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Silence

이한정展 / LEEHANJEONG / 李漢貞 / painting   2020_0605 ▶ 2020_0621 / 월,공휴일 휴관

이한정_들 Plains_한지에 수묵채색_60×13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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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화,수요일_03:00pm~08:00pm / 목~토요일_01:00pm~06:00pm 일요일_01:00pm~05:00pm / 월,공휴일 휴관 06:00pm~08:00pm은 예약손님에 한함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팔판동 61-1번지) 3층 Tel. +82.(0)2.720.7230 blog.naver.com/dorossy_art www.instagram.com/dorossysalon

이한정 LEE Han Jeong 작가를 무어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그의 작업에 알맞은 단어들을 한참을 찾는다. 백 삼 십 여 점으로 추려 보내 온 포트폴리오 작업을 보고 또 보고, 여러 해 동안 작가가 성실하게 보내 준 작업노트들을 읽고 또 읽는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는 풍경화를 그린다. 이한정은 풍경화가이다. 작가를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고 어떤 면에서는 지양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이한정은 두말 할 것 없이, 풍경을 그리는 화가이다. 몇 년 전까지는, 그러니까 도로시와 함께 처음으로 작업했던 『네번째 풍경 (2016, 도로시 살롱)』때까지는 "우리가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논밭이 있는 시골풍경을 그리는 작가"였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동양화를 좀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 중국으로 건너가 전통 산수화를 전공했던 작가는, 장엄하게 그려낸 절경 위주의 전통 산수화에서 벗어나 논과 밭처럼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하고 친근한 우리 시골의 일상적인 풍경에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가 그린 논밭은, 절경을 주로 그려내고 "기운생동"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전통산수화를 전공한 그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특별할 것 없고 평범한 시골의 논밭은, 역설적으로 그 평범함과 익숙함으로 따스하게 안정감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실경을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기억 속의 풍경들을 또 다른 시선과 구도로 새롭게 구성해낸 실재하는 듯한 그러나 실재하지 않는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그의 논밭 풍경은 우리가 얼마나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지를 경험하게 해주곤 했었다. 그리고 그런 따스하고 익숙한 풍경들은 그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연마한 전동화 기법을 통해 표현된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을 표현하는 데에는 결국 한국화 혹은 동양화로 불리는 우리의 전통화 기법이 가장 적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했다. 그렇게 이한정은 익숙한 자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터전 - 경작지 - 를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그려내는 화가였다. ● 그랬던 그가, 낯선 풍경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아니, 낯설긴 한데 무언가 모르게 익숙하다. 분명히 풍경 자체는 논과 밭, 들과 산처럼 익숙한 우리 주변의 풍경은 아닌데, 잘 모르는 곳인데도 무언가 모르게 익숙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낯설다고 했지만, 사실은 낯설지가 않다. 왜일까.

이한정_들 Plains_한지에 수묵채색_100×170cm_2020

이번 이한정 개인전 『고요 Silence』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우리나라의 풍경이 아니다.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작품을 보자마자 "한국 풍경이 아닌 것 같다"며 알아본다. 『고요 Silence』 안에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보여주는 이 풍경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풍경들이다. 캘리포니아에서도 특히 유네스코에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풍경이, 그리고 작가가 거기까지 가는 동안 본 광활한 평원의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잘 알려졌듯 빙하가 만들어낸 절벽, 암벽, 계곡, 절벽 등 독특한 산새와 주변의 산악초원이 함께 만들어내는 절경으로 우리로 하여금 자연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주변의 익숙한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꼼꼼히 담아내던 작가가, (전통산수화의) 절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던 작가는 왜 갑작스럽게 서양의, 북미대륙의 절경을 그려내게 된 것일까. ● 사실 캘리포니아의 평원과, 요세미티와 마주하게 된 것은 이한정의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요세미티를 가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잠시 동안 체류해야 했고 (잠시,라고 했지만 두 해 정도 거주하다 왔으니, 아주 짧은 기간은 아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평원을, 산과 들을,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그 유명하다는 요세미티까지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행자의 눈으로 본 풍경과, 거주자로서 보고 느끼는 풍경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중국이라는 대륙에서 생활했었음에도 구대륙과는 확연히 다른 신대륙의 날 것의 광활한 자연이 주는 울림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내 나라를 떠나 언어는 물론 기후도 다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환경에서 낯선 일상에 적응해야 했던 '풍경화가' 이한정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차분히 주변의 자연을, 풍경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눈과 마음에 담아왔다. 그리고 그답게, 이한정답게 캘리포니아의 풍경을 그려낸다. 장엄한 산가, 투명하고 눈부신 호수가 분명하게 드러나면서도, 들과 평원이, 그리고 이를 덮고 있는 크고 작은 나무와 풀들이 장엄함 위에 익숙함과 친근감을 더해준다. 요세미티로 가는 길에 본 들판을 그린 들 Plains (2020) 시리즈는 정말 가보지도 못한 캘리포니아의 어느 국도 위를 달리며 직접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인데, 낯설지가 않다. 풀 하나하나, 키작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오밀조밀하게, 그러나 너무 빽빽하지도, 너무 횡하지도 않게, 더도 덜도 아니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고요히 미소를 건넨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캘리포니아는 아니지만 다른 곳 -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현무암 들판에서 느꼈던 그 장엄함과 고요함이 가보지도 않은 곳의 풍경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광활판 평원 뒤로 아스라하지만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요세미티의 웅장함 또한 소리없이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작가가 이 자연을 마주하며 느꼈다는 경외감과 위안이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리라.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에 들어가 가까이서 본 산과 숲, 호수는 원경에 자리한 빙하지형(산)이 조금의 낯섬과 이국적인 매력을 담당하고 있다면, 전경의 평원은 이한정이 오래동안 그려냈던 우리의 들과 닮았다. 그러면서도 중경에 자리하고 있는 날씬하고 키가 큰 나무 숲은 당연하게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이다. 캘리포니아의 풍경을 그리면서 이한정은 그 곳의 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경험한 대로, 여행자가 아니라 그 지역에 거주하고 살아내야했던 사람으로서 보고 느낀 바들을 꼼꼼히 담아 풍경 안에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이한정_들 Plains_한지에 수묵채색_40×50cm_2019
이한정_숲 Forest_한지에 수묵채색_33.5×45.5cm_2019

얼마 전, 그림을 좋아하는 어떤 지인이 물었다. 동양화의 정의가 정확히 무엇이냐고. 동양화란 무엇이냐고. 이 원론적인, 사실 학계에서 명확하게 동의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한 질문에 이론을 전공한 나는 이제 현대미술에서 동양화, 서양화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며 재료와 기법의 문제가 아니겠냐고 했다. 그런데, 동양화를 전공하고 서양화 재료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한 분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랬다. 책으로만, 글로만 공부를 한 기획자라는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그렇다. 작업의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기운생동"도 그렇고, 동양화에서는 어떤 정신적인 가치, 그리고 대상을 내적으로 이해하고 무엇보다도 체화한 결과로 나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한정의 풍경이 그렇다. 그냥 스쳐지나간, 순간적으로 받은 영감에서 비롯된 작업이 아니라,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곱씹어내며, '수행하듯' 정성껏, 그리고 꼼꼼히 붓 끝에 그려지는 점하나 하나에 미세한 힘의 강약을 조절하며 그려낸 풍경이기에, 최대한 이해하고 자기화 하려는 태도로 그려낸 풍경이기에,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고, 장엄하지만 두렵지 않고 친근하며, 익숙하지 않지만 익숙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작가가 느꼈다는 그 경외와 위안이 풍경 안에 잘 녹아있어 우리에게 고요하게 울림으로 다가온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고요함 속에, 그렇게 이한정의 『고요 Silence』 를 통해 우리는 차분함과 위안을 함께 얻는다. ■ 임은신

이한정_숲 Forest_한지에 수묵채색_41×53cm_2020
이한정_호수 Lake_한지에 수묵채색_60×120cm_2020

나의 작업은 차창 밖으로 무수히 지나치는 자연의 풍경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의 내가 보고 경험한 풍경들이 기억 속에 쌓여 축적되었다가 현재의 내가 가진 감정이 더해져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생명의 시작이며 나의 존재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기운과 생동감을 빌어서 나의 내면의 공간을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 하늘과 맞닿은 드넓은 땅에 어떠한 건물이나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새롭고 낯선 풍경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하고 끝없는 자연을 바라보며, 발에 채이는 돌과 흙더미,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 곁으로 무수히 자라난 잡초 따위에 깃든 생명의 울림이 내 안으로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 수행하듯 하나하나 쌓아 올린 먹점은 나무가 되고, 숲이 되고, 들판이 되고, 산이 되어 또 다른 생명체로 발현되고, 그 위에 더한 색감을 통해 그 생명체가 담고 있는 표정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잡초와 마른 나무 무성한 흙 벌판은 오렌지빛 표정을, 침엽수 빽빽하게 자라난 사이로 살짝살짝 드러난 바위산은 겨울의 한기가 느껴지는 흰색 빛 표정을, 물을 잔뜩 머금고 햇빛 받아 더욱 선명해진 잔디밭은 초록빛 표정을 짓곤 한다. 자연이 담고 있는 표정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들과 뒤섞여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지금 이 순간에도 고요한 울림으로 쉼없이 변화하고 있는 자연의 일부를 묵묵히,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 이한정

Vol.20200605j | 이한정展 / LEEHANJEONG / 李漢貞 / painting