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피어 DONUT FEAR

김재용展 / KIMJAEYONG / 金載容 / mixed media.sculpture   2020_0325 ▶︎ 2020_0426 / 월요일 휴관

김재용_도넛 매드니스!!_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_가변크기_2012~20

초대일시 / 2020_032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은 예약 관람만 가능 / 월요일 휴관

학고재 본관 Hakgojae Gallery, Space 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www.instagram.com/hakgojaegallery 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이방인의 심리학두 가지 다른 색이 같아 보인다 김재용 작가의 열여덟 번째 개인전이 학고재에서 열린다. 지명도 높은 국제 전시 이력을 가진 작가가 이제야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이유를 그의 성장과 삶의 과정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 김재용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아버지와 현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2남 중 막내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중동의 건설 수주 붐은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는데 이때 그의 아버지는 중동 건설 현장에 지점장으로 파견되었다. 김재용은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함께 이주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4세부터 9세까지 유년기를 보내게 되었고, 이 5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문화적 다양성에 관해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무어 장식 문양(Moorish ornament)과 같은 이슬람 장식을 볼 때 오랜 친구와 같이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최근 작업에서 확인되는 아라베스크(Arabesque)와 같은 페르시아 및 아라비아 문양과(아라베스크는 원래는 아라비아 혹은 무어 양식으로 배열된 잎이나 소용돌이 패턴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로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과일, 꽃, 가면, 인간, 상상의 괴물 등이 혼합된 보다 넓은 의미의 장식을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인물과 동물 모티프가 배제된 장식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Owen Jones, The Grammar of Ornament (London: DK, 2001 [1856])를 참고할 것.) 이슬람 전통 유색 보석 장신구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장식도 성장기의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다. ● 김재용은 자신이 흙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작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고등학교 조소부 활동에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시로써는 한국에서 미술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적색과 녹색을 병치했을 때 이 두 색이 비슷해 보이는 색각 이상(색약, color blindness) 때문이었다. 김재용은 자신이 느끼기에 어떤 특정한 완벽함을 주는 색의 조합으로 작업을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었다고 말한다.(김재용 인터뷰, JYK 스튜디오, 신사동, 서울, 2020년 1월 31일, 인터뷰: 조새미.) 미국 유학 중 서양화 전공의 한 교수는 그가 색을 쓰는 방식의 독특함을 재능으로 보았고, 화가로서의 가능성도 높이 보았다. 하지만 한국 입시 미술 학원의 담당 강사는 그가 그린 강렬한 색상의 수채화를 보고 그에게 화실에 출석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 소년은 한국에서 미술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199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코네티컷 주(Connecticut)에 위치한 하트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Hartford)는 그에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김재용은 조각 전공으로 입학해 흙이라는 재료에 몰입하게 되었다. 흙이라는 재료는 조소뿐 아니라 도조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재료 중 하나이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도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매체 중심적 관심은 장르 중심적 전문화 경향보다 더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문제이다. 김재용은 도자와 조각을 복수 전공했던 경험을 통해 장인 정신을 중요시하면서도 서사와 상징을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색'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김재용_빛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_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_117×146×3.8cm_2013~20

여러 얼굴의 동물들 ● 대학 시절 김재용에게 영감을 준 작품으로 이탈리아 조각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의 「오벨리스크와 코끼리」(1667)와 이탈리아 화가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1871~1958)의 「목줄을 한 개의 역동성」(1912)을 들 수 있다. 김재용은 이 두 작업에서 첫째, 거장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심각하거나 극도의 긴장된 순간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둘째, 작품이 가진 상상력과 유머의 힘이 어떤 다른 요소보다 호소력이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건축가이기도 했던 베르니니는 「성녀 테레사의 환희」(1647~1652)와 같은 과장된 아름다움이 넘치는 수많은 대리석 조각 작품을 남겼다. 그런 거장도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의 충동이 생기는 귀여운 코끼리 상도 조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김재용은 놀랐다. 심지어 베르니니는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코끼리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의 설명만으로 베르니니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김재용은 보지 않았던 대상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내는 힘의 근원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발라가 강아지 발의 잔상을 여러 번 그려 넣는 방식으로 속도를 화면에 옮겨놓은 것을 보았을 때 김재용은 속도감보다는 만화와 같은 장면 묘사에 더 애착을 느꼈다. 더는 희극적일 수 없는 강아지의 모습은 끊임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김재용은 이러한 상상력과 유머를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 작가의 반려견 '모모'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뮤즈였고 대부분의 초기작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광대가 되고 싶은 개」(1999)는 가면인지, 실체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습으로 벽에 거치되는 작품이다. 김재용이 미시간 주에 위치한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에 도자 전공으로 진학한 후 제작한 작품 「가면을 쓴 토끼 귀를 가진 남자」(2002)에도 모모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심리적 갈등상태를 희극적으로 풀어낸 자화상과 같은 이 작품에는 김재용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해학, 풍자, 위기의식과 같은 핵심 요소가 함축적으로 내재한다. 주인공은 죽음의 사자같이 검은색 광택이 나는 해골 가면을 쓰고 개 발 모양을 한 양말을 신고 있다. 귀는 토끼 귀 모양인데 가면을 씀으로써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남자는 품속에 날개를 단 작은 강아지 모모를 안고 있으며, 치명적 독을 품고 있을지도 모를 작은 뱀은 그의 목덜미를 물 기세이다. 그는 가면, 모자, 양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몸에 걸친 것이 없지만 우리에게 웃으라고, 인생이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승리의 사인을 보낸다. ● 반려견 모모의 형상 대신 달팽이 모티프가 작업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1년부터이다. 그런데 달팽이 모티프는 「카드를 든 오뚝이 소녀」(1999)와 「전해지는 차가움」(2000)에서 주인공의 머리, 어깨, 팔 등에 부착되는 형식으로 이미 등장했었다. 이를 1960년대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케네스 프라이스(Kenneth Price, 1935~2012)의 작품에 등장하는 달팽이와 비교해보자. ● 프라이스는 컵이라는 인공물에 양서류, 파충류 등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만들어 부착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런 부조화한 만남의 이유는 "불쾌한 미학의 중요한 예"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프라이스에게 달팽이는 불안 그리고 매력과 혐오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에드먼드 드 왈, 『20세기 도자의 역사 20th Century Ceramics』 (시공아트, 2018 [2003]), p. 188.) 반면 김재용의 달팽이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작품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주연으로 등장해 풍부한 표정과 다양한 동작으로 관객인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 여기서 '달팽이'에 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김재용은 자신이 여러 나라를 오가며 생활하기 때문에 확정된 거주지를 소유하는 것에 관해 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예술을 하는 나의 행동은 나의 집을 찾는 투쟁과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나는 자주 여러 장소, 특히 한국과 미국에 동시에 갇힌 느낌을 받는데, 이것은 나에게 집이란 개념을 정의하기 힘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 내가 어디를 가든, 나는 그 속에 존재한다. 집이란 단어는 나에게 동사가 되었다." 출처: 김재용 작가노트.) 그래서 달팽이의 등껍질은 적어도 작가에게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생존을 위한 어떤 조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언급했던 의식과 무의식의 상보적 관계에 관한 성찰을 상기시킨다. 융은 달팽이의 취약하고 물렁물렁한 몸을 무의식에, 단단한 껍질을 의식에 비유했다. 융에게 의식이 없는 무의식은 취약하고, 무의식이 없는 의식은 살아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 살아있음은 아름다움의 조건이다. 미국의 영문학자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 1946~)가 아름다움을 살아있음으로부터 찾았던 것처럼(일레인 스캐리, 이성민 옮김,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On Beauty and Being Just』 (도서출판b, 2019 [1999]).) 김재용의 작품에서 달팽이의 등껍질은 가면처럼 자신의 정체를 변화시키는 도구인 동시에 아름다움의 조건으로써 생존의 방법론을 상징한다.

김재용_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_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산화 코발트,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_135×132×3.8cm_2018

이것은 도넛이 아니다 ● 김재용이 작가로서 국제적 인지도를 얻는 결정적 계기는 「도넛」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넛」 시리즈 작업은 만약 작가에게 위기가 닥치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작품이다. 작가는 결혼 후 뉴욕에서 젊은 예술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요식업에 투자했으나 2000년대 후반 미국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대규모 세계 금융위기와 맞물려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 ● 2008년, 혹독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더는 예술가일 수 없는 삶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만약 도넛이라도 만들어 팔면 생계를 이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서도 작품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을 알지 못한 채 그는 좌절의 늪에서 도넛 대신 「도넛」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긍정하기 위해,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흙' 도넛을 빚고 또 빚었다. 그리고 그 도넛 위에서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색'과의 사투를 벌였다. 색각 이상으로 인해 언제나 색을 작업에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해왔던 작가는 「도넛」 위에 화려한 색의 향연을 펼쳤다. 「도넛」은 스스로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와 확신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 사이의 줄다리기를 벌이지 않았더라면 결코 탄생할 수 없었던 작업이었다. ●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마치 스마일리 아이콘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듯 작가가 만든 「도넛」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했다.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은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삶에 지친 사람들은 위안을 찾아냈다. 금욕적 삶을 기대하는 사람은 도덕률을 발견했고, 에로틱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은 환상을 엿보았다. 삶의 벼랑 끝에서 시작했던 「도넛」 작업은 다른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담을 그릇이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되고 싶은 자신을 보여주는 마법의 거울이 되었다. 응시의 시선을 반사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도넛 모양은 그림틀이 되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한다. 마치 열쇠 구멍으로 반대쪽 방을 들여다볼 때 열쇠 구멍만큼만 보이듯 작가의 작업에서도 제한적인 부분만 허락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넛」의 형태는 그 자체가 경계이자 제약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영역을 상상 속에서 완성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준다.("테두리는 이미지의 조형적 요소"이다. 마르틴 졸리, 이선형 옮김, 『이미지와 기호, 고정 이미지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 L'Image et les Signes』 (동문선, 1994), p. 177.) 작가는 완벽한 삶의 아름다움, 충만한 위로, 흠집 없는 도덕률, 완전한 에로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동그라미, 하트, 네모, 별, 꽃, 동물 모양이라는 테두리를 통해 암시하는 동시에 완전한 상태는 어떠할지 보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그래서 김재용의 「도넛」이 도넛처럼 보이지만 도넛이 아닌 이유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샘」이 소변기가 아닌 이유나,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브릴로 상자」가 브릴로 상자가 아닌 이유와는 다른 맥락에 위치한다. 뒤샹은 「샘」을 통해 예술의 조건을 질문했고, 워홀은 「브릴로 상자」를 통해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의 상품과 예술을 화해시키는 시도에 중점을 두었던 반면 김재용의 「도넛」은 감상자에게 뒤샹과 워홀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묻지 않을 뿐 아니라 "미학적 즐거움은 물리쳐야 할 적"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예술과 실제 사물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지각적인 기반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최소한 「브릴로 상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지각적인 기반 위에서 현실로부터 미술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명료하게 만들었다." 아서 단토, '앤디 워홀 같은 철학자' in: 아서 단토, 정용도 옮김, 『철학하는 예술, 예술작품의 철학적 특성 Philosophizing Art』 (미술문화, 2007 [1999]), p. 97.) 김재용의 「도넛」은 시각적 관심의 결여를 요구하지 않는 상징적 대상이다. ● 이러한 김재용의 「도넛」 세계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주요 특성 중 하나이다. 도넛은 Donut이기도 하면서 Do not이기도 하다. 이 전시의 제목 《DONUT FEAR》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두려움의 이중 부정이다. 걱정을 덜고 행복해지자고 말하지만, 작가는 잘 알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 때 다수의 사람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려움 없는 삶은 사건도 운명도 없는 삶이라는 것을. ● 그래서 김재용의 「도넛」 작업은 마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정물화 바니타스(Vanitas)를 닮았다. 바니타스는 헛됨 또는 허영을 뜻하는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의미하는 해골 또는 금은보화로 세공된 식기, 유리잔과 같은 수입 사치품이 정교하게 묘사되었다. 바니타스 회화는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며 죽음 앞에서는 부귀영화와 쾌락이 부질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장치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사치품 모티프를 통해 소유욕과 과시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이기도 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자랑하는 차분한 빛은 진취적 기운이 넘치고 합리성을 존중한 근대의 시민사회가 뿜어내는 세속의 빛"(서경식, 박소현 옮김, 『고뇌의 원근법』 (돌베개, 2009), p. 78.)이었던 것이다. 17세기 유럽, 집마다 걸려있던 바니타스 회화처럼 김재용의 작업도 세속의 빛을 내뿜으며 시선을 욕망하는 응시의 대상으로 기능한다.

김재용_다 내꺼야!!_글레이즈드 세라믹,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_35.5×22.8×45.7cm_2012

「XXL 도넛」의 매끄러움과 반짝임 ● 김재용은 사적이고, 유일하며, 도자와 유약이라는 귀한 재료로 만든 「도넛」 연작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업에 접촉할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는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 모든 시민에게 공개된 베르니니라는 거장의 「오벨리스크와 코끼리」를 로마 미네르바 광장에서 마주했던 경험에 기초한다. 중국 선양 시(沈阳市)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믹스 시티(Mix City)'에 설치한 「도넛 가든」(2020)은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구현된 대표적인 예이다. ● 이번 전시에는 이의 연장 선상에서 지름 약 100㎝의 「XXL 도넛」 10여 점이 설치된다. 이 작품들은 세라믹이 아닌 FRP 우레탄 또는 스테인리스스틸을 기본 재료로 한다. 기본적인 표면 처리에서도 서프보드나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그리고 스포츠카의 표면과 같은 매끈함과 반짝임을 자랑한다. 이러한 산업적 표면처리 기법은 작가의 모교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디트로이트(Detroit) 자동차 디자인 문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클래식 자동차의 매끈하고 윤기 나는 표면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유려하게 그려진 불꽃 장식은 전형적인 미국적 장식 문화의 하나이다. 「XXL 도넛」 표면의 예사롭지 않은 그러데이션, 강렬한 배색, 수백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부착된 불꽃 형태의 장식은 이러한 장식문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 한 걸음 더 들어가 김재용의 「XXL 도넛」과 미국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 1955~)의 「풍선 개」를 비교해보자. 이 두 작품은 모두 극도로 매끄럽고 깨끗하고 흠집이 없으며 심지어 이음새도 없는 표면에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두 표면은 본질적 차이가 있다. 쿤스의 매끄러운 표면은 그의 예술의 핵심이다. 익명성 보장과 절대적 긍정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쿤스의 「풍선 개」는 의도적으로 유아적이고 따라서 고통, 상처, 저항도 거부한다.("매끄러운 것은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아요Like를 추구한다. 매끄러운 대상은 자신의 반대자를 제거한다.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한병철, 이재영 옮김, 『아름다움의 구원 Die Errettung Des Schönen』(문학과 지성사, 2016 [2015]), pp. 9-10.) ● 반면 김재용의 「XXL 도넛」은 작가 개인의 감수성 영역을 통과한 이미지가 표면에 투사된 결과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기 확신과 두려움 사이의 줄타기에 잠재되어있던 기억이 더해져서 완성되었다. 표면에 도포된 유색 크리스털은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에서 소환된 파편들의 흔적이다. 검은 아바야(Abaya) 속에서 별처럼 빛나던 현란한 유색 보석 장신구들의 이미지는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 그래서 쿤스의 「풍선 개」가 가진 매끄러움을 반대자와 부정성을 제거하는 매끄러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김재용의 「XXL 도넛」의 매끄러운 표면과 반짝이는 장식은 문화적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이자 자신을 세계인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실험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재용의 「XXL 도넛」은 이방인의 상실감과 박탈감까지도 끌어안는 동시에 동서양의 만남을 위한 불빛이 되어 준다.

김재용_도넛 쏘지마!!_글레이즈드 세라믹,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_71×46×17cm_2012

범세계적 블루 앤 화이트 Blue and White ● 문화적 추방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정체성이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보호막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추방의 원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재용은 아랍 국가에서는 충분한 아랍인이 아니었고, 미국에서도 충분한 미국인이 아니었으며, 한국에서도 충분히 한국인이 아니었다. 아랍인이 되기도, 미국인이 되기도, 심지어 한국인이 되기도 충분하지 않은 전 지구적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은 김재용의 작품 곳곳에 스며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특정 문화권에도 속하지 않는 이러한 그의 정체성은 그의 작품이 어떤 문화권에서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토양이 되었다. ● 도넛 형태 조형물 위에 카펫, 민화 등의 이미지를 청화(靑華)로 표현하는 2018년 이후의 작업은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특히 더 주목할 만하다. 청화는 자기에 색이나 문양 등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안료로 코발트(Co)를 비롯하여 철(Fe)·망간(Mn)·동(Cu)·니켈(Ni) 등으로 구성된 여러 가지 금속 화합물이다. 백자 태토 위에 청료(靑料)로 문양을 그린 뒤 백색의 장석유를 시유하여 소성하였을 때 얻어지는 백자를 청화백자(靑畫白磁)라고 하며 흔히 이를 청화라고 일컫는다.("중국에서는 청화백자는 대체로 원대(元代)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명·청대(明淸代)에 크게 성행하였고, 한반도에서는 조선 초기 15세기경부터 만들어져 조선 후기까지 발전, 유행하였다. 어휘상으로 볼 때 중국에서는 관용적으로 '청화(靑花)'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사료 및 기타 문헌들에서 '청화(靑畫)'라는 뜻으로 '화기(畫器)'·'화사기(畫沙器)' 등의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강경숙, '청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996.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6864 [접속일: 2020년 2월 10일].) 하지만 이러한 청화는 동양에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라 중동과 유럽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청화를 Blue and White로 번역할 수 있다면 청화의 범 세계성은 더욱 확대된다. ● 특히 네덜란드 델프트웨어(Delftware)는 김재용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이브리드성으로 대표된다. 델프트웨어는 16세기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는 이탈리아의 마이오리카(Maiolica)의 전통 위에 중국의 청화를 모방하면서 시작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청화를 대량으로 수입하면서 소위 '블루 앤 화이트'를 향한 욕망은 전 유럽을 휩쓸었다. ● 그런데 동양의 청화와 델프트웨어는 태토의 종류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동양 청화의 태토는 고령토로 금속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1,300°C 이상의 열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했던 반면에 델프트웨어는 저화도 흙으로 성형한 뒤 주석 유약(tin glazed)을 발라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소성한 도기(earthenware)였다. 중국 징더전 시(景德鎭市) 등에서는 8세기에 이미 품질 좋은 고령토로 자기를 제작할 수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마이오리카, 17세기 네덜란드의 델프트웨어의 성행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이전까지는 태토의 비밀을 알지 못했다. 1709년 독일 작센주에서 카올린(Kaolin)이라는 동양의 고령토와 유사한 성분의 태토의 발견은 세계 도자 역사의 변곡점이 되었다. ● 하지만 고령토 또는 카올린을 태토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여 모든 도기의 예술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 특히 델프트웨어의 확장성은 태토 품질의 우수성의 기준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카올린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섬세함과 우아함이 절대적 조건이 아닐 수 있는 델프트 블루 타일을 대량으로 생산했고 이 타일은 제후들의 궁전과 귀족의 저택 건축에 웅장함과 화려함을 부여했다. 이러한 델프트웨어는 영국에도 전파되어 런던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도자 공방에서 생산되었다.(Lucy Trench (ed), Materials & Techniques in the Decorative Arts (London: John Murray, 2000), p. 114.) ● 하얀 도자 바탕에 그려진 이 푸른색의 그림은 강력한 세계화의 아이콘이 되어 세계 곳곳의 사람들 마음속 깊이 침투했다. 지구상에 '블루 앤 화이트'라는 도자 문화에 매혹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대중이 있었다면 그들이 문화적 혜안과 강력한 경제적 역량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도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 다시 김재용의 '블루 앤 화이트'로 돌아와 보자. 김재용의 작업은 엄밀한 의미에서 청화백자는 아니다. 태토가 고령토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넛 형태의 세라믹 조형물을 제작하는 과정은 청화백자의 제작 과정보다 델프트웨어의 제작 과정에 한결 더 가깝다. 저화도 흙으로 성형한 뒤 백색 하회 유(under glaze)를 발라 1차 소성한 후 그 위에 중국, 일본, 한국에서 생산된 청화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유약들은 탁도와 명도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작가는 그려지는 주제에 따라 유약의 종류를 선별적으로 사용한다. ● 도넛 위에는 민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 유니콘, 불사조, 십장생, 나아가 날개가 달린 도넛 등 각종 문화권의 신비로운 동물들 및 상상의 사물들이 그려진다. 때로는 어린 시절 중동에서의 성장기를 상기시키는 모티프를 적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2018)에 등장하는 패턴은 웹 사이트에서 'carpet'을 키워드로 검색을 통해 선별한 수십 개의 이미지를 재구성한 결과이다. 그래서 이 작업에는 일반적으로 직조된 카펫 이미지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직물의 제작과정 흔적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당초문 등 여러 가지 식물 문양의 복합체는 방사형의 이미지를 이루어 공기 중에 부유하는 것 같다. 도넛 위에 그려진 블루 앤 화이트는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각종 문화와 중력의 경계까지도 허물어트린다. ●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김재용의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과 폴란드 태생 디자이너이자 도예가인 마레크 세큘라(Marek Cecula, 1944~)의 「도자 카펫」(2002)을 비교해보자. 「도자 카펫」은 수백 개의 접시가 갤러리 바닥과 벽에 그리드 형태로 설치된 작업이다. 세큘라는 이 작업을 위해 산업적으로 생산된 백자 접시에 실제 페르시아 카펫을 스캔한 이미지를 디지털 프린터로 전사했다. 산업적 기술이 작가의 설치 작업에 깊이 개입한 결과였다. ● 영국 도자 작가이자 도예에 관한 깊이 있는 글을 써온 에드먼드 드 왈(Edmund De Waal, 1964~)은 「도자 카펫」을 정물의 맥락에서 해석하고자 했다. "펑크와 유머만은 피하면서 불안과 걱정의 원천으로서 가정의 사물을 의례화"(에드먼드 드 왈, 이윤희 옮김, 앞의 책, p. 224.)했다는 것이다. 형식적 측면에서 드 왈의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세큘라가 페르시아 카펫을 포슬린 접시에 전사한 문화적 배경에 관한 사유는 생략되어 있다. 세큘라는 유대인으로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에서 브라질로, 브라질에서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마침내 뉴욕에 정착했다. 그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동시에 세라믹 작업을 하면서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학생들도 가르쳤다.(마레크 세큘라 홈페이지, https://culture.pl/en/artist/marek-cecula [접속일: 2020년 2월 11일]) 이후 세큘라는 「도자 카펫」과 같은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소량의 포슬린(Porcelain) 제작이 가능했던 고향 폴란드로 다시 향했다. ● 마치 세큘라가 포슬린 실험을 위해 폴란드의 공방으로 향했던 것처럼 김재용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 청화를 작업에 소환하는 실험에 몰입했다. 작가는 한국에 돌아간다면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청화였다고 말한다. 문화를 소환하는 작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의 차이를 피부로 흡수해 본 경험을 해 보았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감각지각이다. 이는 김재용과 세큘라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대부분은 하이브리드라는 방법론을 따른다.

김재용_아주 아주 큰 크롬 별 도넛 S004_ 스테인리스 스틸, 미러 피니쉬_100×100×36cm_2019

밤하늘의 별과 같은 「도넛」 ● 작가는 「도넛」이 상징하는 바가 "다양한 삶의 지표들"이라고 설명한다. ● "우리는 [···] 매일 매일 원하는 것이 생깁니다. [···] 그 원하는 것을 꼭 가져야만 할까요? [···] 그것을 갖지 못해서 걱정이 가득한가요? 두려운가요? [···] 도넛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트로피처럼 달아 놓은 모습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도넛들은 우리가 바라보며 살아가는 다양한 지표들입니다."(김재용과의 문자 교신, 2020년 2월 8일, 수신자: 조새미.) ● 이번 전시의 마지막 방에는 천 삼백여개의 「도넛」이 설치된다. 밤하늘의 별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세라믹 「도넛」들은 완벽하게 일렬로 줄지어 서 있다. 이러한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각각의 욕망이 규율에 따라 벽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그 이유가 「도넛」이 트로피와 같은 기념물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이러한 김재용의 「도넛」이 그의 내적 갈등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했을 테지만 적어도 자신을 인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해온 것은 분명하다. 작가 안에 있는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창조적 에너지의 덩어리"(그레이슨 페리, 정지인 옮김,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Playing to the Gallery』 (원더박스, 2019 [2014]), p. 178.)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도넛」 위에 뿌려졌다. 범 세계성을 획득한 「도넛」은 작가 안에서 쉽게 깨질 수도 있었던 꿈이 체현된 결과이기도 하고, 비트코인이기도 하고, 전환기적 대상이기도 하고. 자유무역 세계의 상징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끝으로 클리셰(cliché)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공예와 미술이라는 규범과 김재용의 작업은 도대체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지 질문해보도록 하자. 김재용은 도자라는 고전적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공예'를 규범적으로 이해하는 한 '공예'라고 정의할 수 없는 대상을 생산하고 있다. 좀 더 너그러운 입장에서 흙으로 무엇인가 만든다는 행위와 과정을 '공예' 문화에 편입시킨다면 그의 작업을 '공예'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재용의 작업이 '공예인가? 미술인가?'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질문은 그의 작품의 가치를 측정하거나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김재용의 작품이 한국에서 도자와 공예, 나아가 미술이라는 분야를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김재용의 작업은 '과연 공예란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해 더욱 확장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그렇다면 미술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에도 짓궂은 미소로 답할 수 있다. ● 김재용의 작업은 미술관, 지역축제, 연예인 집의 앞마당, 힙스터 카페, 쇼핑몰, 미술관의 기념품 가게, 지역 회전교차로의 미술 장식품을 위한 자리, 아파트의 거실 벽 면 등 어느 자리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범세계적 인간의 기억 소환을 통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는 「도넛」이라는 한 형식으로 보편성을 획득하여 우리의 시간과 공간의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앞으로 그 범위는 점점 더 확장될 것임이 틀림없으며 이것은 일관성 있게 입증되고 있다. 김재용의 「도넛」은 상상력, 유머, 그리고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장식을 통해 오늘날 절대적 긍정과 냉소주의를 동시에 초월하고 있다. ■ 조새미

김재용_아주 아주 큰 베이비블루 스프링클 별도넛 016_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_ 100×100×36cm_2020

The Mind Status of the Universal TravelerTwo Different Colors Look Alike Jae Yong Kim's 18th Solo Exhibition is presented by the Hakgojae gallery. Why the artist with an impressive international exhibition list just only now has his first solo exhibition in Korea can be answered in peeping through his bringing up and his personal life. ● Jae Yong Kim was born in Seoul, 1973. He was the second son whose father studied mechanical engineering mother majored in violin, and provided well for the family at the time. When there was a hike in need for construction projects in the Middle East during the late '70s and mid-'80s, his father was assigned as a construction site manager. Jae Yong, moving with his father, lived in Saudi Arabia and Kuwait for five years until he was nine; his understanding of different cultures broadens during these five years. His affinity for Moorish ornament that makes him feel comfortable like an old friend and the emergence of motifs of Persian carpet and Arabesque(Arabesque is a term originally used to describe Moorish patterns of leaves and spirals, however, until the mid-19th century, the term was used for more broader motifs including fruits, flowers, masks, human beings, imaginary monsters; The term is limited to only describing decorations without human being and animal. Reference for more information, Owen Jones, The Grammar of Ornament (London: DK, 2001 [1856])) in his recent works are rooted in his experience of growing up in this period. ● In his after-school clay modeling club during high school, Jae Yong finds his talent in creating with hands. However, there was a reason why he did not predict acceptance in Korean art colleges. Jae Yong experiences color blindness, which makes red and green look similar when juxtaposed. He said people's reactions varied when he presented a specific color combination he felt complete.(Interview with Jae Yong Kim. JYK Studio, Sin Sa-dong, Seoul, Jan. 31. 2020, Interviewer: Saemi Cho.) While studying in the United States, a professor of painting department recognized the uniqueness of the way he uses color as a talent and a high possibility as a painter. But the art teacher at the art academy in Korea advised him not to register after seeing his watercolor painting full of intense colors. ● In 1994, he chose to move to the U.S. instead of pursuing an art degree in Korea. The University of Hartford in Connecticut provided an environment where he can learn and express freely. Jae yong majored in sculpture and became immersed in the material of clay. Clay is one of the most basic elements not only in sculpture but in ceramics, so he naturally became interested in ceramics. Media-centered attention is more diverse and broader than the genre-oriented specialization trend. Double majoring sculpture and ceramic not only prepared Jae Yong to acknowledge craftsmanship as well as understanding and expressing the narratives and symbols. ● However, it was hard for him to use color in his work.

Animals with Many Faces ● Some of the artworks which inspired Jae Yong during college are the Elephant and Obelisk (1667) by Italian sculptor 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 and Dynamism of a Dog on a leash (1912) by Italian painter Giacomo Balla (1871~1958). Jae Yong, looking at these two works, realized even a great master does not always express serious or extreme tense moments; and secondly, he found the power of imagination and humor in an artwork is more appealing than any other factor. Bernini, a sculptor as well as an architect, left numerous works full of exaggerated beauty such as Ecstasy of Saint Teresa (1647~1652). It amazed Jae Yong that a master like Bernini would carve a cute elephant that creates an urge to pet. Bernini never saw an elephant. The fact that Bernini made this work only by listening to a person who had seen the elephant made him wonder about the source of the power that can realistically portrait the object that one did not see before. When Jae Yong saw Balla captured speed on the image by layering the afterimage of running dog's legs, he felt more attached to the depiction of a cartoon-like scene. The dog's appearance, which cannot be more comical, created an endless smile, and Jae Yong began to embrace this imagination and humor in his work. ● In a similar sense, his pet, Momo, was his muse. Jae Yong takes Momo as a primary subject in many of his earlier works. The Dog Who Wished to be a Bozo (1999) is hung on a wall in a way to make it hard to tell whether it is a mask or real. Momo reappears as a supporting character in the artwork, A Man with a Mask with Rabbit Ears (2002), created after Jae Yong started the MFA program at the Cranbrook Academy of Art in Michigan. In this work, which tells his inner struggle with a twist of humor like in a self-portrait, crucial elements such as humor, satire, and crisis, which commonly appear in his art, are implicitly compiled. The figure, like an angel of death, wears a polished black mask resembling a skull, a hat with rabbit ears, and a sock in the shape of a dog's paw. It seems to think he can hide his identity by wearing a mask, while his rabbit ears are exposed. It is holding a small dog with wings, and a little viper which could be poisonous is about to strike his neck. However, the figure wearing nothing more than a mask, a hat, and a pair of socks gives us a victory sign smiling and saying life isn't so bad. ● Snails have appeared in Jae Yong's work in Tumbler Girl with Cards (1999) and Cold Ears (2000), where snails are attached to the main subjects' head, shoulder, and arm. Snails became his dominant subject matter in 2001, replacing Momo. The snail motif is comparable to American artist, Kenneth Price (1935~) in the 1960s. Price put together realistic reptiles and amphibians with manufactured cups. This juxtaposition was to reinforce the "important example of unsightly aesthetic." For Price, the snail was a mechanism which stirs up the dialectic tension among the unrest, charm, and hate.(Edmund de Wall, Lee Yun Hee (trans.), 20th Century Ceramics (Seoul: Si-Gong Art, 2018 [2003]), p. 188.) However, for Jae Yong, the snail is his alter ego. It provides happiness as the main character on stage in Jae Yong's art with abundant facial expressions and diverse movements. ● Let's go one step further about "snail." Jae Yong says he does not feel uncomfortable about not having a permanent residency because he stays and works in different countries.(Jae Yong Kim, Artist Statement in Catalogue, p. 4. "The act of making art for me has much to do with my struggle and desire for finding a home. I often feel caught in between different places, primarily Korea and the United States, and I find it difficult to define what home is. [...] Where I go, I am present there. Home for me has become a verb.") We can assume the shell of a snail is not a physical space to Jae Yong. Instead, we can understand it as a specific requirement for survival. This reminds us to reflect on a statement of Swedish psychologist Carl Gustav Jung (1875~1961) about complementary relationships between the consciousness and the unconsciousness. Jung considered snail's vulnerable and soft body as our unconsciousness and the hard shell as consciousness. For Jung, unconsciousness without consciousness is weak, and consciousness without unconsciousness may not be alive. ● To be living is a requirement of beauty. Like American essayist Elaine Scarry (1946~) finds beauty from being alive,(Elain Scarry, Lee Sung Min (trans.), On Beauty and Being Just (Seoul: B-Books, 2019 [1999]).) the snail's shell, as a mask to change its identity and also as a requirement of beauty, symbolizes the methodology of survival.

This is Not a Donut ● Jae Yong's Donut Series plays a decisive role in making him internationally recognized as an artist. Ironically, the Donut series would not have happened if the artist was not met with peril. The artist planned that it was impossible to support a family working as a young artist in New York City. He, in an attempt to clear his realistic problems, invested in the food business but took heavy losses during the late 2000 economic crisis, which started in the United States and spread worldwide. ● In 2008, a harsh reality came. Jae Yong was lost in a life where he can no longer be an artist. Without figuring out the answers to questions like, 'will I be able to make a living making a donut?' and 'will doing so help continue art?', he created Donut, not a donut, in despair. To turn fear into hope, and not to give up on life, the artist rigorously worked on creating donuts again and again. With those donuts, he had to fight his fear of color, which he has been avoiding. The artist, who strictly refrained from introducing color to his work because of his color blindness, is now expressing splendid field of color plays on the Donut. It would not have been possible if Jae Yong did not confront the fear and horror with the boundless belief and confidence in self. ● Maybe this is why people find themselves and their desires in the artist's Donut just like people find their own faces on smiley icons. People who seek happiness found beauty of life in his work. People who were tired in life found a psychological shelter. People who expected a life of abstinence found moral guidelines. People who dreamed of lustful love peeked a fantasy. Started when Jae Yong was on the edge of life, Donut became a vessel for many to pour themselves as well as a sort of magic mirror. It reflected the projected stare even more beautifully. However, the shape of donut acts as a frame to differ what can be seen and not. Like we can only see as much as a keyhole when looking through it, the artwork only allows limited visual access. "Contour is a sculptural element of image." Donut itself acts as a borderline and limitation in shape, but at the same time, it encourages to complete the unknown in imagination.(Martine Joly, Lee Sun Hyung (trans.), L'Image et les Signes (Seoul: Dong Moon Sun), 1994, p. 177.) The artist reminds us through the contours of circle, heart, square, star, flower, and animal that perfect beauty of life, endless consolation, flawless moral code, and complete eros do not exist, and simultaneously helps to see the invisible completeness. ● The reason why Jae Yong's Donut is not donut as it seems differs, in context, from why Marcel Duchamp's (1887-1968) Fountain is not a urinal, or Andy Warhol's (1928~1987) Brillo Box is not a box. Duchamp questioned the qualifications of art, and Warhol focused on bridging product and art in the capitalistic society of consumerism through Brillo Box. However, Jae Yong's Donut, not only asks whether it is art, nor claims "pleasure of aesthetics as an enemy."("Because objective agreement of differentiating the art from the product disappeared, the Brillo Box, at least, made clear the audience cannot longer differentiate the art from the product." Arthur Danto, ‘Philosopher Like Andy Warhol' in: Arthur Danto, Jung Yong Do, (trans.), Philosophizing Art (Seoul: Misool-Munhwa, 2007 [1999]), p. 97.) Jae Yong's Donut is a symbolic embodiment which does not require lack of visual attention. ● In the world of Jae Yong's Donut, the positive and negative are not too different. The donut can also be read as "Do Not." The title of the exhibition DONUT FEAR is a double negative of do not fear. The artist well understands people are actually afraid when told not to fear, and life without fear is life without happenings and destiny. ● Jae Yong's Donut is also like the Vanitas, a still life painting style popular in the 17th Century Netherlands. Vanitas, a Latin word meaning vain and vanity, realistically depicted various luxury objects like a skull implying "memento mori, (remember the death)," and tableware decorated with jewels. Vanitas paintings were a device to remind us that human beings are mortal, and no wealth and pleasure is eternal. At the same time, it also served as a means of satisfying the viewer's greed and ego. "The soothing light in the still life paintings of the 17th Century Netherlands was the secular light emitted by modern civil society that is full of progressive energy and respect for rationality."(Suh Kyeung Sik, Park So Hyun (trans.) Perspectives of Anguish (Paju: Dolbegae, 2009), p. 78) Like the Vanitas paintings in every house of 17th century Europe, Jae Yong's art serves as an object of stare full of secular light sand desires.

XXL Donut's Smoothness and Sparkle ● The Donut series are private, unique, and made with precious elements like clay and glazes; however, Jae Yong did not settle and sought ways to make more people "connect" with his art. His influence might be of his experience of confronting the Elephant and Obelisk by Bernini in the vast Piazza Minerva. This idea is actualized in his installation, the Donut Garden, in MIXC, the multi-cultural complex space in Shenyang, China. ● The exhibition DONUT FEAR presents approximately ten pieces of XXL Donut size about 100cm in diameter. These artworks are not made of ceramic, but FRP Urethane or stainless steel. They boast smooth and glittering surfaces like a surfing board, a Harley Davison motorcycle, or a sports car. These commercial surface polishing techniques are a reflection of the automobile design culture of Detroit, where it is not far from the Cranbrook Academy of Art. ● Let's further discuss the difference in surfaces of Jae Yong's XXL Donut with Jeff Koon's (1955~) Balloon Dog. Both artworks' surfaces are extremely polished, clean, flawless, and no seams. However, these two surfaces have a fundamental difference. Koon's smooth surface is the key point in his art. The surface, which strongly requires a guaranty of anonymity and absolute positivity, is purposely childish to reject pain, scar, and resistance.("Smooth things do not scar. It does not resist at all. It pursues the Like. Smooth object eliminates its dissenter. All negativity is eliminated." Han Byung Chul, Lee Jae Young, (trans.), Die Errettung Des Schönen (Seoul: Moonhak and Jisungsa, 2016 [2015]), pp. 9-10.) ● In contrast, Jae Yong's XXL Donut is a product of an image projected through the artist's personal side of anxiety. This work was completed by adding the latent memories of the tightrope between the artist's self-confidence and fear. Color crystals spread out on the surface are reminiscence of fragments of his childhood memory. The image of shining jewels in the black Abaya did not erased from his memory. ● If the smoothness of Koon's Balloon Dog can be understood as smoothness that eliminates rebels and negativity, then we can speculate Jae Yong's smooth surface and glittering ornaments are a result of his effort to transform his identity from a cultural stranger to a global citizen. Jae Yong's XXL Donut embraces a stranger's loss and deprivation as well as while being a lighthouse for connection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Worldwide Blue and White ● People who have experienced cultural deportation understand 'identity' is not a shield for attacks, but a reason for displacement. Jae Yong was not enough Arab in the Arab nations, nor enough American in the U.S., nor enough Korean in Korea. The identity of a worldwide stranger who was not enough to become Arab, American, nor Korean, permeates throughout his art. Ironically, his identity, which did not belong to any culture, became an advantage to be loved by various cultures. ● It is worth taking a deeper look into his works after 2018 when he introduces images of carpet and folk paintings on Donut using Cheonghwa (traditional Blue and white pigment). Cheonghwa is a chemical compound used in ceramic to draw or color and made of Cobalt (Co), Iron (Fe), Manganese (Mn), Copper (Cu), and Nikel (Ni). Cheonghwa-Beakja, often called shortly Cheonghwa, is a product of a process of drawing with Cheong-Ryo (blue pigment) on white porcelain clay and the poured over white glaze called Jangsuk-yoo.(Kang Kyung Sook, 'Cheonghwa',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1996. from: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6864 [access: 2020. Feb.10].) However, the Cheonghwa was not limited to the East; it was also loved in the Middle East and Europe. If Cheonghwa could be translated to Blue and White, it would be much easier to understand the global identity of Cheonghwa. ● Dutch Delftware is especially known for its hybridity, which can also be seen in Jae Yong's art. 16th century Dutch Delftware originated in a town called "Delft," and it began as imitating Chinese Cheonghwa onto Italian Maiolica. When the 17th century Dutch East India Company imported large quantities of Cheonghwa, the desire for so-called "blue and white" swept through Europe. ● However, Eastern Cheonghwa and Delftware had a crucial difference in the type of clay. Cheonghwa is made using Gaoling clay, which contains a high amount of metal, and can withstand over 1,300°C; but Delftware is considered earthenware formed with low-fire clay with tin glaze and fired at a lower temperature in comparison. Although high-quality ceramics made of Gaoling clay traces back to the 8th Century Chinese city Jingdezhen, however, in Europe, despite the popularity of Maiolica of Italian Renaissance and the Dutch Delftware in 17th century, it was not until 18th century Europe was introduced to the secret of Kaolin clay. In 1709, when Kaolin, similar to the component of Gaoling clay, was found in Saxony, Germany, it became a pivotal point in the history of ceramics. ● However, we cannot undermine the art of ceramic pieces just because it is not made with Gaoling clay or Kaolinite. The expensiveness of Delftware was especially powerful enough to surpass the quality of clay. In the Netherlands, Kaolin could not be found naturally, so instead, they mass-produced the Delft Blue Tiles, which did not necessarily prioritize delicacy and elegance. Later, the tiles decorated magnificent and splendid palaces and mansions of nobles and led the blue and white trend in architecture. It then spread to England and was produced in every town, including London.(Lucy Trench (ed), Materials & Techniques in the Decorative Arts (London: John Murray), p. 114.) ● Blue drawings on white ceramic background became a powerful icon of globalization and deeply infiltrated the hearts of many people. It would not be an overstatement to describe anyone in the world who have experienced the 'blue and white' ceramic culture as having a cultural understanding and strong economic power. ● Let's come back to Jae Yong's 'Blue and White.' Jae Yong's artwork is not technically Cheonghwa Baekja; because the Gaoling clay is not used. The process of making physical donut shapes is actually closer to that of Delftware. His work is formed with low-fire clay, and applied with underglaze before 1st firing, then after drawn on with blue pigment produced in China, Japan, and Korea. These pigments offer a range of viscosity and brightness, which the artist selectively utilizes to depict each subject. ● Mystical animals and imaginary objects from various cultures such as tiger and magpie, unicorns, phoenixes, Sip-Jang-Seng, and even donuts with wings are drawn on the donuts. Sometimes motifs that glimpse his growing up in the Middle West can be found. For example, the patterns in the Growing up @ East and West (2018) is a product of appropriation of many images found on the web with the search keyword "carpet." That is why traces of weaving threads like on general woven carpet cannot be seen anywhere in his work. Arranged in radial formations, arabesque patterns and combinations of various plantlike shapes seem to be floating. The Blue and White drawn on donut stimulates the viewer's imagination and breaks down the borders of culture and gravity. ● Let take one more step and compare Jae Yong's Growing up @ East and West with Porcelain Carpet (2002) by a Polish designer and ceramist Marek Cecula (1944~). Porcelain Carpet is installation art that showed hundreds of plates aligned in a grid on the floor and wall of the gallery. Cecula projected a real Persian carpet on to the manufactured plates in this work. It was a result of commercial technology deeply being embedded in the artist's work. ● An English ceramist who had also been producing profound writings about ceramics, Edmund De Waal (1964~) interprets carpet in the context of still-life. He claims, "while avoiding funk and humor, it falls in a mannerism of regarding the object of assumption as a source of anxiety and worry."(Edmund de Wall, Lee Yun Hee (trans.), Ibid., p. 224.) In a formal aspect, De waal's analysis is not wrong, but he dismisses the cultural background of why Cecula projected Persian carpet on the porcelain plates. Cecula was a Poland born Jew who moved to Israel, to Brazil, and then to the U.S. until he finally settled down in New York. He owned a design company while creating and teaching ceramic at the Parsons School of Design.(Marek Cecula Homepage, https://culture.pl/en/artist/marek-cecula [access: 2020.Feb.11]) Later, in need of creating more works like the Porcelain Carpet, Cecula returned to the home, Poland, where it was more efficient to produce smaller quantities of porcelain. ● Like Cecula headed to Polish ceramic workshop to test porcelain, Jae Yong was immersed in testing to introduce the Cheonghwa when he was hired as a professor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 artist once said one thing he must achieve if he comes back to Korea is Cheonghwa. Taking a particular interest in introducing the culture is a unique sensibility only available to a person who has experienced cultural differences firsthand.

Donut like the Stars in the Night Sky ● The artist explains Donut symbolizes "various indicators of life." ● "We [···] always want new things everyday. [···] Are you worried because you can't have it? Are you afraid? [···] Donuts are trophies of our desire hung on the wall. Like the stars in the night sky, donuts are various indicators of life."(In text messages with Jae Yong Kim, 2. 8. 2020, Receiver: Saemi Cho.) ● In the last room of the exhibition, about thirteen hundred donuts are installed. Beautiful ceramic donuts, like the stars in the night sky, are perfectly aligned in a grid. Why do these embodiments of desire, worthy of being life's goal, are hung following a strict arrangement? The artist explains the reason is that the Donut is a token of acknowledgment like trophies. ● Jae Yong's Donut could not have wholly solved the artist's inner conflicts, but it clearly had a role in his self-reflection. The delicate and fragile "blob of creative energy"(Grayson Perry, Jung Ji-In (trans.), Playing to the Gallery: Helping Contemporary Art in Its Struggle to Be Understood, (Seoul: Wonder Box 2019 [2014]), p. 178.) is sprinkled on the Donut like the night stars. The Donut, acclaimed worldwide, is a realized product of his fragile dream, a bit-coin, an object of transition, and a symbol of the free trade world. ● Lastly, under the assumption the cliché can be overcome, let us question how Jae Yong's artwork relates to the categorization of the craft and the fine art. Although Jae Yong is using traditional materials and techniques of ceramic, however, under a normative understanding of crafts, he produces objects that cannot be defined as crafts. If we broaden the definition of craft more leniently and incorporate the act and process of making something out of clay into the realm of crafts, It can be seen as a craft. However, the question of whether his work is the craft or fine art is pointless. This question is not a requirement for measuring or better understanding the value of his work. One thing is prominent; Jae Yong's art is helping us to see the fields of Korean ceramic, craft, and art in a broader perspective. His art provides a more extensive view on the question of "what is craft?", as well as answers with a naughty smile to the question of "what the hell is fine art?". ● Jae Yong's work goes naturally in any place, such as museums, local festivals, the front yard of a celebrity, hipster cafe, shopping mall, museum stores, a spot for artwork in local intersections, a wall of the apartment. The psychological endeavor of memories of a worldwide man is universalized in the form of Donut and permeates our time and space. It will continue to spread, and it is proven consistently. Jae Yong's Donut, full of imagination, humor, and ornaments like night sky stars, is transcending the absolute positivity and cynicism of today. ■ Saemi Cho

Vol.20200325f | 김재용展 / KIMJAEYONG / 金載容 / mixed media.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