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 The Girl

조규훈展 / JOGYUHUN / 曹圭訓 / painting   2020_0429 ▶︎ 2020_0607 / 월,공휴일 휴관

조규훈_그 소녀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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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김영종(작가) 진행 / 황무늬_김희은(갤러리에무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후원 / 사계절출판사_AGI Society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공휴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에무 Art Space EMU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B2 Tel. +82.(0)2.730.5514 www.emuartspace.com

'미술의 임상실험실' 갤러리에무에서 기획초대전으로 조규훈의 『그 소녀』를 2020년 4월 29일부터 6월 7일까지 개최한다. 조규훈 작가의 '그 소녀' 신작에서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표정을 감춤으로써 소녀의 감정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관람객에게 주고자 했다. 얼굴을 가린 것은 보는 이가 그림 속 소녀에 감응하도록 돕는 반면, 동시에 표정이 그림을 지배하는 효과를 걷어냈다. 눈을 가리고 꽃, 고양이, 새 등과 상호작용하는 소녀에게 관람객은 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며 각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는 '보기'에서 '듣기'로 작가의 관점이 이동한 것으로 읽힌다. 얼굴을 가림으로써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너머의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소녀 그림들 속에서 표정 너머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것을 느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황무늬

조규훈_그 소녀_캔버스에 유채_34.8×27.3cm_2020

그 소녀는 왜 눈을 가리고 있을까? 이번 기획전에 초대된 조규훈의 신작은 특징이 하나 있다. 소녀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점이다. 이전 작품은 인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심지어 그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품어 나오기도 한다. 이 대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작가에게서 관점의 변화가 느껴진다. 소녀가 눈을 가리는 행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녀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눈을 가림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내면을 더 잘 보기 위해서 눈을 가리고 있다. 이 이중성은 소녀의 리얼리티로서 다가온다. 전작은 이 리얼리티를 두 눈 뜬 소년의 움직임(행동)을 통해 표현했다. 그런데 새로운 전시작은 소녀가 정지동작 상태에 있다. 두 눈을 가리고 있는데 움직인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녀의 정지동작은 무엇을 '듣기' 위해서다. 이 신작의 '듣기'가 전작의 '보기'에 대비되는 괄목할 만한 특징인 것이다.

조규훈_그 소녀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20

'듣기'는 수용성의 코드다. 어떤 사물의 내부를 알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두드려서 들어봐야 한다. 보는 행위로는 그 사물을 파괴한다 해도 표면만 나오고 끝없이 내부를 알 수 없다. '듣기'는 소리로 듣는다. 소리는 총체성이고 하모니를 지향한다. 보기/시선이 분석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반해서 그렇다. 그래서 듣기를 중시하면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에 대한 욕망의 출처를 좀 더 사색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조규훈의 '소녀'는 무엇을 들으려는 것일까? 내면의 소리일까? 우주의 소리일까? 꿈을 응원하는 소리일까? 꿈을 거둬들이라는 소리일까?

조규훈_그 소녀_캔버스에 유채_130.3×162.5cm_2020

소녀는 정지해 있지만, 꿈꾸고 있는 장소는 다양하다. 노란색 속에서, 검은색 속에서, 푸른색 속에서, 그리고 변기 위에서, 휠체어 위에서, 논밭에 앉아서... 소녀의 머리에 고양이가 앉아 있는가 하면 뿔이 나 있고 꽃이 피어있기도 하며, 어떤 그림엔 새가 앉아 있다. 이 표현들은 내면의 외면화다. 눈을 감고 듣는 소녀의 내면을 외적으로 표현한 이 방식은 연원이 꽤나 오래됐다. 왜냐면 구술문화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중심인 문화에서는 내면의 무엇을 말로써 나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외부의 무엇을 빌어서 지시했다. 내면을 말로 표현하게 된 것은 문자문화가 정착된 뒤의 일이다. 그래서 이 방식은 민담이나 전설, 신화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문학에서 카프카, 마르케스, 미술에서는 알레고리를 쓰는 작가 클림트와 피카소 등에서 보인다.

조규훈_Burning Home_캔버스에 유채_112.1×193.9cm_2020

듣기를 통해서 소통하는 조규훈은 이전의 작가 자신과도 다를뿐더러 수많은 주위의 작가들과도 다르게 되었다. '보기'가 아니라 '듣기'를 통해서 구원(?)받으려 하는 작가는 흔치 않다. 모두들 복사와 복제의 시대를 살면서 시뮬라시옹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규훈은 시뮬라시옹 현상을 입체물로 표현했다. 얼굴이 '텔레비전 모니터'인 사람과 동물인형 들이 버스를 타고 있다. 이 입체물은 갤러리 다크룸(영상방)에 설치됐다. 이 입체물이 보고 있는 것은 'Burning Home'이라는 작품이다. 'Burning Home'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나는 어떤 종말론을 느꼈고, 작가가 '듣기'를 자청함으로써 화폭 속 인물의 꿈이 우주적으로 승화되는 것 또한 읽혔다. 동시에 이 회화작품과 입체물이 상호 빚어내는 효과가 전시의 대단원으로써 손색이 없는 시퀀스로 다가온다. 전시관의 작은 방에서 작가의 이전 작품 ― 자아 혹은 꿈을 찾기 위해 두 눈 부릅뜬 소년들을 만날 수 있다. 소년 형상의 원숭이는 우주를 여행한다('우주원숭이'). ■ 김영종

조규훈_Kid 5_혼합재료_2019

얼굴을 가린 소녀 작업을 시작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난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듯 표정을 숨긴 소녀의 이미지가 좋았다.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얼굴을 가린 소녀의 이미지가 좋아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두번째 이유는 관객이 작품에 이입하거나 상상하기 좋은 소재라고 생각 됐기 때문이다. 표정은 감정을 말해주는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표정을 감추었을 때 감정의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을 통해 관객이 상상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들을 대입하여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됐다. 난 그런 상상의 여지가 있는 내용적인 면에도 재미를 느꼈다. 작품 속 그 소녀를 통해 자신의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오르고 그 기억과 소통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 조규훈

Vol.20200429d | 조규훈展 / JOGYUHUN / 曹圭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