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표류기: 액체화된 세계, 유동하는 개인

박성은_이다윤_이물질_이수하展   2020_0109 ▶︎ 2020_011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move-ject https://www.instagram.com/move_ject/ 주관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현대미술학회 C.A.S.

관람시간 / 10:00am~06:00pm

올댓큐레이팅 ALL THAT CURATING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5 Tel. +82.(0)2.736.1054 www.atcurating.com www.instagram.com/atcurating

오랫동안 굳건할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진 이후, 우리는 '액체성'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마주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했듯이, 예측과 통계가 가능한 '고체 근대'는 용해되고, 이동성과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액체 근대'가 도래했다. 이에 현대인은 정주하고 싶어도 정주하지 못하게 되었고, 개인은 분자화되었으며, 그들의 관계망은 확장되었으나 그 깊이는 얕아졌다. 액체 근대에서 사람, 사물, 자본, 기회, 위협 등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쉽게 이동하고, 미끄러지고, 변화하고, 가벼워진다. ● 우리는 쉼 없이 유동하고 있기에, 단일한 좌표로 그 위치를 고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의 위치를 알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묻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新표류기: 액체화된 세계, 유동하는 개인』은 물렁해진 세계와 함께 진동하는 예술의 영역에서 저마다의 좌표를 찾으려는 시도를 조명한다. 불확실한 좌표를 찾아가는 네 작가들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이동이 운명이 된 현대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본 전시는 방향성을 잃은 채 종착지 없이 달려가던 이들에게 현재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며 점검할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 move-ject

박성은_무거운 초록_장지 이합 배접, 분채 채색, 시멘트, 목탄, 오일 파스텔, 우레탄폼_가변크기_2019 박성은_시선의 모양_장지 이합에 목탄, 먹, 우레탄폼_가변크기_2019 박성은_Larger, Larger_장지 이합에 목탄, 먹_가변크기_2019
박성은_하얀 숲_장지에 혼합재료_130.3×162.2cm_2018

1. 박성은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의 상대성과 유동성을 주제로 회화와 설치 작업을 넘나들며 매체 실험을 이어나간다. 오늘날의 시대적 특성인 '액체성'을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개방성의 성질로 파악한 그는 이번 『新표류기』에서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로 '한지'를 제시한다. 박성은은 물질을 다루는 문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신념 아래 전통재료인 한지에 대한 편견을 깨고, 정형화된 기존 회화의 틀에서 벗어나 '동적인 회화'로 나아간다. 작업 초기에는 젖은 한지를 목탄, 파스텔, 청키로 벗겨내 한지의 물성을 강조하는 평면 작업을 시도했으나, 이후 그의 실험은 얇고 부드러우며 동시에 예민한 매체의 물성을 살려 한지를 변화 가능성을 지닌 유기체로서 표현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박성은은 한지를 구기고, 접고, 찢고, 뭉치고, 제작된 오브제들을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한지에 '자유의 몸'을 부여하여 「시선의 모양」, 「Larger, larger」, 「무거운 초록」을 완성한다.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는 기존 회화와 달리, 박성은의 작품은 주위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작가의 의도에 따라 형태를 유동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자유의 몸을 얻은 그의 작품은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고 외부와 상호작용하여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액체시대 속 자신의 현 주소를 인식하여 작품에 반영하려는 박성은의 시도는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내몰린 개인들에게 굳은 관습의 붕괴가 새로운 창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 김은비_윤혜린

이다윤_멸치볶음_멸치에 레진_가변설치_2019
이다윤_무궁한_ 종이에 채색_24×21.5cm_2019

2. 이다윤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반복되는 세계의 순환적 흐름을 지렁이, 쥐, 멸치 등 작고 하찮은 미물에게서 포착해낸다. 미물은 작가가 관찰자로서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세계의 흐름을 포착하기 용이한 대상인 동시에 작가 본인의 투영물이다. 쥐를 소재로 한 초기 작업에서 이다윤은 자신을 케이지에 갇혀있는 실험용 쥐에 투영하고, 작가를 둘러싼 세계를 케이지 밖의 쉴 틈 없이 지나가는 것들에 은유한다. 여러 마리의 흰 쥐들이 보이지 않는 틀에 갇힌 듯 네모난 형태로 눌려 있는 「푸른 네모」는 못에 걸린 채로 전시공간에서 지나가는 관람객을 마주하게 된다. 갇힌 쥐와 이동이 자유로운 관람객 간의 대비는 개인을 감싸며 흘러가는 세계를 시각화하는 동시에, 한 개체로서 거대한 세계의 흐름을 바라보게 한다. 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더욱 작고 미력한 미물들로 이어져 절지동물, 작은 생물 등의 소재를 위주로 작업이 진행된다. 실제 반찬으로 쓰이던 볶음멸치를 레진에 넣고 굳힌 「멸치볶음」은 일상에서 늘 관계 맺으면서도 우리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쉽게 대체되는 멸치를 개체로서 하나하나 주목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다윤의 작업은 흘러가는 미물을 박제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보다는 미물을 잠시 안았다가 놓아주는 관계적 행위에 가깝다. 즉 미물을 잡아내는 그의 작품은 순간의 박제이지 생명체의 박제가 아니며, 흘러가버릴 것들에 잠시 관여하는 일시적 매개물이다. ● 한편 이다윤은 세계의 모습이 비슷한 양상으로 탄생하고, 반복되고, 스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실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삶의 순간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가는 달팽이를 소재로 삼은 세 점의 회화작품 「무궁한」, 「빈 집과 남겨진 것」, 「뿌리내리다」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적 흐름에 주목한다. 그 중 「무궁한」에서 달팽이를 감싸는 다섯 송이 무궁화의 꽃말은 무궁(無窮), 즉 영원하고 끝없음이다. 중앙에 위치한 두 마리의 달팽이는 머리에 해골을 쓰고 있으며, 반복 재생 기호를 연상시키는 달팽이의 형상은 삶과 죽음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 고리를 상징한다. 이처럼 이다윤은 흘러가는 미물들을 통해 출구 없는 반복의 고리에서 되풀이 되는 세계의 현상을 인식하고 그것이 지닌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듯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으려는 이다윤의 작업은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어온 세계의 흐름에 잠깐의 개입을 꾀하는 동시에, 그의 작업도 지나가버릴 것이라는 필연적 운명을 지닌다. ■ 이선화_조원영

이물질_Decalcomanie_디지털 프린팅, 섬유_91.5×160.5cm_2019
이물질_zero-sum game_디지털 프린팅, 섬유_70.1×191.4cm_2019

3. '이물질'은 거대한 기계와 같은 사회의 틈에 끼어 경종을 울리려는 작가의 예술관을 반영한 예명이다. 작가는 이러한 예술적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사회 속의 이물질이 되어 비판적으로 진단한 사회를 작품에 투영한다. 몸이 좋지 않았던 대학시절, 앞으로 달려 나가는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뒤처진 경주마'와 같다고 생각한 이물질은 한없는 무력감과 조바심을 느꼈던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청년들은 서로 경쟁하고 자신을 상품화하지만, 결국 그들이 쫓는 안정적인 삶은 신기루와 같다고 느낀 이물질은 불확실한 시대에서 삶의 좌표를 찾아가는 동시대인의 여정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 이물질은 '말', '인체', '파란색(Blue)'이라는 세 가지 소재로 디지털 페인팅과 자수를 활용하여 평면 작업을 진행한다. 작품 전반에 쓰인 파란색은 청춘(靑春)의 푸름을 뜻하며, 청춘의 열정과 그 심연에 있는 불안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표상한다. 본래 청춘은 생명력이 자유롭게 분출되는 역동적인 시기로 여겨져 왔으나 작가는 현시대의 청춘은 불확실한 미래에서 기인한 불안과 우울을 지녔음을 지적한다. 푸른 빛의 신체에 겹쳐진 경주마의 꼬리는 청년들의 삶을 상징하며 작가의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 「Zero-sum Game」에서는 파란빛 속에서 사람과 말의 신체 표현이 겹쳐져 동시에 지각된다. 두 개의 판넬에 각각 표현된 두 신체는 암시적으로 연결되어 숫자 '0'을 형상화하지만, 한 평면 위에 존재하지 못하고 단절된 상태로 각자의 위치에서 몸부림 치고 있다. 작가는 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0)가 되는 게임을 일컫는 '제로섬게임'을 제목으로 차용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얻는 만큼 상대방은 잃게 되고 상대가 얻는 만큼 자신이 잃게 되는 치열한 승자독식의 사회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안정적이지 못한 대립 사회를 표현한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허우적대는 이물질의 푸른 신체 이미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안정한 현시대 청년들의 초상이자 작가 자신의 초상이다. ■ 박나운_임은수

이수하_'팡르르르'하고 쏟아집니다_캔버스에 유채, 연필_100×80.8cm_2019
이수하_'팡'의 과시_캔버스에 유채_100×80.8cm_2019

4. 선과 면이 화면 위에서 유동하는 이수하의 추상회화는 '명확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상징적인' 인간 감정의 찰나를 포착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내면을 떠돌아다니는 감정의 다양한 형태를 본인만의 비정형의 이미지로 명명하려는 시도는 변화무쌍한 외부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흔들리지 않는 각자의 본질과 존재를 모색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그 결과인 추상-이미지 작업 「Changed Motion I」, 「9 movements」의 비정형의 유동적인 형태들과 색감은 작가의 감정, 인상 또는 그것의 분위기나 에너지를 드러내면서, 더 나아가 감상자들에게 각기 다른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팡르르르'하고 쏟아집니다」, 「'팡'의 과시」는 사물의 소리 내지는 움직임을 흉내내는 의성·의태어를 제목에 활용했는데, 음성상징어는 화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며, 제목의 음성상징어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 역시 감상자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다. 무형의 순간적인 감정들에 추상적이고 유동하는 형상을 부여하고, 그러한 형상을 의성·의태어로 명명하려 시도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추상-이미지가 지닌 유동성을 주관적으로 인식하게끔 한다. ● 이수하의 작업은 특정 도상에 시선이 머무르는 구상회화와 달리 감상자의 시선이 캔버스 위를 부유하게 하며, 감상자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 작가와 감정을 공유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마침내 저마다의 내면이 지닌 운동성과 모호함을 인지하게 된다. 이수하의 추상-이미지는 주체적 삶을 좇았던 작가 개인의 수행의 결과물을 매개로, 현대의 개인에게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쉴 틈 없는 풍랑 속에서 난파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의 돛을 드높여야 할 때임을 역동적인 이미지를 통해 외치는 것이다. ■ 이나현_이시우

Vol.20200109c | 新표류기: 액체화된 세계, 유동하는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