크기(196×135cm)의 캔버스에 1부터 무한에 이르는 숫자를 써내려간 로만 오팔카는 캔버스에 자신이 기록한 숫자를 하나하나 음성으로 녹음하였고, 하나의 캔버스를 완성하고 나면 동일한 의상과 표정으로 초상사진을 촬영하였다. 각각의 캔버스 작업은 「1965/1-∞」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작품의 일부로서, 개별 캔버스의 첫 숫자와 마지막 숫자로 이루어진 '부분'(detail)으로 표기되는데, 이렇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제작방식은 그 자체로 작가의 인생을 기록해나가는 '수행적' 성격을 띠게 된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연계 프로그램 (무료) - 강연 2020. 01. 31(금) 14:00-16:00 서울대학교미술관 오디토리엄(1F) 시각예술과 시간성: 시간을 표현하려는 시도들 – 문혜진 (미술비평가) - 큐레이터와의 전시관람 2020.01.29 / 2020.02.26(수) 14:00-15:00

Vol.20191226b | 시간을 보다 Seeing Tim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