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박재영_유화수_이지양_인세인박_전가빈展   2020_0108 ▶︎ 2020_0130 / 설연휴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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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0_0106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 박재영_유화수_인세인박_이지양_전가빈 참여자 / 신선해_한기명_황철호_이안나_장진석 공간디자인 및 제작 / 임재희_정재원

후원 / 서울문화재단_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관람시간 / 01:00pm~09:00pm / 설연휴 휴관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Haenghwatang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19길 12(아현동 613-11번지) Tel. +82.(0)10.8701.9839 www.facebook.com/haenghwatang

장애예술이라는 가능성『당신의 각도』 장애에 대해 말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장애라는 말 자체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작동하는 "강력한 윤리적 감수성" 때문이다. 여기에는 '장애는 극복되고, 지양되어야 할 악'이고, 그 악의 급습을 받은 장애인들은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진 지독히 불운한 '약자'들이며, 비장애인인 우리는 그들을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올바르지 않다는 자기검열까지 추가되면 장애인에 대한 접근 자체를 가로막는 윤리적 강박이 생겨난다. 도대체 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도와주려 함으로써 그들의 장애를 가시화시키는 게 옳은 일일까, 동정 대신 차라리 외면하는 게 더 예의바른 건 아닐까 등등. ● 2018년 유화수 & 이지양 작가의 『당신의 각도』 전시 포스터가 주었던 낯설음도 이런 윤리적 감수성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한 사진 속 인물(신선해)은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고 힘 있게 다문 입술과 도전적인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터뷰 잡지에 등장할 법한 당당한 여주인공의 포즈였다. 그런데 펼친 엄지 손가락, 손등 쪽으로 '지나치게 휜' 오른손, 발 안쪽을 향해 '틀어진' 왼발의 각도가 '평범한' 신체와 달라 보였다. 검은 티셔츠를 입고 왼손을 주머니에 꽂고 있는 다른 인물(한기명) 사진은 첫눈에 보기에도 비범했다. 몸 바깥쪽으로 '틀어지고' 위를 향해 직각으로 '꺽인' 오른 손목,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의 '비대칭' 때문이었다. (이런 묘사 자체가 비윤리적인 걸까?) ● 이 사진들이 주는 낯설음은 이 평범하지 않은 신체, 오랫동안 아름다운 신체의 근본조건으로 여겨져 온 조화와 대칭이 '어긋나' 있는 신체들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다. 그건 사진 속 인물들이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는 방식, 그리고 그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이 우리에게 익숙한 '윤리적 감수성'을 비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의 신체 이미지는 주로 사회 윤리적 맥락에서 등장한다. 거기에는 이런 불리한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를 '딛고 일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룬 이들의 절절한 사연이 덧붙어있다. 이 인간 승리의 드라마 속에서 이들의 신체는 그를 '이겨낸' 강한 의지의 대립물로 등장한다. 분명 누군가의 것이며 평생 그의 삶을 규정해온 바로 그 신체가 극복되어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만 그려지는 것이다. ● 『당신의 각도』 전의 사진들은 우리의 윤리적 선입견을 만족시키는 이런 이미지들과는 달랐다. 사진 속 당사자들은 이런 신체를 극복하거나 없었으면 좋을 것으로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그 '어긋남과 비대칭'을 자신의 스타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고, 비장애인인 이지양 작가는 이를 '정상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 따라 조정, 은폐, 미화해야 한다는 윤리적 강박에 의혹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유화수 작가는 이들의 신체적 특성을 모티브로 가구를 제작했는데, 그를 통해 "주인들 저마다의 '각도'의 흔적들"(김원영)이 물질적으로 가시화되었다. ● 『당신의 각도』는 이들이 개척해 가려는 '장애예술'의 향방을 가늠케 한다. 이들에게 '장애예술'은 장애인들을 '위한' 비장애인 작가들의 예술도, 장애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하는 장애인들의 예술도 아니다. 장애와 더불어 생겨난 '신체의 각도'에서 예술적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동의 프로젝트다. 그를 위해서는 장애를 자신의 존재방식,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애인, 윤리적 강박에서 벗어나 장애에 다가갈 수 있는 갖춘 작가,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환대의 관계맺음이 요구된다.

박재영_Layer & Reyal #철호씨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0×110cm_2020 (황철호 참여)
박재영_Layer & Reyal #철호씨A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5×55cm_2020 (황철호 참여)
박재영_Layer & Reyal #철호씨C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5×55cm_2020 (황철호 참여)
박재영_Layer & Reyal #체어씨A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5×85cm_2020 (황철호 참여)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 5명의 장애인과 5명의 비장애인 작가가 참여한 『잘못 보이고 잘못 말해진』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이런 장애예술이 시도되었다. 박재영 작가의 「Layer & Reyal」 연작은 세 명의 인물과 한 대의 휠체어(「체어씨」) 이미지로 구성된다. 피사체를 1도씩 회전시켜 촬영한 360장의 사진을 겹쳤고, 그러다보니 휠체어는 물론, 그를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한 눈에 포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진동하는 유령 같은 이미지가 되었다. 한 번에 한쪽 면 밖에 보지 못하는 우리 지각과 인식의 한계, 모든 면(360도)을 보기 위해 걸리는 시간, 그를 위해 보는 자와 보이는 자 모두가 감내해야 할 인내심을 다뤘다. 전가빈 작가는 시멘트로 캐스팅한 '노트르담의 곱추'(「4/2」)와 '인어공주'(「2/1」)의 형상, 비너스 석고 두상 안쪽에 시멘트를 부어 캐스팅한 「내 눈이 너무 정확할 때」를 출품했다. 건축 재료인 시멘트의 거친 질감과 불균등한 표면, 떨어져 나간 파편과 균열로 점철된 형상들이 매끈한 대리석 조각의 모습으로 표상되어온 이상적 신체 규범을 배반한다. 인세인 박 의 「정상/비정상」은 반복 재생되는 영상과 사진으로 이루어진 연작이다. 영상에는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똑같이 차려입은 장애인 한기명과 작가가 카메라를 보며 서 있다. 아웃 포커싱된 카메라 영상이 이미 둘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가운데, 한기명의 모습이 해체되어 작가의 모습으로, 작가의 모습은 다시 해체되어 한기명의 모습으로 변한다. 다른 영상에서는 둘이 번갈아 가며 "정상", "비정상"을 외치는데 그러다보니 애초 분리돼있던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단어가 연속되는 '정상비정상정상비정상...' 속에서 뒤섞인다. 벽에는 "정상적 비정상", 비정상적 정상"이라는 글자가 투사되어 흐른다.

전가빈_1:1:0.8_시멘트_30×30×74cm_2019
전가빈_2/1_시멘트_40×40×110cm_2019
전가빈_4/2_시멘트_40×50×55cm_2019
전가빈_내 눈이 너무 정확할 때_시멘트_30×30×46cm_2019

이지양 & 유화수 작가의 영상설치 작업 「따라서 어떤 것은 더 작고 어떤 것은 더 크다」에선 여섯 명 인물의 뒷모습이 실물 크기로 스크린에 투사된다. 남자와 여자, 정장을 입은 이와 평상복을 입은 사람 사이에 휠체어를 탄 인물도 눈에 뜨인다. 이들의 머리 높이가 모두 같은데, 자세히 보면 이들의 키를 맞추기 위해 쓰인 "어떤 것은 더 작고 어떤 것은 더 큰" 받침돌들이 스크린 앞에 놓여있다. 그 받침돌로부터 각 인물들의 모습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면 과연, 이들 신체가 만들어내는 각도들이 어느 하나 서로 같은 데가 없음이 눈에 들어온다. 『당신의 각도』가 주목했던 '비범한' 신체의 각도가 여기서는 각자의 다양한 신체 각도들의 하나로 제시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템포로 걷고 다른 리듬으로 손짓한다」의 작품 영상은 좌우로 이동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모니터에서 재생된다. 일정한 속도로 왕복하는 모니터의 단조로운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영상에는 각자의 템포와 리듬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통화를 하면서, 개와 함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여행 가방을 끌며 걷는 사람, 어떤 이는 전동 휠체어로, 다른 이는 누군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또 다른 이는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걸어간다. 각자의 걸음에 덧붙여진 음악과 음향효과가 움직임들의 고유성을 부각시키면서 걷기에도 이렇게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보여준다. 어디 걷기뿐이랴.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에서는 김초엽 작가의 글을 낭독하는 입, 그 말을 표정과 몸짓으로 옮기는 수화, 그 음성을 글자로 전환해주는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이 동시에 맞물려 작동한다. 말하는 입의 모양, 수화, 문자화되는 음성들을 통해서도 듣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듣고 말하는 일을 귀와 입만의 능력이라 여기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인세인박_정상 비정상_단채널 영상_반복재생_2019 (한기명 참여)
인세인박_정상 비정상_단채널 영상_반복재생_2019 (한기명 참여)
인세인박_정상 비정상_5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_00:02:18_2020 (한기명 참여)
인세인박_정상 비정상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각 40×40cm×4_2020 (한기명 참여) 인세인박_정상 비정상_단채널 영상_반복재생_2020 (한기명 참여)

창안되는 신체 역량 ● 우리는, 걷기나 듣기, 보기와 말하기에는 '정상적인' 단 하나의 방식이 있고, 그 외 다른 방법들은 '비정상적'인 궁여지책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은 인간이 신체를 통해 발휘할 수 있는 기능과 역량을 특정 신체기관과 선험적으로 결부시키는 목적론에서 기인한다. 이 목적론은 인간 신체의 역량을 제한된 몇 가지 기능들로 한정하고는 그를 특정 신체기관이 수행해야 할 목적이라고 정의한다. 눈은 보기 위한 기관이고, 귀는 듣기 위한 기관, 입은 말하기 위한 기관이며, 손은 붙잡고, 다리는 걷기 위한 기관으로 규정되고, 그에 따라 보고, 듣고, 말하고, 붙잡고, 걷는 '정상적인'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이 구분된다. 나아가 이 관점에서는 특정 신체기관, 예를 들어 팔이나 다리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그가 자신의 신체 부분들을 활용해 어떤 신체역량을 창안해낼지 두고 보기도 전에 이미, '정상적'인 붙잡기와 걷기의 신체기능이 결여된 '불능자'로 분류된다. ● 이런 사고방식이 아무리 우리를 강하게 지배하고는 있더라도, 사실 이는 앞뒤가 뒤바뀐 "뒤집힌 추론"(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이다. 인간의 신체기관은 선험적으로 규정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며, 신체적 기능들이란 신체기관이 생겨나고 나서 그를 이리저리 사용해 보다 비로소 창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기관은 선험적으로 정해놓은 특정한 기능들에 구속되지 않는다. 신체에는 사용을 통해 이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기능들을 발휘하는 잠재성이 있기 때문이다. 입의 기능을 먹거나 말하는 목적에만 묶어 두었다면, 입으로 놀라운 리듬을 연주하는 비트박스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리의 목적이 걷기만으로 한정되었다면, 다리와 발로 멋들어진 소리를 내는 탭 댄스는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 '정상적인 걷기'가 먼저 있고 그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신체 기관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과 허벅지, 팔과 몸통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다 걸음을 창안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말하기'가 먼저 있어 우리의 신체기관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손, 입과 혀를 이리저리 사용해보다 자신만의 말하기를 창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장애인들에게서 풍부하게 발견된다. 어떤 계기로 귀로 듣거나 입으로 말할 수 없게 된 이는 신체의 다른 기관들로 듣고 말하는 기능을 창안한다. 청각없이 태어난 사람이 얼굴과 손을 말하는 기관으로 창안하고, 눈으로 보는 능력이 없어진 사람은 냄새 맡거나 소리를 듣는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보는 역량을 창안해낸다. 이렇게 창안된 신체적 역량은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고, 입으로만 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와는 다른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로 이어진다. 선형적이고 시간적인 음성언어 대신 공간에서 움직이는 손과 얼굴의 표현력을 활용하는 수어가 그 사례다. ● 보다 흥미로운 건 인간 신체 역량의 잠재성이 기술과 결합하는 지점이다. 기술이나 매체가 인간의 신체-감각능력의 '확장 Extension'(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이라는 건 매체론의 상식이다. 장애인들은 기술과의 결합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신체역량을 가장 앞서서 증거한다. 이들이야말로 기술이 신체능력을 어떻게 변형, 증폭, 확장시키는지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각도』와 『정상궤도』에 참가했던 변호사 김원영은 "장애인의 몸은...그의 손상되지 않은 신체가 중력을 감당하느라 생성한 근육, 짧은 다리나 의족, 휠체어와 오랜 시간 결합해서 새롭게 어우러진 손상-비손상의 균형과 속도, 우아함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고 말한다. 『잘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에 참여한 작가 김초엽은 사운드 리커버 기능을 갖춘 보청기를 통한 '확장된 감각'을 이야기한다. ● '정상적'이라 규정된 단 하나의 듣기, 보기, 걷기, 말하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듣기, 보기, 걷기, 말하기는 신체 기관들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늘, 새롭게 창안되는 것이다. 걷기, 듣기, 보기, 말하기가 "정상궤도"를 벗어나고, 인간 신체가 창안해내는 새로운 역량들이 새로운 문화로 이어져 나갈 때, 궁극적으로 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소멸하는 인류 진화의 방향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예술'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김남시

유화수×이지양_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V2_ 혼합매체, 3채널 영상, 모노사운드_00:02:28, 가변설치_2020 (장진석, 김초엽 참여) Figure#7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50cm_2020 Figure#8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50cm_2020 Figure#6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7.5×50cm_2020
유화수×이지양_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V2_부분
유화수×이지양_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V2_부분
유화수×이지양_따라서 어떤 것은 더 작고 어떤 것은 더 크다_영상설치, 콘크리트_ 00:05:00_2020 (이안나, 황철호, 신선해 참여)
유화수×이지양_우리는 모두 다른 템포로 걷고 다른 리듬으로 손짓한다_ 단채널 영상, 모노사운드, 컨베이어 벨트_00:06:59, 300×150×50cm_2020 (신선해, 황철호, 이안나, 한기명 참여)
유화수×이지양_우리는 모두 다른 템포로 걷고 다른 리듬으로 손짓한다_스틸컷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은 2018 '당신의 각도' 전에 이어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장애예술'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장애예술이라는 이 모호한 장르에 대한 몇 가지 의구심으로 시작되었다. 장애 예술은 장애인 복지 카드를 소지한 장애인들만이 하는 예술인가? 아니면 장애인과 함께 해야 하는 예술인가? 혹은 장애를 다루는 예술인가? 그리고 장애인 예술과 장애 예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이런 질문들로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5명의 장애인과 5명의 비장애인 작가가 각자의 작업 방식의 연장선에서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작업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두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는데 우선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의 유형을 너무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혹은 그러면 안 되나?) 와 비장애인 작가가 장애인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작품이 될 수 있는가?였다. 이 두 가지 문제점에 대한 고민은 서로 상충되면서 작업 내내 참여 작가들의 발목을 잡았으며 작업을 진행했던 기간과 전시를 앞둔 현재까지도 마음 한켠에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여전히 남아있다.

장애인 예술 ● 우리가 장애인 관련 미술을 접할 때 떠오르는 몇 가지 관습적인 형식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전형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구현할 수 있는 자유분방하거나 혹은 집착적인 패턴의 회화 전시, 그리고 이 회화를 기반으로 한 비장애인 전문가들(작가, 디자이너, 교육 관련자를 포함한 업자) 과의 협업으로 제작된 굿즈 전시, 그리고 프로젝트 전반에 깔려 있는 '장애를 벗어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제공하고 도와주는 형식'의 암묵적인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애인을 고통스러운 존재자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윤리적인 감성으로 접근하는 태도들이 그것이다.

강력한 윤리적 감수성 ●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역시 작업에 앞서 비장애인 작가와 참여 장애인이 서로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무한한 불편함을 떠안고 시작하였다. (진부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찾고 존중하면서 서로 다른 감각들을 찾아보려 하였고 그동안 자신의 작업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흥미로운 작업으로 확장 및 파생될 수 있도록 애초에 기획되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모르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모든 시도(혹은 유도)들은 처음부터 삐걱 되었고 순간순간이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2018년 '당신의 각도'를 통해 참여 장애인과의 많은 교류를 해왔던 터라 가능할 수 있었던 부분들이 많았으며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어색함이 다소 누그러졌을 때에도 여전히 동정심과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기반으로 생겨나는 이 강력한 윤리적인 감수성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작업 과정 내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힘든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선의'라는 명목하에 이뤄지는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들, 예를 들면 장애를 숨겨 주려 하는 것, 못 본척하는 것, 일시적으로만 도와주면서 불편한 상황을 급하게 모면하려는 이런 태도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그들'과 '우리'로 갈라놓았다.

장애 담론의 확장 ● 베케트의 산문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1981'은 글쓰기의 궁극적인 질문들 즉 어떻게 볼 것이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제목에서 그 결론을 짓고 있다. 소설은 그녀(대상)를 감시자처럼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더 모호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녀의 존재와 이미지보다는 점점 글쓰기 본질의 문제로 넘어가는 듯하다. 보고 말하기를 진행하면 할수록 이야기나 내용의 차원에서 벗어나 이 행위에 대한 의구심과 그 효용가치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 ● 위의 글에서 밝히듯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프로젝트는 베케트의 말년 작품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소설에서 그러했듯 우리가 장애에 대해 각자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이를 재해석할수록 작품들은 또 다른 문제점들과 한계들을 재생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에 대한 다양한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새로움에 대한 작가들의 고질적인 갈망이 '장애'라는 다소 버거운 대상을 접했을 때 취하게 되는 다양한 접근 방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인 감수성이나 배려, 포용 부분의 차원을 떠나 '장애'라는 것 자체도 작품의 한 유형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도이며 덧붙여 이 작은 전시를 통해 장애에 대한 담론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면 한다. ■ 유화수

Possibility called Disability Art『Your Angle』 It is difficult to speak about disability. At the moment we think of the word disability, 'strong ethical sensitivity' begins to works ; disability is the evil which has to be rejected and should be overcome, as the disabled people, who are attacked by the evil, become unfortunate 'weak' and unable to live 'a normal life', so, we, the non-disabled people, should care and help them. Being nervous with the idea that it is not right to think about the disabled people in this way, then ethical obsession becomes symptomatic to block people from accessing disability at all. How can we help them? Am I right to make their disability visible by helping them? Is it more ethical to turn face on them rather than sympathize them? ● The feeling of unfamiliarity, from exhibition poster of 『Your Angle』 shown in 2018 by artists Hwasoo Yoo and Jeeyang Lee, may be related to this ethical sensitivity. A person from a portrait photography, Sunhae Shin, puts the left shoulder ahead with defiant gaze and compressed lips. It looks like a posture of heroin which can be seen in magazine interviews. However, the angle of extended thumb, right hand 'extremely bent' to the backside of the hand, and left feet facing inside looked different from a 'normal' body. A picture of the other person, Kimyeong Han, wearing black t-shirts and putting left hand inside the pocket, looked 'extraordinary' even at a first glance. It was because the right wrist was 'distorted' against the body, facing upwards perpendicularly, and his right and left eyes were 'asymmetrical'. (Wondering if this description as such is unethical.) ● The unfamiliarity from these portraits is not from the body itself, which is 'dislocated' from harmony and symmetry which have been the fundamental conditions of a beautiful body. Rather it is caused by the way that the individuals in the portraits show their bodies, and the perspective of the artist capturing the images deflects the familiar 'ethical sensitivity'. In the society we live, the body image of the disabled people tends to appear in social-ethical context. In the context, with the desperate stories of individuals who, 'despite of the unfavorable physical conditions. 'overcome his or her disability' and 'achieve his or her dream'. In this glorious drama, the body is appeared as a target of individual's strong will. The body, which belongs to the individual and defined his or her life for a lifetime, is depicted as something unfavorable that must be overcome. ● The portraits from 『Your Angle』 were different from those images that satisfy our ethical prejudice. The individuals in the portraits did not consider his or her body as something to get rid of, or to overcome, but seemed to be embracing 'the dislocation and asymmetry' as his or her own style. Also, the non-disabled artist, Jeeyang Lee, took pictures of them excluding the ethical obsession to follow 'normal' standard, without adjustment, concealment, or beautification. Moreover, artist Hwasoo Yoo produced furniture based on the motif or individual's physical characteristics. So "the traces of the angles of the owner" (quoted from the foreword of 『Your Angle』 by Wonyoung Kim) became physically visualized. ● 『Your Angle』 shows the direction of the disability art that they are pioneering. To them, 'the disability art' is neither the art of non-disabled artist for disabled people, nor art of disabled people 'despite of' their disability. It is communal project to look for artistic possibility from 'the angle of body' came with the disability. For this project, the disabled people who can embrace their way of living as a type of style, the artists who can approach disability away from the ethical obsession, and "the hospitable relationship that everyone understands each other with interaction to respect one another" (Wonyoung Kim, 「Defense for the Disqualified」) are necessary.

『Ill Seen Ill Said』 ● This not easy project is tried in the exhibition 『Ill Seen Ill Said』, in which 5 disabled people and 5 non-disabled artists participated. Artist Jaeyeong Park's 「Layer & Reyal」 series consist of photographs of three people and one wheelchair, called 「ChairA, ChairB」. 360 photographs of the subjects, rotating by 1 degree in each photograph, are overlapped. As a result, the image became ghostly, constantly oscillating and became difficult to discern the subjects, the wheelchair, the disabled person on it, and non-disabled people, at a glance. The work covers the limitation of our perception and cognition which we can only see one side at a time, the amount of time we take to look all sides (360 degrees) thoroughly, and the patience that both the viewers and the viewed should endure. Artist Kabin Jeon, presented cement-casted sculpture of 'The Hunchback of Notre Dame (「4/2」)', 'The Little Mermaid (「2/1)」)' and 「When My Eyes are Too Accurate」, a cement-cast from the inward Venus head plaster. A harsh texture, uneven surface, fallen debris, and cracked shape of cement, the material for construction, betray the norm of ideal body, which had been presented in smooth marble sculpture. Insane Park's 「Normal Abnormal」 is a series of work with repetitive videos and photographs. In the video, a disabled person, Kimyeong Han, and an artist stare at the camera. Both are wearing same white shirts and black pants. Since the image in the camera is already out-focused, viewers are hard to distinguish two people. Kimyeong's appearance is dissolved into that of the artist, and the artist to Kimyeong. In the other video, two people speak out "Normal" and "Abnormal" in rotation. Therefore, two separated words 'Normal' and 'Abnormal' are mixed in the repetition 'normalabnormalnormalabnormal,,'. The words 'Normal Abnormal', and 'Abnormal Normal' are projected on the wall and flowing. ● In the video installation of the artists Jeeyang Lee & Hwasoo Yoo, 「Therefore Some are Lesser or Greater than Others」, posterior views of six people are projected in the actual size. There are men and women, someone in a suit and someone in ordinary clothes, also someone in a wheelchair in between people. All heads are the same in height. When it is looked closely, 'lesser and greater' pedestal stones are located in front of the screen to make their heights identical. Looking again from the pedestal stones to the shape of all characters, the viewers can notice that the angles made of characters' bodies are all different. If『Your Angle』focused on the 'extraordinary' angle of body, here, individuals' various angles of bodies are presented as one. The work 「The Way We Walk」 is a video played on a monitor on a conveyor belt moving from side to side. In the video, people are walking down the street with their own tempo and rhythm in contrast to the constant and monotonous speed of the monitor moving back and forth. Walking in looking into a mobile phone, talking on the phone, with a dog, putting one's hand in a pocket, dragging a suitcase, someone is walking in a motorized wheelchair, the other in a wheelchair backed by someone, and the other leaning against a wheelchair and walking. The music and sound effects are added to each movement highlighting the uniqueness of every movement, and show that there are so many different ways of walking. Not only walking. In 「Daisy and Strange Machine」 lips reciting Choyeop Kim's writing, sign languages to convert words into expressions and gestures, and computer application converting the voice into words are working simultaneously. The fact that listening and speaking are possible through the shape of reciting lips, sign languages, and the being textualized voice, bewilder people who think that listening and speaking are only limited to ears and lips.

Inventing Capability of a Body ● When we think of walking, listening, seeing, and speaking, we tend to believe that there is one 'normal' way and the other ways are 'abnormal' final means. This comes from a teleological thought which limits the capability of human body with just a few functions and defines that the capability has a priori-relation with the specific organs of the body. It defines that eyes are for seeing, ears are for listening, lips are for speaking, hands are for grabbing, and feet are for walking. According to these definitions, the normal and abnormal ways of seeing, listening, speaking, grabbing and walking are divided. With this perspective, moreover, people born without specific body parts, such as arms or legs, are labeled as 'disabled' lacking functions of body which enable 'normal' grabbing and walking, even before they invent some kinds of capability of their bodies through using it. ● Despite this attitude controls us dominantly, in fact, this is 'a reversed deduction' (Titus Lucretius Carus, 「On the Nature of Things」) putting cart before the horse. The organs of human are not there for a specific purpose defined a priori. Rather the functions of a body are always being invented as an effect of using it variously. The human organs are not restricted to a specific function that is a priori-defined. So, the body has potential to show unexpected new functions which were never imagined before. If the function of lips is restricted to speaking, beatbox, amazing rhythm played by lips, could never be invented. If the function of legs is restricted to walking, tap dance, making wonderful sounds with legs and feet, could never be devised. ● It is not the case that the 'normal walking' exists first then the body execute it dutifully. Rather it is the rhythmical movement of feet, thighs, arms and trunk that invent walking. 'Normal speaking' neither defines nor exists before the body organs. It is the use of face, hands, lips, and tongue differently to create one's own way of speaking. These cases are found abundantly in disabled people. The people, who were unable listen through ears or speak through lips due to some happenings, came up with the skills of listening and speaking through the other parts of body. A person born without the auditory sense comes up with one's face and hands as parts to speak. A person who lost one's sight comes up with the collaboration between the smelling and hearing senses to see. This invented capability of the body is connected to a unique and special culture which is different from that of people who sees only with their eyes, listens only with their ears and speaks only with their lips. Sign language can be an example as it uses movement of hands and expression of face in a space, which is different from vocal language as it is linear time-based. ● More interesting point is where the potential capability of human body meets technology. It is common sense for media studies that technology and medium are 'the extension' (Marshall McLuhan, 「Understanding Media」) of body-sensory capability. It is disabled people who shows most evidently the new capability of body through the combination of technology, as they are directly experiencing how technology changes, amplifies, and expands the physical ability. Wonyoung Kim, a lawyer, who participated in 『Your Angle』 and 『Stationary Orbit』 stated "body of disabled person… can be beautiful with muscles created by non-damaged body parts to endure gravity, and also the elegance, velocity and balance of damaged and non-damaged newly created body parts combined with short legs, artificial legs and wheelchair which came together with the body for a long time" (Wonyoung Kim, 「Defense for the Disqualified」). In 『Ill Seen Ill Said』 Choyeop Kim, the participating writers, talked about 'extended capability' through hearing aids come with sound recover feature. ● There is not only one way of listening, seeing, walking and speaking that is defined as 'normal'. It is always being invented as the parts of body are being used and exercised and also combined with technology. When walking, listening, seeing and speaking go beyond "the stationary orbit", and the new capability invented by human body is connected to a new culture, ultimately the future of human evolution could be imagined, where the idea of disability itself disappear. 'Disability Art' should play an important role for this. ■ Namsee Kim

Vol.20200108e |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