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른직다

2019_1227 ▶︎ 2019_1229

초대일시 / 2019_1227_금요일_04:00pm

참여작가 김지현_박근우_박기완_박별이_방정인 양은주_이선경_이순주_홍지혜

관람시간 / 09:00am~05:00pm

동아대학교 석당미술관 SEOKDANG MUSEUM OF ART 부산시 서구 구덕로 225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내 Tel. +82.(0)51.200.8749 museumsd.co.kr

9인의 아해와 아모른직한 아모르 파티(Amor Fati)-어느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을 향한 아모르(Amor)에 관하여9인의아해가'예술'로질주하오. / 9인의아해가모두무섭다고그리오. / 9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 9인의아해가'예술'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아모른직다'. 이 전시명을 처음 들었을 때, "아모르 뭐요? 아모르 파티 아니고요?"라는 나 의 반응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아모른직다'라는 말은 인터넷상에서 '아직 모른다'를 급히 쓰다가 생긴 말로, 특히 게임이나 운동경기에서 거의 승부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과 같은 일말의 기대를 바 랄 때 쓰이는 신조어랍니다. 그래요. 아직 모릅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 안하고 불완전한 현재적 존재들이니까요. ● 전시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9인의 아해가 어떠한 작품을 내어놓을지 짐작만 할 뿐, 그 중에 3인의 아해와는 출품작에 대한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한 상황에서 글을 써야하는 이 난 감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아모른직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해하고 있는 이 젊은 예술가 9인의 작품에 담긴/담길 언어를 추정 상상하며 이들의 예술 에 관한 아모르(Amor)를 약술하자면 이러합니다. ● 1인의 아해 김지현과 또 다른 1인의 아해 박별이는 집단 속 다른 존재로서의 개인을 다룹 니다. 김지현은 자신의 남다른 버릇, 말하자면 손가락을 물어뜯는 습관으로 인해 상처가 아 물 날이 없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쩌면 우스꽝스럽고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는 특수한 보호 장치를 만듭니다. 더불어 엉뚱한 재료를 사용하여 결코 치료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가짜 약'을 만들어 처방하는 행위 등은 자기 파괴와 자기 치유의 동시적 상황이 작금의 이 예술가의 아모른직한 불안을 드러냅니다. ● 박별이는 해변의 검은 조약돌 무리를 그리면서 그 중에 한 아해를 흰 조약돌로 표현합니다. 이를 두고 스스로 '화가들의 개인주의'라 말합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비단 화가만의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겠으나, 화가 박별이에게는 집단 에서 구별되는 소수이자 타자화된 자신의 모습, 동시에 동년배 화가집단의 개인주의적인 일반성향에 동조된 자기 인식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각성의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이들의 예술 아모르는 다름 아닌 자기 내부에서 출발합니다. ● 이러한 자기 인식 및 정체성이라는 화두는 다음 2인의 아해에게도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박기완은 불특정 다수 사람들의 앉은 모습을 촬영하고 여성적 포즈와 남성적 포즈, 중성적 포즈 등으로 분류, 잠재적 성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합니다. 자투리 캔버스천을 얼기설기 붙여 만든 캔버스에 그린 '반쪽 자화상'이라는 제하의 그림은 '타인과 연결'된, '타인에게 각인된 나'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자아나 정체성과 같은 근대 주체의식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 려는 과정이자 타자를 통한 자기 인식, 나아가 무수한 타자들로 구성된 자신을 그리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 특히, 양은주의 작업은 자신의 정체성, 좀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세계와의 관계에서 찾고 있습니다. 투명비닐에 수학공식들과 전자회로도 등을 새겨 보이지 않는 질서 와 원리에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은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자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 적 한계로부터 자기인식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작가를 꿈꾸며 공모전에 참여하려하지만 불가 항력적인 사회 제도적 장벽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나이제한'이라는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비인간적 제한선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자신을 그려냄으로써 예술에 대한 절박한 아모르를 토로합니다. 우리는 이 작업에 주목해야하며 분명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 다른 2인의 아해, 박근우와 이순주는 외견상 표현의 대상을 특정하기 곤란한 추상적 이미 지를 그려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성은 사뭇 다른 관심에 따라 아주 다른 결과로 나타납 니다. 박근우는 매순간 캔버스, 붓, 물감 등의 도구와 작가 자신의 '관계의 현상'을 그린다고 밝히는 바, 그려지는 형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과정 그 자체에 서 벌어지는 시시각각의 현상에 주목합니다. 나아가 '무목적적인 현상과 불완전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 그런가하면 이순주의 경우, 작업의 목적과 방향성에 있어 '영혼의 카타르시스와 생명력'을 담아내려 한다고 언급합니다. 회화의 조형요소 중 형태보다는 '색채의 힘'에 의지하고, 거듭 되뇌던 '마음으로 그려라!'라는 자기강화의 문구가 신념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작가적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 그런가하면 다른 1인의 아해 방정인의 경우, 관객에게 마치 말장난을 거는 듯, 작품제목에서의 「돌고래」, 「폼고래」 그대로 '돌로 된 고래', '폼(스티로폼)으로 된 고래'를 만듭니다. 시 각적 완성이 아닌 언어적 확장으로서의 작품이자 지극히 경쾌한 작업으로, 조각이라는 입체 작품의 무게감을 한껏 가볍게 치부해 버립니다. 이제 예술은 더 아모른직한 것이 되고 맙니 다. ● 그리고 2인의 아해, 이선경과 홍지혜는 작품이라는 구조의 역설과 경계에 대한 실험이 한 창입니다. 이선경의 레고블럭과 페브릭큐브는 반복적인 일정한 형상의 축조물들을 구성하지 만 실상 동일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습니다. 이 하아얀 소형 축조물들은 변변한 좌대조차 없이 맨바닥에 무심한 듯 세워져 있습니다. 건드리기만 해도 허물어져버릴 것만 같은 구조의 역설, 온전한 형태에 대한 거부는 부질없는 예술행위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한 액자작업은 내용 없는 백지 상태의 이런저런 종이가 천연덕스럽게 자리 잡고 있음에 외려 할 말이 많아 할 수 없는 자기 고백으로 보입니다. ● 홍지혜의 작업은 사물/ 축조물의 구조보다는 그 사물/축조물의 구조가 만든 사이 공간, 즉 빈 공간을 떠돌며 공간 의 구조와 구획된 공간 간의 경계에 대해 탐구합니다. 일명 '꺽쇠작업'은 벽과 천장, 바닥과 벽의 경계와 같이 공간이 획정된 지점을 가시화하거나 왜곡시켜 공간 인식의 문제를 재구성하고 모호하게 만듭니다. 특히 최근의 '택배작업'은 가시적 영역을 벗어나 보다 확장된 지구적 차원의 임의의 공간에 점을 찍어나가는데 택배를 받아든 이의 참여는 이 작업의 중요한 변수로 불확실한/아모른직한 우리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 여기 9인의 아해가 예술을 향한 질주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예술인가요? 이렇 게 해도 예술인가요? 과연 예술가로 살아낼 수 있을까요? 질문의 답을 찾기도 전에 달려야 만 합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이것은 운명(Fati, 運命)입니다. 이 무서운 질주는 목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유일한 목적이라면 예술을 향한 질주 그 자체입니다. 예술이 무서운 아해 인지 여기 9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인지 잘 모르겠어요. 누가 무서워하는 아해인지도 말입니다. ■ 배종헌

김지현_mark_사진_35×72.1cm_2019
김지현_self-defence_3D 펜_가변설치_2019_부분 김지현_self-defence_가변설치_2019

뜯는 버릇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오랜 기간 쌓여있었던 내 손가락을 마주했을 때는 나의 신체 일부이지만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나 자신에게 신체적 학대인 이 행위를 내가 만든 갑옷과 약을 통해 외적과 내적으로도 자신에게서 스스로를 방어해보기로 하였다. ■ 김지현

박근우_Untitled_종이에 펜_36.4×25.7cm×2_2019
박근우_Untitled_종이에 펜_36.4×25.7cm×3_2019

나의 안과 밖에서 무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관해 물음과 답을 찾는 과정 ■ 박근우

박기완_Self Half-Portrait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2×112.1cm_2019
박기완_Moment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2×130.3cm_2019

어떠한 사건이 일어난 후 '감정'이라고 불리는 것의 변화는 참으로 흥미롭다. 심지어 단편적, 일방적인 흐름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감정의 변화는 나를, 사건을 뒤돌아보고 낯설게 만든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를, 사건을 만나본다. ■ 박기완

박별이_Artists4_캔버스에 과슈, 먹_131.5×87.7cm_2019
박별이_Artists5_캔버스에 과슈, 먹_72.7×90cm_2019

해가 뜰 때 자갈이 있는 바닷가를 걷다보면 제각기 크기와 모양이 다른 자갈 들이 빛을 받으면서 하나의 큰 그림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흔히들 예술가들을 예술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고 그들만의 소통이 있다고 말한다. 아름답게 빛나는 풍경속에서 자갈들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술가, 화가들은 그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그들 각자만의 세상이 있다. 한 걸음 물러서서 화가들을 바라보면 예술이라는 하나의 생각으로 묶인 듯 보이지만 한걸음 다가서서 보게 되면 크기와 모양이 제각기인 자갈처럼 수 없이 분리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다 보면 문득 외로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화가가 많음에도 우리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기 때문에 함께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은 항상 외로울 수 밖에 없는거 같 다. 나는 해가 뜰 때 자갈이 있는 바닷가를 걸으면서 항상 나를 포함한 화가들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못하고 정갈하지만 정갈하지 못하고, 조화롭지만 조화롭지 못한 화가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갈이 있는 해변을 여러 프레임으로 분리시켜 화가들의 제각기 다른 가치관과 세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같은 곳을 그렸지만 조금씩 어긋나 그들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이 그림처럼 말이다. ■ 박별이

방정인_Foam:Whale(폼고래)-3_스티로폼, 실, 부표_55×75×150cm_2019
방정인_Foam:Whale(폼고래)-4_스티로폼, 실, 부표_40×90×130cm_2019

'스티로폼'과 '돌고래'를 결합하여 만든 새로운 합성어 '폼고래'에서 시작된다.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의 형상이 양식장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끈과 부표로 속박되어 있다. ■ 방정인

양은주_Object_프린트된 종이에 플라스틱 백_가변설치_2019
양은주_Object_프린트된 종이에 플라스틱 백_가변설치_2019_부분

예술에서 다양성과 타인 그리고 소통을 주요 관심시로 다루는 오늘날, 예술 관련 공모전 응시 등에는 나이제한과 나이우대가 따른다. 본인은 많은 나이에 뒤 늦게 미술에 입문한 상황으로, 이러한 제약과 규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구조와 흐름에서 '나이제한과 규제'가 따르는 이유를 이성으로는 이해하지만, 순수예술에서조차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데도 '갖추어야 할 나이'가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본인은 이 작품을 통해 순수예술에 '나이제한과 우대'가 어떤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 보고, 우 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나이제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 ■ 양은주

이선경_Untitled_캔버스에 유채, 스카치테이프_가변설치_2019
이선경_Untitled_나노블럭_가변설치_2019

중심을 비워둔 채 되풀이된 프레임, 자신의 동일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없어 분열하는 의미 없어 보이는 몸부림의 시간, 이 잔해(Ruins)들은 그 내용을 다른 것으로 대체 할 수 없다. 형성하는 동시에 흐트러뜨리고, 견고해 보이는 동시에 연약한 구조의 역설로, 눈 먼 자신을 마주하는 사건으로 주어져 있다. ■ 이선경

이순주_Untitled_종이에 수채_21×29.7cm×2_2019
이순주_Untitled_종이에 수채_14.8×21cm×4_2019

나는 색들이 울려퍼지는 화음과 과감한 붓질이 주는 순결한 색 채의 힘, 영혼의 카타르시스와 생명력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내적인 현실과 감정에 대한 묘사로 "마음으로 그려라"고 표현해야 하는 신념을 가졌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왔다. 무엇보다도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은 추상적 언어의 메세지, 색다른 조형적 경험과 독창성일 것이다. ■ 이순주

홍지혜_결과 없는 결과_검정색 면천_가변설치_2019
홍지혜_결과 없는 결과_OHP 필름, A4용지_가변설치_2019

점과 선이라는 보이는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형태를 부여한다. 결과적으로 인식을 넓히고 장소와 공간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트래킹이라는 계속 진행되는 과정으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부분과 어떤 것에도 귀속되지 않는 작업 자체를 보여준다. ■ 홍지혜

Vol.20191227e | 아모른직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