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기_송하나_유한이_거리홍(盖利红)展   2020_0207 ▶︎ 2020_031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0_0207_금요일_05:00pm

기획 / 박천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수애뇨339 SUEÑO 339 서울 종로구 평창길 339 Tel. +82.(0)2.379.2970 sueno339.com

1.​ 작가는 이런저런 작법과 화법으로 특유의 '숨'을 담아낸다. 사용하는 재료의 물리적 특성이나 생김새 등을 존중하거나 재료나 안료의 고유한 심리적 성결과 만듦새와 길항하며 저마다의 고유한 호흡을 부여한다. 다양한 지지체나 재료에 쌓아올리듯 새기고 풀어 놓은 이야기 속에는 녹녹치 않은 삶을 살아내며 경험한 지혜와 슬프도록 아름다운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미래적 바람과 꿈 등이 켜켜이 배어 있다.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의 현실, 짧았던 지난 생에서 경험한 만남과 이별 이야기를 오롯이 반추하거나 곱씹어 낸다. ● '숨'이란 이렇듯 일상을 힘껏 삼투한 삶의 풍경으로부터 아스라이 잊힌 기억 저편에서 조우한 따스한 기운을 들춰내고 소환하려는 작업충동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과 세상 모두에게 선사하는 휴식과도 같은 풍경, 녹녹치 않은 상황 속에서 열심으로 이번 생을 살아내려는 바람 등을 반영한 총체적 기운이기도 하다. 작가가 살아내며 경험하는 삶의 현재적/미래적 풍경, 그 속에 녹여낸 작가의 사물시선과 예술혼에 다름 아닐 것이다. ● 『숨』은 네 명의 작가가 펼친 다양한 삶의 풍경과 숨결을 통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사소한, 그러나 잔잔한 울림이 있는 공감 가능한 에피소드와 단상들을 공유하고자 기획되었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네 명의 작가가 작업과정에서 대상이나 현상, 재료 등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추체험할 수 있는 작업들이다. 작업의 모티프, 선택한 재료나 구사하는 기법은 제각각이고 선택한 재료나 기법 등 물리적 성질과 특성을 넘어 대체로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 이런저런 소음과 소리, 정겨운 그리움, 우주를 향해 비상하려는 듯 꿈틀거리는 기운, 삶의 무게감 등 화면과 오브제 켜켜이 스미어 있는 물리적/심리적 움직임과 흐름이 포착되거나 소리가 들린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작품에 녹여낸 섬세하고 따스한 들숨과 날숨 20여점이 그것이다. 백진기, 송하나, 유한이, 거리홍 등 네 명의 작가가 페인팅, 콜라주, 조각, 입체 등의 작업을 통해 불어 넣고 또 찾아내고자 했던 '숨'이 무엇이었는지, 또 그것들은 세상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화면과 재료에 스미어 자리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백진기_FIAT LUX_Crystal Marble_120×120cm 2018
백진기_The fragmented boundary_베트남산 대리석_49×19×6cm_2015

2. 백진기는 '고고학적 미래'라는 독특한 순환구조를 선보인다. 생의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바람, 우주를 향해 삶을 펼치려는 충만한 의지를 경험할 수 있다. 그 두 가지 욕망 사이에 맴도는 건강한, 역동적 운율과 긴장감을 통해 생의 미래적 충만함과 구원에의 바람, 희구를 노래한다. 매일처럼 깎고 새기고 갈고 다듬은 결과물들은 살아 꿈틀거리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망과 염원을 새기듯 담아낸 진정성 넘치는 땀과 숨의 결정체이자, 흡사 구도적 결과물이다. ● 작품 속 원심적이면서 구심적인 움직임은 오로지 돌만을 고집하며 지난 시간동안 돌과 동고동락해온 작가의 애정과 고집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백진기는 돌의 숨결과 성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늘 조심스럽다. 어루만지듯 따라 들어가고 그들의 화답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정한 방향성과 함께 맺힘을 보이는 이유다. 때론 칼로 나무를 쳐내듯 단호하게 끊어 치고 내리친다. 마치 흑백의 강렬한 목판화를 보는 듯 칼맛나는 표면질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과 반듯한 사각형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부조작업은 우주의 질서와 기운, 신성과 종교적 절대 미감, 숭고미 등을 연상케 한다. ● 백진기의 절제된, 다소 금욕적인 작업충동은 태고적 은하계의 흐름을 현재적/미래적으로 풀어내며 삶의 신비한 기운을 경험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는 벽에 걸린 기하학적 형태의 부조작업과 함께 바닥에 놓인 입체 작업도 선보인다. 대체로 물 흐르듯 유려한 부조작업과는 달리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된 듯,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듯 호흡이 제법 칼칼하다. 흡사 산호초를 보는 듯 태고로부터 이어진 시간의 집적과 축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송하나_신부_종이에 콜라주, 유채_76×107cm_2016
송하나_아는 숲_장지에 콜라주, 수채화, 과슈_103×147cm_2019

송하나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와 콜라주(collage), 아상블라주(assemblage) 등의 작법과 드로잉을 주된 화법으로 세상 이야기를 풀어낸다. 크고 작은 네모난 전통 지지체를 중심으로 원형 등의 변형프레임을 사용하거나 현장벽화작업 등 다양한 형식실험을 이어온 송하나는 최근 기다란 가로형의 화면에 독특한 삶의 풍경을 담아내었다. 파노라마식 화면에 그가 활짝 펼친 삶의 풍경은 명절, 혹은 차례, 제사 등을 준비하며 수없이 행한, 이른바 '전'을 부치던 자신의 호흡을 담은 것이다. 때론 그의 작업을 좌우로 읽어야하는 수고가 필요한 이유다. ● 송하나는 전단지 속 상품 이미지를 오려내고 그것을 다시 오브제화한 후 지지체에 얹어나가는 특유의 제작방식과 형식을 통해 일상 속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진솔하게 펼쳐왔다. 마치 공작이 깃털을 펼친 듯 이야기 가지를 펼치고 이어간 송하나의 제작 방식은 평소 깊이보다 넓이를 강조하는 그의 오랜 소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송하나의 이런저런 화면 속에는 딸로서 주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내는 삶의 풍경과 가쁜 숨이 상징적으로 켜켜이 중첩되어 있다. ● 마치 붓으로 난(蘭)을 치듯 사방으로 바르고 그리고 붙이고 얹고 다시 바르고 펼치며 쌓아나가는 등의 행위를 반복하는 그의 작업은 일상호흡의 집적으로서 물리적 표정이자 심리적 표상이다. 화면이 중층적이고 부조적인 성격을 보이는 이유다. 효과적인 송하나식 다중적 삶의 반영 방식이라 하겠다. 어릴 적부터 그가 그리듯 끄적거려온 그림일기를 그렇게 이어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촘촘히 그리고 켜켜이 하나하나 더하고 쌓아올린 그의 작업은 마치 숨을 참고 물질하는 해녀가 상당시간의 물속 일을 잠시 미뤄두고 물 밖으로 치고 올라 내뿜는 숨비소리와 같을 지도 모른다.

유한이_꽃담_장지에 연필, 채색_52×66cm_2016
유한이_옥상정원_장지에 연필, 프린트, 채색_62×81cm_2017

유한이는 자칫 딱딱하고 건조할 수 있는 도시 일상에 삶의 온기와 넉넉한 기운을 부여하고 환기시킨다. 화면가득 스민, 사물을 대하는 그의 따스한 호흡은 잔잔한 여운과 울림으로 다가온다. 삶과 사물로부터 멀리 빠져나오거나 가까이 들어가 바라보고 잡아낸, 넉넉한 그의 사물시선은 마치 심문(心紋)처럼 화면 속에 울림으로 자리한다. 생을 긍정하고 완상하며 보다 넉넉하게 살아내려는 의지의 발현에 다름 아니다. ● 유한이는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일방적으로 흔들기보다는, 본래의 내재율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함께 호흡한다. 유연한 심성과도 닮았다. 유한이는 일견 가로세로 형식으로 짜 맞추어진 듯 정교하게 직조된 기하학적 세상 질서에 유기적 기운으로서 숨을 불어 넣는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 애써 잊고 사는 정적과 적요의 기운, 귀를 간질이는 바람소리와 청량한 기운, 사물과 사물, 존재와 존재 사이에 그 무엇이 자리하고 있음을 살며시 전해주고 있다. 그가 지닌 사물시선과 세상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잔잔하게 풀어내는 호흡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어디선가 도시의 회색공간을 흔드는 잔잔한 숨소리와 크고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이다.

거리홍_谭雅匀'S_펠트천에 谭雅匀의 머리카락_50×82cm_2020
거리홍_王风影'S_펠트천에 王风影의 머리카락_49×55cm_2018

이른바 머리카락 작가로 알려진 거리홍은 이번 전시에 3점의 머리빗 작품을 출품했다. 기성품이 아닌 머리카락으로 빚어낸 빗이다. 이 독특한 프로젝트는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머리를 빗어주던 당시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시작되었다. 과연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법. 할머니를 기억하고자 할머니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할머니의 머리빗은 현재까지 다양한 형식과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리홍은 할머니를 영원히 추억하려는 듯, 머리를 빗겨주시던 할머니의 숨결을 짜깁기하듯 바느질로 두툼하게 엮어냈다. 또한 작가는 10여 년 동안 모아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동안 자신이 사용해온 여러 가지 형태와 기능의 빗들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 중국에는 머리카락과 관련한 고사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에피소드가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머리카락은 범상치 않은 소재요 재료다. 거리홍의 머리카락 작업이 단순한 재료나 아이디어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이유다. 작가의 따뜻하고 애틋한 사연과 작업의 의미가 알려지면서 지인들이 하나둘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거리홍은 할머니의 경우가 그러했듯 그들이 제공한 머리카락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머리빗을 만들었다. 부드러운 펠트 위에 빚어낸 빗들의 표정과 사연이 각기 다양할 수밖에 없음이다. ● 전시된 작품에는 머리카락과 빗의 주인 이름이 지지체인 펠트 하단부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질감과 색감의 머리카락과 빗을 통해 주인공의 나이와 그의 삶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 빗과 머리카락은 형태가 바뀌거나 자라나지는 않지만, 작가의 호흡은 그들의 숨결과 함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환기하고 자라나게 하며 오래토록 증거할 것이다.

숨展_예술공간 수애뇨339_2020
숨展_예술공간 수애뇨339_2020

3.​ 네 명의 작가는 각기 개성 있는 작업을 선보이지만, 이들의 호흡은 대체로 촉촉하고 따뜻하다.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기성의 재료들, 이를테면 돌과 같은 석재 등이 따뜻한 기운으로 다가오는 것은 대상과 재료의 성결과 숨결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작가들의 제작방식과 호흡이 일방적이지 않고 따뜻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들이 작업에 부여한, 작업과정에서 스미듯 주고받은 들숨과 날숨을 따라 들어가 보자. 조형적 결과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들 작업의 모티프, 과정과 함께 화면 구석구석 녹여낸 넉넉하고 사연 많은 이야기로서의 '숨'을 만나보시길 바란다. ■ 박천남

Vol.20200207c | 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