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유망작가 릴레이 1

이다겸展 / LEEDAGYEOM / 李多兼 / painting   2020_0211 ▶︎ 2020_0307 / 일요일 휴관

이다겸_walk in the sce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16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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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재)행복북구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어울아트센터 대구시 북구 구암로 47(관음동 1372번지) 갤러리 명봉 Tel. +82.(0)53.320.5120 www.hbcf.or.kr

시간이 들여놓은 공간 ● 이다겸에게 선은 일상의 풍경과 사물들을 새롭게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다. 작가는 화면 전체를 선으로 처리함으로써 배경과 소재를 서로 스미게 한다. 화면 속의 세계로 맺힌 풍경들은 마치 자개를 가늘게 잘라 붙인 듯 영롱하고 섬세하다. 작가는 현실의 공간을 가는 선들로 해체한다. 그리고 색이 된 선은 화면을 채색한다. 그와 함께 한줄 한줄 그어 나간 선들은 빛을 발하는 색으로 거듭나며 나무가 되고 꽃이 된다. ● 가까이 있는 것의 존재는 늘 멀리 있다. 그것은 익숙함으로 인해 없는 것으로 있다. 이다겸은 일상에서 지나치듯 흘려보낸 사물과 풍경을 어루만져 열어 밝힌다. 시간의 흐름으로 바래고 스러져가는 것들, 작가는 길을 가다 문득 마주친 화분이며, 담벼락, 그 위로 늘어진 나뭇가지에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자리한 공간을 풀어낸다. 화면은 각각의 방향과 흐름을 지닌 선으로 굽이치고 촘촘히 늘어서기도 하며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화면이 빛을 머금은 색으로 한층 밝게 빛나면 선들은 서로에게 간섭하여 진동하듯 어른거린다. 화면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 듯 현기증을 일으킨다. 작가가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낯섦으로 바꾸어 놓는 지점이다. 잊고 있던 것들을 불러 세우고는 다시 현실에는 없는 추상화된 가상 공간으로 밀어 넣어버린다. 작가는 그렇게 선이 색으로, 색이 선으로 진동하는 화면 앞으로 우리를 불러 세운다.

이다겸_walk in the sce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160cm_2020_부분
이다겸_dear de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20
이다겸_dear de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20_부분

이다겸 작가에게 선은 이야기, 즉 서사성(narrativity)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빌렘 플루서가 말하는 것처럼 '문자 텍스트가 그림의 요소를 찢어내어 줄로 나열'한 것이라면, 이다겸은 문자 텍스트의 속성인 선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작업의 중심에 서사성이 자리하는데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시도는 독일 유학 시절의 작업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특정 인물의 프로필을 구성하는 텍스트로 채운 인물의 실루엣은 이력에 관한 텍스트의 많고 적음에 따라 조밀하거나 느슨한 선형의 이미지를 이루게 된다. 인물 이야기는 그림이면서 텍스트라는 이중의 구조를 갖게 된다. 사진 작업에서는 선 드로잉에 시간성을 결합하여 시간을 공간화시킨다. 드로잉 한 종이를 물에 적셔 시간이 흐름을 따라 잉크가 평면의 흔적으로 전환되는 것을 기록한 작품이었다. 검은색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잉크의 배합에 따라 서로 다른 색의 이미지들이 펼쳐지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작가는 그림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마련한다. 시간과 공간, 선이 그것이다. 그리고 시간성과 공간성이 교차 되고 선과 텍스트성이 교차 되면서 작업의 스펙트럼이 넓혀진다. 그의 그림도 그러한 실험의 연장선에 있다.

이다겸_plot about drea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9
이다겸_narrative of a stone wal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8~9
이다겸_plant pot plo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75.8cm_2019
이다겸_plant pot plot 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9

빌렘 플루서는 매체가 달라지면 사유방식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사진과 영상작업뿐만 아니라 디지털 매체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에게 있어 몸의 감각과 행위를 통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구체성을 지닌 경험세계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맞물린 작가의 새로운 상상력은 이야기 구조를 이미지화하는 것으로 향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한 화면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한 번에 보이는 공간의 선형적 내러티브'라고 말한다. 그런데 작가가 선을 나열하여 만들어 낸 평면은 플루서가 말하는 점 구조로 된 개념의 표면과 다르다. 개념의 표면은 기계적 연산으로 얻은 점의 상태로 된 모자이크로 구체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평면의 인상에 불과한 것으로 비물질적이고 유령 같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구체적 삶을 성찰하기 위해 작가가 또 다른 매체를 요청한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 속도를 쫓아가는 삶은 그 현란함만큼이나 피상적이다. 선을 그어 나가는 행위는 속도로부터 물러나 있다. 그러기에 속도에 매몰된 삶이 바라보지 못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선을 긋는 반복된 행위를 통해 작가가 그려내는 것은 삶이다. 일상의 풍경은 그렇게 우리의 삶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 배태주

이다겸_found narratives 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19
이다겸_a casual plot-yellow tre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9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피쉬」를 좋아한다. 이 영화 마지막에 아버지는 결국 이야기로써 불멸한다는 아들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한 사람의 삶, 생활에서의 경험, 추억이든 기억이든 결국에 남는 것은 이야기이다. ● 내게 있어 그리기 (미술작업)이란 글쓰기를 대신하여 선 (line)으로 채워진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마치 언어 (이야기)가 시간과 함께 순차적으로 향유되지만 그것의 묶음인 책 자체는 공간성을 가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선 (line)으로 표현되는 나의 글쓰기는 언어가 갖는 논리와는 다른 질서를 갖는다. 선을 그으며 시간과 함께 차근차근 축조된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 다시 말해 나의 작업은 한 화면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한 번에 보여 지는 공간성의 선형적 내러티브이다. ■ 이다겸

Vol.20200211e | 이다겸展 / LEEDAGYEOM / 李多兼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