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의 국토서사

김억展 / KIMEOK / 金億 / printing   2020_0522 ▶︎ 2020_0819 / 월요일 휴관

김억_DMZ연작_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가변설치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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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진천군 주관 /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관람시간 / 09:00am~06:00pm / 매표마감_05:00pm / 월요일 휴관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ALIVE JUNCHEON PRINT MAKING MUSEUM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10(장관리 732-19번지) Tel. +82.(0)43.539.3607~9 www.jincheon.go.kr

김억의 국토–역사와 삶의 겹공간 ● 목판화가 김억은 '국토'작가다. 국토에 사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삶의 모습과 정서, 그리고 그들의 터를 풍경화(化)한다. 풍경이되 풍경화(畵)를 넘어서는 작업을 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자면 풍경보다는 국토에 대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 더 가깝겠다. 국토는 국가를 이루는 3요소 중 영토를 이르는 말인 듯하나, 한편으론 주권과 국민까지 아우르는 동어반복적 개념도 된다. 실체적 주권을 가진 국민이 삶을 영위하는 영토(국민이 거주하는 땅 영토, 바다인 영해, 하늘인 영공)에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들의 역사와 삶에 대한 인식적·존재론적 개념과 관념을 공유하는 공간이라 하겠다. 동시에 그것은 타국과의 관계에서 개(開)와 폐(閉)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국가와 국민의 의식적 경계도 의미한다. ● 21세기는 국토의 개념이 과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화된 시대다. 디지털 산업으로 인한 일상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야기한 지식과 정보의 탈영토화가 실질적인 국경과 경계의 해체를 진행하고 있다. 각 국가의 역사성이나 영토에 대한 독자적 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는 건 당연한 현상(다만 최근의 '코로나 19' 사태로 이런 흐름에 대한 중단이 벌어지고 있음은 유념하자)이다. 따라서 이런 글로벌 노마드 시대에 '국토'라는 오래된 보통명사는, 지나간 시대를 향수하는 보수적 어휘의 재귀처럼 올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박정희류의 '국토건설단'이나 '민족', '국토종주'와 같은 관변단체의 닫힌 애국주의와 맞물려 20세기적 '국뽕' 이미지도 어른거린다. ● 그러나 그런 탈경계의 이면에 엄연히 자국 이윤만을 취하는 신자유주의하에서, 자국의 역사와 현실을 동시에 인식하는 제재로써 국토와 유구한 민중들의 삶을 반추하는 김억의 작업 행위는 결코 진부하지 않다. 반공·개발독재시대 국가주의적 '계몽' 캠페인과는 전혀 다른 인식에서 통시적으로 이 땅과 역사를, 공시적으로는 민중과 동시대 현실에 접근해서 그렇다. 국토를 통해서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공동체적 삶의 기본조건에 대한 감동과 반성을 소환한다는 점에서, 김억의 작업은 차라리 당대적 통찰의 조건을 제공하는 인문적·미학적 이미지 기제라고 할 수 있겠다.

김억_김억의 국토서사展_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_2020

김억의 '국토'목판화는 발로 답사하면서 취재하고, 거기에 작가의 미적 지향성을 노동집약적인 수공의 목판화로 견인한 한반도 풍경이다. 소설가 故 박태순 선생은 그런 김억 목판화의 인문적 예술성을 '국토문예학'이라 정의했다. 그의 국토기행 산문집인 '국토와 민중'에서 기술했던바, 국토지리·인문지리·역사(향토사·민중사)·근현대 사회사가 두루 얽히면서도 수려한 풍경(과 동시에 난개발로 신음하는 풍경)을 통해서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미적으로 형상화한 김억의 작품이기에 이 용어는 적절하다. 아니 정확하다는 게 옳겠다. ● "'자연성-인문성 국토'와 목판화업의 아름다운 만남, 이를 위하여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가. '국토공간에서 국토시간 끄집어내기' 이다. 국토시간은 지질학적 시간, 문화인류학적 시간, 역사사회학의 시간 그리고 인공적인 시간(시계에 의한 시간)을 모두 오늘에 닿도록 연장시킨다. 이런 다채색의 국토시간들을 한꺼번에 통시성(通時性)과 공시성(共時性)으로 수용하고 있는 국토공간이야말로 얼마나 대단한 아량인가. 화가로서는 국토의 재발견이고 목판화 작업으로서는 국토의 신발견이다. 개발근대화 시대의 국토는 공간구조의 개발을 위하여 국토의 입체성 시간구조를 송두리째 삽질해버렸는데, 그의 목판화는 그 시간층들을 끈덕지게 목각하여 돋을새김으로 부각시켜놓고 있다. 삽질의 국토와 돋을새김의 국토, 과연 누구의 힘이 센 것일까. 이는 산업국토와 생태국토의 편 가르기 차원이 아니다." (박태순, 2009년 김억 개인전 서문 '국토문예' 중에서) 이 기술은 김억 국토작업의 당위성을 증거한다. 김억이 마주한 장소로부터 국토에 대한 시공간적·역사적·문화적 인식을 하고, 거기에서 이웃들의 삶이나 정서와 조응하는 현실적·미적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다. ● 앞서 말했듯이 지난 30여 년 동안 김억은 우리 국토풍경을 그리고 판각해왔다. 휴전선 북쪽을 제외한다면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규정된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島嶼)'의 상당 지역을 칼끝에 담아냈다. 요동의 고구려성을 탐사하고 제작한 작품들도 우리 역사의 무대이므로 결국 한반도 풍경이라 하겠다. 그 숱한 작품들엔 과거로부터 연속되어온 시간과 공간과 선인들의 삶의 양식에 관한 여러 서사들이 겹겹이 축적되어있다. 우리 시대를 역으로 반영하는 인문적 풍경이자 예술적 상상의 현장으로 말이다. ● 그 국토풍경을 따라가 보면, 고산자 김정호의 지리학적 발품-겸재 정선·능호관 이인상·소정 변관식 등을 잇는 실경 조형방식-단원(檀園)과 박수근의 서민정서나 오윤의 민중정서와 같은 의식이 김억의 조형적 척추(脊椎)를 형성한다. 짙은 서정성도 물론이지만, 반대로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는 거리두기의 시선, 즉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같은 '국뽕'류 풍경예찬과는 다른 현실성이 그 척수(脊髓)임을 확인할 수 있다. 풍경과 더불어 동시대의 공동체적인 문제의식이 김억 특유의 서사 공간을 창출하는 동인이란 뜻이다.

김억_금강산을 바라보다_A.P 2 / Ed. 7_한지에 목판화_50×219cm_2019

그런 김억 작업의 내외를 살펴보자. 김억 국토의 조형성은 크게 네 가지 특징을 띈다.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것은, 거대한 풍경을 밀도 높은 긴장감으로 표출하는 압축적 공간구성력이다. 풍경을 병풍이나 아코디언처럼 접기도 펴기도 하면서 거기에 서사적 이야기와 서정적 음률을 담아낸다. 팽팽하게 긴장된 그 공간이 풀려나가는 지점에서 능선·물길·사람의 길 등이 여유로운 리듬으로 유려하다. 첩첩 접힌 산과 골 사이에선 지나간 시절 묻혀있던 숱한 사람들의 개인사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지면서 돌올한다. 그게 바로 풍경과 조응하는 민중사가 아닌가. 해남 녹우당에서 보길도에 이르는 50km를 가로 10m의 길이로 판각한 「남도풍색」을 비롯해서, 해남과 강진 일대를 사생한 연작, 「한라산 영실계곡」, 「제주 사계리 해안」을 위시한 제주풍경 연작, 「강화 고려궁지 북장대에 올라 송악산을 바라보다」, 「일어서는 땅-운주사」, 「백두산 비룡폭포」와 「국동대혈」 등의 장쾌함이 돋보이는 풍경 사이로 숱한 민중들의 애환이 스멀스멀 스며 나온다. 국토풍경의 장엄함은 그 자체로 미적 쾌감인데, 김억은 이런 미적 바탕에 그의 역사적 서사성을 잘 버무려낸다. ● 두 번째로는 근현대사의 분단과 개발자본시대가 국토에 가한 정책적 폭력성이 단층처럼 비끼면서, 풍경에 역행하는 '반-풍경'적 문제의식이 두드러지는 경향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비되는 가파른 민중의 삶이 반영되는 현실적 공간의 포착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토와 민중의 수난과 함께 강인한 생존력이 상대적으로 조응하는 현장이다. 2019년 최근작인 「DMZ」 연작, 「문경 진남교반」, 「수원화성」 연작, 「평화와 생명의 땅 대추리」, 「한강-팔당호 두물머리」 등과 같은 작품에서 이런 점은 돋보인다. 시각적 현상을 통해서 현대사에 대한 반성과 천박한 개발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 근대 이후, 그러니까 산업시대 이후 자연은 그 자체로 개발 대상이었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게 하라"는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주체인 인간(엄밀하게는 자본)이 자연을 객체화시키면서 마음대로 주인행세 하는 오만함을 스스로 용인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폭력이다. 자본에의 욕망이 풍경을 잠식한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일제강점기-분단-군사독재산업화 시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국토개발정책'으로 인해, 그리고 '땅값'에 의해 파헤쳐진 채로 투기대상이 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분단시대의 권력은 국토를 군사적 목적의 전략적 대상으로 '사용'하고 '유린'했다. 개발산업시대 국토의 물화는 광폭하고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과거 수천 년간 국토에 축적되어있던 숱한 민중들 삶의 터가 불과 몇십 년 만에 궤멸되어버린 이유다. 기록되지 않았던 숱한 역사의 보고(寶庫)가 소실된 이후, 풍경은 기형이 되었다. 대지의 기능을 상실한 채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한 국토는 그 유기적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지점에 대한 반성적 통찰이 김억 작업을 형성하는 중요한 뼈대 중 하나다. ● 세 번째로는 풍경의 현장에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점(時點)과 시점(視點)을 구현한 공간을 통해서, 시공을 넘나드는 질긴 삶의 일상적 민중성과 실증적 역사성에 접근하는 작업이다. 「요동목판횡단기」연작, 「남한강 단양」을 위시한 한강 연작, 「경주 서남산」과 「경주 동남산」, 「단양 영춘」, 「담양 광주호」 등의 작업에서 국토는 과거와 현재 문화와 삶의 모습들을 오버랩해낸다. 각기 다른 시간대 유적들과 현재와의 레이어들이 한 화면에 겹쳐진다는 것. 세잔이나 피카소가 대상을 향한 시각의 단편성을 여러 시점(視點)을 종합적으로 취합해서 원근법적 고정된 시선을 극복했다면, 김억은 하나의 풍경에서 여러 사건과 시간대를 아우르는 클리핑패스(Clipping path: 디지털 영상프로그램에서 여러 레이어들을 하나로 합치는 기능)와 같은 '시점(時點)의 큐비즘'으로 형상화해냈다는 것이다. 역사적 현장으로 김억의 목판화에 구현된 국토의 시간성은 그래서 더 생생한 역사적 설득력을 띈다.

김억_독도_A.P 2 / Ed. 7_한지에 목판화_190×60cm_2019

네 번째로는 앞서 기술한 민중성과 다른 선비들의 행적을 통해서 구현해낸 자연 친화적 미감의 현장성이다. 기록과 유적이 동시에 온전하게 남아있는 곳에서 선현(先賢)과의 대화를 시도한 문화적 맥락의 국토예찬이라 하겠다. 기록과 상상, 감정과 사유가 교직하는 미학적 회억의 화면이기도 하다. 예컨대 안동 도산서원에서 봉화 청량산에 이르는 퇴계의 소요유(逍遙遊) 드라마를 풍경으로 번역해서 형상화한 대표작 중 하나인 「도산구곡」과 함께, 「무휼구곡」 연작, 「남도십경」 연작, 「관동팔경」 연작, 「화양구곡」 연작, 「동천」 연작, 「옥화구곡」, 「보길도 세연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김억의 현장과 자료를 아우르는 발품과 문화적 상상력은 단순한 안복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선비들의 엄격한 학문적 태도와 이념, 거기에 풍류까지 수용하면서 고고하고도 청빈한 미적 이미지를 소환한 화면은 그 자체로도 여여한 선비문화의 미적 품격을 생성해낸 것이기도 하다. ● 열거한 이 네 가지 특징은 각각의 작품마다 분리되어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한의학의 사상체질에서 태양·태음·소양·소음이 한 몸에 두루 섞여 있듯이, 여러 특성은 모든 작품에 상호 침투하고 뒤섞여서 골고루 작동한다. 다만 이 작업에선 이 부분이 저 작업에선 저 경향이 약간씩 더 도드라지는 차이를 보일 뿐이다. 이 모든 작업엔 그가 애정하는 국토의 아름다움이 그 바탕이다. 그것은 입체적인 지리부도나 고지도 같기도 하고, 때론 조감(鳥瞰)에 의한 항공사진 같기도, 또 때로는 공원 안내판 같은 약도의 기능 같기도 하다. ● 그런 김억의 시선을 따라 화면 속을 걷다 보면 아련한 판소리 가락과 함께 현대적 포크음악도 동시에 들린다. 중머리 중중모리 휘모리와 장구를 두드리는 리듬 사이로, 불현듯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밤새워 얘기하리라. 이 땅의 흙냄새라면 아무데라도 좋아라"라는 노래(나들이, 이정선, 1976)도. 그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의 연속성은 서정적 판타지인가 싶다가도 엄밀한 현실이다. 그것은 접혔다가 펴지면서 실체를 드러내는 자연의 역동적 변화처럼 산과 계곡·길과 물길들 사이로 발화하는, 숨겨지고 가려졌던 숱한 민중들의 삶의 진술들이 발굴되고 펼쳐지는 무형문화의 발굴현장인 국토이기도 하다. 철저한 현장성은 그만큼 문화적인 냄새로 수렴된다. 그의 화면이 설명이나 선동 없이도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하게 끄덕이게 하는 힘은 바로 그런 문화적인 특성의 형상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시각이란 감각 현상, 즉 미적 쾌감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인식적 차원의 소통이 가능한 형상성 말이다. ● 이처럼 그의 화면은 앞서 언급한 여러 특징으로 구성되지만, 전체적으로는 풍경과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공통점이 있다. 산/강, 하늘/바다, 논/밭, 역사적 유물/현재의 건물이나 방파제와 같은 구조물, 사이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갓과 도포를 입고 숲에서 차 마시며 한담하는 옛사람. 고산(孤山) 윤선도·공재(恭齋) 윤두서·다산(茶山) 정약용·한강(寒岡) 정구(鄭逑)... 등과 같은 사대부. 논밭에서 일하거나 고기 잡는 노동하는 사람들. 걷거나 등산하거나 행글라이더나 차를 탄 사람들.... 풍경은 고립되어 있지 않고 사람 또한 풍경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독립과 조응이다. 그 어울림으로 인해 화면은 서경의 단계를 넘어선 역사적 상징성과 구체적인 동시대적 현장성을 획득한다. 픽션과 팩트를 몽타주하는 팩션이자, 리얼한 현장 다큐로 수렴되는 것. 거기에 민중사가 있고 현실도 반영된다. 그게 국토다. 우리네 조상이 살아왔고 또 지금 이웃과 살아가는, 역사와 현실과 풍경이 결합한 국토 말이다.

김억_강화만_A.P 2 / Ed. 7_한지에 목판화_81×366cm_2019

최근 대작 D.M.Z 연작에서 김억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서해 끝 백령도 두무진에서부터- 강화만 - 조강·예성강·한강이 만나는 김포반도 - 중부전선인 철원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역곡천 - 동부 전선인 양구 두타연·해안분지 펀치볼 - 고성 통일전망대(금강산 조망)- 동쪽 끝 독도에 이르는 한반도 분단의 현장을 서동으로 횡단하는 프로젝트다. 특정한 공간과 지역을 집중적으로 탐사하는 기획은 이미 제법 진행했었지만,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이번 기획은 그 공간적 규모나 발품의 한계로 인해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D.M.Z 전체를 그릴 수는 없는 일, 장소의 축약과 축지를 통한 핵심적 소재만 남기면서도 화면에서 생략된 풍경과의 연결성이 더욱 중요해진 작업이다. 분단현장이면서도 동시에 각각의 지역마다 서로 다른 지형·생태구조·인문지리·지역 문화적 특성을 반영해야 하니 그 조형적 맥락과 독자성의 드러냄이 더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도 DMZ 북쪽 끝 금강산과 같은 풍경과 더불어 건물·교량·참호·초소와 같은 시설물과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병사들의 일상적 모습까지도 그려넣었다. 특히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는 남북한 병사들이 손을 잡고 함께 악수하는 장면이 있다. 2018년 9월 남북군사합의에 의해 6.25전사자의 유해발굴이 공동으로 있었던 팩트를 인용한 작가의 의도적 진술이다. 그리고 철책선을 넘어 남북한 도로를 연결하는 장면도 이 그림에 포함시켰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이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철책선 북쪽을 최대한 남쪽과 같은 공간으로 수용하려는 의도다. 「양구 두타연」에서 작가의 이런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다. 화면엔 대부분 남쪽 풍광과 관광객이 자리한다. 그리고 철책선 위 최상단에는 금강산이 있다. 그림으로선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실제로 두타연에선 금강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가 염원하는 풍경으로 전치 시킨다. 부감법의 장점이다. 시각적인 풍경을 넘어서서 분단에 대한 안타까움과 통일을 지향하는 주제로 확장시키려는 형상성의 의지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희구가 담긴 형상들은 숨은 그림처럼 화면의 이곳저곳에서 불현듯 몽타쥬되고 배치되면서 작가의 진술을 강화한다. ● 그 결과 국토는 풍경에 대한 서경(敍景)이나 재현적 서사(敍寫)를 넘어서서, 분단현실-한반도 평화-통일에의 의지를 한꺼번에 담는 역사성의 대하적 서사(敍事)공간으로 확장한다. 모든 질곡과 모순과 희망을 버무려서 김억은 국토에 대한 그의 사랑과 희구를 역사적 실체인 한반도의 영구평화와 통일로 주제화한 것이다. 이럴 때 국토는 온갖 사물과 사건과 풍경과 사람과 현상과 역사를 담는 그릇이자, 담긴 것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아카이빙 사고(史庫)이기도 하다. 김억은 그 지점을 안다. 자신의 작업이 미술 너머 궁극적으로 도달해야만 할 역사의 세계임을. 그것은 곧 풍경화란 전래적 장르의 범주에 김억의 작업개념과 조형적 방식이 갇히지 않는 이유다.

김억_철원 화살머리고지_A.P 2 / Ed. 7_한지에 목판화_150×47.5cm×2_2019

디지털 정보화 시대. 4차산업.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속도의 문화로 이행하는 시대에, 목판화는 특이한 매체가 되었다. 나무판을 칼로 파내고 새기는 제판과정의 육체성 노동도 그렇지만, 표현의 원초성과 기껏 프레스라는 수백 년 된 수공의 기계와 기술로 인출하는 방식으로 인해 차라리 원시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근대기 첨단 인쇄술에 의한 미디어가 지금은 고전적인 무형문화재의 전승기술이 된 듯하다. 디지털카메라와 손가락만으로 단 몇 초 만에 풍경을 담고 그것을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기록-전달-공유해서 프린트로 출력하는 편리한 시대에, 한 작품에 일주일 내지 한 달씩이나 온몸으로 매달리는 작업과정은 그야말로 인간승리의 표본 아닌가.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또 생각해보라. 이 집요하고도 지난한 노동을 동반한 작업과정이 어째서 지금 이 시대에 여전히 필요한 것인가를. 몸의 체험은 정신의 깊이를 동반한다. 걸으면서 풍경을 체화하고 동시에 숱한 사유와 상상을 통해, 역사적 인식과 미적인 감성이 통일을 이루는 이 작업과정이 창출한 겸허함 내지는 숭고함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풍경을 넘어 새로운 인식의 지점을 조망하게끔 만든다. 수행처럼 진지하고, 사람의 몸과 노동이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 속도의 시대를 거스르는 근원적인 자기성찰이 유효한 방식의 작업이라는 것에 대한. ● 근래 한국목판화는 놀라울 정도로 그 제작기술이 발달했다.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재료·기법·테크닉과 함께, 대형화된 작업 규모와 높은 완성도도 돋보인다. 작가마다 추구하는 형식과 주제에의 밀도가 치밀해졌다는 것. 그런데 문제다. 목판화 장르 내부는 르네상스 같은데, 이상하게도 외부로의 소통은 전혀 녹록하지 않아서다. 현대미술 전반적으로 보자면 목판화는 변방에서 허덕이며 고전하는 중이다. 1970년대의 전통과 형식적 모던함을 아우르던 방법론의 진작 시기와 1980년대의 소통이 극대화되던 황금기 이후, 문화적 가치와 장르로서의 새로운 미학적 담론을 생산치 못해서다. 적당한 기술적·감각적 유희와 소재주의적 패턴 반복, 매체에 대한 성찰 부족, 그리고 문화론적 인식을 결여한 작가적 태도 등이 그 원인일 것이다. 또 전시 및 여타의 기획들은 일차원적이고도 얕은 변죽만 울리면서 대충 대중추수주의에 물들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대중들과의 소통창구도 협소하게 만들었다. 목판화는 작가들만의 좁은 우물이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근래 김억, 김준권, 류연복, 홍선웅, 손기환 등 60대 중후반 중진들이 각자의 색깔과 활동방식의 개인전을 통해 목판화의 동시대적인 성격을 확보하며 선전했다. 국토의 특정한 장소마다 거기에 맞는 문제의식으로 좀 더 구체적인 서사적 형상성을 구현함으로, 타 장르와는 다른 목판화만의 리얼리즘적 풍경미학을 증명해냈다. ● 그중에서도 김억은 전통적인 시(視)방식인 동양화의 부감법과 대관적인 다시점의 화면구도, 필법과 준법을 수용한 판각법과 대상표현방식, 그러면서도 겸재의 진경, 능호관의 강산무진과 같은 스케일, 고산자의 실측성, 소정의 표현력 등을 두루 참조하며 김억만의 독자성을 확보했다. 거기에 다시 서구 원근법과 시간을 넘나들며 소재를 몽타쥬하는 시(時)방식까지 더하며 우리시대 인문적 풍경화를 창출해낸 것이다. ● 이런 점은 작품뿐만 아니라 판화에 관계된 여타의 환경이나 제도적 측면에 대응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억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전 세계 경제와 문화와 정치의 메인스트림을 형성하던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노마디즘의 '세계化'와는 분명히 선을 긋는 입장에서 작업을 진행해왔다. 오히려 국토를 통한 한반도化 내지는 한국사化에 더 집중했다. 자본에 의한 문화적 식민성으로부터 독립된 판화를 향해서였다. 그것은 판화의 가치인 타자들과의 일상적 소통을 위한 대안적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판화의 미적·사회적·개념적 통찰을 통해서, 역사와 당대 자신이 서 있는 곳의 현실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거대/미시를 아우른 작가적 태도가 생산한 이런 작업의 결과와 밀도는 그래서 지금 더더욱 중요한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고. ● 미련해 보일 정도의 몸과 노동을 통한 원초적인 조형방식은 그의 이런 진정성을 반증하는 한 단서다. 그런 정직함과 성실성의 바탕에서, 나는 그의 작업이 한반도 횡단에 이은 종단 프로젝트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한반도 남쪽 전체와 요동까지 그의 칼끝에 담았으되, 아직 미답지인 휴전선 북쪽을 관통하는 한반도 종주로 말이다. 기실, DMZ 횡단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라 여겨진다.

김억_관동팔경-통천 총석정_A.P 3 / Ed.31_한지에 목판화_61×37cm_2018

"철책과 장벽은 그것을 지키는 자에겐 신과 같이 두려운 존재지만 꿰뚫어 보는 자에겐 하나의 우스꽝스런 설치물임을 깨달았다. 곳곳에 검문초소가 있는 250km의 기나긴 휴전선을 따라 횡단한 것도 일종의 분단신에 대한 우상숭배였는지도 모른다. 휴전선의 종단은 고작 4km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을 여는 진정한 분단기행은 철책을 따라가는 휴전선 횡단이 아니라 철책을 뚫고 가는 휴전선 종단 기행이라야 할 것이다" (김하기, 『마침내 철책끝에 서다』 중에서, 문학동네, 1995) ● 그렇다. 한반도는 바로 이 4km를 관통하는 종단이 필요하다. 거기서부터 한라에서 백두까지 연결되는 김억의 국토대장정 칼질이 "사각사각"거리는 형상음률로 연주되는 것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 액티브한 서정성이야말로 분단국의 판화가가 펼치는 '국토문예학'의 정수이리라. 김억은 지금 그 문턱에서 북쪽을 응시하고 있다. ■ 김진하

Vol.20200522d | 김억展 / KIMEOK / 金億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