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신예작가초대전

29th YOUNG ARTISTS展   2020_0326 ▶︎ 2020_0408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0_0326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복솔비_이가인_정민수_정혜린_정혜윤_조명상 최미숙_한나라_한주연_허예민_홍채린_황록휴

주최 / 우진문화재단 후원 / 전주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우진문화공간 WOOJIN CULTURE FOUNDATION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주천동로 376 Tel. +82.(0)63.272.7223 www.woojin.or.kr woojin7223.blog.me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문화예술가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하지만 지난겨울 작가들은 열심히 대형 신작을 준비했고 '사과나무 한 그루' 심는 심정으로 이 전시를 열기로 했습니다. 신예작가초대전은 2020년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작가들의 미술계 데뷔전입니다. 벌써 29년째입니다. 자신의 대학에서 교수님과 동료들이라는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작업해온 작가들이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관객은 젊고 패기 있는, 작품성을 각 대학이 보증한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올해 12명의 작가가 새롭게 선보입니다. 많이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 *우진문화재단의 '신예작가초대전'은 1992년에 시작된 미술대학 졸업생들의 미술계 데뷔전으로, 전북 화단에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진작가를 배출해온 등용문입니다. 이 기획전을 통해 등단한 많은 작가들이 전북미술계의 결을 두텁게 하고 예술적 성취를 높이며 지금 전북미술의 중심으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 우진문화재단

최미숙_조연에 조명하다.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조연에 조명하다... ● 주연(主演)'과 '조연(助演)'이란 단어는 주로 연극이나 영화에서 사용되어진 말이며, 요사이 흔히 사용하는 '인싸'와 '아싸'라고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주목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에 찬사와 박수갈채를 보낼 때 묵묵히 그옆에서 주연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은 조연이다. ● 작가 최미숙은 많은 작가들이 소재로 사용해온 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인 관상용 꽃이 아닌 채소의 꽃이라는 다른 관점을 보이고 있다. 채소의 꽃은 우리 관심밖에 있는 조연과 같고, 그 꽃은 우리가 아는 채소라는 결실을 얻기위한 과정의 일부라는 특징이 있다. 작가는 이러한 소재를 화면 안에 배치할 때 꽃다발의 모습을 사용하며, 그 꽃다발은 자연스럽게 동그란 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원의 기본구조는 조화와 어울림, 순환, 영원을 의미하고 있다. 대지는 만물의 근원이며 그 대지에서 자란 식물이 결실을 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꽃을 통해 어머니이자 여인인 그러나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을 반영하는 페미니즘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다. 작가 최미숙은 "지치고 힘들 때면 땅이 그립고 식물을 찾게 된다. 자라고 무성해지고 꽃을 피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식물을 보면 어느덧 생기가 돋고 마음이 위안을 받는다."는 말을 한다. 그의 작품이 바쁘고 힘든 생활 속에서 지친 우리의 심신을 위한 쉼표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가길 기대해 본다. ■ 고석인

황록휴_어떤 예감_장지에 채색_130.3×162.2cm

흔들리는 자아의 여정 ●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을 둘러싼 주위 여건과 환경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은 단 사람도 없다. 삶에서 겪는 불안감이란 특정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그것은 누구나 공유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라는 공통된 시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불안의 정체도 나름의 유사성을 지닐 것이다. 프로이트는 불안이란 지니고 살기에는 너무나 위험적이고 괴로운 자신의 경험, 감정이나 충동 등을 억압한 결과로 내면의 감정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라 설명한다. 삶에서 경쟁이란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는 크고 작은 변화에서 오는 두려움과 마주친다. ● "그림에 나타나는 긴팔 원숭이는 현대인을 의인화한 대상으로써 막연히 느껴지는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닌두려움을 마주하며 성장하는 나의 모습이다. 나는 내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삶은 수학처럼 정확한 답이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림은 내 마음의 지도가 되어준다. 또한 그림은 그릴수록 나는 내가 되어간다." (황록휴 작가노트) ● 황록휴의 작품은 졸업을 앞두고 사회에 나가기를 불안해하는 어두운 내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긴팔 원숭이는 결국 자화상이자 삶에 대한 은유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게 있는 동시대의 풍경이다. 시대는 선택할 수 없다. 다만 주어질뿐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지는 것이다. 록휴의 작업은 불안을 보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 여정이 작업과정에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진지한 작품을 통하여 가능성 있는 작가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개별성 짙은 조형미를 추구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 김정숙

복솔비_십보방초(十步芳草)2_알루미늄 철사, 한지, 핫멜트_220×75×75cm

십보방초, 한지와 금속으로 표현한 잠재적 미래 ● 인간이 자신의 형상(image)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은, 자신에 대한 '심상(idea)'을 외부세계에 표출해 보는 것이라고 허버트 리드는 말한다. 복솔비의 작업에 등장하는 형상은, 자신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모든 인간들을 아우르며 대신해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가장 자연적 재료인 한지와, 가장 현대적 재료인 와이어, 실리콘을 이용하여, 인간의 외형과 내면세계를 표현한다. 또 추상적 형태와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 이들 재료들의 표현은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더욱 확실하게 자신의 영적 감흥을 재탄생시키고 있다. 복솔비의 작업에서 재료에 대한 탐구는, 그녀의 작품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각 재료들이 가지는 물성적 특성들이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지, 와이어, 실리콘의 사용은, 작품의 지속성과 전달력을 위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겠다. 그러나 주변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들의 조합은, 흔히 만나는 사람들의 잠재적 생각과 미래를 표현하는데, 너무나 적합한 소재들이 되었다. 매우 친숙하고 보편적인 재료들이, 복솔비의 생각과 손을 거치면서 매우 특별하게 서로 연결되고 동화되어 탄생되는 것이다. 복솔비의 작업은 그녀가 체험한 유년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인간관계를 통해 느껴왔던 감정과 그로 인해 남게 되는 고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감의 이면들을, "십보방초"라는 화두 안에서 표현하고 있다. 차갑고 딱딱한 금속의 골격과, 수없이 헝클어진 실리콘의 표현은, 악과 선, 이별과 사랑, 죽음과 삶, 소멸과 존재, 그 찬란하고 눈부신 아름다움까지, 작가의 고뇌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매우 긍정적이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한지를 이용한 꽃들로 피워내고 있다.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진솔한 소망이자 우리 모두의 희망을 유감없이 제시하는 것이다. 복솔비의 작품 속 빛에는 '나'라는 존재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함께 했던 사람들, 함께 할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는 관자에게 각자의 불을 밝히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녀가 우리에게 전달하려한 그 빛의 가치, 그녀 자신에게도 따뜻한 불을 밝히고 능동적인 무언가를 언제든 이루어내길 바란다. ■ 유봉희

십보방초 ● '열 걸음의 짧은 거리에도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있다'라는 뜻으로, 인재는 곳곳에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누구라도 인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향기로운 꽃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저기 돋아난 하얀 뿌리들은 꽃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모양이다. 이는 잠재력을 개화할 수 없게 방해하는 요소들로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며, 그 요소들은 개인적일 수도 있고 사회적일 수도 있다. 채워지지 못한 빈 곳은 현실적 삶 속에서 밀려오는 공허함을 표현한 것이며, 너무 오랜 시간 채워지지 않은 공허한 부분은 거미줄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버려 걷어내지 않으면 아마 평생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여유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인재들이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공허함과 방해요소들을 알아채고,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또한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아름답고 여유로운 유년에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아를 찾았으면 하는 심정으로."십보방초"라는 의미 안에서 표현해 보았다.

홍채린_머리카락2020 –착취할 권리에 투쟁하다._머리카락_가변크기

그는 말한다. ● "젠더 불평등, 파시즘, 인권, 동물권 또는 계급 자본주의 등 어느 한 쪽이 한 쪽을 지배하고 이용하며 통제하려고 하는 '착취할 권리'라는 신념에 대항하고 투쟁한다." 라고.. 이번 작업에 표현하려고 했던 의도이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미술학도가 평소 사회구조의 모순점을 찾아내고 이를 시각화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일반적이지 않다. 최근 신진작가들이 무난하게 판매나 일반적인 기호성에 중점을 두다 보니 가지고 나오는 작품들이 장식적이거나 기법적(공예적인 방식)으로 흐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화려한 형식이 대세가 되고 보편적인 면에서는 무겁지 않아 걸어놓고 감상하기에 부담이 없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 이런 시류에 작가 홍채린은 당당히 맞선다. 무겁고 섬뜩한 재료로 자기 언어를 확실하게 작품에 담아내다 보니 단연 돋보인다. 졸업작품도 그랬다. 기부받은 108개의 브래지어로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설치작품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사회의 아픈 곳을 콕 찌르는 충격이 있고 대리만족하는 쾌감도 있다. 그는 앞으로도 동시대가 가지고 있는 극과 극이 상충하는 아픔과 모순들을 치유하고 지적하고 풀어내려는 시도를 할것이다. 이 시도를 응원해주고 지켜봐 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 이철규

이가인_절규_백조형토, 던컨 저화도 결정유_50×45cm
이가인_절규_백조형토, 던컨 저화도 결정유_50×45cm

'성장통' ● 작가 이가인의 작품은 도자(Ceramic)라는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여 작가 본인의 얼굴을 표현한 작품이다. 연작으로 제작되는 이 작품은 자화상을 원형으로 과장, 왜곡, 변형한 것으로써 작가는 작품의 형식과 표면에 드러나는 언어, 제작 기법이 어떻게 온전히 기대했던 주제에 도달하도록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가인의 작품은 해부학적 지식에 근거한 세심한 인체 표현과 재료의 물성표현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점토가 가지는부드러운 성질과 이것을 감싸고있는 차갑고 날카로운 유리질은 마치 자신의 내면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초점없는 눈빛과 부셔진 얼굴에서 느껴지는 상반된 분위기는 욕망을 감내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자신의 얼굴을 왜곡 변형시킴으로써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낸다. 작가는 연작을 통해 스스로의 성장일기를 써나가고 있다. 세상 만물이 그렇듯이 변화를 하거나 성장을 하기위해서는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흔히들 성장통이라고 말하는 과정을 겪어야만 비로소 일정부분 변화에 익숙해지거나 성장을 하게 된다. 작가 이가인도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다. 늘 함께했던 친구들과도 이제는 함께할 수가 없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작가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로 나아가야만 하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이번 전시작품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추운겨울 작업실에 앉아 차갑디차가운 흙을 맨손으로 주무르며 온몸으로 성장통을 겪은 이가인이 건강한 작가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 이화준

정민수_나누다, 잇다 3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

현재의 경험이 과거의 기억을 편집한다. ...나누다–잇다 ● 인간은 하나의 단편적 형상으로서가 아닌 환경과 감정, 경험 등의 복합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인 관계로 이루어져있다. 유아기의 체험, 유년시절의 기억 또는 사건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 과거가 되지만 사라지지 않고 기억 한편에 남아 현재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확장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고 삶이 된다. ● "현재 내가 바라보는 과거는 많은 것들이 각색되어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과거는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를 정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하고 마치 초점 흐린 카메라처럼 그 실루엣만을 기억할 뿐인데 정민수는 이러한 경험의 표현을 현재 겪고 있는 경험이라는 필터를 한번 더 입혀서 바라보게 되고 경험들을 편집한 기억을 담아 새로운 화면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며 자라온다. 경험이 온전히 자신이 스스로 겪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와 내가 살면서 겪어오지 않았던 무언가가 나에게 자극을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극은 매우 미미해서 자극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매우 커서 앞으로 나의 행보를 바꾸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경험이 나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나와 같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경험이 과거의 나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며 그 자체로 과거의 나와 현재를 구분짓는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정민수의 작가노트) ● 정민수는 작품에서 생활의 모든 순간 또는 경험들을 진지하게 마주하고 일상의 Circles에서 촉발되는 장소를 쉐어하거나 스스로 그러한 곳에 자연스럽게 머물며 스스로를 질문한다. 앞으로의 무한하게 펼쳐질 작품세계도 본인의 경험이 한올 한올 더해져 계속 성장하길 기대한다. ■ 황나영

조명상_RETRO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

레트로(Retro) 감성으로 뉴트로(New-tro)를 이야기하다. ● 레트로 감성의 본질은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하는데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오래전의 문화를 꺼내어 새롭게 재단장 함으로써 신비로움을 주는데 있다고 한다.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옛것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뉴트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으로 '복고주의', '복고풍'이라고도 불리는데 레트로 경향은 최근 들어 더욱 확장되면서 뉴트로, 힙트로, 빈트로 등의 새로운 개념도 등장했다. 뉴트로는 특히 국내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으며 예술뿐만 아니라 매체, 공연, 제품, 공간, 지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뉴트로는 레트로와는 달리 과거의 상징적인 특징들을 노스탤지어 감성으로 재현하기 보다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설음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중심으로 다채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 조명상은 대학 생활 동안 줄곧 아날로그적이고 복고스타일인 레트로 문화에 향수를 느끼고 반응하며 작업을 해왔다. 스스로 최첨단화된 세상에서 현실적인 감각을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고 현대인들 또한 하루가 다르게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본인과 같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되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결핍은 조명상으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을 또는 옛것을 찾아 보고 다시 재현하여 재해석하는 표현의 즐거움을 주게 되었고 작품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공감하며 더 나아가 한단계 진화해 최신유행으로 새롭게 느끼는 즐거움의 활동을 그림을 통하여 하고 있다. 앞으로 조명상이 작업을 통하여 뉴트로의 흥미로운 내용의 소재와 기법의 꾸준한 연구로 본인만의 뉴트로의 감성을 담은 시대적 흐름을 작품에 반영하여 마음껏 그의 캔버스에 펼쳐지길 기대한다. ■ 황나영

한나라_힘들고 지친 나를 위로하는 새벽 2시_장지에 채색_162.2×112.1cm

당당한 그녀 ● 작품 속의 그녀는 당당하다. 그녀는 자신이 위치한 공간을 다양한 색채로 응집한다. 동시에 그녀는 그다양한 색채를 보라색 계열의 이지적이고 차가운 색감으로 분산한다. 여기에 더해 노란색 계열의 정열적이고 따뜻한 색감을 통해 자신의 복잡한 심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 다양한 색채와 색감의 어울림 속에서 작품의 평면공간은 오히려 복잡하고도 입체적인 느낌을 불러온다. 이로 인해 사물의 배치는 자유로워지고, 그 자유로움은 개인적인 심리를 더욱 다채롭게 이해하는 매개로 작용하기도 한다. 작품이 지향하는 다양한 색채와 평면적 구성은 작품 속 그녀에게 정리되지 않은 세상의 여러 문제점과 아직은 정리할 수 없다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비늘무늬 바닥에 몇 권의 책과 향초 그리고 선인장은 여기에 긴장감을 더한다. 또한, 소품으로 활용되고 있는 스탠드와 시계 그리고 복잡한 꽃무늬 배경이 더해짐으로 해서 그녀만의 복잡한 심리는 더욱 자유롭게 표현된다. 특히 왼쪽 상단에 기울어져 있는 시계와 오른쪽 중심에 자리 잡은 기호적 상징은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동시에 작품 속 그녀가 경험하는 내면의 불안한 심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중요 오브제로 활용된다. 창은 인물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는 역할을 함으로써 다양한 이야기가 중첩되어있는 소란스러운 내부의 시간과 고요한 외부의 시간을 구분하는 경계를 형성한다. 구체적으로 새벽 두시를 가리키는 시계의 분침이 말해주듯, 창밖의 공간은 별빛과 달빛이 쏟아져 내림으로써 편안하고 아늑한 세상으로의 방향성을 갈급한다. 작품 속 그녀는 '힘들고 지친 나를 위로하는 새벽 2시'라는 작업 노트에서 "하루를 마치고 피로를 풀어내며 지친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나만의 사적인 공간, 이곳에서 우리는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생각에 잠기어 오롯이 나만의 세상에서 나와 마주하여 자신에게 위로를 전달해 볼 수 있다. 또한, 나만의 상처를 방 한구석에 꼭꼭 숨겨 놓기도 하고, 내꿈을 보관하여 들여다보며 다시 마음에 새기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라고 자신만의 고유한 공간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생각하며 위로하는 공간과 시간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라는 작은 소망을 통해 화면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시련과 아픔을 함께 공유하며 희망의 세계로 나가자는 사적 권유를 시도하기도 한다. 작품 속 그녀와 관객의 공감은 결과적으로 현실의 얼굴이 아닌 거대한 복숭아로 형상화된다. 예로부터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양기가 강한 과일로 불로장생과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다. 본래 가지고 있던 개인의 얼굴 대신 전혀 어울리지 않은 복숭아를 배치함으로써, 관객과 그녀가 새롭게 탄생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보다 당당한 존재로 거듭난다. 그 당당한 모습은 그녀를 작은 의자에 앉은 인물로 집중시키는데, 이는 마치 왕국의 제왕처럼 거리낌 없는 '당당'한 한 존재의 모습으로 화면 중앙을 차지한다. 그녀가 입은 속옷과 짧은 스타킹, 그리고 중앙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은 결국 그녀의 육체로 집중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하나의 집처럼 우뚝 서는 '당당(堂堂)'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 이용석

허예민_조커 : 우는 사람_종이(머메이드지, 펄지)_145×80×50cm

"이상향" ● 허예민은 대학에서 줄곧 회화를 공부하였다. 고학년이 되면서 문득 캔버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과 함께 시도한 종이 입체작업은 그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왔으며, 졸업 작품 역시 종이소재의 완성도 높은 신선한 작업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하였다. 다다 이후 지금껏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보여지는 형식과 소재의 다양한 진화를 논하지 않더라도, 공예와 순수미술, 디자인 등을 정의하는 한계가 모호해진 것이 사실이다. 소위 어떤 소재(material or subject)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 내느냐에 따라 작품의 객관적인 가치가 요동을 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허예민의 종이작업은 이렇듯 재료에서 오는 아슬아슬한 형식의 불안함을 일거에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이 새롭게 탄생시킨 소피와 하울 그리고 그 배경이 된 "하울의 성"이 화면 속에서 빠져나와 관객의 시야에 입체화된 모뉴멘트로써 등장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이제 막 "조커"에서 탈출한 광대 아서 플렉도 보인다. 허예민이 집착하는 주제는 "이상향"이다. 공감하는 군중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이미 보편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객체를 선택하는 첫 번째 작업 과정은 어렵지 않다. 드로잉을 통해 공간을 구성하고 등장하는 주인공과 소품, 배경 등을 배치하고 각 개체가 돋보이기 위한 최적의 규격 등을 산출해 내는 이어지는 과정은 여느 입체 작업과 다르지 않다. 하울이나 조커의 모습을 단순히 재현함에 있어서 시나리오 전체를 관통하는 사회적 의미를 일부라도 담아내는 일은 실로 어려운 작업이다. 허예민은 현실과 유리되어 환상이 개입하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종이를 가공하여 완성하는데 쏟아 부었다. 대부분의 종이예술가가 엄청난 밀도와 디테일로 압도하듯이 말이다. 영화 속에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품 또는 복제본이 전시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관객은 그 고유한 가치를 판단하기 시작한다. 마담 투소 박물관의 밀랍인형이나 국립박물관의 모형유물을 떠올리거나, 매튜 바니가 클리매스터 시리즈를 제작한 후에 전시를 통해 판매한 영상속 소품들이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그렇지만 모두 리얼한 형태가 드러나 있을 때의 경우이다. 형태와 재료가 단순화되고 변형되면서 발생하는 리얼리티의 부재는 긍정적으로 보자면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또 다른 상상력으로 작품을 해석하도록 유도하게 될 것이다. 영화 속 화면상의 강렬한 색과 마티에르 나아가 분위기까지도 세밀하게 잘려진 단색의 종이조각들이 무수히 어우러지고 중첩되면서 형성되는 높은 밀도감으로 충분히 보상이 가능해지리라 믿는다. 허예민의 종이를 이용한 전형적이지 않은 시도가 동시대미술의 범위 안에서 그 가치를 평가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아가 더욱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여 유망한 젊은 작가로써 입지를 다지며 지역미술에 공헌하기를 희망해 본다. ■ 이강원

정혜린_돌아오다_판금에 유채_91.5×183cm

작가의 아버지는 15년째 매주 산행을 하시는데 그 방법이 매우 독특하다. 일행들은 하산하는 시간만을 약속하고 각자 흩어져 기존의 등산로가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 걷다가 일정시간이 되면 다시 모여 집으로 돌아오신단다. 이런 산행은 복잡한 사회를 떠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찾는 것 같으면서도, 돌아올 곳이 있기에 가능한 무모함이다. 등산에서 얻어진 휴식은 온전히 개인의 것 같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는 구성원들을 위한 헌신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속에서 혼자를 꿈꾸고, 혼자 있기에 사람을 원하며, 다시 혼자를 그리워한다. 산다는 건 이 혼자와 함께의 순환인것 같다"고 말한다. 딸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덤덤히 그림에 옮겨놓았다. 부식된 함석판으로 된 화면에는 멀리 높은 산 봉오리가 보이고 아래쪽에는 얽히고설켜 있는 사람들이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의 덩어리는 흡사 산의 모습과도 같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에 목청높이며 살아간다. 혼자를 꿈꾸지만 어쩔 수 없이 또는 선택에 의해 그 덩어리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멀리 산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동경하는 산은 어쩌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절대자이기도, 각자의 자아自我이기도 하다. 부식을 통해 얻은 함석판의 녹(산화됨)은 단단한 것이 허물어지는 시간이 흐름을 이야기 한다고 한다. 단단한 함석판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산화되어 그것이 처음 나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삶의 영속성永續性이다. 시간이 흘러 앞 사람의 목소리는 사그라져 가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나는 없지만 누군가에 의해 공동체는 계속되고 그앞사람은 먼 산이 되었다. 앞에 놓인 작은 밥상은 둥근 모양으로 허물없이 모이는 원탁이면서 최소한의 사람만 마주할 수 있는 마이크로 공동체를 이야기 한다. 다수가 모이기에는 다소 비좁지만 모인 사람들 간의 끈끈한 연대의 공간이다. 밥은 나누면 성찬盛饌이요 서로 먹겠다고 나서면 다툼의 근원이다. 녹슨 상床의 등장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삶의 고리에서 함께 나누는 성찬이 되기를 바라는 제사이다. 작가는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간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시작될 것이고, 가끔은 시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이내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다 금속이 산화되듯 언젠가는 원래 나왔던 곳으로 돌아가 산이 될 것이다. 항상 성찬을 즐기며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절대자와 같은 산이 되기를 빌어본다. ■ 이광철

정혜윤_짜증나는 세상 짜증나는 인간 그건 바로 당신이야 그럼에도 사랑사랑사랑_ 장지에 혼합재료_170.0×130.3cm

기록(記錄), 적어내고 남기다. ● 인생은 빠르게 지나간다. 가지 않을 시간이라 믿었던 순간도 어느새 지나온 후의 일이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존재가 있을까? 나는 오늘 기록을 통해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싶다. 정혜윤의 기록(記錄)은 아주 평의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그는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며 답하고 고민한다. 그건 자신에 대한 물음이었다가 세상에 대한 물음 사회, 예술, 일상의 감정과 관계, 개인의 모든 영역들, 환경, 도시, 건축, 공간부터 내적이고 심리적인 상황, 이미지의 탐구이며 순수한 궁금증이다. 쓰고 답하기를 좋아했던 어린시절부터 예술가가 되기로 한 지금의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학부시절부터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정혜윤의 작업물은 늘 진지했으며 그의 확고한 세계관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이번 작업은 그동안의 진행해왔던 작업방식이었던 미리 정해두고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작업의 형식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일어나고 일어났던 삶의 모든 상황들을 풀어나가는 다분히 과정지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작업을 통해 그는 자신의 사회적 약점, 그리고 약자라 불리는 모든 소수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했으며, 그의 작업물 한곳에 쓰인 '사랑가지고는 안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지만 사랑이 필요한 사회입니다.'라는 글처럼 그의 사회에 대한 위로와 애정은 각별하다. 작업물에 바느질을 하는 이유 또한 바느질을 하는 사람의 손길에 담긴 애정과 각별함을 통해 새로운 것을 입히고 쓰인다는 의미로 사회에 구멍, 새롭게 덧입는 마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바탕에 찍힌 색색의 점처럼 보이는 색들은 쿠사마야요이의 시대의 환각이라는 메시지를 따온 것으로 개인의 모든 이야기를 덮어버리려는 화려한 색들 사이로 존재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대한 물음을 남긴다. 끝으로 정혜윤의 물음이 세상을 향해 지속되어 그 울림이 세계를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박인현

한주연_Worryworry Machine_스틸_100×80×40cm

한주연 작가의 기존 작품 속에는 유년시절부터 품어왔던 걱정과 불안, 그리고 외로움의 세 가지 키워드를 내면으로 품어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번 작품 속에서도 여과없이 불안감으로 승화되어 있다. 사람들 모두 말 못 할 고민과 걱정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처럼 일상적인 고민과 갈등들은 작가의 이번 작품에서도 오롯이 담겨져 있다. 작가 또한 본인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번 신예작가초대전에 출품 할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과 갈등을 작품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 ● 그는 이번 작업을 통해 본인 뿐 만 아니라 관람자들에게도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민과 걱정들을 덜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와 관람자들의 소통은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작가는 관람객들의 참여를 작품에 직접 유도하는 협치예술을 졸업 작품전부터 보여준바 있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들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관람객들이 작품에 들어와 느끼는 방법이 작가의 이성과 직관을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호흡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 한주연은 작품에 대한 접근방식이나 집중력이 뛰어나고 개념 설정이 아주 높고 탁월하다 할 수 있다. 한동안 방황했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적절히 넘기고 이제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흐뭇하고 즐겁다. 바로 이러한 면이 한주연 작가를 추전하게 되었다. 이제 작가로서의 싹트는 과정을 주변에서 응원과 격려와 적절한 질책을 통해 바라봐야 한다. 앞으로 열정적인 훌륭한 작가로 성장 하는 모습이 사뭇 기대된다. ■ 엄혁용

Vol.20200326b | 제29회 신예작가초대전-29th YOUNG ARTIST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