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To Survive

강주리展 / KANGJOOLEE / 姜妵利 / mixed media   2020_0110 ▶︎ 2020_0322

강주리_Chaos_종이에 펜, 잉크젯 프린트_가변설치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91024i | 강주리展으로 갑니다.

강주리 블로그_jooleekang.blogspot.com

작가와의 만남 / 2020_0121_화요일_06:00pm

봉산문화회관 기획 전시공모 선정작가展 '헬로우! 1974' ⌜유리상자 - 아트스타 2020⌟ Ver.1

관람시간 / 09:00am~10:00pm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2층 아트스페이스 Tel. +82.(0)53.661.3521 www.bongsanart.org

봉산문화회관의 기획, 「유리상자-아트스타 2020」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합니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74'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하여 '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동시대 예술의 가치 있는 '스타성'을 지원하려는 의미입니다. ● 4면이 유리 벽면으로 구성되어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람방식과 도심 속에 위치해있는 장소 특성으로 잘 알려진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는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시민과 예술인의 자긍심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 올해 유리상자 전시공모 선정작 첫 번째 전시, 「유리상자-아트스타 2020」Ver.1展은 회화를 전공한 강주리(1982년생)의 설치작업 '살아남기 To Survive'입니다. 이 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생태적 변화들을 주목하고 그 양상을 수집하여 집적하는 행위의 흔적이며, 어쩌면 낯설고 괴기스러워서 살펴보지 않았던 생태 순환계의 변이와 진화의 실상들이 펜 드로잉의 방식으로 포획되고 겹쳐져 기이한 입체로 증식되는 상태에 관한 설계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살아남기'라는 실체적 해석이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 상태와 어떻게 관계하는지, 또 이들 상황들이 우리의 감수성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동시대 미술의 영역으로 합류하는지에 대하여 흥미로운 질문을 합니다.

강주리_Chaos_종이에 펜, 잉크젯 프린트_가변설치_2020

강주리 작가는 4면이 유리벽으로 마감된 천장 높이 5.25m의 전시 공간 내부에 우주나 동굴에 있을법한 생태계를 조성하였습니다. 동굴의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며 자라는 종유석, 아니면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한 먼지, 혹은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유성체를 연상시키는 8개의 크고 작은 입체 덩어리로 이루어진 이 생태계는 수많은 '변이와 진화'의 대상과 상황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한껏 움츠리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는 작가가 그동안 미디어를 접하며 주목해온 자연 생태의 변화와 그 흔적들의 수집과 증식, 또 증식한 개체간의 해체와 집합 등 진행 과정에서의 시간과 그 사태에 관한 시각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오랜 시간동안 펜 드로잉의 짧고 가느다란 선들을 모으고 쌓아 구축한 70여개의 자연 변이와 진화의 실상은 이렇습니다. 눈이 하나뿐인 원숭이, 다리가 여섯 개인 강아지와 양, 다리가 여덟 개인 소, 다리가 다섯 개인 양과 개구리, 머리가 두 개이거나 꼬리가 붙은 거북이, 머리가 두 개인 개와 뱀, 고양이, 병아리, 도마뱀, 다리가 네 개인 오리, 콧구멍이 세 개인 젖소, 발가락이 기형인 이구아나, 머리가 두 개에 눈이 한 개인 돼지, 날개달린 고양이, 혀가 긴 개, 귀가 네 개인 고양이, 얼굴 두 개가 붙은 고양이, 등에 보호용 눈이 그려진 개구리, 알비노 코끼리, 해양오염으로 아가미가 변형된 물고기, 박스에 많은 양을 넣기 위해 만든 네모 오이, 입시 합격을 위한 네모 사과, 발렌타인데이를 위해 만든 하트 귤, 방사능 오염으로 씨 많은 과일과 뒤틀어진 채소들 등등, 이들 개체들은 우리의 삶과 현실 속에서 차이와 구별의 시선으로 발견한 자연 생태 변화의 징표들입니다. 작가는 이 손바닥 만 한 종이 펜 드로잉들을 수백 수천 개씩 복사하고 오리고 붙여서 집합 형태로 공간에 펼쳐놓았습니다. 이게 뭘까요? 예사롭지 않은 소수 대상들의 차이와 구별로 이루어진, 이제껏 본적 없었던 거대하고 기이하며 지속적인 꿈틀거림. 그렇습니다, 그동안 볼 수 없거나 보지 않거나 보지 못했던, '살아남기'를 위한 생명체의 변이와 진화가 종유석이나 먼지나 유성체처럼 쉽게 보기 어려운 '살아있음'의 상태로 설계된 것입니다. 이러한 작가의 설계 행위는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살아있음'의 자각과 시간을 들이며 수집하고 포획하는 노동 행위를 떠올리게 하며, '살아있음'의 창조를 꿈꾸며 응축하는 미술행위로 읽혀집니다. 한편으로, 유리상자 안에 설치된 변화의 흔적들은 '살아남기' 위해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상태의 상징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자연'의 '살아남기'를 상징하며, 미술가로서 작가가 주목하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일부로서 세계의 '변화' 자체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변화의 상태에 대한 관심은 인간 중심적인 자기 이해가 아니라, 우리들 현실의 삶을 숙고하고 그 대응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려는, 그 속에 예견된 자연의 '실체'에 대한 경외심을 공감하여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 어떤 변화의 현실을 보이지 않는 내면적 인식으로 번안하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변화하는 자연을 주의 깊게 살피고, 그 속에서 예술의 유효성을 추출하려는 작가 스스로의 질문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 질문은 변화變化와 균형均衡을 담보하는 자연설계自然設計에 관한 것입니다. 이 자연설계와 만남은 '살아남기'라는 작가의 시각적 해석으로서, 모든 사물은 성질과 모양, 상태가 바뀌어 달라지며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과 끊임없는 변화와 균형의 순간을 이어 순환한다는 보이지 않는 실체의 운용에 관한 이해와 공유일 것입니다. ■ 정종구

강주리_Chaos_종이에 펜, 잉크젯 프린트_가변설치_2020

변이와 진화, 증식, 집합, 살아남기. ● 나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태 환경의 변화, 생명체의 변이, 진화에 주목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드로잉과 혼합적 설치를 통해 우리의 가능성과 존엄성에 대한 이해와 고찰을 요구하고자 한다. ● 첫 눈의 이끌림을 넘어 시간을 들여 읽다 보면 각종 이유로 유전자 변형된 생태계, 멸종위기의 동식물, 돌연변이, 유기견/묘, 로드킬의 현장 등 다양한 현대 사회 속 생태계 모습과 그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업의 바탕이 되는 자연사박물관이나 과학 잡지, 뉴스, 인터넷 속 생태계는 그 시대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 관계를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자 한다. 나는 작업을 통해 교훈이나 반성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오늘날 그 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늘어놓고자 한다. ● 드로잉도, 설치도 나의 작업의 시작은 종이와 펜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인 펜으로 그린 짧은 선들의 집합체, 드로잉. 작은 드로잉을 그리고 수십 개를 스캔하여 조작하고, 반복적으로 프린트하고, 오리고, 붙여서 공간에 펼치는 설치 작업. 노동집약적 작업은 곤욕스러운 과정이라기보다는 '창조'를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개체가 모여 또 다른 하나가 되는, 비정형이 정형이 되는, 상징적인 '생명'의 형태이다. 이 작업은 완성체로서의 의미보다는 과정과 완성 후 계속해서 증식할 수 있는 가능성의 기운이 중요하다. 그 과정과 기운을 관람객과 공유할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 강주리

강주리_Chaos_종이에 펜, 잉크젯 프린트_가변설치_2020

카오스로서의 자연에게 생명의 진화를 묻다카오스, 자연, 생명 생명이란 무엇일까? 먹고 마시고 호흡하는 유기체인 생명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생존하며 무엇으로 진화해 가는가? 생명은 곧 물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생명을 규명할 수 있는 법칙이란 존재하는가? ● 강주리 작가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 질문들을 카오스(chaos)로서의 자연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 소환한다. 작가가 드로잉한 자연은 무작위로 선택되어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다. 그 이미지들은 예컨대 꽃잎, 물고기, 거북, 이구아나, 돼지, 양, 가지 등 일정한 패턴을 지닌 자연으로서 과거의 세포들 속에 저장된 기억을 DNA에 전달하고 지속시켜온 생명들이다. 작가가 긴 시간 펜으로 혹은 연필로 섬세하게 그리는 노동집약적 작업 속에서 탄생한 자연이란 일종의 거대한 무질서의 블랙홀(black hole)과 같은 이미지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카오스의 어원은 그리스어 'khaos'이며 이 말은 '크게 벌린 입'을 뜻한다. 즉 무엇이든 삼켜 버리는 우주의 거대한 구멍인 블랙홀을 의미하는 카오스는 정돈된 우주의 질서인 코스모스 이전의 상태로서 '무질서, 혼돈, 무한'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런데 왜 작가는 생명을 카오스의 이미지로 바라본 것일까? 작가의 펜 끝에서 창조된 카오스로서의 자연은 원초적이고 무한한 에너지 덩어리로 표출될 뿐 어떠한 감정도 배제되어 있다. 말 그대로 그의 드로잉은 생명이 잉태한 다양한 자연의 양태를 늘어놓은 것이며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그 생명들은 우주의 탄생이래로 전개되어온 진화의 과정 속에 놓여있음을 전한다. 그가 말하는 카오스의 자연은 시작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무한한 푸가의 연주처럼 증식하고 집합되는 존재이다.

강주리_Chaos_종이에 펜, 잉크젯 프린트_가변설치_2020

작가가 붙인 전시의 타이틀인 '살아남기: 증식과 집합 To Survive: Multiplication and Aggregation'에서 알 수 있듯이, 강주리의 작업에서 카오스는 코스모스 즉 조화로운 우주 생성의 이전 단계로서 존재했던 혼돈 상태의 우주를 말한다기보다 생명 자체의 특성으로서의 비결정성 즉 결정되지 않은 형질, 진행 중인 물질의 운동, 출렁이고 동요하는 '동사'로서의 생명들이 이루는 생태계를 가리키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작가가 천착해온 주제의식 즉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태환경에 대한 변화와 생명체의 변이 및 진화" 자체에 대한 관심은 그로 하여금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드로잉과 혼합적 설치를 통해 우리의 가능성과 존엄성에 대한 이해와 고찰"로 나아가게 했으리라. 따라서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명료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체의 진화는 현재 인위적인 것 혹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생존하기 위해 증식과 집합을 반복하는 물질로서의 자연-카오스에 대한 물음은 사실 생명의 본질과 진화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강주리_Chaos_종이에 펜, 잉크젯 프린트_가변설치_2020

가이아로서의 지구 ● 고대로부터 자연은 인간과 더불어 신의 호흡을 서로 나누어왔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우주만 보아도 지구는 혼과 지성을 가진 생명체이며 신이 잉태한 살아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신(영혼)이 우주 만물에 깃들어 있다는 물활론 사상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점차 배척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 기독교에 바탕을 둔 근대 합리주의 철학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이 부여한 지성을 가진 존재이며 인간을 제외한 자연은 기계처럼 작동하는 물질이라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데카르트가 확신을 주었듯이 영혼 없는 동물은 살아 있는 채로 실험실의 판에 못 박는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들이 언급했듯이, 그 자체가 스스로 생성하는 힘을 가진 피시스(physis)로서의 자연은 인간 이성을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구축한 계몽주의 이후로는 기껏 인류의 진보를 위해 탐구되어야 할 수단이나 재료 혹은 부품(하이데거)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어온 것이다. 자연은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며 스스로 자신을 생성하고 조직하는 존재라는 것임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의하면, 생명은 "만물의 얼어붙은 순결을 비밀스럽게 휘젓는 열정이며,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관능적 불결함이며, 어떻게 생겨나고 만들어지는지도 확실치 않은 불순물과 이산화탄소 가스를 내보내는 호흡"(토마스 만)이며, 따라서 지구는 "열과 무질서를 우주 공간으로 배출함으로써 우리의 대기를 화학반응성이 높으면서도 질서 있게 만들"(린 마굴리스) 수 있는 살아있는 어머니 여신 즉 '가이아'(제임스 러브록)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강주리_Chaos_종이에 펜, 잉크젯 프린트_가변설치_2020

피시스에 대한 형이상학(metaphysics)으로서의 작업 ● 생명 자신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힘, 즉 자기(auto)와 제작(poien)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우토포이에시스(autopoiesis)'로서의 피시스라는 개념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강주리의 작업에 적용될 수 있다. 자기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물질대사를 하는 유기체로서의 생명이 오늘날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강제적으로 생산하거나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환경에 맞추어 온 결과가 그의 작업에 드러난 생명의 실체이다. 즉 "유전자 변형된 생태계, 멸종위기의 동식물, 돌연변이, 유기견/묘, 로드킬의 현장 등 다양한 현대 사회 속 생태계 모습"은 작가의 작업의 소재가 되었던 "자연사박물관이나 과학 잡지, 뉴스, 인터넷"뿐 아니라 동시대의 생태예술들에서도 왕왕 등장한다. 예를 들면, 미국 작가 브랜든 밸는지(Brandon Ballengée)의 작업 「말램프(Malamp)」는 1995년 미국의 미네소타 주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기형 양서류에 충격을 받아 제작한 사진 및 설치 작업한 것이다. 정상치를 넘는 비료의 사용은 다리가 대여섯 달리거나 눈알이 한 개 뿐이거나 몸통의 구조를 심하게 왜곡시킨 돌연변이 개구리들을 낳았다. 마찬가지로 강주리의 작업에서 우리는 인간이 만든 자연의 기형물을 보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이러한 생태계의 사건들은 우리 시대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 바로 자연을 대상화하고 지배해온 인간의 야만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작가는 결코 이러한 사실들은 비판하거나 혹은 강조함으로써 어떤 교훈이나 반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 생명체를 그린 작은 드로잉들, 그것을 수십 번 스캔하여 조작하고, 반복적으로 프린트하고, 오리고 붙여서 공간에 펼친 강주리의 설치 작업 「Chaos」는 그 조형적 아름다움 때문에 오히려 이들 돌연변이 생명들에 이끌린다. 이것들이 끔찍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환경에 대응하면서 자기조직화 하는 생명들의 생존 욕구 자체가 아름다운 본능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미래의 생명으로의 진화는 바로 지금 생명 스스로의 결단과 창조에 달려있다. '증식과 집합'으로서의 생명 운동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 될 것인가?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를 인식하느냐의 차원에서 드러날 것이다. 강주리의 카오스는 우리에게 그 관계의 물음을 던지는 형이상학적(metaphysics) 자연에 대한 그림이라고 하겠다. ■ 유현주

시민참여 워크숍 - 제목 : 작가와의 대화 - 일정 : 1월 21일(화) 오후 4시 - 장소 :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 대상 : 일반시민 - 참가문의 : 053) 661-3526 - 내용 : '살아남기 To Survive'의 영감, 리서치 과정을 소개하고 작업, 전시 경험담을 공유한다.

Vol.20200110c | 강주리展 / KANGJOOLEE / 姜妵利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