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가요?

Are You Depressed?展   2020_0508 ▶︎ 2020_0621 / 월요일 휴관

개막식 / 2020_0508_금요일_04:00pm

참여작가 김정욱_나수민_노원희_문지영_박미화_배형경 안경수_이재헌_정덕현_정철교_조원득_천성명 총 12명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대학교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Tel. +82.(0)2.880.9504 www.snumoa.org

서울대학교미술관(관장 심상용)은 2020년 두 번째 전시로 『우울한가요?』를 개최합니다. ● 우울은 시대의 병이라 합니다. 이번 전시 『우울한가요?』에서는 우울을 단순히 감정적 차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울분에 찬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문제의식의 발로, 개혁의 의지, 새로움을 향한 추동의 시작으로 보고 우울의 원인을 살펴봄으로써 극복의 여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어쩌면 우울은 '기쁨', '지루함'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임에도, 현대에 들어와 병리학적으로 다루어지며, 고쳐져야 할 것,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대사회의 우울은 단순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입니다. 우울은 울분을 지나 분노로 이어집니다. 분노는 공격적이고 불안한 인간을 만들어내고 여러 부정적인 사건들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울은 개인적인 사건에서 오기도 하지만,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개인을 우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에, 우울을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 안에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이번 전시에서는 개인의 우울과 시대의 울분을 담았습니다. 작가들은 극히 개인적인 요인에서 오는 우울감을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시대의 부정으로 인한 울분을 담기도 하였습니다. 전시의 시각적인 우울감은 관람의 피로함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우울함의 표현을 더 나은 삶을 위한 시작으로 보고, 불편함을 개선의 힘으로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김정욱_한지에 먹, 채색_63×94cm_1998

김정욱 ● 김정욱(1970)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살아있는 듯, 유령인 듯 모호한 지점에 놓여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먹으로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먹 특유의 스며들고 중첩되는 성질로 인해 인물들이 매우 밀도 있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속이 텅 비어있는 납작함이 공존한다. 하나의 인물화에서도 서로 다른 양가적 감정들이 솟아나는데, 눈물을 한아름 머금고 있는 듯한 서정성과 알 수 없는 괴기스러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러한 인물상을 통해 작가는 인간 내면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시작한다. 유난히 검고 진한 눈동자는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 상처를 모두 끌어안고 있는 듯 침잠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존재하고 있는 인물상들은 인생의 덧없음, 혹은 삶에 대한 허무함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에 제목을 따로 표시하지 않으면서 이미지를 통해 무한한 해석을 허용한다.

나수민_젊음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9

나수민 ● 나수민(1994)은 시대의 우울을 청년 노동의 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시대 젊음은 더 이상 붉은, 핑크빛이 아니다. 무채색이 어울리는 무미건조한 젊음에는 무한경쟁과 무기력, 공허함만이 남아있다. 신자유주의가 남긴 젊음에는 더 이상 싱그러움과 낭만, 무모한 열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회색빛 젊음을 나수민은 형광의 핑크빛으로 그려내었다. 회화 속 표정을 볼 수 없는 인물들은 소통을 거부한 채 씁쓸함만을 가져온다. 이 대상들은 하나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나, 채용정보를 기웃거리고,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20대의 울분을 그려낸 이 작업은 화려하고 밝은 색조로 인해 묘한 이질감을 불러온다. 이는 불안하면서 우울한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작가 말대로 '슬픈 청춘'의 모습이다.

노원희_집으로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 파스텔_162×130cm_2015

노원희 ● 노원희(1948)가 회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우리 시대의 어두운 모습, 특히 권력과 사회적 폭력에 의해 억압받는 개인의 모습이다. 작가는 회화를 통해 시대를 고발하고, 불합리한 삶을 개선하기 위해 발언한다. 그녀의 발언은 퍼런 잿빛의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시대의 우울을 체감한다. 작가는 1980년대 미술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던 '현실과 발언'그룹에 참가하여, 시대의 역사를 그려냄과 동시에 약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달래주었다. 이러한 비판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외환위기로 실직한 사람들, 세월호로 인한 유가족의 분노와 슬픔, 구의역 스크린 도어 수리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 등 우리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개인의 상처를 위로하고 끌어안아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노원희의 그림은 서정적이며 멜랑콜리한 특유의 감성으로 큰 울림과 흡입력을 지닌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예술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의지와 부조리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있는 몸부림이 배어있다.

문지영_사랑해, 엄마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5

문지영 ● 문지영(1983)은 보통의 존재를 그린다. 그 '보통'이 무엇이냐는 것은 정치적이고 비판적 이슈인데, 그가 그리는 보통의 존재는 통상 우리가 보통이 아니라 부르는 대상들이다.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과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 모두 병리학적으로 문제를 가진 몸이면서 '정상'이 아닌 모습으로,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치료하고 고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미디어에서 역시 장애와 질병은 불행한 것, 비극적인 것,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그러나 작가는 동생과 어머니를 이런 비정상의 상태, 혹은 구분지어 바라보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받아들인다. 그녀가 그린 가족의 이미지는 전혀 우울하지 않지만, 그것이 보통의 모습이라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가 우리를 우울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미화_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_2019_부분

박미화 ● 박미화(1957)의 작업에는 은은한 슬픔이 가득하다.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의해 희생되어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눌러 쓴 자수 글씨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을 상기시킨다. 바늘로 천에 오랜 시간 공들여 새겨 넣은 이름과 사연들은 비석의 단단함과 장엄함을 대신해 아련한 애수를 자아낸다. 여기에 작가의 오랜 노동의 시간이 반영된 변색되고 헤어진 천은 진한 여운을 더한다. 작가는 이러한 고된 작품 제작 방식을 통해 치유의 의식을 행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잔인하고 고통스런 사건에 집중하면서도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잔잔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희생자를 어루만진다. 조용히 발언하는 작품들은 조각을 보는 내내 먹먹함을 가져오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떠한 기교도 넣지 않은 거친 형상들은 재료의 투박함과 소박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우리를 헤어 나올 수 없는 더 큰 슬픔 안으로 몰아넣는다. 작품의 표면에 난 생채기들과 빗금자국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배형경_Colorful Weights_2019

배형경 ● 배형경(1955)이 제시하는 인간 군상은 깊은 흙빛의 육중한 몸이 거친 표면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며 강한 울림을 준다. 작가가 빚어낸 인간 형상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구부려 온몸을 웅크리며 안으로, 바닥으로 파고들고 있다. 세상과 등지고 고독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듯 그들의 모습은 어둡고 우울하다. 배형경이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은 인간 실존에 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답이 없는 물음에 작가는 조형적 언어로 반응하고 있다. 근육이 돌출되고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나 고행하듯 표현된 인체는 우리가 감추고 살아왔던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가벗겨 놓고 있는 듯하다. 더 이상 파고들 수 없는 곳까지 자신을 내몰겠다는 듯 바닥으로 침잠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와 존재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명상적 태도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끝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한다.

안경수_옥상 rooftop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5×180cm_2019

안경수 ● 안경수(1975)는 풍경을 갈라놓고, 대상을 숨기는 '막'에 주목한다. 공사 현장을 가리기 위해 둘러친 가림막과 영업이 끝나 닫힌 셔터, 판매용 물품을 덮어 싼 천막 등 그의 작품에는 드러내야 할 대상은 숨기고, 오히려 가리기 위한 장치에 주목한다. 정작 보아야 할 대상이 없어진 이미지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삶의 터전의 상실, 서민의 애환 등 드러내고 싶지 않은 현실의 문제를 보게 된다. 작가가 주목한 풍경들은 스산하고 어두운 주변부의 공간들이다. 변두리 지역의 임시 컨테이너 건축물, 골목 끝으로 가야만 볼 수 있을 법한 문 닫힌 낡은 가게, 황량한 대지 위의 파워타워 등 딱히 다시 바라볼 필요를 느끼지 못할법한 풍경들이다.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도시의 어두운 민낯을, 낮은 채도로 탁하게 제시한 장면들은 매우 사실적이어서 극도의 몰입감을 가져온다. 여기에는 노동자의 고된 모습과 도시의 땀 냄새가 깊게 배어있다. 쓸쓸한 세기말적 풍경을 담아낸 안경수의 작품은 관객에게 이제 눈을 뜨고 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이재헌_remnant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4

이재헌 ● 이재헌(1976)은 초점이 흐려진, 흩어진 형상을 그린다. 마치 눈물을 한 움큼 머금고 대상을 바라보듯, 회화 속 인물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어쩌면 똑바로 바라보기에 두렵거나 아련하여 흐릿하게 표현되었을지 모르는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관객은 대상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데서 오는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뿌옇고 안개 같은 형체는 뒤도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다. 작가는 물감으로 그린 형체를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마른 붓으로 지워버리는 반복적 행위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이렇게 지우는 과정에서 형상이 무너지며 회화 속 인물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중간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교통사고로 뇌병변 장애1급을 가지게 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사고 후 의식이 흐려진 아버지와 작가 사이의 거리감은 모호한 형상 속에 배가되지만, 여전히 놓치지 않고 붙잡아 둔 불안한 외곽선은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가 형태를 그리고 지우는 행위는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부정하는 작가의 이중적 마음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덕현_높은_종이에 먹, 주묵, 호분_193.9×130.3cm_2012

정덕현 ● 정덕현(1986)은 불공정한 노동현실과 자본가에 의해 착취되는 노동자의 삶에 대한 울분을 묵직하고 진한 먹의 농담으로 화면에 담아낸다. 그가 그려낸 화면에는 노동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비록 그가 묘사한 노동현장에 노동자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지만, 철빔, 녹슨 자물쇠, 열 지어 있는 재봉틀 등에서 노동의 고됨과 척박한 삶의 모습이 전해진다. 사물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정덕현의 작품에는 스쳐 지나갈 듯 사소한 소모품을 화면의 중앙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가 드러내는 방식은 직접적이기보다는 은유적이다. 역사 속에서 노동이 자본에 의해 착취의 대상이 되어버린 비합리적 구조를 고발하기 위해 작가는 노동자를 일회용 소모품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가 종이에 여러 번 덧입혀 그려낸 이미지는 작가의 고민의 흔적을 드러내고, 작가의 축적된 노동은 작품의 밀도를 더하며, 검정빛 화면은 답답한 현실을 대하는 우울한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정철교_신암마을 폐가_112.1×162.2cm_2018

정철교 ● 정철교(1953)는 풍경을 통해 '불안'을 그린다. 붉게 물든 시골 마을의 풍경은 이미 닥쳐올 재앙을 예견하듯 일렁이고 있다. 작업실 주변 풍경을 그린 작가의 작품 속에는 모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가 있다. 고즈넉한 시골 경관 속 어울리지 않는 원전의 모습은 몰입을 깨고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장치이다. 작가는 원자력 발전소가 끼어든 이 풍경을 '불안한 건축물!, 고장낸 풍경, 고장난 풍경, 고장나도 고칠 수 없는 풍경'이라 칭하며, 안타까움과 울분을 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풍경을 통해 회생을 염원한다. 화면 속 붉은 색 선들은 핏줄을 상징하며 죽어가는 자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우리는 방사능의 위협 때문에 공포의 풍경이 되어버린 시골의 모습에서 우울한 삶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붉은 윤곽선이 지나는 자리는 핵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하고 비장한 몸부림이다.

조원득_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위한 발견_한지에 채색_91×116cm_2018

조원득 ● 조원득(1981) 작가는 '폭력'의 잔혹을 그림에 담아왔다. 그녀가 말하는 폭력은 개인 혹은 가족 간에 직접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이기도 하고,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간접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이기도 하다. 작가는 사회적 억압과 강제, 불합리한 시스템, 약자의 희생 등을 다양한 은유적 표현을 통해 드러낸다. 이번에 전시되는 「지독한 숲」에서는 쓸쓸한 겨울 풍경 속에 과녁을 암시하는 표적판 주위로 동물의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목적 달성을 위해 희생된 무고한 생명들을 애도한다. 그녀가 제시한 숲은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곳이 아닌 전쟁터 같은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또한 작가는 지금은 운영되지 않고 있는 원주의 '드림랜드'를 묘사한 「무엇 없는 어떤 기억」 시리즈에서 화려함과 쾌락의 상징이었던 공간이 폐쇄되어 '죽음'의 상태로 변화한 것을 통해 삶의 덧없음과 공허함을 보여준다. 한 때 당당했던 간판 속 '드림랜드'의 글자가 세월에 지워지고 수풀에 가려져 있는 모습에서, 꿈을 이루는 것은 한낱 망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냉소적인 자조가 그려진다.

천성명_그림자를 삼키다_FRP, 아크릴, 패브릭_97×35×20cm_2008

천성명 ● 천성명(1971)이 제시하는 조각상은 상처받고 불안한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조각상 속 그의 표정은 어둡고 우울하며 세상을 등지고 있는 듯 처연하다. 초점을 잃은 눈, 벌어진 입, 공포에 질린 듯 혹은 무언가에 홀린 듯 오묘한 표정을 한 인물은 그가 겪은 사연이 궁금해지게 만든다. 손과 몸에 얼룩진 붉은빛은 처절하고 난폭한 어떤 사건 후의 모습 같다. 그의 개인전 제목인 '그림자를 삼키다'에서 유추해본다면, 이 사건은 아마도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연극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작가는 조각상 한 점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끌어낸다. 그의 작품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삼켜버리고 자아를 잃어버린, 우울한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연계 프로그램 (무료) ○ 2020. 5. 26(화) 14:00-16:00 공연 14:00-14:30 오! 락(樂) 콘서트 – 프로젝트 락 강연 14:30-16:00 서양미술의 멜랑콜리 – 김동규(『멜랑콜리 미학』 저자) ○ 2020. 5. 27(수) 14:00-15:00 큐레이터와의 전시관람

Vol.20200508b | 우울한가요?-Are You Depressed?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