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터왓

Keunteowat展   2020_0116 ▶ 2020_0315 / 월~수요일,설연휴 휴관

김현승_큰터왓-김병화_아카이브 영상자료_01:10:38_2020

초대일시 / 2020_0118_토요일_03:00pm

참여작가 김현승_빈센트 쇼마즈 Vincent Chomaz 스투디오 Sssstudio_율리안 오트 Julian Ott 이지연_조은장_허성우

후원 / 제주특별자치도

관람시간 / 12:00am~6:00pm / 월~수요일,설연휴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64.755.2018 www.culturespaceyang.com

기록 너머의 기억 ● 제주 4·3은 한때 우리가 입 밖에 꺼내기조차 어려운 말이었고, 우리가 오랫동안 침묵하면서 잊으려 한 역사다. 우리는 이 침묵 속에서 4·3을 마치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했지만, 과거는 완전히 묻힐 수 없었고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빈센트 쇼마즈_과거의 메아리들_사진, 글, 지도_가변설치_2019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앞서 살았던 거칠고 사나운 시절은 나에게는 흘러가는 물결처럼 그저 지나간 하나의 역사다. 앞선 시대의 그 어떤 기억과 기록 없이는 나는 광폭한 그 시대를 잠시라도 엿볼 수 없다. 명징하게 남아 있는 그 시절의 기억은 기념비와 박물관 같은 곳에 영원히 기록되었지만, 흐릿한 기억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우리는 기념비와 박물관에 과거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싶어 하지만, 결코 전부 가져올 수 없는 기억의 흔적이 있다.

스투디오_왓_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0

기억의 흔적은 삶을 삼켜버린 거대한 사건이 있던 그때, 그 터에 남아 있는 우리의 감정이며, 사진처럼 영원히 그 순간을 치를 떨며 몸으로 기억하는 숨겨진 비밀이다. 잊고 싶지만 기억되고, 붙들고 싶지만 잃어버린 기억의 흔적은 삶에 새겨진 흉터와 같은 몸의 기억이다. 감정은 몸의 기억을 살아나게 하는 힘이기에 그때 그곳에 새겨진 감정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율리안 오트_보리밭_카메라 옵스큐라 사진, 빔 프로젝터_2019

거로마을은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몸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제주 4·3으로 마을 전체가 불타버린 추운 겨울의 그 날, 벌겋게 변해버린 하늘의 풍경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검은 재만 남아 있는 그곳에서 자신의 집터가 어디인지 찾지 못한 사람들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여전히 그들의 눈가에 맺혀 있다. 지금은 편의점이 된 옛 공회당 터에서 길쭉한 대나무를 깎아 만든 창으로 사람들을 때릴 때 무서워 차마 눈뜨지 못하고 들었던 매서운 소리가 지금도 그들의 귀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옛 늙은이터에서 같은 동네 사람이 죽는 장면을 두 눈 뜨고 보지 않으면 자신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기에 그들은 차마 눈을 감지 못했다. 마을의 한 어르신은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다.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지연_늙은이터_종이에 오일파스텔_17.5×17.5cm_2019

하지만 또 다른 기억의 흔적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임시로 마련된 만평 부지에서 어려움을 같이하며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며 오랜 시간 동안 생활을 같이했다. 삶을 함께 이어가고자 했던 강렬한 생명의 의지도 그들에게 기억의 흔적으로 남았다. 세월 속에 무뎌진 조각처럼 '몸의 기억'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삶의 생생한 의미가 살아 있다.

조은장_큰터왓_피그먼트 프린트_30×45cm_2019

제주 4·3의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우리에게 더 가까워지고 생생해진다. 4·3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듣고 담아내는 것은 마치 타인의 일기장을 들춰보듯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래서 거로마을과 함께하는 문화공간 양의 그 어떤 기억에 대한 기록 작업도 항상 조심스럽고 그 작업은 더디게 나아간다.

허성우_큰터왓-한라에서 부는 바람_악보_2019 (보컬,클라리넷_표진호 / 작곡,피아노_허성우) 허성우_음향기기_00:06:57_2019

각기 다른 때와 장소에서 나고 자란 작가들이 거로 마을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때의 기억과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작가들이 제주 4·3을 기념비와 전시관의 기록으로만 접했다면 거로마을의 4·3을 얼마나 깊게 공감하며 함께할 수 있었을까? 작가들은 거로마을에 일정 기간 살면서 마을 분들의 기억을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표현된 4·3의 목소리를 문화공간 양에서 들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매일 들렸던 편의점은 옛 공회당의 흔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지만, 거로마을 4·3의 기억은 자신이 매일 밟고 다닌 그 터에서 전해졌다. 거로마을에 관한 기억의 흔적은 작가들과 마을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매체로 다시 드러나고 공명하며 퍼져간다. ■ 김범진

Vol.20200116f | 큰터왓 Keunteowa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