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IER

정희승展 / CHUNGHEESEUNG / 鄭喜丞 / photography   2020_0109 ▶︎ 2020_0305 / 주말 휴관

정희승_Black Squirrel_C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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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주말 휴관

신도 문화공간 Sindoh Art Space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24길 3(성수2가 277-22번지) Tel. +82.(0)2.460.1247 www.sindoh.com

신도문화공간에서는 제 8회 신도작가지원프로그램 (SINAP) 선정작가의 세 번째 전시로 정희승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 사진을 주된 매체로 다루는 정희승 작가는 사진의 재현성과 그 한계에 대해 사유하며 책과 오브제, 사진설치의 형태로 매체에 대한 확장과 실험을 지속해오고 있다. 공간과 장소의 구성, 배열과 배치를 중심으로 대상이 지니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를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불완전한 재현의 도구로서의 사진의 표면을 드러내고, 또 감추면서 사진의 한계와 동시에 사진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내면과 표면, 이미지와 텍스트, 감춤과 드러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정희승_Copier_A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정희승_Copier_B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정희승_Copier_C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정희승_Copier_D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정희승_Copier_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COPIER 시리즈는 이미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현실에서 사진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작업이다. 신도리코의 지원을 계기로 사진이라는 복제예술을 탐구하는 매개로 복사기를 선택했고, 전시는 복사기, 복사된 복사기 이미지, 복사기를 작동하는 빛과 3D printer로 출력된 사물 등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을 선보인다. 각각의 소재는 5개로 미묘하게 변주되는데, 이 숫자는 작가의 일반적인 사진작업의 에디션의 개수이다. 그러나 이 5개의 변주된 이미지는 유니크 에디션으로 제작되어 그것에 유일무이한 가치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SNS에서 대량으로 유통, 소비, 살포되는 이미지현실 안에서 예술로서의 사진이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 정희승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영국 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s에서 사진석사 과정을 마친 후, 2008년 이후 서울에서 시각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박연주와 헤적프레스를 설립하면서 두 사람은 다양한 시각예술가들과 협업하는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정희승은 이 작업들을 통해 책을 이미지와 텍스트, 구조와 물성간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으로 인식하고, 매체로서의 책과 인쇄물을 작업의 중요한 영역으로 탐구해 오고 있다. ■ 신도 문화공간

정희승_Copied_C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정희승_Copying_D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사진은 어떻게 급격히 늙어버렸는가? ● 1827년, 그 최초의 형식이 석판 기술자인 조세프 니엡스(Joseph N. Niepce)에 의해 소개된 이후로 사진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신의 위상을 달리해왔다. 19세기 중반, 유한계급의 호사스러운 취미생활이던 사진은 광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급속도로 대중화 되었고, 20세기 말에 Dslr이 출현하면서 CCD가 담아내는 픽셀의 수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카메라는 점점 작아지고 사진은 점점 커졌다. 필름은 빠른 속도로 소멸의 길을 걸었다. 내가 사진을 공부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많은 독일인들이 회화의 스케일을 뛰어넘는 거대한 사진들을 만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건데 그 때가 사진예술의 마지막 짧은 전성기의 끝무렵이었다. 거대하고 육중한 사진들이 대형 상업화랑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던 때에 사진은 완성된 것이다.

정희승_Buddha Face_A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벨기에 아티스트 Mark Manders는 몇몇 인터뷰에서 컵의 진화에 대해 말하곤 했다. 최초의 원시인들은 물을 마실때 두 손을 모아 물을 담아 마셨을 것이다. 그러다 나뭇잎을 이용하고, 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손잡이가 달린 컵의 형태가 나왔을 때 컵은 완성되었다. 이후의 모든 것은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 나는 사진이 가장 크고 무거웠던 2000년대 초 중반에 독일인들에 의해 사진의 형식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후 사진은 점점 무게를 잃어갔고 서서히 하찮아졌다. 정보화시대에 이른 지금, 사진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 내가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나의 사진은 인스타그램의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사랑스러운 정방형 이미지와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여전히 나의 사진액자는 자신의 무게로 그 존재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까? ● 이 대목에서 나는 느닷없이 카프카를 떠올린다. "카프카는 인간의 행위를 결정짓는 내적 동기가 어떤 것이냐를 묻는 게 아닙니다. 그의 물음은 내면적 동기가 더 이상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될 만큼 외부적 결정이 압도적인 것이 돼버린 세계에서, 아직 인간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이란 어떤 것이냐는 거죠." (밀란 쿤데라, 권오룡 번역, 『소설의 기술 (Art du Roman)』 p.39, 민음사, 2008)

정희승_27 Years_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4×48cm_2019

어쩌면 이 말은 오늘의 사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진이 완전히 무게를 잃어버린 세계에서, 감상과 해석의 문제가 아닌 처리속도의 문제가 된 현실에서, 아직 사진에 남아있는 가능성이란 어떤 것인가? ●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 정희승

Vol.20200109b | 정희승展 / CHUNGHEESEUNG / 鄭喜丞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