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구-서울-공터

강홍구展 / KANGHONGGOO / 姜洪求 / photography   2020_0501 ▶︎ 2020_0531 / 월요일 휴관

강홍구_녹색연구-서울-공터-선유도_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채색_140×20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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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 31-14(가회동 130-1번지) Tel. +82.(0)2.745.1644 www.oneandj.com

원앤제이 갤러리에서는 오는 2020년 5월 1일(금)부터 5월 31일(일)까지, 강홍구 개인전 『녹색연구-서울-공터』展을 개최한다. 강홍구 작가는 1990년대부터 디지털 풍경사진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들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2009년부터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도시화와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동네의 모습을 기록해왔다. 그는 그때부터 현재까지 촬영한 사진을 캔버스 위에 흑백 출력한 후 아크릴로 색을 올려 그려내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사진 이미지를 아크릴 물감으로 덮어 그려내는 작가의 제스쳐는 우리에게 두 가지 면을 상기시키는데, 그 중 하나는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이후 사진 매체를 향한 고질적인 의심, 즉 보이는 대상 또는 기록된 사실에 대한 의심이며 또 다른 하나는 대상을 덮어버린 작가의 제스쳐(페인팅)로 인해 발생하는 언캐니(uncanny)함이다.  ● 분할된 화면과 그 위에 올려 진 물감은 이미지(정보)의 취약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물감 아래 가려진 본래의 이미지는 관람자에게 능동적인 사고와 상상을 요청한다. 작가의 이러한 조작은 매끈한 듯 보이는 우리의 사회 역시 어떤 조작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임을 은유하고, 작가의 조작을 캐내는 과정은 작업을 시작하기 이전, 사회 구조의 이면을 들추고자 했던 작가의 사고를 따라가는 과정이 된다. 동시에 작품들은 그러한 능동적 사고를 멈춘 채 갤러리의 화이트 벽에 걸린 그럴듯한 이미지로 소비해버리려는 욕망을 순순히 허락하지는 않는다. 본래 흑백이 아니었을, 그러나 인위적으로 흑백으로 출력된 이미지는 우리 주변 어디선가 보았을 장면들을 낯설게 만들고, 다시 작가의 손을 통해 본래의 색을 찾고자하는 피사체들은 이미 인공이 되어버려 부자연스럽게 '자연스러움'을 취득하려는 '자연'의 이미지가 된다. 본래 자연이었던 것의 이런 기괴한 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원인을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편함, 그리고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언캐니함을 경험하게 한다.

강홍구_녹색연구-서울-공터-송현동 1_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채색_90×200cm_2019

한편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한 노트에서 더욱 정교해진 사회의 폭력에 대해 언급한다. 그가 녹색의 물감들로 가린 공간의 민낯들, 그리고 그 폭력의 주체들은 아무리 애써본들 더 이상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기이한 사건들과 상황들, 어색할 정도로 매끈한 이미지들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며 그 아래의 구조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 무엇이 진실이며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더 이상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10여년이 넘도록 녹색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작가는 복잡한 구조를 파헤쳐내는 대신 그것을 덮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렇게 덮여진 기이한 이미지들을 보여줄 뿐이니 말이다. ■ 원앤제이 갤러리

강홍구_녹색연구-서울-공터-송현동 2_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채색_90×200cm_2019

지금은 사라진 옛 한국일보사 건물에 취미 화가 지망생들을 가르치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강의실이 9층이었는지 10층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거기서 내려다보면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숙소가 보였다. 미국식 건물들이 커다란 나무들과 녹지 사이에 여유 있게 서 있고, 높은 돌담이 사방을 둘러치고 있었다. 어쩐지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광경이었다. ● 넓이 3만6천642㎡인 송현동 공터는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 바깥 숲 정원 송현(松峴)이었다. 안평대군, 봉림대군의 사저가 있었고 왕족들과 고위 관리들의 집터로 나중에 친일파 윤덕영 형제의 소유가 되었다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이 사들여 사택 부지로 썼고, 그 후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숙소 터가 되었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 1997년 6월 삼성생명이 1400억원에 부지를 매입 했다가, 2008년 대한항공이 2천900억원에 다시 매입해 7성급 관광호텔 건립을 구상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지금은 4-5000억에 매각 하려 하고 있다.

강홍구_녹색연구-서울-공터-서울숲_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채색_140×200cm_2019

송현동 공터에서 시작해서 근래 몇 년 동안 관심을 갖고 살펴 본 것은 서울에 아직 남아 있는 공터와 그 공터를 덮고 있는 녹색이었다. 용산역의 개발 취소 구역, 청계천, 평택으로 이사 간 용산의 미군 주둔지, 한강의 섬들, 은평 뉴타운, 창신동 채석장 흔적... 그 밖의 여러 공원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 장소들, 특히 송현동, 용산역 등의 값비싸고 넓은 공터일수록 역사라는 이름의 폭력과 개발이라는 욕망이 마주쳐 일종의 개발 지연이 일어난 곳들이다. 그리고 이곳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잡풀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녹색으로 뒤덮여 있다. 특히 대형 공터의 녹색 나무와 풀들은 커다란 상처를 임시로 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서울에서 아직 녹색으로 남아 있는 장소들은 상처를 겨우 가리고 있거나 운 좋게 상처 입지 않은 장소이다. 인왕산, 남산, 낙산을 비롯한 산들과 한강의 섬들의 일부가 상처를 아슬아슬하게 피한 곳이다. 특히 밤섬은 여의도 윤중제를 쌓기 위해 1968년 폭파 되었던 섬이 스스로 되살아난 경우이다. 이 밖에도 노들섬, 선유도, 여의도... 등에는 녹색이 남아 있고 모습이 완전히 바뀐 잠실도 그렇다. 낙산 근처의 창신동 채석장이 있던 절벽 위 아래 마을들의 작은 공터는 텃밭으로 쓰이는 곳도 있었고, 은평 뉴타운 지역에 있던 조팝나무들이 있던 공터는 사라져버렸다. 푸코가 말했던 일종의 헤테로피아로서의 공터들은 일시적인 유토피아이며 사라질 운명이었던 것이다. ● 물론 서울의 모든 공터를 다루는 것은 작업의 목표가 아니었므로 많은 곳이 제외되었고, 사실 모든 곳을 다룰 수도 없었다. 작업의 제작 방식은 디지털 사진 프린트 위에 아크릴 채색이다. 십여 년 전부터 해오던 방식이며 여전히 사진과 그림 사이에 있는 어떤 다큐멘터리적 이미지를 만들려는 시도인데, 이번에는 약간 그림 쪽으로 가까이 간 듯도 하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위는 이제 관심이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적합하고, 찍는 것과 그리는 것을 같이 할 수 있기에 선택했을 뿐이다. ● 토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터가 도시 공간의 차등화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토지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도시의 땅값은 일종의 위치 자본이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차액 지대, 즉 돈을 얼마나 남길 수 있느냐에 따라 개발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 차액지대를 많이 남길 수 있는 서울은 도시 전체가 개발 대상 지역이며 동시에 폭력적인 곳이다. 물론 서울뿐만 아니고 전국이 그렇지만, 서울은 그 정도가 가장 심한 곳이다. 인간과, 공간, 자연에 대한 폭력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강홍구_녹색연구-서울-공터-창신동 4_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채색_200×560cm_2019

내가 서울에 처음 왔던 것은 1976년 여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기다리며 목포에 있는 어느 화실에서 그림을 가르치던 스물 한 살 무렵이었다. 12시간이나 걸리는 완행 야간 열차를 타고 덕수궁에서 열리던 인상파전을 보기 서울에 왔었다. 그림은 뭘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1호선 지하철 공사 때문에 어수선한 거리만 떠오른다. 다시 목포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 갔을 때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역 광장에 떼를 지어 몰려 있었다. 열차가 들어오고 개찰구가 열리면 모조리 뛰어갈 태세였다. ● 당시 완행열차는 좌석 지정도 없었기 때문에 먼저 뛰어 들어가 자리를 잡는 게 임자였다. 사고가 잦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압사 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개찰 시간이 임박하자 역무원들이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서 있는 사람들에게 앉으라며 대나무 장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서너 사람이 휘두르는 장대 때문에 사람들은 강제로 자리에 앉았고, 그에 항의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물론 어차피 앉아 갈 수 없을 테니 천천히 타자고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장대와 무관했지만, 그 폭력적인 질서 유지 방식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일은 내게 서울을 특별히 폭력적인 장소로 각인 시켰다. 군부 독재 아래에서 성장하면서 웬만한 폭력과 억압을 당연시하고 살았지만, 그 장면은 40여년이 지났는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폭력과 억압의 일상화 속에서 산다는 것은 그에 무감각해진다는 의미이다.

강홍구_녹색연구-서울-공터-노들섬_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채색_140×200cm_2020

내가 태어나 자랐던 1950년대 이후 60여년이 지나는 동안 폭력과 억압은 더욱 정교해지고 세련되었다. 직접적인 육체, 정신적 폭력에서 자본과 권력은 섬세한 제도화를 통해 보다 부드러운 방식의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 서울의 공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때문에 공터들은 언젠가 멋진 건물과 시설이 들어선 곳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누가 소유하고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익을 보는지를 들여다보면 폭력의 진정한 심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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