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박재영_유화수_이지양_인세인박_전가빈展   2020_0108 ▶︎ 2020_0130 / 설연휴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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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0_0106_월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관람시간 / 01:00pm~09:00pm / 설연휴 휴관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Haenghwatang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19길 12(아현동 613-11번지) Tel. +82.(0)10.8701.9839 www.facebook.com/haenghwatang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은 2018 '당신의 각도' 전에 이어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장애예술'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장애예술이라는 이 모호한 장르에 대한 몇 가지 의구심으로 시작되었다. 장애 예술은 장애인 복지 카드를 소지한 장애인들만이 하는 예술인가? 아니면 장애인과 함께 해야 하는 예술인가? 혹은 장애를 다루는 예술인가? 그리고 장애인 예술과 장애 예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이런 질문들로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5명의 장애인과 5명의 비장애인 작가가 각자의 작업 방식의 연장선에서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작업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두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는데 우선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의 유형을 너무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혹은 그러면 안 되나?) 와 비장애인 작가가 장애인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작품이 될 수 있는가?였다. 이 두 가지 문제점에 대한 고민은 서로 상충되면서 작업 내내 참여 작가들의 발목을 잡았으며 작업을 진행했던 기간과 전시를 앞둔 현재까지도 마음 한켠에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여전히 남아있다.

장애인 예술 ● 우리가 장애인 관련 미술을 접할 때 떠오르는 몇 가지 관습적인 형식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전형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구현할 수 있는 자유분방하거나 혹은 집착적인 패턴의 회화 전시, 그리고 이 회화를 기반으로 한 비장애인 전문가들(작가, 디자이너, 교육 관련자를 포함한 업자) 과의 협업으로 제작된 굿즈 전시, 그리고 프로젝트 전반에 깔려 있는 '장애를 벗어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제공하고 도와주는 형식'의 암묵적인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애인을 고통스러운 존재자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윤리적인 감성으로 접근하는 태도들이 그것이다.

강력한 윤리적 감수성 ●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역시 작업에 앞서 비장애인 작가와 참여 장애인이 서로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무한한 불편함을 떠안고 시작하였다. (진부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찾고 존중하면서 서로 다른 감각들을 찾아보려 하였고 그동안 자신의 작업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흥미로운 작업으로 확장 및 파생될 수 있도록 애초에 기획되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모르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모든 시도(혹은 유도)들은 처음부터 삐걱 되었고 순간순간이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2018년 '당신의 각도'를 통해 참여 장애인과의 많은 교류를 해왔던 터라 가능할 수 있었던 부분들이 많았으며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어색함이 다소 누그러졌을 때에도 여전히 동정심과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기반으로 생겨나는 이 강력한 윤리적인 감수성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작업 과정 내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힘든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선의'라는 명목하에 이뤄지는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들, 예를 들면 장애를 숨겨 주려 하는 것, 못 본척하는 것, 일시적으로만 도와주면서 불편한 상황을 급하게 모면하려는 이런 태도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그들'과 '우리'로 갈라놓았다.

장애 담론의 확장 ● 베케트의 산문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1981'은 글쓰기의 궁극적인 질문들 즉 어떻게 볼 것이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제목에서 그 결론을 짓고 있다. 소설은 그녀(대상)를 감시자처럼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더 모호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녀의 존재와 이미지보다는 점점 글쓰기 본질의 문제로 넘어가는 듯하다. 보고 말하기를 진행하면 할수록 이야기나 내용의 차원에서 벗어나 이 행위에 대한 의구심과 그 효용가치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 ● 위의 글에서 밝히듯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프로젝트는 베케트의 말년 작품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소설에서 그러했듯 우리가 장애에 대해 각자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이를 재해석할수록 작품들은 또 다른 문제점들과 한계들을 재생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에 대한 다양한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새로움에 대한 작가들의 고질적인 갈망이 '장애'라는 다소 버거운 대상을 접했을 때 취하게 되는 다양한 접근 방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인 감수성이나 배려, 포용 부분의 차원을 떠나 '장애'라는 것 자체도 작품의 한 유형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도이며 덧붙여 이 작은 전시를 통해 장애에 대한 담론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면 한다. ■ 유화수

Vol.20200108e |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