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실경 2020 : 풍경에 깃든 마음

조풍류展 / CHOPOONGRYU / 趙風流 / painting   2020_0213 ▶︎ 2020_0315 / 월요일 휴관

조풍류_종묘_캔버스 천에 호분, 분채, 석채, 금니_220×56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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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풍류 블로그_blog.naver.com/goodcho69

초대일시 / 2020_0214_금요일_12:00pm

주최 / 서울강서문화원_겸재정선미술관 후원 / 서울특별시 강서구_강서구의회

관람료 어른_1000원(단체 700원) / 청소년·군경_500원(단체 300원) / 단체_20인 이상 7세 이하,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 또는 가족, 장애인 및 그와 동행하는 보호자 1인, 다둥이행복카드 소지자(등재된 가족 포함) 무료관람

관람시간 2월 / 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3월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겸재정선미술관 GYEOMJAEJEONGSEON ART MUSEUM 서울 강서구 양천로47길 36(가양1동 243-1번지) Tel. +82.(0)2.2659.2206 www.gjjs.or.kr

겸재정선미술관은 진경산수화를 일으키고 완성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오늘날의 작가로 다시 태어난다면, 과연 어떤 작품을 했을까? 하는 당위적 과제를 안고 겸재의 화혼畵魂을 오늘에 조명하고 되살리는 전시를 지향해 왔습니다. ● 이번 조풍류 작가의 『서울 실경 2020 : 풍경에 깃든 마음』전시는 바로 우리 겸재정선미술관이 지향하고 있는 취지에 적합한 법고창신法古創新, 입고출신入古出新 정신을 토대로 겸재의 화혼을 오늘에 계승, 발전시키는 전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이번 전시가 전통 산수화의 명맥命脈을 잇는 전시인 동시에 그의 다양한 창조적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라 할 수 있습니다. ● 이른바 이번 『서울 실경 2020』전시는 단지 서울의 산천을 실경(진경)으로 그려냈기에 기획한 전시가 아니라, 겸재가 그러했듯이 현재 유행하고 있는 화풍에 편승하지 않고, 끊임없는 탐구실험 정신과 자기 성찰을 통해 창조의 고통을 이겨내며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시켜 나가고 있는 작가를 소개하기 위한 전시입니다. ● 카(E.H.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듯이, 미술은 과거의 작품과 오늘의 작품 사이의 깊은 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통은 현대 속에 되살아나며 이 두 요소가 융합하여 새로운 예술세계를 열어가는 힘의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에 이번 조풍류 작가의 『서울 실경 2020』전시를 통해 현재와 과거의 소통, 미래를 전망해 낼 수 있는 전통 산수화의 또 다른 발전을 예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겸재정선미술관

조풍류_푸른밤의 여정-경복궁에서 바라본 인왕산_ 5배접한지에 호분, 분채, 석채, 금니_91×71cm_2019

나는 왜 서울산수와 종묘를 그렸는가. ●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다양한 소재를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해바라기, 옥수수를 그리기도 했고, 일본 나라에 있는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모사하기도 했다. 해바라기 그림은 정밀하다고 칭찬을 들었고 금당벽화를 본 사람들은 완전한 모사라며 놀라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는 큰 위기에 부딪쳤다. 자신의 예술에 대한 회의였다. ●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예술이 도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 정체성에 관한 이런 고민들이 깊어질수록 화가로서, 동시에 한 존재로서 한계를 느꼈고, 쉽게 넘을 수 없는 한계임을 안 나는 한동안 방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목포를 찾아 유년시절 뛰어 놀던 유달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유달산에서, 다도해의 섬들을 바라보며 마치 되새김질하는 초식동물처럼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다가, 문득 나의 삶의 원천이 소년시절 자라면서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자연환경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의 그림을 찾는다는 것은 나의 영혼을 울리는 그 유산들로부터 나만의 것을 그림을 통해 증류해서 표현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 그동안 전통채색화의 재료와 온갖 기법 그리고 벽화 모사 등을 배우고 익히며 여러 가지 실험을 해나가던 과정에서 찾아낸 출구가 '진경산수화'였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산하를 전통 채색으로 그리는 '청록산수'였다. 당시 많은 동료작가들이 옛 것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서양화법을 끌어 들여 무분별한 절충을 해 나갈 때 나는 우리 한국화의 정체성의 회복이라는 과제를 풀어내야겠다는 신념을 키웠다.

조풍류_푸른밤의 여정-백악산_5배접한지에 호분, 분채, 석채, 금니_91×71cm_2019

가장 우리적인 옛 그림들 조선후기 진경산수화 시대를 열었던 겸재 정선, 가장 조선적인 화가라는 평을 듣게 된 단원 김홍도로부터 근대의 여러 대가들까지 철저하게 공부하였으며, 그 결과를 나의 작품에서 재현해 나갔다. 그 과정의 출발은 산과 계곡이 깊어 부감할 수 있는 강원도 산간지역(영월, 정선, 평창) 일대를 그리는 것이었고, 그 뒤를 이어서 비교적 평평한 평야와 얕은 산이 어우러진 남도지방, 제주도 연작까지 이어졌다. 이윽고 나는 그 재현 과정의 마무리로서, 내가 이주해서 살고 있고 나의 삶의 터전인 '서울'을 주제로 실경 연작에 이르렀고, 서울의 진산들과 궁궐, 종묘, 도성 길을 걸으며 서울의 정체성과 의미를 생각하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 민족문화의 원류를 찾는 사유로 이어가게 되었다. ● 처음부터 계획하고 이 길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여행길에 여러 가지를 배우고 경험하며 다음에서 다음으로 발길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600년 역사 속에서 산과 물이 어우러진 서울의 빼어난 경관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바뀌어 가지만 서울의 문화와 예술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서울은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웅대한 로망(Roman)이었다. 10여년 서울의 옛 자취를 더듬어 가며 작업하는 사이에 나는 서울 고유의 색감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색은 '풍류블루'라는 별칭도 얻었다. 하얀 캔버스 위의 점에서 시작한 여정이 선으로, 선에서 푸른 공간으로 연결되어 갔다.

조풍류_불암산_캔버스 천에 호분, 분채, 석채_80×117cm_2018

1741~1759년 겸재 정선이 한양진경을 그렸던 「경교명승첩」에서 2020년까지 26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2020년 겸재정선미술관의 "서울 실경" 초대전은 10여년 작업했던 서울 산수작업을 한번 정리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 국적불명의 초고층 빌딩들로 숲을 이룬 오늘날에는 동양화의 옛 그림 속 산수풍경 같은 서울의 원래 모습들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화강암의 웅장한 산세와 여러 갈래의 물줄기와 어우러진 자연과 더불어 지어진 옛 건축물과 조경은 그대로 살아 있다. ● 서울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걸 담는 그릇으로 도성, 도시건축물, 궁궐, 종묘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제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다. 도성이나 도시건축물, 궁궐 등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영혼을 위한 공간인 "신전"인 것이다. 조선왕조의 상징이자 서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종묘에서 받은 정신적인 체험과 영적인 느낌을 그림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 조풍류

조풍류_안산에서 바라본 인왕, 백악, 삼각산 캔버스 천에 호분, 분채, 석채_140×440cm_2019

조풍류, 한국 채색화의 빛나는 여정 ● 매혹적인 블루였다. 높고 깊고 어두운 산과 하늘이 온통 푸른 공기로 뒤덮이는 밤. 소란스러웠던 세상은 그 어둠 속에서 짙푸른 담청(淡靑)에 끝도 없이 젖어 들었다. 화폭에 물든 인왕산의 푸른 밤은 강렬했다. 모든 걸 집어삼키는 도시의 어둠에서 화가는 어찌 저리도 아련하고 깊은 푸른빛을 끄집어냈을까. 하늘에서 땅까지, 황혼에서 새벽까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모두 지워버린 그림 앞에서 넋을 잃었다. 그 경이로운 푸른빛에 감동한 어떤 이는 화가의 이름을 따 '풍류 블루'라 하지 않았던가. ● 화가를 가까이서 가장 오래 지켜본 미술기자라는 점 때문에 전시 서문을 부탁받았다. 첫 만남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기억을 더듬는다. 한때 파랑이라는 색채에 강하게 이끌려 파란색 그림만 정신없이 찾아 헤맨 적이 있다. 그걸 아는 지인이 어느 날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조풍류라는 화가를 아세요?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책상 위에 쌓인 보도 자료를 정리하다 눈이 멈췄다. 조풍류. 순간 희미한 기억 속에서 이름 석 자가 떠올랐다. 마음이 급해졌다. 전시가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 인사동에서 화가를 처음 만난 2015년 12월의 그 날은 공교롭게도 전시 마지막 날. 화가가 제주에 잠시 머물던 시절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더 미안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만남은 운명이었던 것 같다.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파랑 속에서 무수한 색의 변화가 물결치고 있었다. 산 아래로 점점이 불을 밝힌 인왕산 어귀 마을이 마치 반딧불처럼 깜빡이는 아련한 풍경. 못 만났다면 어쩔 뻔했는가. 화가의 그림과 얼굴이 뉴스 화면에 등장했고, 덕분에 전시 기간도 며칠 더 연장됐다. ● 자고로 그림 앞에 서야 한다는, 누군가를 대면하듯 그림과 마주 보고 눈을 맞춰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조풍류의 그림은 새삼 일깨웠다. 보는 이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는 그 강렬한 에너지는 일차적으로는 화가가 풀어놓은 색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풍류 블루'에는 다른 화가들에게선 찾기 힘든 남다른 화면의 깊이가 녹아 있다. 그 깊이를 만들어내는 건 바로 '질감'이다. 그 오롯한 질감이야말로 조풍류의 예술을 독보적인 세계에 위치시키는 힘이다.

조풍류_삼각산_캔버스 천에 호분, 분채, 석채_140×240cm_2018

조개껍질과 돌을 곱게 갈아 만든 가루를 아교에 개어 화면에 얹고 또 얹는다. 원하는 질감을 얻을 때까지 이 공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어떤 이가 '벽화기법'이라 이름 붙인 까다로운 노동집약적 작업을 거쳐 비로소 남다른 화면의 깊이가 만들어진다. 화가의 말대로 그림의 피부는 농사꾼의 손등처럼 거칠고 투박하다. 도대체 얼마나 깊이 고민했을까. 얼마나 많은 붓질이 필요했는가. 미술 세계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면서 어쭙잖은 잡문으로 밥벌이하며 사는 나는 그 간단치 않은 과정이 주는 무게와 번민을 쉽사리 가늠하지 못한다. ● 위기가 왜 없었겠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예술은 대체 내게 무슨 의미인가. 이런 고민을 끌어안고 방황했다. 산으로 들로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러던 그에게 손 내밀어준 건 다름 아닌 고향이었다. 화가는 남도 끝자락 목포에서 태어나 유달산 기슭에서 놀며 자랐다. 남종화의 대가이자 호남화파의 거목이었던 남농 허건(許楗, 1907~1987)의 자취가 서린 고향 목포에서 화가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기 삶의 원천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자연환경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화가로 산다는 것은 영혼을 흔드는 그 유산들로부터 나만의 것을 거르고 걸러 화폭에 표현해내는 일임을. 숱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화가가 마련한 출구는 바로 '진경산수'였다. ● 지금은 맥이 끊겨버린 전통 청록산수화 채색 기법을 화가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까닭은 자명하다. 우리 한국화의 정체성 회복이란 과제를 풀어내야겠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다. 겸재와 단원부터 근대 작품까지 철저하게 뿌리와 기초를 다지는 공부를 통해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렇게 강원 산간을 시작으로 남도, 제주 연작이 차례로 탄생했다. 그리고 화가가 그 여정의 종착역으로 삼은 곳은 바로 서울이다. 서울의 진산들과 궁궐, 종묘, 도성길을 걸으면서 화가는 결심했다. 서울의 정체성과 우리 문화의 원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고. ● 조풍류는 우리 시대의 '인왕산 화가'다. 화가를 아는 이라면 조풍류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인왕산 연작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 번은 왜 인왕산을 그리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화가는 먼 기억에서 유달산을 꺼냈다. 인왕산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지치는 줄도 모르고 뛰놀던 유달산이 겹쳐 보였노라고. 그래서 인왕산에 더 천착하게 됐다고 말이다. 화가의 바람은 소박하다. 속도가 지배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상처받고 지친 이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단다. 그래서일까. 조풍류의 그림에선 따뜻함이 느껴진다.

조풍류_삼각산_캔버스 천에 호분, 분채, 석채, 금니_53×130cm_2019

엉뚱한 얘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화가 조풍류와 인간 조풍류는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꽤 오래 했다. 말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그림과는 딴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저 장난기 어린 사람에게서 어떻게 저런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거지? 하지만 화가를 알아온 4년이란 시간이 답을 일러줬다. 화가 조풍류와 인간 조풍류는 결국 같은 사람일 수밖에 없음을. 내가 아는 조풍류는 그림 아닌 다른 무엇으로 미술 권력에 다가가지 않고 한결같이 자기 예술에 충실한 '천생 화가'다. 유행과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화가에게서 나는 미술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 그림만으론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한 세상에서 조풍류는 전업 화가다. 그동안 크고 작은 전시회를 통해 꾸준히 이름을 알려왔다. 하지만 그 괄목할 만한 성취를 생각하면 이제는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을 때가 된 것 같다. 생애 처음 미술관에서 대규모로 여는 이번 개인전은 그래서 의미가 각별하다. 10여 년 동안 꾸준히 그려온 서울 산수 작업을 결산하는 동시에 화가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 여정을 돌아보는 기념비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신작 10여 점을 포함해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 하나하나가 세상과 호흡해온 지난 세월의 흔적인 동시에 한국 채색화의 빛나는 성취다. 조풍류의 그림을 만나는 즐거움엔 끝이 없다. ●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종묘 그림이다. 대형 캔버스 네 폭을 이어붙인 가로 220cm, 세로 560cm의 장대한 화폭에 펼쳐지는 종묘의 야경은 그 고요하고 엄숙한 위엄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종묘를 화폭에 옮겨 그린 화가는 일찍이 없었다. 조풍류는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회화 기법을 이 전대미문의 대작에 남김없이, 원 없이 쏟아부었다. 영혼을 위한 공간, 조선왕조의 상징이자 서울의 정체성. 종묘에서 받은 정신적 체험과 영적 감흥을 그림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화가의 간절한 바람이다. ● 글을 쓰기 위해 그림들을 하나하나 다시 보면서 조풍류가 얼마나 멋진 화가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게 조풍류의 그림은 한 줄기 빛이었다. 그의 그림은 도시의 밤이 뿜어내는 빛이 얼마나 눈이 부신지, 이 땅의 하늘과 산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그림에서 나는 좋은 예술이 강력한 치유의 힘을 지녔음을 누구보다도 많이, 그리고 깊이 체험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화가 조풍류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하는 다시 없는 자리가 될 것이다. 보라. 그림밖에 모르는 화가의 정직한 붓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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